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文房四友(글월 문, 방 방, 넉 사, 벗 우) || 이 문서는 다른 이름인 [[문방사보]], [[문방사후]], [[지필묵연]]으로도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 [목차][[분류:문구]] == 개요 ==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의 4가지 --원수덩어리--친구, 즉 곁에 늘 두게 되는 [[문구]]들이다. 글을 쓸 때의 네 가지의 [[보물]]이라 하여서 '문방사보', 혹은 황제를 보필하던 [[제후]]에 빗대어 '문방사후'라고 부르기도 한다. 4가지 문구에 해당하는 한자들을 나열하여 지필묵연(紙筆墨硯)이라고도 한다. 이걸 자주 쓰던 것은 물론 지금이 아닌, [[조선]]시대에나 해당되는 얘기지만 말이다. == 종류 == 자세한 설명은 각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종이]] (紙, 지) * [[붓]] (筆, 필) * [[먹]] (墨, 묵) * [[벼루]] (硯, 연) == 역사 == [[중국]] 사람들은 문인들이 책을 읽는 곳 혹은 쓰는 도구들을 문방이라고 부르면서 특별하게 대우해 왔다. 문방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우라는 표현은 [[당(통일왕조)#s.2.5|남당]]의 이욱(李煜) [[황제]]가 만들게 한 이정규묵, 남당관연, 징심당지, 오백현[* 순서대로 먹, 벼루, 종이, 붓이다]의 문구들을 통틀어서 '''남당사보'''(남당의 네 가지 보물들)라고 부르고 애지중지한 것이 유래였다--얼마나 문구를 좋아했으면 문구 네 개를 나라의 보물이라고 하는 걸까.--. 문인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송나라]]가 세워지기에 이르러서는 이 문방사우를 아끼는 정도가 더 깊어졌다.[* 이 때는 문방구의 종류도 벼루와 같이 쓰는 물 담는 그릇인 연적, 먹 같은 것이 묻은 붓을 빠는 그릇인 필세, [[도장]] 등의 40여 가지가 넘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문구류를 사랑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 내용 == 조선의 선비들은 글씨 쓰기를 매일 같이 하였다. 요즘에도 글씨는 사람 성격을 나타낸다--어른들은 다 성격이 꼬부랑인가--는 말이 있는데, 예전에야 더 심하면 심했을 것이다.[* 이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한다.] 자연히 문방사우는 [[양반]]들에게는 최상위 중요 아이템이었다. 이러다 보니 나중에는 글씨가 아니라 누가누가 더 좋은 문방사우 가졌나 가지고 쓸데없는 사치나 부리는 폐단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듯 항상 글을 쓰는 등의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친구라 불러도 무리가 없었을 듯 하다.--친구는 주로 학교에서만 보기라도 하지 문방사우는 집에서든 서당에서든 항상 볼 것이다-- 문방사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