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새롭게 조명한 [[박시백]]의 역사 [[학습만화]]. 조선의 정사를 만화로 그려내어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어 히트를 쳤다. 한겨레에서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하다가 조선사와 관련한 역사드라마를 보면서 점차 조선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뒤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옮길 생각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2001년에 한겨레를 그만두고 조선왕조실록 CD를 사서 1년동안 공부하였고, 2003년에 콘티부터 그림과 채색까지 모두 혼자서 작업한 만화 『조선왕조실록』 1권을 출간하였다. 원래는 아동용으로 기획했다가 5권쯤에서 아예 성인용으로 방향을 틀었고, 1권부터 5권까지는 이후 성인판이 따로 출간되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일부 도서관에서 아동용으로 디자인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권을 찾아볼 수 있다.] 사실 관계 오류와 여러 비판점들이 있긴 하지만 학습만화적인 측면에서 꽤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덕분에 나무위키에서도 이 만화 관련 서술이 있다. 다만 매 권이 올컬러이기도 하고(거기다 만화) 분량이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가격의 압박이 좀 있다. 분량에 따라서 약간 다르긴 하지만 기본 11,000원 이상씩은 한다. 2013년 7월 22일에 '고종, 순종 실록 - 망국'편을 출간하면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0권을 모두 완간하였다. 여담으로 책 겉 재질이 비닐이 아닌 탓에 [[물 같은 걸 끼얹나|물이나 떡볶이 국물 등을 끼얹으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2014년 7월 23일부터 네이버캐스트 테마로 보는 역사 카테고리에 연재되고 있다. [[http://navercast.naver.com/author_contents_list.nhn?acknowledgeId=au1280|보러가기]] 세트로 구입을 하게되면 꽤나 멋진 박스에 책들이 들어있다. 붉은색이며 서예로 제목이 쓰여져 있고 곤룡포 무늬가 새겨져 있다. [[KBS]]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에 자주 인용된다. 주요 인물 캐릭터도 자막으로 나온다. 2015년 6월에 전격적으로 개정판이 발매되었는데 표지와 박스가 더 간지나게 변했다. 개정판에서는 그간 독자들에게 지적받거나 자체적으로 발견한 각종 오표기, 캐릭터 묘사(얼굴, 복식) 오류, 계절 묘사 오류, 역사적 사실 오류 등을 바로잡았다고. [[http://www.hulog.co.kr/515|출판사에서 밝힌, 개정판 관련 FAQ]] 이미 구판을 구매한 상황이라 개정판 추가 구매가 부담스러운 독자들은 아쉬운 대로 출판사에서 제공되는 [[http://humanistbooks.com/cscenter/noticeView.aspx?seq=264|정오표]]를 참고하자. 2015년 8월에 개정판 내용을 기반으로 한 앱과 전자책도 출시되었다. [[http://hulog.co.kr/533|#]] 사실 대부분의 도서관과 대형 서점에서 반드시 비치해두고 있으니 소장까지 하고 싶진 않다면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가서 읽어보는 것도 좋다. 도서관은 불티나게 대여되서 제대로 읽을 수도 없지만 서점은 비닐에도 안 싸여져있고 서서 읽기도 가능한데다가 웬만하면 전권이 다 있기 때문에 넉넉히 하루종일 읽는다면 이틀이면 서서 전부 읽을 수 있다. == 작품 전반의 특징 == === 실록을 중심으로 한 내용 전개 === [[조선왕조실록]]을 원전으로 하고 있다. 권당 200 페이지를 조금 넘는 분량에 주제별로 5장을 분류, 각 장에 보통 4~5개의 챕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7명의 조선국왕 중 재위가 긴 왕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 방식을 취했다.[* 재위가 짧은 왕은 재위가 긴 후임 임금의 앞이나 선왕 뒤에 붙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분량을 조절했다. 예를 들어 재위기간이 2년인 문종은 세종 뒤에 붙이고, 그 아들인 단종은 세조의 앞에, 예종은 성종 앞에 붙였다. 또한 약 10년 안팎의 애매한 재위기간을 지낸 왕은 '효종+현종', '헌종+철종'처럼 둘을 동등한 분량으로 붙여 전개한다.][* 사실 2권 '태조, 정종실록'이나 7권 '연산군일기'도 따지고 보면 재위기간이 앞의 두 사례보다 훨씬 짧지만 굵직굵직한 사건이 많다보니 독립된 권수로 구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 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살펴보면서 조선 시대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각 권마다 다양한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최근 역사학계의 성과를 반영해 대체로 객관적인 범주에서 조선의 역사를 서술했다. 사실 작가의 주관이 적지 않게 반영되어 있으나, 기존의 정설로 인식되는 설을 일일히 언급 해주며 작가의 해석 또한 객관적이라 생각될만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기존에 널리 퍼져 있지만 실록과 교차대조한 결과 근거가 적은 것으로 판명된 [[야사]]를 알려주는 것이 자주 나온다. 제목이 조선왕조실록이듯 실록의 정사 기록을 기본으로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에 알려진 야사의 내용과는 다른 실록의 내용들이 나오고는 한다. 제목만으로 볼 때는 실록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겨 그리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록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 것은 아니고, 가끔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해석들을 덧붙이고 있다.[* 인터뷰에 따르면 4권 '세종, 문종실록'까진 자신의 해석보단 정사를 중심으로 사실적인 부분에 대한 전달에 더 주안점을 뒀으나 5권 '단종, 세조실록'부터 자신의 해석을 어느 정도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단종실록의 심각한 곡필 때문인 듯하다.] 또한 연표를 수록하여 본문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과 연관시켜 읽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박시백은 이 만화를 그리면서 실록을 가장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록에 모든게 있다는 식의 글귀를 썼을 정도로 선조 편의 임진왜란 부분을 제외하면 실록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선조실록은 임진왜란 이전은 사초가 불타 부실한데다가, 임진왜란 부분도 보고 받는 부분은 잘 남아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전투 기록은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중일기, 징비록 등의 다른 사료와 현대 연구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선조실록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중 분량은 제일 많지만, 다른 권들과 달리 기존 역사서와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적 시선이 다소 있었다.] 