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文立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나라와 [[서진]]의 인물. 자는 광휴(廣休). 파군 임강현 사람으로 태학에 유학해 모시, 주례, 예기, 의례 등을 전공하고 초주에게 사사받았으며, 문재들은 문립은 [[안회]]와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 [[진수#s-1|진수]], [[이밀]]은 자유, [[자하]]와 같다고 했다. [[나헌]]은 [[자공]]과 같다고 했으며, 임관해서 상서까지 이르렀다가 촉이 평정되고 진에서 수재로 천거되어 낭중이 되었다. 태시 초년[* 265 ~ 274년이다.]에는 제음태수에 임명되었다가 중앙에 부름을 받아 태자중서자가 되었으며, [[제갈량]], [[장완]], [[비의]]의 자손이 중원을 방황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관위를 주어 등용하면서 파촉의 민중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오의 백성들의 기대를 이 곳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고 상표했고 이 일은 모두 시행되었다. 조칙에서 문립이 충실하고 마음이 바르면서 청렴하며, 사려가 깊고 재능이 깊다고 칭찬하면서 이전의 치적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립을 산기상시에 임명했다. [[사마염]]이 이름높은 정경에 대해 추천하지 않는 것을 묻자 늙은데다가 명예를 바라지 않기에 추천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서역으로부터 말이 헌상될 때 사마염이 이 말을 어찌하냐고 묻자 태복에게 물으라고 했고 사마염은 이를 옳게 여겼다. 위위에 승진해 함녕 연간[* 275 ~ 280년이다.]에 사망했고 저술한 상주문, 시, 부를 모아 수십 편이 세상에 전해졌다고 한다. [[분류:촉한의 인물]] [[분류:서진의 인물]] 문립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