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 프로젝트=나무위키 클래식음악 프로젝트)] [목차] ||||<tablealign=right>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7/Marin_Marais_2.jpg?width=403 || ||||<:> 앙드레 부이스(André Bouys)가 그린 마랭 마레, 1704년 || ||<:> '''[[세례]]''' ||<:> [[1656년]] [[5월 31일]]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a/Royal_Standard_of_the_King_of_France.svg/1024px-Royal_Standard_of_the_King_of_France.svg.png?width=23 [[프랑스 왕국]] [[파리(도시)|파리]] || ||<:> '''사망''' ||<:> [[1728년]] [[8월 15일]](72세)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a/Royal_Standard_of_the_King_of_France.svg/1024px-Royal_Standard_of_the_King_of_France.svg.png?width=23 [[프랑스 왕국]] [[파리(도시)|파리]] || ||<:> '''직업''' ||<:> 작곡가, 비올리스트, 지휘자 || [youtube(2nlq69pmADo)] ▲ 비올 작품집 2권 중, [[생트 콜롱브]]의 무덤Tombeau pour Mr de St. Colombe.[* 생트-콜롱브는 그의 스승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이 곡을 작곡해 스승에 대한 애도를 표현한 것.] [youtube(POydmjVrD0I)] ▲ 오페라 <알시온>(Alcyone) 중 3막에 나오는 '폭풍'(Tempête) 장면. 무대 효과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빠른 32분음표와 트레몰로가 위력을 더하는데, 이러한 음악적 효과가 마레 이후에는 폭풍, 천둥 같은 장면에서 항상 등장하는 [[클리셰]]가 되었다. [youtube(4DzmkLEn3fA)] ▲ [[바이올린]]과 [[비올라 다 감바]], [[하프시코드]]를 위한 《성 쥬느비아브 성당의 종소리》(Sonnerie de Sainte Geneviève du Mont-de-Paris). 하프시코드 반주에 [[피에르 항타이]], 바이올린에 [[파비오 비온디]], 비올라 다 감바에 [[조르디 사발]]. ~~면면이 화려하다~~ >'''전 유럽에 작품이 알려져 있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파리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 >-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Johann Gottfried Walther), 1732, 《음악사전》 中 == 소개 == [[프랑스]] 태생의 [[작곡가]]이자 [[비올]] 연주자이다. 아마 현대에 들어서는 [[비올라 다 감바]]의 부활의 일등 공신이라 할지도..?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의 면모와 그의 비올 작품집이 유명한데, 그는 오페라 작곡가로도 명성이 높았다. == 생애 == === 유년 시절 === 1656년 5월 31일에 세례를 받았지만 출생일이 아닌 세례일이 아니기 때문에 마레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불명이다. 부모는 구두수선공이였다는 빈센트 마레(Vincent Marais)와 카트린 발랑제(Catherine Bellanger). 마레가 11살이던 1667년, 마레는 [[생 제르맹 록세루아 성당]]의 성가대로 들어갔는데, 아마 이곳에서 음악의 기초를 배운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6살이던 1672년에 마레는 [[변성기]]가 찾아와 성가대를 그만 두고, 전설적인 비올의 대가 [[생트 콜롱브]](Monsieur de Sainte-Colombe)에게 비올을 배우러 찾아갔다. 하지만 마레는 스승을 6개월만에 앞지르는 등 비올에 재능을 보였는데, 이를 본 콜롱브는 [[하산|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하는데...]] 마레는 포기하지 않고 숨어서 콜롱브의 음악을 훔쳐 들었다. 하지만 저명한 시인이자 음악가이지도 한 [[티통 뒤 티예]](Titon du Tillet)에게 들켜버렸는데(...), 달아나는 마레를 잡으려던 티예는 실패했다고.[* 이 이야기는 후술할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에서도 다루어 지는데, 티통 뒤 티예가 이 이야기를 기록했으므로 이 이야기는 사실에 가깝다.] === 궁정 생활 === 마레는 그 후에 [[장 바티스트 륄리]]가 발족한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연주자로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륄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아카데미의 연주자 생활을 순조로웠는지 1676년 9월 21일에는 카트린 다니쿠르(Catherine Darnicourt)와 결혼했는데 슬하에 19명의 자녀를 두는 등 결혼생활은 순조로웠던 듯 하다. 계속해서 마레는 [[승진]]을 하는데 1679년 8월 1일에는 궁정의 비올 연주자로까지 임명된다. 또한 1686년에는 자신의 비올 작품집 1권을 출판하여 륄리에게 헌정하고, 륄리의 장남인 [[루이 륄리]](Louis Lully)와 합작한 첫 오페라 <알시드>(Alcide)가 성공을 거두는 등 작곡가로서의 입지도 굳히기 시작하였다. == 대중매체 ==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의 소설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한 바 있다.] 원작으로 한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 에 등장한다. 상세한 소개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76&contents_id=30092|네이버캐스트]] 참조.[* 정작 OST 중 마랭 마레의 곡보다는 [[프랑수아 쿠프랭]]의 곡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다는 게 함정(...).] 자세한 내용 [[추가바람]]. JTBC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서도 그의 곡이 잠깐 언급된다. [[분류: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프로젝트 문서 (원본 보기) 마랭 마레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