실제로 정조편 후기에 의하면 심환지 어찰을 포함시킬까 했다가 실록에 없어서 배제했다고 할 정도. 또 실록에 등장하는 당대의 단어들을 그대로 썼다는 점.[* 처음엔 풀어서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중엔 간단히 쉬운 단어로 바꿔 쓸 수 있는 부분조차 그대로 썼다(이게 무슨 단어야 하고 사전을 찾아보면 어이 없어진다. 뒷권으로 갈수록 읽기 힘들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 심지어 옆에 한자도 잘 달아놓지 않아, 단어의 뜻을 짐작하거나 사전을 찾을 때(동음이의어 때문에) 애로가 있다. 사전에 뜻이 안 나온 경우 한자가 없으면 OTL. 참고로 임진왜란의 나고야(名護屋)는 우리가 흔히 아는 대도시 나고야(名古屋)가 아니지만, 한자가 안 달렸다. 가끔 손으로 쓴 한자의 모양이 좀 기괴하여, 한자에 대한 소양이 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아주 없진 않겠지만). 부수로 많이 쓰이는 갈고리 궐(亅)과 벼 화(禾)가 들어간 한자를 보면 못난 점이 똑같다. 갈고리 궐 아래에 위로 삐친 부분이 없다거나 벼 화의 제일 윗 획이 너무 기울어져 다른 획과 붙어버리거나 등등. 팟 캐스트 방송에서 편집자에게, 귀찮아서 한자를 안 넣으면 찾아서 넣어줘서 고맙다고 나온다.(찾아서 넣은 게 그 정도??) 개정판에선 한자의 모양새가 어느 정도 정돈된 모양.] 대사도 당시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물론 정말 길면 요약하거나 중략하는 경우가 있다.] 만화의 재미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시중에 이러한 만화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역사의 현실성을 최대한 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단어나 대사들도 알고보면 읽기 쉽게 옮겨 적은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 나와있는 원문들은 더 어려운 말들로 기록되어 있고, 끔찍하다 싶을 정도로 길다. 20권이라는 분량만큼 각 왕들로 나뉘어진 실록에 기록된 시대를 비교적 자세히 다룬다는 것과 시간 순서대로 작품을 만들고 서술을 하는 것도 장점. 특히 주목할 만한건 엄청난 양의 대사들을 전부 손으로 썼다는 것. 조광조의 정치개혁이나 이이의 경장에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대사들도 다 손으로 썼고, 그 정점은 13권 [[효종]], [[현종]]실록의 그 유명한 [[예송논쟁]] 부분에서 볼 수 있었다.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권수가 늘어나면서 실록 속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것 때문에 권이 뒤로 갈수록 글자수의 압박이 심해져 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 점은 작가 본인도 인정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실록 내용을 되도록 그 자체로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의 게으름(?)도 한몫했다고.] 각 책의 후기에는 본편에는 빠진 색다른 야사, 논평, 사실 등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는 실록의 서술에서 좀 더 나간, 작가 본인의 견해도 꽤 밝혀 두었다. 본편에 넣기에는 좀 망설여졌던 듯. === 인물 선정과 평가 === 아무리 유명한 인물이라도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찬밥 신세다(사실 실록에 등장하지 않으면 아예 나오질 않아야 맞겠지만). [[장금]]이는 중종이 죽기 전에 몇번 나온게 다고, [[황진이]]는 아예 안나온다. 정조실록에서는 [[정약용]]도 실록에 없어 딱 두 컷 나오고[* 오히려 순조실록에서 자주 나온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정조]]시대의 주요 인물로 자주 언급되는 [[박지원]]과 [[김홍도]]도 실록에 나오지 않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지못미]]. 그래도 후기에서 언급됐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대신 왕에 대한 해석과 평은 반드시 넣어서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종이나 문종부터 중종과 명종, 순조나 철종 등의 평가가 많이 나왔다. 조선시대의 여성 정치가들, 특히 수렴청정기의 대비들에 대한 평가가 관대한 편이다. [[만악의 근원]]이라 낙인 찍힌 [[문정왕후]]나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를 정치가로 재평가한 것이 특이한 편. 단 [[문정왕후]] 재평가는 무리수라는 평가도 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 문을 연 [[순원왕후]]도 중립적으로 판단, 나름 최선은 다했지만 한계가 많았던 편이라 평한다. 고종을 수렴청정한 [[신정왕후]]는 대원군의 개혁 파트너로 높이 평가한다. 그 외 [[정희왕후]]도 실록에서의 기록만큼 높은 평가를 내렸다. 다만 [[명성황후]]만큼은 예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작중 본문에서 대부분의 왕비들은 정식 시호대로 표기하는데 그녀의 경우 '명성황후'라는 표현은 19권 본문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고 등장인물 소개에서는 '''고종 비 민씨'''라고[* 그리고 외모부터가 다른 대비들은 후덕하거나 카리스마있게 나온다면, [[명성황후]]는 외양도 좀 차갑고 비호감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매천야록]] 등에 언급된 사치 연회 야사를 어느 정도 긍정하는 것으로 보아 결코 긍정적 이미지는 아닌 듯 하다.] 쓰고 있다.[* 다만 명성'''황'''후라는 추존적 표현이 당대가 아직 왕조였음을 생각하면 좀 애매하니 그런 식으로 소개한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작가의 민씨를 보는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나, 그런 시각이 그대로 등장 인물 소개란에 반영됐다고 보기는 힘들 듯. 20권에서 '실제 황후로 산 적은 없다'고 간략히 해설해 준다.] === 패러디 === 읽다 보면 간간히 [[패러디]]도 볼 수 있다. 