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축구 관련 인물]], [[감독/목록]] http://static.sportskeeda.com/wp-content/uploads/2013/01/Laudrup-1231769.jpg '''전설 그 자체였던 현역 시절.''' http://i.telegraph.co.uk/multimedia/archive/02320/michael-laudrup_2320170b.jpg?width=600 현재 모습. || 이름 || 미카엘 라우드럽(Michael Laudrup) || || 생년월일 || [[1964년]] [[6월 15일]] || || 국적 || [[덴마크]] || || 출신지 || 프레데릭스베르 || || 신장 || 183cm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소속팀 || 쾨벤하운 BK (1981 - 1982) [br] 브뢴뷔 IF (1982 - 1983) [br] [[유벤투스 FC]] (1983 - 1989) [br] [[SS 라치오]] (임대) (1983 - 1985) [br] [[FC 바르셀로나]] (1989 - 1994) [br] [[레알 마드리드]] (1994 - 1996) [br] [[비셀 고베]] (1996 - 1997) [br] [[AFC 아약스]] (1997 - 1998) || || 지도자 ||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2000 - 2002 / 수석코치) [br] 브뢴뷔 IF (2002 - 2006) [br] [[헤타페 CF]] (2007 - 2008) [br]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08 - 2009) [br] [[RCD 마요르카]] (2010 - 2011) [br] [[스완지 시티 AFC]] (2012 - 2014) [br] [[레크위야 SC]] (2014 - 2015) || || 국가대표 || 104경기 37골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5><#ffffff><:> '''{{{#000000 스완지 시티 AFC 역대 감독}}}''' || ||<:><width=30%> [[브렌던 로저스]][BR](2010~2012) ||<:> {{{+1 →}}} ||<:><width=30%><#ffffff> '''{{{#000000 미카엘 라우드럽}}}'''[BR]'''{{{#000000 (2012~2014)}}}''' ||<:> {{{+1 →}}} ||<:><width=30%> [[개리 몽크]][BR](2014~2015) || {{{#!html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LUMFlhLWzZ0"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Michael Laudrup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미카엘 라우드루프''' [[덴마크]]의 [[축구]]선수. 전 [[EPL]] [[스완지 시티]] 감독. 1964년 6월 15일생. 클럽통산 478경기 199골. [[A매치]] 104경기 37골. [목차] == 소개 == '''[[알란 시몬센]]과 함께 덴마크를 대표하는 축구선수이자, 명실상부한 1990년대의 레전드.'''[* 우연하게 시몬센이 먼저 1979년에 바르샤에 이적해서 3시즌동안 활약했다. ] 라우드럽이 한창 활약할 무렵엔 '''국내에서''' 유럽축구 열기가 낮았기 때문에 지명도가 떨어지지만, '''세계적'''으로 1990년대 초중반 유럽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꼽힌다. '''사실 우리나라만 몰랐지, 세상은 이미 라우드럽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해외축구에 관심이 있는 덕후나 [[위닝]] 등 축구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수 밖에 없는 레전드다.] 놀라운 패싱력과 볼 컨트롤 능력을 지녔던 미드필더 183cm의 장신에다, 사진만 봐도 알겠지만 골격도 단단하다. 이처럼 세계를 호령한 불세출의 축구선수였지만, 활약 시기가 [[대한민국]]이 해외축구에 관심이 있던 시기 이전이므로[*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한국에서 유럽축구, 정확히는 EPL을 주말마다 볼 수 있게 된 것이 [[박지성]]의 맨유 진출 이후부터이긴 하나 접근성의 문제이지 당연히 한국에도 유럽축구빠는 당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박지성 이후 더욱 널리 보급되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중고딩 남자들이 축구에 하악하악대는건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선수였는데, [[스완지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기성용]]을 영입하면서 새삼스레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언론도 '''"[[미카엘 라우드럽]]의 반만 배워도 [[기성용]] 성공한다능!"'''