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img.discountpostersale.com/posters/PFSAAHF22501/1/Robin-Yount-Hall-of-Fame-Limited-Edition.jpg || 이름 || Robin R. Yount || || 생년월일 || [[1955년]] [[9월 16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일리노이]]주 댄빌 || || 포지션 || [[유격수]], [[중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73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br] [[밀워키 브루어스]] 지명 || || 소속팀 || [[밀워키 브루어스]](1974~1993) || [include(틀:밀워키 브루어스 영구결번)] ||||<#082574><:>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white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white 헌액자}}}''' || ||||<:>http://baseballhall.org/sites/default/files/Yount%20Robin%20Plaque_NBL.png?width=250|| ||||<:>'''[[http://baseballhall.org/hof/Yount-Robin|로빈 욘트]]'''|| || 헌액 연도 || [[1999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77.5% (1회) || |||||||||||| '''1982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롤리 핑거스]][br]([[밀워키 브루어스]]) || → || '''로빈 욘트[br]([[밀워키 브루어스]])''' || → || [[칼 립켄 주니어]][br]([[볼티모어 오리올스]]) || |||||||||||| '''1989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호세 칸세코]][br]([[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 || '''로빈 욘트[br]([[밀워키 브루어스]])''' || → || [[리키 헨더슨]][br]([[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파일:yount 19.png]] [목차] == 개요 == '''[[밀워키 브루어스]]의 최고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명''' 통산 3,000안타를 돌파한 선수 중 한 명이며, 두 차례 리그 MVP를 수상했다. 더욱 대단한 것은 MVP 두 차례가 내야수로서 한 번, 외야수로서 한 번 수상한 기록이며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하다. 통산 성적은 타율 .285, 251홈런[* 이는 밀워키 팀프랜차이즈 최다홈런 기록이었으나 2015년 8월19일 [[라이언 브론]]이 252호 홈런을 기록하면서 2위기록이 되었다.], 3142안타, 출루율 .342, 장타율 .430, OPS .772, 순장타율 .144, BB/K 0.72, wRC+ 113, 1406타점을 기록했다 == 선수 경력 ==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지만, 어릴 때 가족 전부가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해서 거기서 야구를 배웠다. 그리고 197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지명받아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 당시 밀워키는 창단 3년차의 신생팀이었고, 신생팀이 그렇듯이 딱히 롤모델이 될 선수도 없지만, 대신 자리는 널럴해서 1974년 만 19세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풀 시즌을 뛰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만 20세 이전에 가장 많이 뛴 선수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다. 초창기는 수비도 별로고, 공격력도 신통치 않았지만, [[행크 아론]]이라는 전설이 밀워키에 오면서 그의 지도를 받아 타격 실력이 늘어났다. 별 관심을 못 받는 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실력을 향상해서 골드글러브도 1회 수상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유격수가 되었고, 공격력은 동료인 [[폴 몰리터]]와 함께 최고의 테이블세터를 구축할 정도로 밀워키의 간판이 되었다. 그 결과의 결실이 1982년 리그 MVP 수상 및 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 비록 [[1982년 월드 시리즈|월드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지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만년 하위팀 밀워키의 영광을 안겨준 시즌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로빈 욘트였다. 이 해 욘트가 기록한 성적은 유격수로는 경악스러운 성적인 0.331 29홈런 114타점. 그 뒤 어깨 부상으로 인해 유격수 자리에서 송구가 힘들어지자 중견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중견수로서도 공격 실력은 여전히 괜찮아서 1989년에 다시 0.318 21홈런 103타점의 기록을 내며 또 다시 MVP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역대 세 번째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포지션에서 MVP를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안타 페이스가 빨라 만 30세 전에 이미 2,000안타를 돌파했고, 3,000안타도 만 37세 전에 이미 달성했다. 사실 은퇴 역시 말년의 기량 쇠퇴가 좀 빠른 편이라서 조기에 한 편인데, 만일 그가 40세 넘어서도 뛰었거나 적당히 기량을 유지했다면, 최소한 3,500안타는 기록했을 공산이 컸다. 은퇴를 겨우 만 38세에 했기 때문. 젊은 시절에는 비인기팀이고, 비전도 없는 밀워키의 사정에 절망해서 재능이 있었던 [[골프]]선수로 전향도 시도했지만, 결국 밀워키가 연봉도 올려주고 잘 설득해서 계속 야구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스타가 된 후에도 밀워키를 떠나지 않고, 계속 밀워키에서만 뛰며 20년을 한 팀에서 보낸 선수가 되었다. 다만, 이 놈의 비인기팀 사정 때문에(...) 올스타전에는 겨우 세 번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타자 중에서는 가장 적게 올스타전에 나간 기록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밀워키가 전국구 인기 팀은 아니다보니 벌어진 현상인 듯. 대신 밀워키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선수다. [[분류:야구선수]] == 은퇴 이후 == 1999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입성했는데, 득표율이 3,000안타 돌파 선수 치고는 낮은 편인 77,5%다. 근데 이건 그가 못해서가 아니라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은퇴한 양반이 메이저리그 최다 탈삼진의 주인공인 [[놀란 라이언]]과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전성시대를 연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인 [[조지 브렛]]과 겹치는 통에(...)[* 이 두 양반은 각각 98.79%, 98.19%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입성했다. ㅎㄷㄷ][* 그리고 [[칼튼 피스크]]는 당대 최고의 포수였으면서도 이 세 양반과 같은해 은퇴한 탓에 첫해 미역국을 마시고 다음해에야 입성이 가능 했다.] 이래저래 스포트라이트와는 영 인연이 없다. 그가 현역시절 단 등번호 19번은 당연히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은퇴 후에도 야구계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어서, 여러 차례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에 남았고, 브루어스엔 2006년부터 08년까지 벤치코치를 역임했었다. 2013년 8월 2일 대 워싱턴 전에서 은퇴 20주년 기념식 및 시구행사를 가졌다. 같은 밀워키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전당 멤버인 [[롤리 핑거스]]도 자리를 같이했다. 또한 이날 욘트의 이름으로 $10000 가 소아암센터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 그외 이모저모 == [[파일:attachment/로빈 욘트/Robinade.png]] 자신의 이름을딴 "Robinade" 라는 레모네이드 음료 사업에 참여 하기도 하는중.[*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동자선단체에 기부된다고 한다.] 취미로 카/모터사이클 레이싱을 즐긴다고 한다. http://pds23.egloos.com/pmf/201208/07/95/d0145495_5020952951697.png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 레전드 등급의 카드가 있는데, 기본 탭정보로 중/상/상/상/상 을 찍고 [[하이점프캐치]] 잠재력도 달려있다. 듀얼포지션훈련 기능으로 중견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 [각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밀워키 브루어스 영구결번 (원본 보기) 로빈 욘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