가령 태조실록에서는 정도전과 [[김영삼|조깅하는 아저씨]]와 비교했는데 [[정도전]]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IMF]] 불렀다며 깠고 김 대통령은 운동 안해서 살찐 정도전을 깠다, 선조실록에서는 진주성 전투에서 [[마리오]]가 왜병으로 찬조출연하고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이 짱구의 엉덩이춤을 춘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는 [[슬램덩크]] 마지막 권의 [[강백호]]와 [[서태웅]]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돌아서는 그 장면을 패러디한다.[* 이순신 장군이 파직되자 패러디한 장면이다.(…) "앗싸! 성공!" 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다가 "흥!" 하며 돌아서는 장면은 영락없는 슬램덩크의 패러디.] 광해군 편에서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과 제자들이 출연하기도 했으며, [[개그 콘서트]]의 유행어나 캐릭터도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그 외 숙종실록에서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명대사가 패러디되기도 하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제목(오늘도 무사히, 별일없이 산다~)도 등장한다. 영조실록에서는 [[빅뱅(아이돌)|빅뱅]]의 [[태양(빅뱅)|태양]]과 [[타이거 JK]]가 출연하였으며 [[영조]]가 [[유인촌|이분]]의 명대사를 사용한다. [[정조]]실록에서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와 [[미친 존재감]]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순조]]실록에서는 반란등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죽었다라고 표현할때 '''[[29만원|Mr.29만원]]이란 자막이 달린 [[전두환|대머리 아저씨]]가 나왔다.''' [[고종]]실록에서는 [[스카(강철의 연금술사)|스카]]가 이마에 십자가를 새겼으니 천주교도(…)라고 참수를 당하기도 한다. 베이는 효과음도 '스카'다. 다만, 작가의 나이가 나이다보니 서브컬쳐 계열의 패러디는 이 계열의 대본좌인 [[굽시니스트]]처럼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진 못하고 다소 철 지난 것을 쓰는 편이다. 위 패러디 소스 모두 해당 발간 시점 기준으로 10년도 더 지난 것이며, 가장 최신 패러디인 고종실록의 [[스카(강철의 연금술사)|스카]]조차 발간 시점으로부터 이미 10년 지난 캐릭터다. 작가가 서브컬쳐에 조예가 깊다기보단 그냥 예전에 봤던 만화를 떠올려서 써먹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 이 외에도 고종실록에서 탐관오리가 현물을 삥땅치면서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를 말하는 장면도 있다. 그리고 가끔 작가의 [[오너캐]](오너캐라기보단 [[내레이터]]에 가까운 듯 하지만)가 [[오덕체]]를 쓴다--능--. 선조실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군사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구만]]." 이라는 대사도 나온다. === 그림체와 고증 === 자세한 실록의 내용이나 새로운 해석 이외에도 생동감있는 그림체로 조선시대 인물들의 성격이나 이미지에 비교적 맞게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http://youngomd.egloos.com/4237131|예시]] 초상화가 남아있는 경우 최대한 참고해가며 그리고 있는데, 특히 정조실록 편에서는 정조의 모습을 [[정조]] 항목에도 링크된 선원보략 [[어진]]을 바탕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현대에 그려진 [[표준영정]]에 익숙한 많은 독자들이 정조의 실제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진이 남아 있는 태조와 영조, 철종의 모습은 어진을 참고해서인지 어진과 거의 판박이다. 단 세조는 초상화가 남아 있고 아버지와 형 못지 않게 파워풀한 수염의 소유자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책에서는 세조의 수염을 그다지 강조해서 그리지는 않았고 남아 있는 초상화와는 딴판으로 묘사되었다. 남아 있는 세조의 초상화가 호탕하거나 위엄 있는 인상을 준다면 작중에서 묘사된 세조는 상대적으로 간사함을 강조해서 묘사한 느낌?[* 하지만, 경향신문에서 세조의 어진을 모사한 어진화가의 증언에 의하면, '1928년 당시 작업했었던 세조의 어진에 거의 수염이 없었다'는 증언을 했던 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세조(조선)|세조]] 항목을 참조.] 또한 경종 같은 경우는 [[승정원일기]]에 세자 때부터 몸이 비대했다는 기록이 존재하지만, 박 화백이 이 부분을 보지 못한 건지 여기서는 마른 외형으로 묘사되었다. 개정판에선 비대하게는 못 바꾸고 마르지 않은 정도로만 바뀌었다. 또 [[영조]]와 [[사도세자]], 세손 시절의 [[정조]], [[순조]]의 얼굴들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모두 다른게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또한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부터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경우 서서히 나이가 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재위 기간이 길었던 세종이나 선조, 숙종, 영조 등이 있다. [[인조]]의 경우 제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이괄의 난|그 동안]] [[정묘호란|겪은]] [[병자호란|풍파를]] 표현한 것인지, 젊은 시절인 [[인조반정]] 당시에는 후덕하게 그려지지만 말기에 가서는 광대가 도드라지고 턱이 각지게 묘사되는게 포인트. ~~병자호란 이후 폭삭 늙었다~~ 이건 왕 뿐만 아니라 당시 신료들도 마찬가지라서 초상화가 남아 있는 [[황희]]나 [[신숙주]], [[이항복]], [[이덕형]], [[이원익]], [[송시열]] 등은 진짜 초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이들 중 가장 압권은 숙종실록에 등장하는 [[김석주]]. 상당히 [[권신]] 포스를 주는 특이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등장하는데 [[http://www.koreanart21.com/system/webzine/viewPhotoFile.php?key=MTE4NyxpMjAxMjA5MTMyMTU5Mzk1MjA2OTQxMDIuanBnLDkwMA==|실제로 그렇게 그려진]] 영정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정조 시기의 재상 [[채제공]]이 [[사시]]로 묘사된 것 역시 왜곡이 아니라 채제공 본인이 영정에 사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상화가 남아 있는 인물들은 초상화를 최대한 참고하되 박시백 작가가 그 인물에 대해 받은 느낌을 살짝 더해서 디자인한다고 한다. 사진과 초상화가 모두 남아 있는 흥선대원군이나 고종의 경우 초상화와 사진을 적절히 조합해서 그려졌다. 특히 흥선대원군은 초반 섭정기에는 비교적 초상화에 더 가까운 외향이며 나이가 들수록 사진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뒤에서 보듯 초기엔 정치인의 얼굴을 참고하기도 하였다. 