이라면서 [[설레발]]을 치고 보통 사람들도 라우드럽의 플레이 영상을 본 뒤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우승경력 : 아약스, 바르셀로나 4연패,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크루이프의 드림팀 멤버로 바르셀로나에서 4개의 라리가 타이틀을 포함한 9개의 트로피를 수집했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까지 합하면 라리가 5연패. * 1999년 [[프리메라리가]] 지난 25년간 최고의 외국인 선수 선정. * 2003년 [[UEFA]] 50주년 유럽 최고의 축구선수 50인 선정. * 2004년 [[FIFA]] 100주년 최고의 축구선수 100인 선정. * [[FC 바르셀로나]] 서포터 선정 클럽 역대 최고의 용병. * 2013년 마르카선정 레알마드리드 역대 외국인 베스트 11. 다들 어마어마한 기록이다. 주목해야봐야 할 점은 스페인 라 리가의 양대 강호, '''[[엘 클라시코|서로를 끔찍히 싫어하는 두 팀]]'''의 어엿한 레전드로 꼽히는 것. 라우드럽의 위엄이라면 위엄일지도. 사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그의 업적은 레전드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가 복수하겠답시고 덥썩 찾아와주었으니 얼마나 통쾌할지... == 선수생활 == === 선수초기~[[FC 바르셀로나]] 시절 ===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라우드럽은 17세 때 코펜하겐 FC(Kjøbenhavns Boldklub)에서 프로 데뷔를 한다. 1983년 재능을 인정받아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물론, 아무리 뛰어나도 스무살 풋내기를 중용할 만큼 [[유벤투스]]의 멤버가 녹록하지 않은지라, 임대 형식으로 [[SS 라치오]]에서 2년 동안 활약하다가 유벤투스로 복귀했다. 85/86시즌 유벤투스에서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아직 본인의 [[전성기]]라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85/86시즌 월드사커가 선정한 Top 10위 중에 6위였다. '''1위는 당연히 [[끝판왕]] [[디에고 마라도나]]였다.''' 그러나 1988년 '''[[요한 크루이프]]'''가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에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야기가 바뀐다. 언제나 그렇듯이, 타도 [[레알 마드리드]]에 불타는(...) 바르셀로나와 요한 크루이프는 당대 최고의 선수를 끌어모으는데, 라우드럽은 1989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안도니 수비사레타]], [[로날드 쿠만]][*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팀운영으로 [[발렌시아 C.F.]] 팬들로 하여금 분노와 스트레스로 뒷목을 잡게 만들었던 그 쿠만이 맞다. 하지만, 선수시절에는 레전드급 선수였다.], [[펩 과르디올라]][* 90년대 최고의 앵커맨(또는 그 중의 한 명)으로 꼽혔던 레전드. 2008년 FC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아 08/09시즌의 6관왕을 비롯 굉장한 커리어를 쌓아올리고 있는 그 사람이 맞다.], [[호세 마리아 바케로]],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훗날 [[호마리우]]에 [[게오르게 하지]]까지... 그야말로 '''[[드림팀]]'''이 탄생했다. 이후 90/91시즌을 시작으로 바르셀로나는 4년 연속으로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또한 1992년 팀의 오랜 숙원이던 [[UEFA 챔피언스리그]]마저 제패함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 와중에 라우드럽은 2년 연속(92,93)프리메라리가 [[MVP]]까지 차지했으니, 그 포스가 어느 정도였을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 1994년 마침내 '''드림팀 붕괴'''를 알리는 서막이 오른다. '''그것도 아주 비참하게.''' 1994년 5월 18일 챔피언스리그 결승. 상대는 오렌지 삼총사를 앞세워 [[세리에 A]]를 호령했고 [[마르셀 드사이]]가 자신을 디스하던 [[요한 크루이프]]를 [[역관광]] 태울 준비를 한 [[AC 밀란]]이었다. 결과는 4:0으로 캐관광을 당했다. 사실 결승전 당시 AC 밀란의 멤버는 전성기 세계를 지배했던 '밀란 제네레이션'의 풀스쿼드와 비교하면 1.5군정도의 네임벨류였다. 밀란 제네레이션의 대표적인 멤버인 [[마르코 반 바스텐|오렌지]][[루드 굴리트|삼]][[프랑크 레이카르트|총사]]와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등 주요 멤버들이[* 바레시-코스타쿠르타는 당시 AC밀란의 주전 센터백이다.] 타팀으로 이적하거나 부상이나 경고누적/4강전 퇴장 등의 사유 때문에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AC 밀란의 다소 안전제일주의적인 경기스타일[* 전임감독인 [[아리고 사키]]과는 다른게 당시 AC밀란 감독 [[파비오 카펠로]]의 성향 때문이었다.] 