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축구 관련 인물]] http://provenquality.com/wp-content/uploads/2014/01/1517171_w2.jpg '''[[이집트 왕자|이집트의 왕자]]''' --이집트산 [[저니맨]]이자 [[멘탈갑]]-- || 이름 || 미도 (Mido) [* 본명은 아메드 호삼 후세인 압델하미드(Ahmed Hossam Hussein Abdelhamid, احمد حسام حسين عبد الحميد )이다.] || || 생년월일 || 1983년 2월 23일 || || 국적 || [[이집트]] || || 출신지 || [[카이로]]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신체조건 || 188cm || || 유소년팀 || 자말렉 SC || || 소속팀 || 자말렉 SC (1999~2000) [br] [[KAA 헨트]] (2000~2001) [br] [[AFC 아약스]] (2001~2003) [br] [[셀타 비고]] (임대) (2003) [br]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3~2004) [br] [[AS 로마]] (2004~2006) [br] [[토트넘 핫스퍼 FC]] (임대) (2005~2006) [br] [[토트넘 핫스퍼 FC]] (2006~2007) [br] [[미들즈브러 FC]] (2007~2010) [br] [[위건 애슬레틱]] (임대) (2007) [br] 자말렉 SC (임대) (2009) [br]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임대) (2009~2010) [br] [[AFC 아약스]] (임대) (2010) [br] 자말렉 SC (2011~2012) [br] 반즐리 FC (2012~2013) || || 감독 || 자말렉 SC 대행 (2014) [br] 자말렉 SC U-18팀 (2014~ ) || || 국가대표 || 51경기 / 20골 || [목차] == 클럽 == [[이집트]]의 전 축구선수로, 자말렉 SC의 유소년팀 감독을 맡고 있다. 1999년 [[이집트]]의 자말렉 SC에서 데뷔한 뒤, 알루미늄 나그 함마디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에티오피안 커피를 상대로 [[CAF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 데뷔했으며, 시즌이 끝난 이후 [[벨기에]]의 KAA 헨트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초반에는 [[향수병]]으로 인해 고생했으나, 곧 극복하고는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다.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2:1 승리를 주도하는가 하면, 로얄 앤트워프롸의 경기에서 1골 2어시스트를 올려 팀의 3:1 승리에 공헌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시즌이 끝난 이후 '이집트 올해의 유망주상' 및 '벨기에 리그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했으며, '벨기에 에보니 슈'[* 매 시즌마다 [[벨기에 프로리그]]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주는 상이다.]를 받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뒤 여름 이적시장에서 5년 계약으로 [[AFC 아약스]]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는데,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아폴론 리마솔과의 [[UEFA컵]]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충돌해 [[뇌진탕]] 증세를 보여 치료를 받았다. 얼마 뒤 완벽히 회복한 뒤 팀에 복귀했으나, 그 해 12월 [[FC 트벤테]]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공을 걷어차는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퇴장을 당해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징계 기같이 끝나 경기장에 복귀했으나, 2002년 3월 [[페예노르트]]와의 경기에서 자신에게 출전 기회가 오지 않자 당시 감독이었던 [[로날드 쿠만]]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이집트로 단기간 휴가를 떠나며 [[트러블 메이커]]에 등극했다. 하지만 FC 위트레흐트와의 [[KNVB컵]] 결승전에서 팀의 선제골을 성공시켜 팀이 3:2로 승래하는 데 기여하는 등 팀이 [[더블]]을 차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러한 활약으로 '아프리카 올해의 유망주상'을 수상했다. 그 뒤 2002-03 시즌 [[FC 흐로닝언]]과의 경기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전반전에 조기 교체되었으며, 본인은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인해 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고 해명했으나 쿠만은 미도가 경기장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다시 언쟁을 벌였다. 이와중에 미도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할 것이라고 폭탄 선언을 했으나,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자-- 곧바로 쿠만에게 사과하며 다시 트러블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결국 팀에서는 미도에게 [[벌금]] 및 한동안 출전 금지 처분을 내렸으며, 그 해 12월 미도는 소속팀에 남아 계속 활약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이미 쿠만에게 찍혀버린 것도 모자라 팀 동료인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다툰 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나름 준수한 활약에도 벤치 멤버로 전락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가대표팀 경기 도중 [[허벅지]] 부상을 입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아예 리저브팀으로 내려가는 굴욕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까지 오자 [[유벤투스 FC]]나 [[SS 라치오]] 등 여러 팀으로의 이적설이 돌았으며, 이와중에 [[셀타 비고]]가 아약스에 미도의 임대 요청을 하자 곧바로 수락해 스페인으로 가게 되었다. 이후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득점을 하며 팀의 2:1 승리를 주도했다. 