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sadragon_207167_1%5B275157%5D.jpg?width=300 文世光 1951년 12월 16일~ 1974년 12월 20일 [[일본]] 출신의 재일교포이자 1974년 8월 15일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를 저격한 암살자. 일본 이름은 '''난조 세이코(南條世光)'''. [[1951년]] [[12월 26일]], [[일본]] [[오사카]]에서 [[아버지]] 문병태와 [[어머니]] 육말란 사이에서 3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세이키 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였고 한국인 부인인 강성숙과 결혼하였다.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민단]] 산하의 청년조직인 "한청"에서 활동을 했고, 조총련과는 많은 연계가 없었다고 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79&aid=0000022756|#]] 그러나 외교통상부 문서에는 고교때부터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골수 좌익분자로 묘사되어있는 등, 의견은 분분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92213|#]] 일본쪽의 자료에 의하면 제4인터내셔널 일본지부와 연계된 고교생 좌익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등, 아무튼 혁명적 급진사상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참고. 1974년 친구 '''요시이 유키오(吉井義雄)'''의 이름으로 여권을 발급 받아 방한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던 국립극장에 들어가 [[일본인]] 초청자임을 빙자하고 잠입하여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낭독중이던 박정희를 향해 총을 발포하였지만 박정희가 재빨리 강단 밑으로 피하며 저격에 실패했고, 그 옆자리에 앉아있던 [[육영수]]가 그 총알에 맞아 사망하였다. 그리고 현장에서 긴급체포되어 조사를 받았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1974년 12월 [[사형]]을 선고 받고 받게 되어서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사건에 관한 내용은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을 참조. 그리고 그로부터 [[1979년|5년 후]] [[김재규|이 사람]]에 의해 [[10.26 사건|박정희 대통령도 결국 암살되었다]]. [[분류:범죄자/인물]] [[분류:1951년 출생]] 문세광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