등으로 인해 AC 밀란을 얕잡아보고 있었던 요한 크루이프[* 사실 그도 그럴것이...해당시즌 AC밀란은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의 극단적인 수비전술 탓에 리그 34경기 19승 12무 3패 '''36득점 15실점'''이라는 극단적인 ~~변태~~ 짠물축구를 펼친 바가 있다. 당시 밀란의 스쿼드가 그렇게 꽉 잠궈야만 성적을 낼 수 있는 스쿼드는 결코 아니었음에도. (오렌지 삼총사의 해체가 있었다고 해도 충분히 공격적인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더러 있었던 스쿼드였다.) 물론 어쨌든간에 프로무대에서 방심으로 인해 대참패 한것은 크루이프의 삽질이 맞기는 하다만...]는 "축구가 뭔지 한 수 가르쳐주겠다."며 결승전에 임했지만 결과는 평소와 달리 공격적인 맞불작전으로 나온 AC 밀란에게 그야말로 영혼까지 털리는 바르셀로나의 비참한 참패였다. 비록 AC 밀란이 최상의 전력은 아니었다고해도 당시 스쿼드는 상당히 두터웠다. 주전급이었던 [[파올로 말디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토 도나도니]], [[마우로 타소티]] 등 외에도 인지도가 낮았거나 백업멤버에 가까웠던 마싸로, 드사이, 사비세비치, 필리포 갈리등도 오렌지 삼총사나 바레시/코스타쿠르타의 공백을 완벽히 메꾸며 바르셀로나 격파에 일조했다. 실제로 네 골이 전부 이들에 의해서 나왔다. 마싸로 2골, 사비세비치 1골, 드사이 1골. 이 때의 라우드럽으로 말하자면, 당시 프리메라리가의 외국인 선수의 출전 시간제한 때문에 엔트리에서 제외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요한 크루이프와의 마찰이 심했다. 호마리우, 스토이치코프, 쿠만에게 밀린 것인데 크루이프는 성격상 아예 대놓고 라우드럽을 천대했고, 둘의 갈등은 봉합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특히 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라우드럽은 경기장까지 찾아와서 벤치는 커녕 관중석에서 지켜보게 되는데 이로 인해 불편한 팀 분위기는 패배의 원인 중 하나기도 했다. 어쨌든, 이날 충격적인 참패로 인해 바르셀로나는 팀 개편에 착수하고, 드림팀을 이끌던 30대 주역들이 여름 이적 시장에 대거 흘러나왔다. 라우드럽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복수의 칼날을 갈던 라우드럽은 '''오직 바르셀로나를 깨부수기 위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충공깽]]. === [[레알 마드리드]] 시절~은퇴 === 당연히 바르셀로나 팬들은 뒷목을 잡았고, 살기등등한 비난을 쏟아냈다. 레알 마드리드가 [[누 캄프]] 원정을 왔을 땐 10만 가까운 관중의 열화와 같은 야유(...)속에 사방을 'Laudrup Judas(라우드럽은 [[유다]]같은 배신자)' 플랜카드로 도배했다.[* 사실 2만명의 [[꾸레]]들의 서명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이 바르샤를 버리고 레알로 떠난 것은 더 이상의 신뢰가 없는 크루이프의 불화와 적은 출장 기회 등이 얽혀 나온 결과물이다. 어느 정도의 보복성 이적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라우드럽은 꾸레들의 뜨거운(...) 반응에 그 곳으로 도망가듯 떠나게 되지만...] --하지만 [[루이스 피구|두번째 시련]]이 꾸레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적한 첫 해 [[레알 마드리드]]가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라우드럽은 무려 5년 연속으로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2시즌 만에 스페인 생활을 접고 당시 막 프로리그를 만들어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붓던 [[J리그]] [[빗셀 고베]]로 이적한다. 유럽에서도 신기해하는 '사건'이었고 '축구로 지구를 한바퀴 돈 사람'이라는 수식어도 쓰이곤 했다. 그리고 1년 뒤[* 여름에 이적했기 때문에 뛴 기간은 정확히 1년이지만, 햇수로는 2년간 일본에서 활약한 셈이다.] [[아약스]]로 이적해서 1시즌을 더 활약하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동생 브라이언 라우드럽도 그렇고 미카엘도 그렇고 한 클럽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옮겨다니며 커리어를 쌓았다.~~역마살 형제~~ === 국가대표 경력 === 오늘날 덴마크는 FIFA 랭킹도 상위권이고 유럽의 강팀이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80년대 이전에는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1990년대 세계 최고의 골키퍼 피터 슈마이켈과 [[미카엘 라우드럽]], 그리고 동생 [[브라이언 라우드럽]]이 뛰던 시기에 유럽축구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라우드럽은 18살 생일인 1982년에 덴마크 국가대표에 데뷔를 하게 되고 104게임 37골을 넣는다. 