그 외 김자점 같은 경우는 1980년대 초반에 방영한 사극 대명에서 김자점을 연기한 배우 故김순철(1937~2004)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왕들의 [[용포]]가 다양한 색깔로 나온다는 것. [[선조]]나 [[인조]], [[숙종]], [[영조]], [[순조]] 등의 왕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이후부터 검은색 용포만 입고 [[효종]]은 남색 비스무리한 용포를 입기도 했다. 효종은 다소 특이한 편. 처음엔 빨간색 용포였다가 나중엔 남색으로 바뀐다. 또 [[세자]], 세손, 세제들은 하늘색 용포만 입고 나온다. 이것도 사실 고증과는 다른 것. 세자는 초기에는 왕처럼 빨간색 용포를, 후기부터는 아청색 또는 검은색 용포를 입었으나 왕과 세자를 헷갈릴 수 있는 독자들 때문에 이리 설정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아쉬운 점은 [[왕비]]의 최고 예복인 적의의 조선 후기 양식을 조선 초기에 적용했다는 점. 태종실록 [[원경왕후]] 편을 보면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때는 '대삼(大衫)'이라 하여, [[명나라]] 복식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 특징 중 하나가 머리에 칠적관이라 하여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된 관을 씌웠다. 이후, 인조 대에 와서 한복의 국속화로 '적의'로 바뀌면서 칠적관과는 다른, 검은색 양식의 '대수'를 씌우게 된 것이다. --뭐 근데 다들 왕비의 복식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니까-- 사실 초기 부분(1-3권)은 복장고증 면에서 중후반부보다 아쉬운 점이 있긴 하다. 그 외에도 복식고증이 아쉬운 부분이 드문드문 있다. 20권에 등장하는 [[홍종우]]의 경우, 처음에는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단발머리 [[양복]] 차림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홍종우가 프랑스에서도 항상 [[한복]] 차림을 고수했고, [[김옥균]]을 사살할 때도 한복으로 갈아입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 점을 지적받자, 개정판에서는 한복차림으로 그러졌으나, 단발머리에 덩그러니 두루마기만 입고 있다. 이때는 아직 단발령 이전이고, 철저한 근왕주의자이자 보수파였던 홍종우가 머리를 잘랐을리가 없다. 또한 프랑스 유학 시절에 찍은 사진이나 김옥균 살해를 묘사한 그림에서 보듯, 홍종우는 갓과 도포에 전복까지 덧입어 완벽한 사대부의 복식을 갖추고 다녔다. [[청]]나라, [[명]]나라의 궁중 복식 및 갑옷 고증은 거의 완벽하다. 다만 명나라 초기 [[주원장]]이 입고 있는 곤룡포는 금색 곤룡포가 아니라 하늘색이다. 그리고 다른 역사만화나 사극은 '사모뿔' 오류[* 대표적으로 '왕의 남자'에서 연산조에 구형 사모뿔을 신하들이 착용하고 나온다.]가 흔하게 보이는데, 이 책은 없다. 5권 단종, 세조실록에선 흉배 관련 고증을, 6권 예종, 성종실록에서는 신하들의 사모 뿔 관련 지식을 간단한 그림과 글로 설명해준다. 단종 때 지금의 흉배가 생겼고, 성종 초기에 사모가 바뀌었다. 성종의 친정 때부터 적용. [[환도]] 관련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는데 띠돈으로 패용하긴 했는데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고 있다는 것. 10권 [[선조]]실록에서부터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이 등장한다. 사실 '아쉬운'거지 고증 오류라고 할수도 없는게 어차피 조선시대 환도는 단지 띠돈을 이용해 차고 다닌다는 게 공통점일 뿐, 칼자루가 앞으로 오게 차던 뒤로 오게 차던 등에 지고 매던 착용자 마음대로였다. 단지 활을 패용해야 하기 때문에 칼자루가 뒤로 가는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했을 뿐이다. [[청나라]] [[변발]] 고증도 옥의 티가 있는데 대다수 매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청나라 말기 변발을 청 개국 초기 변발과 혼동한 것이다. 청 초기 변발은 그야말로 싹다 밀고 땋아놓은 머리만 남기는 건데 청 후기 변발은 상당량의 머리카락을 뒤통수 부분에 남겨둔다. 박시백은 실수로 [[누르하치]], [[홍타이지]] 이하 청나라 사람들에게 청나라 후기 변발을 그려줬는데 만약 실제로 당시에 누가 그따위 변발을 했으면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 밖에 숙종실록에서 무품인 왕자군 [[숭선군]](인조의 서자)이 종4품 숙원인 [[장희빈]]에게 '[[마마]]'라고 부르는 것 같은 사소한 고증 오류가 드물게 있다. 주목할 점이 워낙에 실록에 집중하여 그리기 때문에 특정 사건을 묘사할 때 당시 왕과 대신들의 나이를 고려하여 그리며 예컨대 상중이면 상복을 입은 상태를 묘사하는 등 일부 사 학습만화에서 무시해버리는 나이와 상황 고증을 아주 잘 살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습만화의 레전드라 불리는 [[먼나라 이웃나라]]만 해도 [[아시카가 요시미츠]]를 일본 국왕에 책봉하는 [[건문제]]를 마치 수염을 허옇게 기른 80살은 넘은 노인처럼 그려놨는데 그때 건문제는 24살이었다. 또 다른 예로 윤승운의 [[맹꽁이 서당]]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임오군란]]시기의 [[원세개]]를 노회한 중늙은이로 그려났지만, 이때의 원세개는 겨우 23세의 어린 청년이였다. 한권으로 보는 00시리즈는 인조반정 파트에서 49세의 [[광해군]]은 미중년으로 묘사하면서 40세인 [[인목대비]]는 호호할머니로 그리는 등 나이 고증 같은 건 개판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에선 [[인목대비]]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실수가 발견 될 경우 수정도 매우 깨알같은데, 대표적으로 경종/영조 실록에서 경종대 4번째 페이지의 윤지술의 치렁치렁한 흰 수염이 몇쇄 후 사라졌다. 나이 계산에 실패한 듯. 윤지술(尹志述,1697~1721)은 당시 성균관 장의(掌議:[[학생회장]])로서 숙종의 지문에 [[장희빈]]의 죄를 기록해야 한다고 상소했던 인물이며, 나아가 유생들을 선동해 권당(捲堂: 동맹휴학)까지 일으켰다. 경종 즉위 연간에는 20대의 나이였으므로 흰 수염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윤지술은 김일경 등 소론 준론에 의해 탄핵당해 사형당했다가 영조 즉위 후 신원되었다. 정조 편에선 정조의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을 독살설을 반박하기 위해서인지 두어장에 걸쳐 더 자세하게 묘사했고 송시열이 대동법이 소극적이었다고 서술한 것에 대해 비판이 일자 팟캐스트에서 차차 그것을 수정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비판이 들어오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병신으로 매도하는 여러 유사사학자들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그외에 뒤로 갈수록 그림체가 초반에 비해 정교해지다가 14, 15권을 기점으로 차차 굵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에 박시백은 시력이 나빠져서 그림체 자체가 매우 굵어졌다고 고백했다. === 이덕일 주장과의 반대점 === 참고로 1-18권 뒤편에 이덕일의 추천평이 있다. 