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MLB)]], '''[[도핑]]''' http://cfs.tistory.com/attach/3891/1325890314.jpg?width=450 || 이름 || 모리스 새뮤얼 본[br](Maurice Samuel Vaughn) || || 생년월일 || [[1967년]] [[12월 15일]] || || 국적 || [[미국]] || || 출신지 || [[코네티컷]] 주 노워크(Norwalk, Connecticut) || || 포지션 || 1루수 || || 투타 || 우투좌타 || || 프로입단 ||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 23위 || || 소속팀 || [[보스턴 레드삭스]](1991~1998) [br] [[애너하임 에인절스]](1998~2001) [br] [[뉴욕 메츠]](2002~2003) || |||||||||||| '''1995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 || [[프랭크 토마스]][br]([[시카고 화이트삭스]]) || → || '''모 본[br]([[보스턴 레드삭스]])''' || → || [[후안 곤잘레스]][br]([[텍사스 레인저스]]) || [목차] == 소개 == ~~[[모본왕]]~~ 전(前) [[메이저리그]] 소속 야구선수. 별명은 '힛 독'(Hit dog). 1990년대 중후반 [[보스턴 레드삭스]]의 중심타선을 이끌었던 강타자였지만, 2000년대 들어서 화려한 먹튀로 전락하며 텍사스의 [[박찬호]]와 더불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타 먹튀라인(...)을 형성한 인물. == 데뷔 전 == 뉴욕의 사립 트리니티 폴링 고등학교에서 야구 선수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뉴저지의 세튼 홀 대학교(Seton Hall University)에 진학하여 [[크레이그 비지오]]와 함께 팀을 이끈다. 1989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1라운드 23픽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된다. == 메이저리그 시절 == 총 3회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며(1995,1996,1998) 1995년 아메리칸리그 실버슬러거,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빅리그 13년 통산 .293의 타율과 328개의 홈런, 1064 타점을 기록하였다. === 보스턴 레드삭스(1991~1998) === 1991년 보스턴 산하 AAA팀 포터킷에서 타율 0.295, 22홈런, 72타점 등을 기록하던 시즌 도중 빅리그에 승격되었다. 빅리그에서는 타율 0.260, 4홈런, 32타점을 기록하였다. 1992년에도 빅리그에서 113경기나 출전하였지만, 타율 0.234, 13홈런, 57타점 등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웨이드 보그스]]와 본과의 경쟁에서 밀린 3루수 유망주 한 명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된다. 그는 바로 [[제프 배그웰]].] 좀처럼 빅리그에 정착하지 못하는 모 본이었지만 1993년부터는 강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 해 152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0.297, 29홈런, 101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레드삭스의 수뇌진으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는다. 샐러리캡을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이 파업으로 발전해서 시즌이 조기에 마감된 1994년에도 모 본은 타율 0.310, 26홈런, 82타점 등으로 노쇠한 레드삭스의 타선에 한 줄기 희망으로 자리하였다. 1995년 투타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저 클레멘스]]와 [[호세 칸세코]]가 부상으로 많은 수의 경기에 결장하는 가운데 모 본의 방망이는 대폭발하였다. 모 본은 타율 0.300, 39홈런, 126타점 등을 기록하면서 팀을 5년만에 지구 우승으로 이끌었다. 막강 타선을 앞세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디비전에서는 14타수 무안타라는 극심한 부진을 보였고, 팀도 스윕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126타점으로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인 타점왕을 손에 넣은 모 본은 MVP 투표에서 자신보다 성적에서 월등히 앞선 [[알버트 벨]]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당시 알버트 벨의 성적은 타율 .317, 50홈런 126타점 장타율 .695이었던 반면 모 본은 39홈런 장타율 .575로 스탯상으로는 확연히 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외의 지표인 OPS, BB/K 면에서도 모 본은 알버트 벨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개인 성적에서부터 월등한 차이를 보인데다가 모 본이 팀을 지구 수위로 이끄는데 그쳤던 반면 알버트 벨은 팀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시켰다. 당연히 모 본의 MVP 수상은 많은 논란을 야기했는데, 성격이 개차반인 알버트 벨에 비해서 사회 활동이나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모 본을 의도적으로 밀어준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논란을 뒤로 하고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를 잡은지 3년만에 리그 MVP까지 수상하면서 모 본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를 잡았다. MVP수상으로 탄력을 받은 모 본은 1996년에도 MVP급 활약 - 타율 0.326, 44홈런, 143타점 등을 기록하였다. 레드삭스의 타선은 모 본과 나머지 8명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의 위상은 레드삭스에서 절대적이었다. 1997년에는 당시 메이저리그 유격수 3인방의 한 명으로 거론되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메이저리그에 정착하며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모 본은 좌우 쌍포를 형성하였다. 