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성(건축)]] [include(틀:출입금지지역)][* [[2016년 경주 지진]]으로 경주국립공원 내 등산로와 트래킹 코스들이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되었다. [[http://media.daum.net/life/outdoor/travel/newsview?newsId=20160913171131062|#]] 출입금지 해제되면 본 틀 삭제요망.] http://blogimg.hani.co.kr/editor/uploads/2015/01/09/rain_75346_92947_ed.jpg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인근에 있는 [[신라]]시대의 [[산성]]이다. [[사적]] 제47호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됐다. == 역사 == 정확한 축성 시기는 기록이 없지만 [[실성 마립간]] 4년에 [[왜군]]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왜군이 이 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간간히 나온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일본군]]의 주 침공 루트일 [[동해]] 바다에서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수도가 일본에서 멀어서 대비할 시간은 벌 수 있었던 [[고려]]나 [[조선]]보다도 일본군 방어가 훨씬 큰 국가적 과제였고, 즉 동해 바다와 경주 시가지 사이 요충지에 있는 이 성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것. 아예 [[자비 마립간]] 때인 475년에는 [[임시수도]] 격으로 여기에 옮겨와 살았을 정도였다. 이 시기는 [[고구려]] [[장수왕]]이 한창 남진정책을 펼쳐 [[백제]] [[개로왕]]이 474년 전사할 정도였기 때문에 신라 측도 고구려의 침공에 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선덕여왕]] 말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 때 비담이 난을 일으킨 근거지가 여기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의 5개 지구 중 산성 지구가 이 곳이다. 위 사진을 보다시피 아직 본격적인 복원은 시작되지 않아서 일반 관광객 접근성은 나쁘다. 다만 [[2010년대]] 들어 경주시가 유적 복원(+관광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여기도 복원될 예정이다.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명활산성 비석이 나왔는데, 551년에 명활성을 만들 때 참여한 지방관과 촌주, 실무자의 이름, 공사 구간, 공사 기간 등의 정보가 새겨져 있다. [[분류:신라]][[분류:산성]][[분류:경주역사유적지구]][[분류:대한민국의 사적]]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출입금지지역 (원본 보기) 명활성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