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동명이인]] * [[야구 관련 인물(KBO)]] || 이름 || 문병권 || || 생년월일 || 1965년 4월 4일 || || 출신지 || 대구광역시 || || 학력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연세대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88년 MBC 청룡 2차 1라운드 지명 || || 소속팀 || [[MBC 청룡]]/[[LG 트윈스]](1988~1993) || |||||||||||| '''1981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 || 전대영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등학교]]) || → || [[문병권]]([[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등학교]]) || → || 오석환([[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군산상업고등학교]]) || 전 [[LG 트윈스]]의 투수. 투구폼은 사이드암. 경북고를 졸업한 정통 TK였다. 고교시절에는 [[성준]], [[류중일]] 등과 함께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는 혈투인 [[박노준]], [[김건우]]의 선린상고와의 맞대결 당시의 에이스인 성준의 백업으로 활동했으며 성준이 졸업한 이듬해에는 경북고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1988년 [[삼성 라이온즈]] 1차지명에서 [[류명선]], 정윤수, 홍성연에게 밀려 미역국을 드신 뒤 [[MBC 청룡]]에 입단했다. 1990년 10승 5패, 방어율 3.72의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지만 6경기 연속 완투[* 당시 3일 간격으로 등판하면서 삼성전의 10이닝 완투승, 롯데전의 13이닝 완봉승 등 긴 이닝을 소화했다고 한다.]를 비롯하여 패전처리 역할까지 소화하는 등 혹사당한 결과 이듬해에는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 중 최소승(3승13패), 방어율 최하위(5.15)라는 불명예 2관왕으로 급추락하게 된다. [[백인천]]의 만행을 이야기할 때 간간히 언급되는 선수. 그러나 선수로서의 본인에 대한 평가도 썩 좋지 않은편. 일단 성실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교 때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대학시절을 거치면서 기량이 전혀 늘지 않은 듯하다. 연세대 동기인 김성규(전 [[해태 타이거즈]])는 대학시절 문병권이 훈련태도도 불성실하고 뺀질거리기만 했다면서 졸업해서 프로에 온 후에도 이를 갈면서 계속 디스하고 다니기도 했다. 경북고의 에이스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차 지명에서 3명이나 뽑을 수 있던 그 시절에 고향팀 삼성의 지명을 못 받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1990년 조차 후반기에는 투구폼의 속도를 조절하는 변칙스타일이 간파당하면서 통타당하기 시작해서 10승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선발 로테이션에서 제외되어 불펜으로 배치전환될 정도였다. 같은 1990년에 급격한 기량향상을 보인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이 그 후에도 괜찮은 활약을 유지한 것을 생각하면 1991년의 저조한 성적이 혹사에만 기인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1965년 출생]]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문병권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