그 뒤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자 아약스에서는 시즌 종료 이후 미도를 복귀시키려고 했으나, 미도는 셀타 비고에서 행복하다며 팀에 잔류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해 5월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한데다 설상가상으로 [[비야레알 CF]]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다시 한 번 사고를 치며 팀의 신뢰를 져버렸으며,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아약스로 복귀한 뒤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 [[뉴캐슬 유나이티드]], [[AS 로마]] 등 여러 클럽으로의 이적설[* 아약스에서는 미도의 뉴캐슬 이적을 허용했으나 미도 측에서 이를 거절했으며, 로마의 경우에는 아약스가 제시한 1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맞춰주지 못해 이적이 무산되었다.] 끝에 5년 계약에 1200만 [[유로]]의 이적료로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팀을 옮겼다. 이적 이후 [[EA 갱강]]과의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하는 등 나름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으나, 당시 팀의 중심 선수가 다름아닌 [[디디에 드록바]]였기 때문에 2인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도는 시즌 종료 이후 타 팀으로 이적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AS 모나코]]와의 경기 이후 과속 운전으로 법원에 출두하는 등 --또다시-- 사고를 저질렀으며, 결국 마르세유 또한 아약스와 마찬가지로 미도를 타 팀으로 이적시키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전에도 한 번 이적 요청을 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베식타쉬 JK]] 등에서 관심을 보였으며, 결국 2003-04 시즌 종료 이후 5년 계약에 6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아약스 시절부터 자신에게 계속 구애를 해 온 [[이탈리아]]의 로마에 입단했다. 입단 이후 [[ACR 메시나]]와의 팀에 경기에서 데뷔했으며, 나름 좋은 활약을 선보였음에도 [[발렌시아 CF]]나 [[맨체스터 시티]], [[사우샘프턴 FC]] 등 여러 클럽으로 이적설이 돌았다.[* 참고로 발렌시아는 [[베르나르드 코라디]]와의 맞트레이드를 제시했다.] 다만 로마는 적어도 시즌 종료때까지는 미도가 팀에 잔류하기를 원했으나, 결국 2004-05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18개월동안 [[잉글랜드]]의 [[토트넘 핫스퍼]]로 임대를 떠나는 것에 합의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포츠머스 FC]]와의 경기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이후 시즌 종료 때까지 22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며, 2005-06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마틴 욜]] 감독의 신임을 얻었으며, 미도 또한 로마로 복귀하는 것보다 토트넘에 잔류하기를 원했다. 그 뒤 2006년 4월 부상을 입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도중 팬들에게 인종차별을 당해 김독인 [[앨런 파듀]]가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여곡절끝에 시즌 종료 때까지 리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11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였으며, 당초에는 로마로의 복귀 및 타팀으로의 이적이 제기되었으나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이 675만 유로의 이적료를 지불해 미도를 완전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이 당시 로마는 미도를 토트넘에 넘겨 주는 대신 [[이영표]]를 영입하기를 원했으며,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이영표 본인이 거절해면서 무산되었다.] 이후 런던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다...만 [[포츠머스 FC]]와의 경기 전 과거 토트넘에서 10시즌동안 활약하기도 했던 [[솔 캠벨]]을 '''상대하기 제일 쉬운 수비수'''라고 조롱했다가 --다시 한 번-- 구설수에 올랐으며, 시즌 초반 부진을 겪으면서 토트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이후 [[로비 킨]]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저메인 데포]]에게 밀려 공격수 제 4옵션으로 전락했으나,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한 뒤 [[아스날 FC]]와의 [[풋볼 리그 컵]] 준결승전에서 골을 기록하는 활약을 보이며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분명 이전 시즌에 비해서 떨어지는 활약이었기 때문에 2006-07 시즌 종료 이후 토트넘은 미도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맨체스터 시티와의 이적설이 있었으나 결국 600만 유로에 [[버밍엄 시티]]로 이적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도 본인이 버밍엄이 제시한 계약 조건에 불만을 가졌고, 이에 버밍엄 또한 강경한 입장을 취하면서 이적이 무산되었다. 그 뒤 이번에는 [[미들즈브러 FC]]가 버밍엄이 제시한 600만 유로를 맞추어 토트넘에 이적 요청을 했으며, 미들즈브러는 미도와의 협상까지 마무리짓고 4년 계약에 미도를 완전 영입했다. 입단 이후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으며, 이후 뉴캐슬과의 경기 도중 서포터에게 [[무슬림]]을 모욕하는 인종차별 구호를 들었다고 주장해 [[축구협회(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 해당 사건을 조사하기도 했다. 그 뒤 11월에 [[치골]] 부상으로 치료를 받은 뒤 다음해 1월에 팀에 복귀했으며, 3월에 열린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발로 [[가엘 클리시]]의 머리를 가격해 퇴장당한 뒤 3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뒤 4월에 [[탈장]] 수술로 2007-08 시즌을 마감하며 --또 다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 뒤 자신의 전 소속팀인 토트넘과의 2008-09 시즌 개막전에서 득점을 해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으며, 다음 주에 있었던 [[리버풀 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하며 전 시즌에 있었던 부진을 만회하는 듯 했다. 