평을 보면 적어도 이덕일이 본서를 상당히 좋게 보았던건 사실로 보인다. 사실 작 초-중반부 부분은 이덕일 자신의 주장이랑 비슷한 부분도 있기도 했다. 그러나 작 후반부에서는 이덕일의 주장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먼저 경종-영조실록의 경우 사도세자 관련 부분에서 사도세자를 영조가 죽인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당쟁설을 노골적으로 까는데 당쟁설은 이덕일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참고로 박시백은 영조 편에서 사도세자 문제를 분석하면서 당쟁설에서 핵심적인 부분들을 일일이 까는 모습을 보여주며, 당쟁설을 아주 제대로 부정했다. 이후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대놓고 당쟁설을 부정했다. 정조실록의 경우 먼저 정조는 개혁군주였으며 노론 벽파와 갈등을 일으키다가 독살됐다는 이덕일이 전파한 대중적 인식을 먼드라마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 한다더라 하고 언급은 한다. 하지만 바로 그 후에 박시백은 정조편에서 먼저 개혁군주 여부에 대해 능력은 뛰어났지만 보수적인 면이 있고 과거지향주의적,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더 나아가 사도세자 신원에 자신의 정치철학도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독살설에 대해서는 영조실록 같은 정면 반박은 아니지만 정조가 죽어가는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이 정조가 자연사했다고 믿게끔 한다.[* 참고로 박시백은 자신의 만화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은 간략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각 권의 주인공들인 왕도 예외는 아니라 보통은 1쪽, 많아도 4쪽에, 심하면 1~3컷 정도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정조를 제외하고 좀 상세하게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경우는 인종과 선조인데, 인종은 재위기간이 짧아 죽어가는 과정 말고는 그릴게 없고, 선조는 그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유영경과 이걸 막고, 생존해보려는 광해군의 노력까지 겹쳐서 상세히 묘사할 수 밖에 없는 경우였다. 그런데 정조는 딱히 죽어가는 과정에서 정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재위기간도 짧은게 아닌데 상세하게 묘사됐다. 특히나 4쇄 이후로는 정조가 죽은 날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을 2장이나 추가했다.] 거기에 더해 순조 편에서는 벽파를 무조건적으로 까던 이덕일과 달리 벽파가 있었기에 그동안 세도정치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서술하며 벽파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덕일이(사실 이건 이덕일 이전에도 있었지만)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 김씨]]에 대해서도 굉장히 호의적으로 묘사하며, 오히려 나름대로 정조의 개혁을 계승하려고도 하며 조선의 병폐를 해결하려 했던 여걸이며, 명분을 쥐고 정국에 영향을 준 노련한 정치가이라며 극찬하기까지 했다. 이쯤되면 이덕일이 추천평 쓴 책 맞나 싶을 정도. 특히 경종-영조 실록편에서는 이덕일 주장을 까는 수준을 넘어 아예 척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듯한 서술도 보일 정도로 독자들은 이덕일이 추천한 책에서 이덕일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작 최 후반부인 고종실록편과 망국편에선 이덕일의 추천사가 빠졌으며, 이후 쇄를 거듭하며 발행된 다른 권들과 2015년 개정판에서도 이덕일의 추천사가 실리지 않고 있다. == 비판과 이에 대한 반론 == === 역사적 사실 전달 관련 === 박시백이 학자가 아니다보니 여러 가설을 적당히 선택해서 실었는데, 이 때문에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학설을 그대로 실어놓은 것이나 고증오류도 꽤 존재한다. ==== 인물 관련 ==== * 배극렴이 개국 1등공신이 된 것을 두고 "마지막 순간까지 어느 편에도 끼지 않았던 원로" "중간파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고 묘사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배극렴은 왜구퇴치때부터 이성계를 따르고 위화도 회군을 같이하였으며, 고려 멸망의 순간 왕대비에게 찾아가 [[공양왕]]을 폐할 것을 직접 요청한[* 시중(侍中) 배극렴(裵克廉) 등이 왕대비(王大妃)에게 아뢰었다. “지금 왕이 혼암(昏暗)하여 임금의 도리를 이미 잃고 인심도 이미 떠나갔으므로, 사직(社稷)과 백성의 주재자(主宰者)가 될 수 없으니 이를 폐하기를 청합니다.” - 태조 1권, 1년(1392 임신 / 명 홍무(洪武) 25년) 7월 17일(병신) 1번째기사] 이성계 세력의 연륜있는 올드비중 하나였다. * 초기 [[이성계|태조]], [[정종]]실록에 춘당 [[변중량]]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작가는 이 사람을 계산을 잘 하고 이리저리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붙는 정치철새의 원조라고 해석하였고 최후는 [[정도전]]에게 붙었다가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이방원에게 붙으려 하다가 [[끔살]]당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그리고 개정판에서 이 변중량에 대한 부분이 후손들의 항의를 받아 수정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아예 몇몇 컷을 삭제하고,[* 정확히는 변중량이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에게 아부하다가 살해당하는 페이지인 165쪽 전체를 삭제했다. 그래서 2권 개정판은 개정 전판과 비교하여 165페이지부터 한 페이지씩 앞당겨져 있다.] 작중 변중량의 캐릭터 디자인 자체를 바꾼다. 특히 수정 이전 초판에 나온 변중량은 작가가 지조없음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눈이 사시(斜視)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개정된 이후 평범한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다만 박시백 화백도 10권의 후기에서 변중량 묘사에 대한 논거를 실어두고 있는 등 확대해석은 삼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후에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변중량에 대한 이 묘사는 1, 2권의 주요 참고문헌이었던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참고한 흔적이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에서도 변중량을 기회주의자로 묘사하고 있다. * 문종이 본인의 사고방식이나 성격 때문만이 아니라 수양대군의 세력이 커서 쉽사리 건들지 못했다고 서술했는데 문종은 '''적장자+대리청정'''으로 정통성을 중시 여기는 조선왕조에서 엄청난 힘과 권위를 갖고 있었다.