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대한민국/정당/목록]], [[민주당/연혁]]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민주당/연혁|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 ||<width=30%><:> --[[신민당(1967년)]]-- ||<:> {{{+1 →}}} ||<width=30%><:> '''민주한국당''' || {{{+1 →}}} ||<width=30%><:> 해산/--[[통일민주당]]-- || [목차] == 개요 == [[1981년]] [[1월 1일]] 창당하였다. 약칭은 민한당이다.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지 않은 [[신민당(1967년)|신민당]] 출신 정치인들이 민주한국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그 해 [[유치송]]이 [[총재]]가 되었다. [[제5공화국]] 시절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당했다.~~[[멀티]]?~~ (이 표현은 이후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창당자금을 제공하고 공천자 명단, 당직 임명까지 관여한 사실상 [[관제야당]]이니 타당한 비판이다. 유치송이 바지 총재이고 [[신상우]] 사무총장이 실세로 알려졌으나 그 역시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은 [[제5공화국]] 정권의 탄압으로 양김([[김영삼]],[[김대중]])이 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라도 야당을 지키겠다는 심정으로 뛰어든 인물도 적지는 않았다고. [[민주정의당]]에 간 의원들에 비하면, 이들의 처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으나 실질적 이미지는 "힘없는 [[구색정당|어용 야당]]이나 [[비시 프랑스]] 격이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81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되었지만, [[1985년]] [[신한민주당]]이 창당되고 치러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지역구 26명과 전국구 9명으로 35명이 당선되는 데 그치며 제2야당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소속의원들의 탈당(주로 [[신한민주당]]행)이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이 148석의 민정당과 맞서는 103석의 거대 야당이 되는 반면 민한당은 3석짜리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그 해 3월 유치송은 민주한국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조윤형]][* [[조병옥]]의 아들이자 조순형의 형이다.]이 잠시 총재가 되어 신민당과 합당을 추진하였으나 선명야당을 표방한 신민당이 2중대 소리 듣던 민한당을 받아줄 리가 만무했다. 결국 조윤형을 비롯한 인사들은 개별적으로 신민당에 합류했고, 그 해 9월 유치송이 다시 총재가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여, 정당등록이 취소되고 잔당은 [[통일민주당]]에 흡수되었다. == 역대 선거결과 == 1981년 대통령 선거 [[유치송]] 7.7% 404/5270 낙선 1981년 11대 국회의원 총선거 21.6% 81/276 1985년 12대 국회의원 총선거 19.7% 35/276 [[분류:대한민국의 정당]] 민주한국당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