이후 포츠머스와 웨스트햄을 상대로 다시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예오빌 타운과의 경기에서도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툰카이 산리]]와 [[아폰소 알베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위건 애슬레틱]]으로 6개월 동안 단기 임대되었다. 여담으로 이 당시 뉴캐슬과의 경기 도중 또 무슬림에 대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조사 결과 뉴캐슬 서포터 2명이 체포되어 처벌을 받았다. 위건에서는 리버풀과의 데뷔전에서 득점을 성공해 팀의 1:1 무승부에 공헌했으며, 아스날과의 경기에서도 득점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때까지 리그에서 12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활약을 한 뒤 미들즈브러로 복귀하게 되었으나, 미들즈브러의 강등이 확정되자 2주 동안 팀 훈련에 무단으로 불참하며 합류 거부 의사를 드러내어 구단에 벌금을 지불했다. 결국 2009년 친정팀인 자말렉으로 1년 동안 임대를 떠나기로 합의했으나, 그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겨울에 복귀해 이번에는 2009-10 시즌 종료 때까지 웨스트햄으로 임대를 떠나기로 합의했다. 웨스트햄이 낮은 주급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 회복을 위해 계약했으나,[* 1주일 동안 1000파운드(약 150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총 리그에서 9경기에 출전해 무득점으로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한 채 미들즈브러로 복귀했다.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욜의 러브콜을 받아 자신의 전 소속팀이었던 아약스로 1년 동안 임대를 떠나게 되었으며, 리그 초반에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겨울에 욜이 사임하고 [[프랑크 더 부르]]가 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하자 아예 전력외 취급을 당하며 반 년 만에 계약이 취소되었다. 그 뒤에는 자말렉과 3년 6개월 계약을 체결했으나, 자말렉의 실수로 협회에 등록되지 못해 2010-11 시즌 종료때까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병크]]가 터졌다.(...) 이후 2011-12 시즌에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 시즌 종료 후 [[반즐리 FC]]로 이적했으나, 단 한 경기에만 출전하고 6개월만에 방출된 뒤 소속팀을 찾지 못해 결국 은퇴를 선언하였다. == 국가대표 ==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이집트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바 있다. 2001년 불과 18세의 나이에 [[아랍에미리트]]을 상대로 [[이집트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2002년과 200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했으며, 특히 2002년 대회 당시 [[잠비아]]를 상대로 선제골을 득점해 팀의 2:1 승리를 이끄는 등 활약했다. 하지만 2004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코 타르델리]]가 자신을 소집하려 하자 부상을 핑계로 거대표팀 차출에 불응했으나, 하루 뒤 소속팀인 로마의 친선 경기에 출전해 비난을 받았다. 또한 이집트 축구협회에서는 다시는 미도를 국가대표팀에 부르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2005년 1월 타르델리가 경질된 뒤 축구혐회 측에서는 미도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면 국가대표팀에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었다. 결국 한 달 뒤 미도는 [[카이로]]에서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했으며, 이후 한 달 뒤부터 국가대표팀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2006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참가해 [[리비아]]와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해 팀의 3:0 승리를 주도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세네갈]]과의 준결승전 당시 자신을 교체시킨 것에 대한 불만으로 국가대표팀 감독 [[하산 셰하타]]와 말다툼을 벌였으며, 하루 뒤 사과 의사를 표명했으나 축구협회에서는 미도를 6개월동안 국가대표팀에서 제명시키기로 발표했고, 결국 정작 가장 중요한 네이션스컵 결승전에는 나오지 못했다. == 은퇴 이후 == 은퇴 이후 [[알 자지라]]에서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의 해설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 감독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4년 1월 불과 30세의 나이에 자신의 친정팀인 자말렉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파리 생제르맹 FC]]의 유소년팀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본인이 거절했다.] 초창기에는 30세라는 젊은 나이와 은퇴 이후 6개월 정도의 짦은 지도자 수업을 받고 바로 감독이 된 것으로 인해 구단 안팎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리그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둠과 동시에 [[이집트 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려 비판을 잠재웠다.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호삼 하산]]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자말렉 유소년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여담으로 토트넘 시절인 2005년 자신의 고향인 이집트에 축구 선수 육성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 기타 == 전 토트넘 수비수 [[레들리 킹]]은 ~~미친~~[* craz까지 내뱉다가 표현을 고쳤다.]상당히 특이한 선수였다고 회고하면서,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은 [[이영표]]와 절친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도(축구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