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농구 관련 인물(한국)]] ||||<#e20e0e><:> {{{#ffffff 울산 모비스 피버스 No. 11}}} || ||||<#ffffff><:> {{{#000000 박구영}}} || ||<:> '''생년월일''' ||<:> [[1984년]] [[4월 4일]] || ||<:> '''국적''' ||<:> 한국 || ||<:> '''출신학교''' ||<:> [[삼일상고]] - [[단국대학교]] || ||<:> '''포지션''' ||<:> [[슈팅 가드]] || ||<:> '''신체 사이즈''' ||<:> 183Cm, 75Kg || ||<:> '''프로입단''' ||<:> 2007년 드래프트 11번([[울산 모비스 피버스]]) || ||<:> '''소속팀''' ||<:>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7~ ) || ||||||||||||<:> '''2008~2009 [[한국프로농구]] 기량 발전상''' || || [[이한권]]([[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 → || '''박구영([[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박종천(1979)|박종천]]([[울산 모비스 피버스]]) || 한국의 농구 선수. [[울산 모비스 피버스]] 소속의 가드이다. 매산초등학교 4학년 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참고로 당시 농구를 같이 했던 멤버가 [[양희종]], 정승원과 정희한인데 이들과는 9년동안 함께 농구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승진]], [[양희종]], 정승원과 함께 무적삼일을 이끌던 주축 멤버중 하나였다. 이런 활약 덕택에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대표에 차출된 경험이 있었다. 뛰어난 슈터로서의 자질을 가진 박구영은 단국대에 진학하게 된다. [[단국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부상때문에 공백이 있었음에도 뛰어난 드라이브인 기술과 고등학교때부터 이미 알려진 슈팅등을 무기로 삼아서 에이스로 분투했다. 또한 팀의 사정상 [[포인트 가드]]로도 뛰기도 하며 패스 기술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작은 신장과 비주류 대학인 점 등으로 인해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2라운드 1순위인 11순위로 지명되었는데, 당시 군입대로 공백이 생긴 [[양동근(농구선수)|양동근]]의 빈자리를 채워줄 가드로 지명되었다. 모비스에서의 첫 시즌은 양동근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기대를 했으나, 경기운영능력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식스맨]]으로 밀려났다. [[슈팅 가드]] 자리에도 각성한 [[김효범]]이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 나와서 3점슛을 성공시키는것 이외에는 큰 주목을 못받았다. 이후 2008-09 시즌에도 각성한 [[포인트가드]] [[김현중(농구선수)|김현중]]과, 백업인 [[하상윤]]에게 밀리는 감이 있었다. 그러나 [[김현중(농구선수)|김현중]]과 [[하상윤]]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았고, 결국 이 기회를 살려 경기당 1.9개의 3점슛을 터트리며 준주전으로 도약했다. 특히 클러치 상황에서 중요한 한방을 터트리며 [[울산 모비스 피버스]]가 당초의 평가를 뒤엎고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는데 한 몫 했다. 결국 기량 발전상도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양동근이 복귀 하면서 다시 [[국군체육부대|상무]]로 입대하게 된다. 이후 2011-12 시즌을 앞두고 제대했다. 시즌 초반 이지원의 백업으로 주로 출장하다, 점점 중용되며 [[함지훈]]이 복귀한 뒤에도 꾸준히 외곽슛을 넣어주었다. 플레이오프에는 완전히 [[슈팅 가드]] 주전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주 KCC 이지스]] 격파에 앞서 활약했다. 다만 팀은 4강에서 [[원주 동부 프로미]]에게 막혀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2012-13 시즌에도 활약이 예상되었지만, [[김시래]]의 등장으로 일찌감치 주전에서 밀려난 모습을 보였고, 별 다른 활약 못하고 묻혔다. 2013-14 시즌에도 간간히 3점슛을 꽂아넣는것 이외엔 [[이대성]]에게 밀려서 많이 출장하고 있지는 않다. [[분류:슈팅 가드]][[분류:농구선수]] 박구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