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작가/목록]] http://blog.joins.com/usr/l/ib/liberum/0908/4a9bcfadc3d2a.jpg http://s.wsj.net/public/resources/images/BN-AB180_1019pr_E_20131018143643.jpg http://postfiles6.naver.net/20160427_53/graymarket_1461753954107GPFVW_PNG/20160427_194513.png?width=300 [목차] == 소개 == Marcel Proust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의 소설가.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파리(도시)|파리]] 근처 오퇴유 출생.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질·양에 있어서 모두 최고의 것으로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1913∼1928)의 작가이다. 아버지 아드리언 프루스트 박사는 보스 지방 출신인 위생학의 대가로 파리대학교 교수였으며, 어머니 잔은 알자스 출신의 [[유대]]계 부르주아지 집안 규수였다. 섬세한 신경과 풍부한 교양을 갖추어 모자간의 마음의 교류는 프루스트의 정신생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외가 쪽으로 인척이 된다. 아버지의 고향 이리에, 할머니와 피서 갔던 노르망디의 해변, 파리의 샹젤리제가 유소년기의 작가가 경험을 쌓은 장소들로 모두가 후에 소설로 옮겨져서 중요한 무대가 된다. 풍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9세 때부터 [[천식]]에 걸렸는데, 이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의 숙환이 되었다. 또 어떤 시기부터 자각하게 된 동성애의 습벽이 그의 인생에 어두운 부분을 형성하게 되었다. == 작가로서의 삶 == 파리의 콩도르세중학으로 진학하여 상류사회의 자제들이 모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몇 사람의 친구와 함께 동인지 《향연(饗宴)》을 발행하였다. 또 사교계와 문학 살롱에 출입하면서 카이야베 부인, 스트로스 부인 등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이 작가로서의 인간관찰의 안목을 길러 주었다. 《향연》 시대의 문장은 A.프랑스의 서문을 얻어 《즐거움과 그 나날》(1896)에 종합되었는데, 동료들간에서도 묵살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병약]]무위하게만 보였던 프루스트가 일관하여 문학적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이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발굴된 방대한 미발표 원고에 의해 밝혀졌다. 《장 상퇴유》는 1,000매를 넘는 대작으로 3인칭 수법으로 저술되었는데, [[1896년]]∼[[1900년]]에 걸친 작품으로 추정되며, 또 《생트 뵈브에 반대하여》는 [[1908년]]∼[[1910년]]경의 [[습작]]인데, 모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대성될 일관된 노력이 남긴 행적으로 보아야 할 작품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1권 《스완네 쪽으로》는 [[1911년]]경에 대체로 완성을 보았으나 출판사를 구하지 못하여 [[1913년]]이 되어 가까스로 자비출판되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하였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가 발간된 것은 [[1918년]]이었다. 이것은 이듬해에 공쿠르상을 수상하여 프루스트는 비로소 평생의 [[꿈]]이었던 문학적 영광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코르크]]로 둘러싼 병실 안에서 죽음의 예감과 대결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성을 위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일생과 바꿀 대작을 남겼다는 점에서 프루스트는 작가로서의 영광과 비참을 모두 맛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작품 외에 2권의 문집, 10여 권의 서간집과 미발표 원고가 있다. == 관련문서 == * [[프루스트 현상]] [[분류: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