[* 문종의 대리청정 기간은 재위 말기에 건강이 악화되었던 세종의 업무를 실질적으로 세자가 대신한 것으로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의 조선왕조에 있어 세자의 대리청정 및 정치 참여의 중요한 전례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조 역시 재위 말년에 세자 시절의 예종을 문종의 전례에 따라 조회에 참석하게 하였으며, 숙종 역시 세자 시절의 경종의 대리청정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문종의 전례에 따르게 하였다.] 따라서 문종은 당시의 수양대군이 감히 넘보거나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였다. 수양대군이 본격적으로 세력을 불릴 수 있었던 건 문종이 죽기 직전의 시기에서야 가능했다. * [[세조(조선)|세조]]의 후궁인 소용 박씨 덕중(德中)이 [[구성군]]에게 구애편지를 보냈다가 기겁한 구성군이 세조에게 보고하면서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박시백은 내시만 때려죽이고 넘어갔다고만 적었는데, 실제로는 이 일로 구성군에게 죄를 묻지는 않았지만 사실 내시들 뿐 아니라 소용 박씨 역시 죽임을 당한다. 정확히는 처음 편지를 보냈을 때는 방자(궁중에서 잔심부름 하는 궁녀)로 강등시켰다가,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고 두번째로 편지를 보내자 결국 교수형에 처한다. 세조실록에는 "내녀(內女) 덕중(德中)을 내치어 밖에서 교형(絞刑)에 처하였다." "최호와 김중호(편지를 배달한 환관들)를 때려죽이고 나인도 또한 율(律)로 처단하였다."라고 분명히 나온다 (세조 37권, 11년(1465 을유 / 명 성화(成化) 1년) 9월 5일(기유) 2번째기사). 사실 왕조사회에서 임금의 후궁이 외간남자, 그것도 국왕의 조카한테 연애편지를 보낸 건 살기 싫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 만화에 소개된 다른 인물들과 달리, [[조광조]]의 경우 개혁자로만 소개할 뿐, 그가 저지른 병크나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았다. * [[최명길]]이 후대 사대부들에게 비판당하고 과소평가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후대 서인들은 최명길을 높이 평가했다. * 남인의 영수였던 [[허적]]에 대해 처신의 달인이나, 재상으로 특출한 자질은 없었고, 대동법도 시종일관 반대했다고 평가했는데, 정작 허적은 이시방과 함께 김육이 대동법의 실무를 맡긴 관료들 중 하나였다. 특히 호서대동법의 실행은 허적이 직접 담당했다.[* 허적이 대동법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조정에서 결국 대동법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 시행을 허적에게 맡기자 매우 잘했다(...).] *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재건과 [[당백전]] 유통에 대해 문제점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경복궁 재건과 당백전의 유통은 조선 경제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쳐 조선 조정은 강화도 군영의 운영비까지 까먹어야 할 정도로 재정이 파탄났다. 물론 이런 게 없었다 해도 이때까지 조선의 상황이 영 좋지 못했기 때문에 이정도로 깔 순 없다고 변호하고 있다.~~사실 틀린말은 아냐~~ ==== 전쟁사 관련 내용 비판 ==== * 10권 선조편의 경우 실록이 부실하여[* 이유는 임진왜란때 전쟁 이전의 사초가 대거 소실되었기 때문.] 나머지 징비록이나 현대 사학자들의 연구를 많이 참조했는데 임진왜란 부분 만큼은 시리즈 중 가장 참신함이 없는 것을 넘어 잘못된 통설을 그대로 실어놓거나 무리에 가까운 해석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선이 전쟁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라고 서술한 것이나, 명나라 군대가 아무 것도 안하는 민폐 군대로 묘사되고 작전권 헌납 때문에 전황은 개판이 되었다고 묘사한 것. 일단 당시 조선의 '전쟁 대비'라는 것을 살펴보면 축성 및 성곽 수리 등을 포함하여 '좀 더 큰 규모의 왜구가 쳐들어올 것'을 상정했다는 냄새가 강하다. 즉, 임진왜란 같은 대대적인 전면전에 대해서 대비를 못했을 뿐[* 당시 조선상황에선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하기도 했고. 오히려 당시의 지방 양반들과 백성들이 전쟁을 대비하는데 불평하는 기록도 있었다.] 왜구의 공격자체는 인식하고 시행된 나름대로의 노력을 묘사하지 않았다.[* 이후 18권 '사대부의 조선 500년' 파트에서도 이러한 묘사는 일체 반영되지 않았다.] * [[명나라]]군 관련해서는 분명 약탈이나 민폐가 심각하긴 했지만 평양성 전투나 직산 전투 등 제대로 싸운 전투도 존재하며 존재 자체가 왜군에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명군이 벽제관에서 패배한 이후로 겁쟁이 기질과 남의 나라 싸움이란 이유로 싸우지 않았다고 구차한 핑계를 대었다고 주장했으나 명이 [[벽제관 전투]]에서 잃은 병력만 4천이 넘고 이후 명군은 조선의 풍토병으로 보유한 말의 절반에 해당하는 1만 2천필의 군마를 잃는데 이여송이 지휘하던 북병의 주력이 기병이란 걸 생각하면 기갑사단의 전차와 장갑차들이 반이나 날아간 상황이다. * 조선시대사를 다루며 작전권 헌납이니 하는 말을 꺼내면서 조선군이 유명무실해졌다고 언급하는것 자체가 현재 한국군의 전시 작전권이 미군에게 있음을 비판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의 정치성향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작전권 드립은 훗날 20권에서 공주 전투의 일본군 장교가 한번 더한다. 전작권 떡밥의 실상을 감안하면 작가의 이해도가 얄팍하단 말밖엔 달리 할 말이 없다. 명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었다면 상술한 각종 대민범죄나 명군 보급 문제로 조선이 엄청나게 고생한걸 조명했어야 했다. 더하여 중국을 공략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을 정말 실현가능한 것인냥 서술했다.[* 몽골과 팔기군에게 중국이 망했으니 일본군도 중국 침공했으면 해볼만했다고 적었는데 우선 팔기군은 끝내 산해관을 뚫지 못하고 이자성의 난으로 사분오열된 중국이 자진해서 열어준 산해관으로 무혈입성했다. 나중에 태세 정비하고 달려든 조선군에게도 고전한 일본군이 명을 친다? 다른거 다 차치하더라도 그 엄청난 보급선을 어떻게 감당한다는걸까? --물론 도요토미는 조선군은 금세 이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요토미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자 옆에서 디스하는 말풍선이 하나 나오기는 한다. * 안위의 부산왜영 방화건이 부하들의 허위보고를 이순신이 그대로 믿고 장계를 썼다 파직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하거나 이순신이 부산으로 출진하라는 조정의 명을 거역하여 백의종군했다고 적었다. 