타율 0.315, 35홈런, 96타점 등을 기록한 모 본은 1998년에는 타율 0.337, 40홈런, 115타점 등의 MVP급 활약을 펼쳤고, 팀이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1995년와 같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한 디비전시리즈에서 모 본은 타율 0.412, 2홈런, 7타점 등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팀은 1승 3패로 또 다시 인디언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 해를 끝으로 FA로 풀린 모 본은 레드삭스에 잔류하기를 희망했지만 팀과의 협상은 결렬된다. 결국 모 본은 FA시장에 나서서 자신의 몸값을 평가받게 되었고, 그는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6년간 8,0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는다. === 애너하임 에인절스(1999~2001) === 모 본을 영입한 애너하임 에인절스는 창단 이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과 13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개막전에서 파울볼을 잡으려던 모 본이 상대 벤치에 떨어지며 발목에 부상을 입는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삐걱이기 시작하였다. 부상 속에서도 모 본은 타율 0.281, 33홈런, 108타점 등으로 분전했지만 엔젤스는 지구 최하위를 면하지 못했다. 2000년에도 2년 연속 3할에 못미치는 0.272를 기록했지만, 36홈런, 117타점 등으로 6년 연속 30홈런 이상과 3년연속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였다. 모 본의 가세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대했던 엔젤스였지만 성적은 5할 승률을 가까스로 넘긴 지구 3위에 머물렀다. 게다가 2001년에는 개막 직전에 전치 6개월에 달하는 왼팔 부상을 당하여 결국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엔젤스는 모 본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를 포기하고 그를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시켰다. === 뉴욕 메츠(2002~2003) === http://www.kjclub.com/UploadFile/exc_board_22/2012/03/02/133065855850.jpg 입단식때 [[방한복 상의 내피|대한민국 군필자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다.[* [[http://latimesblogs.latimes.com/photos/uncategorized/2009/02/04/carnegiedelimovaughn.jpg|의외로 깔깔이 수집가인듯?]] ] '''어메이징 메츠'''를 위해서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선 메츠는 기존의 [[마이크 피아자]]에 모 본과 함께 [[로베르토 알로마]], 로저 세데뇨 등을 보강하였고, 메이저리그 최강의 핵타선을 구성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모 본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된 모습이 아니었다. 139경기에 출전해서 타율 0.259, 26홈런, 72타점 등의 부진한 타격 성적에, 수비에서도 무려 18개의 에러를[* 그것도 ''''1루수'''가!] 범하는 등 1,700만 달러 이상의 몸값과는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2003년 5월 경기 도중에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통째로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된다. 2004년에도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한 모 본은 그렇게 [[먹튀]]의 대명사로 낙인찍혔고, 쓸쓸히 유니폼을 벗었다. === 그리고 이 모든 것은... === 2007년 12월 13일, 전 미국을 뒤흔든 '''[[미첼 리포트]]'''가 발표된다. 그 문서 한 구석에 [[호세 칸세코]], [[로저 클레멘스]], [[배리 본즈]] 등 익히 알려진 약물 복용자들과 함께 모 본의 이름도 끼어있었다. 미첼 리포트에 따르면 부상에 신음하던 2001년, 모 본은 성장호르몬을 구입하여 투여하였다고 한다. 이후 2002년 초반부에는 잠시 회춘한듯한 활약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덩어리였던 그의 몸에 과도한 근육 증강은 독과도 같았기에 결국 그의 부상은 악화되어 2003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다. 미첼 리포트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그가 선수로서 쌓아왔던 기록과 업적들은 모두 폄훼되었다. 2009년초 있었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후보에 오른 그는 고작 1.1%의 득표밖에 기록하지 못하며 [[광탈]]하고 만다. 사실 애초에 누적 스탯이 많이 부족했기에 약물 건과는 별개로 명전행은 어려웠겠지만. == 총평 == 2000년대 보스턴에 [[데이비드 오티즈]]가 있었다면 1990년대엔 모 본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 극악의 수비력에 [[삼진]] 머신이었지만 수준급의 선구안과 장타력으로 극복하였다. 타율이 낮았던 것도 아니라 레드삭스 시절에는 5년 연속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수말년의 부진과 성장호르몬 투여 의혹으로 인하여 그의 모든 명예와 기록은 폄훼되고 말았다. == 기타 이야기거리 == *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내셔널리그의 강타자 그렉 본과는 사촌관계이다. * 어린이와 홈리스 등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는 등 사회활동에 힘쓰곤 했다. * 은퇴 후 오하이오주에서 트럭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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