미카엘 라우드럽은 [[센츄리 클럽]] 가입자답게 대표팀 경력도 풍부했다. 유로 1984와 유로 1988에 출전했으나, 정작 덴마크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유로 1992에는 불참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덴마크는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는데, 조예선 [[우루과이]]를 상대로 6: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라우드럽이 보여준 현란한 드리블에 이은 득점 장면은 라우드럽 최고의 플레이를 언급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명장면이다. 이후 월드컵에서는 덴마크가 연달아 지역예선에서 탈락했고, 결국 34세로 선수생활도 막바지에 이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덴마크가 진출한다. 1승 1무 1패로 프랑스에 이어 조 2위로 16강전에 진출, 내친김에 [[나이지리아]]마저 4:1로 압도하고 8강에 진출...했는데 하필 상대가 [[브라질]]. 결국, 접전 끝에 3:2로 브라질에게 석패했고 이 시합이 라우드럽의 대표팀 은퇴 경기가 되었다. 그래도 이 성적은 현재에도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대의 월드컵 성적이다. 이 경기는 그의 동생 브라이언이 2-2 동점골을 넣고 보여줬던 모델 세리머니로도 유명하다. 1998년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 은퇴하게 된다. == 플레이 스타일 == {{{#!html <iframe width="420" height="315" src="http://www.youtube.com/embed/2oXH8F-MGpU"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팬텀 드리블]]([[라 크로케타]])의 교본으로 불릴 정도의 대단한 볼 컨트롤로 여러가지 기술들을 소화해 냈던 선수가 [[미카엘 라우드럽]]이다.[* 실제로, 팬텀 드리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미카엘 라우드럽 이후였다.] 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테크니션의 교본이다.''' 경기 흐름을 읽는 눈과 정확한 패스, 뛰어난 축구 센스까지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없었다. 척 봐도 [[바이킹]]의 후예다운 용모인데, 공을 차는 모습은 ~~위장전입~~ 남미혈통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다. 과거 그가 활약하는 모습, 특히 패스 플레이는 지금도 스페셜 영상을 다시 돌려봐도 '''"[[우왕ㅋ굳ㅋ]] 개쩌네요?"''' 한마디 밖에 안 나온다. 게다가, 무슨 농구선수마냥 노룩패스를 눈이 돌아갈 정도로 잘했다. 수비수는 말할 것도 없고, 동료조차 빈 공간 찾아들어가다가 갑자기 자기 발밑에 볼이 나타나서 식겁할 정도(...). 게다가 [[PK]]도 준수하게 잘 찼다. 요약하자면, '''[[마라도나]]의 킬패스 능력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 --[[멘붕스쿨#s-2.9|사람이 아니무니다.]]-- [[라울 곤살레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함께 뛰어 본 선수 가운데 최고다."'''라고 밝힌 바가 있으며, [[프란츠 베켄바워]]는 "60년대 최고 선수는 [[펠레]], 70년대는 [[요한 크루이프]], 80년대는 [[디에고 마라도나]], 90년대는 [[미카엘 라우드럽]]이다."하고 평가했다. 또한 [[브라질]]의 레전드 축구선수였던 [[호마리우]]도, '''"라우드럽은 내가 인정하는 4명의 선수 중 1명이다."'''라며 그의 진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 지도자 경력 == 대표팀과 프로팀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덴마크 코칭스탭으로 참가했으며,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덴마크의 브뢴드비 IF(Brøndby IF) 팀 감독을 맡았다. 2005년 브뢴드비를 덴마크 슈퍼리그 챔피언으로 올려놓았다. 2006년 소속팀과 계약연장을 하지 않고 2007년 [[프리메라리가]] [[헤타페 C.F.|헤타페]]의 감독을 맡아 코파델레이, 유에파컵에서 돌풍을 일으켰으며, 한때 아브라함 그랜트 감독 경질 이후 후임으로 [[첼시 FC|첼시]]로 간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었다. 2008년 9월 [[러시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감독에 취임했으나, 성적부진을 이유로 7개월 만에 경질되었다. 2010-11 시즌부터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요르카]] 감독으로 부임, 누가 바르셀로나의 레전드 아니랄까봐 마요르카 가지고 바르셀로나 공략본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르셀로나 아는 만큼 보인다!