이순신은 원균처럼 부산을 털어버릴수 있다는 헛소리를 안했을 뿐이지 어찌되었든 왕명에 따라 부산으로 출동해서 작전을 진행하고 돌아왔으며, 안위의 부산왜영 방화건은 실록에서 선조 본인이 이순신이 안위와 김난서의 공을 가로챘다고 억지를 부리는 대목이 있어 실제 있었던 일임을 증명된다. *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대비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나름 대비를 했고 책에서 무책임한 전략이라고 깐 농성 전략은 대륙에서 쳐들어오는 외적 상대로 고구려 시절부터 [[여요전쟁]]과 [[여몽전쟁]]까지 이어진 전략이다. 남한산성 농성 전략은 준비만 제대로 되었다면 쾌속 진격한 청군이 보급이 끊겨서 버티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이였다.[* 그렇다고 기동군 전략이 나쁜 것은 또 아니었다. 실제로 병자호란의 패배 원인은 청의 기동 전략 때문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박시백이 묘사를 안 했지만 조선 역시 기동군 전략을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했고, 기동군을 창설하여 청의 기동전에 대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기동군 지휘관이 [[이괄]]이었고, [[이괄의 난]]으로 소멸했다.] 그러나 한명욱이 거점인 남한산성 내에 식량 창고를 두지 않는 실책을 저질러 군량이 부족해 장기 농성이 불가능했고, 지방의 근왕군이 각자 따로 진격하다 각개격파 되었으며 인조 정권에서 군사전문가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고 없던터라 낙하산 인사가 이뤄진 게 결정타였다. * 숙종 시절 [[북한산성]] 축성 문제에 대해서도 축성 반대파 쪽의 의견에 공감대를 보이고 있는데 [[북한산]]의 지리적 위치상 옛날부터 축성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요충지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 고종실록 편에선 고종이 3만명의 근대적 군대를 양성하자 일본 육군은 백만이 넘어간다는 소릴 했는데 20세기 초 일본은 근대화가 막 시작된 국가에 불과했으므로 병력 규모도 20만 안팎에 불과했다. 당대 일본은 유럽처럼 수백만 대군을 필요하면 징집영장 뿌려서 모으고, 기차로 운반해서 총기와 수백발의 실탄. 각종 전쟁 물자를 보급할 정도로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백만 단위의 병력을 운용한건 30년대도 넘어간 중일전쟁 시대고 20세기 초 일본군은 육해군을 합쳐 전군이 30만 정도였다. 10대 1의 숫적, 질적으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태~~북한군 vs 한국군~~라는 건 변함없지만 오류의 범위가 너무 크다. * 숙종실록에서 오군영에 필요한 경비를 축소할 수 없다고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오군영 중에서 가장 나중에 세워진 금위영은 영조때 세워졌다. 즉 그 당시에는 오군영이란 말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 정치색 === 작품 초반에는 내용 중간중간에 정치인에 빗댄 이야기나 현대사에 관련한 비유가 꽤 많이 나왔었다. 애초에 박시백 화백은 대학시절에 학생운동을 한데다가[* 운동권 활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적도 있을 정도. 문제는 감옥에 가게 한 사건인데... 무려 광주 미 문화원 폭탄 설치 사건이었다. 참고로 이 사건 주동자는 [[안내상]], 배우 [[박철민]]과 박시백은 동조자였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그리기전에 한겨레 신문에서 시사만평을 연재했었다. 그래서 정치색이 강한 부분도 있었다. 주로 만화를 그리는 도중 발생한 이슈나 유사한 근현대사 사건들을 내용에 넣었는데. 반정이나 외침시에 특히 많다. 1권에서는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장세동, 김종필, 고건이 등장했고 2권 중간엔 김종필, [[장세동]], [[고건]]으로 "2인자의 처신"을 설명했으며, 후기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3권에서는 [[조지 W. 부시]]가 등장해 조명관계에 빗대 당시 한미관계를 깠다. 3권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발언하여 큰 논란이 된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의 패러디인 "왕 노릇 못해먹겠다."를 태종의 입을 빌어서 시전하였으며 5권에서는 다시 전두환이, 그리고 후기에서 박정희가 등장한다. --쿠데타 전속 출연 전마왕-- 같은 책에서 세조실록의 [[계유정난]] 부분에선 아예 대놓고 [[12.12 군사반란]]와 연관시키기도 했다.[* 중종실록에서도 기묘사화를 설명하는 챕터에 훈구 대신들이 은밀히 중종을 알현하러 들어간 신무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곳에 12.12 쿠데타의 주역들이 모인 30경비단이 있었음을 짤막하게 언급했다.] 이 때문에 정치색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이어졌고 작가도 지적을 받아들여 7권 이후로는 본편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예외가 10권, 12권인데. 10권에서는 선조가 도피한 것에 대해 [[한국전쟁]]때 이승만이 [[부산]]으로 피난 간 것에 간접적으로 비유했으며[* [[6.25 전쟁]]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승만이 다리 끊고 달아났다는 통념과는 달리 제대로 된 피란계획이고 뭐고 잡혀 있지 않다가 서울 함락 직전에야 겨우 빠져나가는 등 아주 개판이고 한강 인도교 폭파 과정조차 혼란과 명령 전달 미진이 겹친 막장 상태였다. 해당 항목 참조.], 인조의 경우 이명박 정부에 비유하는 장면이 꽤 나왔다.(애초에 1~4권의 경우 처음에는 학생 타겟으로 다소 패러디를 강화해 구성했었다.) 17권에선 [[홍경래의 난]] 이후 사로잡은 봉기군 처형을 당시 시끄러웠던 구제역 살처분에 빗대어 인간 살처분이라고 한탄하는 돼지의 모습을 그려넣었고 순조가 뜻밖에 수천의 백성을 죽인 학살자가 되었다고 하는 장면에서 ~~미스터 29만 원[* 작중에서 실제로 이렇게 호칭한다. 개정판 이전 구판에서는 '28만 원'으로 잘못 되어 있던 대사가 수정되었다.]~~ 전두환이 또다시 등장하여 순조에게 "선배님"이라고 하고 순조는 경악하여 절규한다. --순조: 내가 전두환이라니 이노옴-- 6권 예종, 성종 실록에선 경국대전이 조선에서 얼마나 중요한 법전으로 대우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막판에 헌법재판관 한명이 그러니 관습헌법으로 존중해줘야지 않을까요?라고 한마디 하는 장면을 넣었는데 당시 논란이 되었던 서울시가 관습헌법으로 한국의 수도이므로 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온 것을 비꼰 것이다. 작품 초반에는 실존 정치인의 얼굴을 모델로 그린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고려 말의 권신인 [[이인임]]의 얼굴은 [[김종필]] 전 총리를, 세종 때의 재상 [[허조]]의 얼굴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의 얼굴을 대놓고 넣었다. 