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농구 관련 인물(한국)]] [[파일:/image/065/2014/02/19/KGC500_0_59_20140219125402.jpg|width=400]] ||||<#ffffff> {{{#ec1c24 부산 kt 소닉붐 코치}}} || ||||<#000000> {{{#ffffff 박상률}}} || || 생년월일 || [[1981년]] [[3월 4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신지 || [[경상남도]] [[창원시]] || || 출신학교 || 마산고 - [[목포대학교]] || || 포지션 || 가드 || || 신체사이즈 || 178Cm, 73Kg || || 프로입단 || 2003년 드래프트 16번([[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SK 빅스]]) || || 소속팀 ||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2007) [br] [[전주 KCC 이지스]] (2007~2008) [br] [[부산 kt 소닉붐]] (2008~2009) [br]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안양 KT&G 카이츠/안양 KGC인삼공사]] (2009~2014) || || 지도자 || [[목포대학교]] 감독 (2014) [br] [[안양 KGC인삼공사]] 코치 (2014~2015) [br] [[부산 kt 소닉붐]] 코치 (2015~) ||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 소속의 농구 선수. 포지션의 가드. 커리어 하이가 평균 득점은 2009-10 시즌의 7.1점, 어시스트는 2003-04 시즌의 3.6개에 불과한 평범한 백업 가드다. 팀도 네 팀을 거쳤고, 주전으로 뛴 시즌도 거의 없는 선수. 쏠쏠한 백업 가드지만, 주전으로 뛴 시즌은 아예 없다시피한 이 선수가 유명한 이유는 단 하나이다. '''대학 2부 리그 출신으로 유일하게 프로에서 오래도록 뛴다는 사실.''' 때문이다. KBL 무대에서 1998년 [[청주대학교]]의 박용호가 프로에 지명받아 2경기 뛴 이후, 2012년 드래프트에서 박상률과 같은 대학인 목포대학교 출신의 [[장동영]][* 여수전자고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자퇴하고 군대를 갔다와서 다시 목포대로 간 케이스다.]의 등장 전까지 박상률만큼 뛰거나 박상률처럼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는 없다. 마산고 시절에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동기인 [[김동욱(농구선수)|김동욱]]이 [[고려대학교]]로 진학할 때, 꼽사리로 끼어서 대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대신 고려대에 입학시켜주는 조건으로 입학하자마자 농구는 그만둬서 TO를 마련해주는 조건. 하지만, 농구를 원했던 박상률은 [[고려대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농구를 위해 2부리그 대학교인 [[목포대학교]] 진학을 선택한다.[* 정작 김동욱은 수능 점수 미달로 인해 졸지에 1년을 쉬어야 했고 이는 그의 선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2부리그 대학은 클럽 위주라서 수업과 농구를 병행했는데, 운 좋게도 당시 SBS의 코치였던 [[이상범(농구)|이상범]]의 눈에 띄면서 프로 드래프트 신청을 권유받는다. 프로 드래프트 직전의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예상을 뒤엎고, 2라운드 16번으로 당시 SK 빅스 농구단(지금의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 지명받는다. SBS에서는 3라운드에 뽑으려고 계획했는데, [[유재학]] 감독이 먼저 눈여겨보고 채 간 것이다. 성적은 말 그대로 백업 가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수준. 전자랜드에서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은근히 어려운 상무 시험에도 통과해서 2006년과 2007년은 군 복무를 한다. 제대 후에는 전자랜드 대신에 KCC로 이적했는데, 멤버가 워낙 좋은 KCC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kt로 이적. 하지만, kt에서도 별 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2군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kt에서 방출되었지만, 그를 프로 무대로 나가도록 권유한 [[이상범(농구)|이상범]] 감독이 다시 박상률을 영입하며 마침 [[김태술]]의 입대와 [[주희정]]의 이적으로 가드진의 공백이 생긴 KT&G의 백업 가드 역할을 맡겼다. 두 시즌 동안 적당히 괜찮은 백업 가드 역할을 한 후, 2011-12 시즌에는 멤버들이 워낙 좋은 인삼공사 사정 상 출전 기회가 줄어든 편.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팀이 우승하면서 우승 반지는 하나 득템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2부 대학 출신으로 KBL에서 오래도록 뛰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2부 리그 대학 선수들에게는 희망을, 그리고 큰 족적을 남긴 것임에는 분명하다. 2013-14 시즌 최종전이자 마지막 홈 경기가 열린 2014년 3월 9일 은퇴식을 치렀으며 곧바로 모교인 [[목포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맡았다. 그러다가 미국 연수를 마친 뒤 2014-15 시즌부터 KGC 코치를 맡을 예정이었던 [[은희석]]이 연세대 감독으로 이동하자 KGC 코치로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뒤 그와 악연이 있던 전창진 감독이 팀을 맡게 되자 kt의 코치 겸 전력분석 담당으로 이동했다. 박상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