~~ 2012-13 시즌부터 [[EPL]]의 남부 웨일즈에 위치한 [[스완지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데뷔전에서 [[박지성]]이 주장으로 나선 [[QPR]]을 5:0으로 압살하며 화려하게 첫 경기를 장식했다.[* 그러나 아직 [[브렌던 로저스]] 前 감독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는 평도 많다. 스완지 시티를 성공으로 이끈 ~~스완지 팬들 입장에선 배신자~~ 로저스 감독의 [[티키타카]] 전술이 아직 스쿼드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완지의 팀 스타일은 로저스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며 여러 감독을 이어 스타일이 유지되고 있는지라 로저스의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후엔 리버풀로 이적한 [[조 알렌]]의 대체자로 '''[[기성용]]'''을 영입하면서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급격히 높아질 전망이다. ~~제 2의 [[알렉스 퍼거슨]]이냐? 제 2의 [[아르센 벵거]]냐?~~ ~~ 결국 덴마크 [[최강희(축구인)|최강희]]가 되었다~~ 브랜든 로저스 감독 이후 스완지 시티를 잘 이끌며 26라운드 팀 순위 8위를 달리고 있으며, 팀 창단후 처음으로 컵대회 결승까지 팀을 올려놓는 등 여러모로 선전하고 있다. 과거 선수 때부터 감독 시절까지 많은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낸터라, 스페인식 패싱축구를 프리미어리그에 잘 접목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인물로 [[요한 크루이프]]를 꼽는 등, 패싱축구와 점유율 축구에 대한 철학을 확고하게 스완지 팀 컬러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2013년 2월 25일 [[풋볼 리그 컵]] 결승에서 풋볼 리그 2 소속 브래드포드 시티를 압도하며 우승, 감독 커리어 사상 최초 우승이자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웸블리 경기장에서 우승[* 바르셀로나 시절 91-92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이 웸블리에서 열렸다.]을 차지하는 진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http://static.guim.co.uk/sys-images/Sport/Pix/columnists/2013/2/24/1361737185607/Bradford-City-v-Swansea-C-008.jpg 이처럼 [[스완지 시티]]에서 성공적인 감독 커리어를 이어가면서 차후 거취에 관해 많은 [[카더라]]가 나도는 가운데, 3월 9일 감독 계약을 1년 더 연장했다. 이로서 2015년 6월까지 스완지 시티를 맡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기성용]]의 태도에 대한 불만으로 둘 사이의 불화설이 대두되고, 기성용이 결국 [[선덜랜드]]로 임대를 가게 된다. 그리고 기성용이 선덜랜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스완지서 기성용 자리를 차지한 선수들이 부진하자 기빠들은 열심히 라우드럽을 조롱하며 강등당하라 저주하는 등 한국 인터넷에서 별로 안 좋은 대접을 받는 중이다. ~~다음 시즌에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치 않는다.~~ 결국, 성적부진으로 2월 4일 경질되어 감독직은 한방에 훅 갈수 있다는 것을 인증했다(...). ~~그리고 [[기레기]]들은 [[기성용]]때문에 경질이라고 대대적 보도.. 병맛이다~~ ~~더 병맛인 건 네티즌들은 이걸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알싸나 싸줄 둥 대부분의 축구 팬~~기성용 팬~~들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라우드럽은 사랑입니다''', '''라우드Love'''라고 하며 그를 찬양했으나 시즌이 바뀌자마자 순식간에 지 맘대로 기성용 내치더니 잘 됐다며 그를 조롱하는 중. 그러나 아무리 감독이라도 사람은 사람이라 자신과 불화가 있는 인물마저 그저 실력 하나만으로 계속 쓰는 건 무리다. [[알렉스 퍼거슨]]이 [[베컴]]과 [[루드 반 니스텔루이]]를 그 클래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보내버린 것을 생각해 보자]허나, 성적부진은 구실이었을뿐 실상은 선수단의 급작스러운 대격변으로 인해 기존 선수와 영입파의 내분이 발생했고 이때문에 라우드럽이 팀 장악에 실패해 구단주에게 신임을 잃었기 때문에 짤린 것이다. 기성용은 그 사이에 있었던 것일 뿐, 기성용 한 명 때문에 경질되었다보는 건 무리이다. 스완지 시티의 2013~14시즌 항목 참조. 2014년 6월 30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레크위야 S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공교롭게도 [[남태희]] 선수의 소속팀이기도 하다. [[2015년]] 2월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해임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그에게 감독 제의를 했으나, 레크위야에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일본]]의 제의를 거절했다.[* 공교롭게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울리 슈틸리케]]'''였기 때문에, [[FC 바르셀로나]]에서 황금기를 보낸 '''[[미카엘 라우드럽]]'''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그야말로 [[한일전]]의 라이벌 구도와 똑같은 [[엘 클라시코]]였을 듯..'''] 그리고 2015년 6월, 재계약에 실패하며 레크위야 감독직을 끝낸다. 당시 팀 성적이 리그 우승 확정에 아챔 8강까지 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적 부진으로 인한 해임은 아닌 듯 == 기타 == 동생 [[브라이언 라우드럽]]도 덴마크의 레전드급 축구선수였다. 형의 명성에 가려져서 세계구급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지만, 이쪽도 어쨌든 [[바이에른 뮌헨]], [[레인저스]] 등을 거치면서 훌륭한 커리어를 보냈다. --다만 피파3 인게임 성능은 동생쪽이 나은지라 피충들이 종종 미카엘보다 브라이언이 더 훌륭했다고 주장한다-- [[스완지 시티]]에서 라우드럽의 지도하에 뛰고 있었던 [[기성용]] 인터뷰에 따르면, 과묵한 성격인지 기성용 본인에게도 그렇고 선수단에게도 별 말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워낙 감독 자체가 선수시절 월드 클래스급 레전드였기 때문에, 선수단 내에서도 감히 감독에게 함부로 개기려는 선수들이 없다는 모양이다. 여담이지만, 라우드럽은 [[게으른 천재]]였다. [[요한 크루이프]]가 라우드럽을 직접 지도하던 [[FC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너님은 항상 80~90%의 노력밖에 안 함. 니가 빈민가에 태어나서 오직 축구 하나만 보고 살 수 있었다면, 그래서 절실함에 재능을 100% 발휘한다면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임! 예끼! 니미!"]]'''라고 열심히 안 하고 게으르다고 항상 갈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한 크루이프]]는 운동선수 주제에 연습을 죽도록 싫어하고 하프타임이 되면 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였다. '''결국 [[요한 크루이프]]의 커리어를 보면 [[게으른 천재]]의 [[끝판왕]]이나 다름없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미카엘 라우드럽]]은 은퇴를 하고 [[스완지 시티]]의 감독이 되면서 선수들에게 '''[[가해자가 된 피해자|"몸과 마음을 바쳐서 축구에 헌신하라!"]]''' 라면서 선수들에게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갈구고 있는 중이다(...). --근데 저렇게 게으르긴 했어도 결국 한 시대를 씹어먹은 사람이라 게을렀던 본인의 현역시절보다 절반도 못하는 선수들을 보면 화가 날 만도 하다...-- == 경력 == === 선수 시절 === * 유벤투스 FC (1983/84 - 1988/89) * [[세리에 A|이탈리아 세리에 A]] (1) : 1985/86 * [[FIFA 클럽 월드컵|인터콘티넨탈 컵]] (1) : 1985 * FC 바르셀로나 (1989/90 - 1993/94) * [[라 리가|스페인 라 리가]] (4) : 1990/91, 1991/92, 1992/93, 1993/94 * [[코파 델 레이]] (1) : 1989/90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 : 1991, 1992 * [[UEFA 챔피언스 리그|유러피언 컵]] (1) : 1991/92 * [[UEFA 슈퍼 컵]] (1) ; 1992 * 레알 마드리드 CF (1994/95 - 1995/96) * 라 리가 (1) : 1994/95 * AFC 아약스 (1997/98) * [[에레디비지|네덜란드 에레디비지]] (1) : 1997/98 * KVNB 컵 (1) : 1997/98 *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 1995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우승 === 감독 시절 === * 브뢴뷔 IF (2002/03 - 2005/06) * 덴마크 슈퍼리가 (1) : 2004/05 * 덴마크 컵 (2) : 2002/03, 2004/05 * 덴마크 슈퍼 컵 (1) : 2002 * 스완지 시티 AFC (2012/13 - 2013/14) * [[풋볼 리그 컵]] (1) : 2012/13 * 레크위야 SC (2014/15) * 카타르 스타즈 리그 (1) : 2014/15 * 카타르 국왕 컵 (1) : 2014/15 [각주] [[분류:축구선수]][[분류:축구감독]] 미카엘 라우드럽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