공양왕은 [[최규하]] 대통령과 엮여 나왔다. 다만 여기서는 공양왕은 무기력한 최규하와는 달랐다고 칭찬했다.[* 다만 최규하는 신군부의 협박 속에서도 국방부장관 없이는 정승화 체포를 재가할 수 없다고 버텨 신군부가 국방부장관을 찾느라 시간을 소비했고 결국 재가 후에도 재가한 시간을 밝혀 선체포 후재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게 했으므로 마냥 무기력했던 것은 아니다.] 세조의 경우에는 전두환과 치환해서 등장했다. === 세계사 오류 === 어차피 조선왕조실록을 다루는 것이니 만큼 외국 역사에까지 충실한 고증을 바라긴 어려워도 아쉬운 점이 여럿 있다. 5권에서 [[세조(조선)|수양대군]]이 속으로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로 [[한무제]]와 [[당태종]]을 꼽으면서 "[[쿠데타|두 분 모두 난세에 몸을 일으켜 천하를 차지한 분들]]"이라고 언급하는데, 당태종은 [[현무문의 변|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한무제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한무제의 경우도 황제가 되기까지 어머니 왕 미인과 장모 장공주의 뒷공작이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한무제]] 항목 참고] 또한 뒤이어 당태종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의 인망과 위세를 우려한 [[이건성|첫째 태자]]가 [[이원길|셋째]][* 책에는 셋째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 셋째 이현패는 일찍 죽었고 현무문의 난 때 이세민이 죽인 동생 이원길은 [[당고조]] 이연의 넷째이다]와 손잡고 그를 제거하려 했다. 이를 미리 간파한 이세민은 선수를 쳐서..."라고 적고 있는데, 이건성과 이원길이 먼저 이세민을 제거하려 했다는 건 어디까지나 역사의 승자인 당태종 쪽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인데 이걸 마치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적고 있다.[* 오히려 태자 이건성은 이원길이나 측근 [[위징]]이 계속해서 이세민을 제거할 것을 주장해도 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본인이 아버지 당고조의 신임을 받고 있었고 군공(軍功)을 계속 세우면서 능력 또한 인정받고 있었던 만큼 이세민의 측근들을 외직으로 쫓아내서 무력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 듯. [[현무문의 변|그러나...]]] 이걸 그대로 믿는다면 [[안평대군]]이 [[김종서]], [[황보인]]과 손잡고 수양대군을 제거하고 [[단종(조선)|단종]]을 쫓아내려 했기에 수양대군이 어쩔 수 없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는 단종실록의 기록도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여부를 떠나서 수양대군이 속으로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수양대군이 그렇게 믿는 걸로 나온 걸 수도 있다.] 10권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으나 언어도단이다. 당시 명나라는 엄청난 강국이였으며 화약무기의 수와 질에 있어서는 당대 최강국 중 하나였다. 청나라는 [[산해관]]을 넘기 위해 갖가지 노력으로 [[홍이포]]를 비롯한 대포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삼계]]가 스스로 성문을 열기 전까지는 자력으로 산해관을 넘지도 못했다. ~~물론 명나라가 국력에 비해 [[명나라 F4|병신같은 황제]]나 환관, 관료들이 여럿 보여서 [[토목보의 변]] 같은 병크를 보여준 것 때문에 평가절하당하긴 한다.~~ 12권에선 [[숭정제]]가 [[홍타이지]]의 모함에 [[원숭환]]을 죽였다는 설을 여과없이 실었다. 같은 권에서 청이 [[이자성]]의 [[이자성의 난|반란군]]을 패퇴시키고 중국을 접수하자 전 왕조보다 유연한 정책으로 민심을 얻었다 정도로 서술하는데 변발에 반발한 강남의 한족 반란에 대학살로 대응한 내용은 다 빠졌다. '광주시종교지' '양주십일기' 등의 기록에 따르면 성(省) 하나에서만 수십만명이 죽은 경우가 부지기수이며, 대학살의 피해자 수는 '''최소 수백만에서 최대 수천만 단위'''로 추정된다. 자세한 사항은 [[http://egloos.zum.com/enjoyjap/v/1718860|링크]] 참조. 16권에선 [[건륭제]] 60년을 태평성대라고 기술했는데 사실 건륭제 후반부턴 곪아들어가고 있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대표되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프랑스 혁명]]을 설명하는 그림으로는 무려 40년 후의 1830년 7월 혁명을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을 썼으나 개정판에서 바스티유 감옥 습격 그림으로 바꾸었다. 18권에서 1,2차 아편전쟁을 간단하게 다루는데, 영국군을 남색 군복을 입은 남북전쟁 시기 미군 비슷하게 그렸다. 그러나 이 시기는 영국군이 아직 레드코트를 입던 시절이다. === 정치사 관련 === 머리말에서부터 '정치사를 위주로 하여...'라고 해 두었지만, 사상사, 경제사와의 연계가 부족하여 왕권과 신권 사이, 또는 신하와 신하 사이의 권력 투쟁사에 다소 편중된 듯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15세기까지의 묘사는 세종 시대 때의 각종 과학 기술이나 음악, 언어 등의 문화발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북방이나 각종 지방에 있었던 백성들의 이야기에 내용 등 내용이 대서사적이어서 큰 흐름이 느껴지고 읽는 재미가 있으나, 16세기 이후로는 정치 이외의 분야나 지방에 대한 내용이 줄어들고, 궁중 내에서의 정치를 중심으로 한 신하들의 상소문, 그에 대한 임금의 비답이 나열되는 ~~덤으로 말풍선의 대사도 늘어나는~~ 듯한 다소 평면적인 묘사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숙종조부터 영조조까지의 서술이 독자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에 기인한 것. 저자 역시 이에 대한 비판에 대해 '실록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해명하면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만 역사적 배경을 본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6세기 양란 후 조선에서는 성리학 교조주의가 나타나면서 자연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이와 관련한 정치적 문제가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16세기 이전에는 지방에 기거하는 사림의 영수가 중심이었으나, 16세기 이후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 펼쳐졌었다. 이 때의 지방은 거의 찬밥신세나 다를 바 없었는데, 당시 지방 출신은 과거 시험을 봐도 합격하기 힘들었을 뿐더러, 합격을 해도 한양에서 벼슬한 예가 거의 없었다.[* 일례로 홍경래의 난의 주도자인 홍경래도 한양에서 과거시험에서 한양 고위직의 자제들 위주로 합격하는 행태에 대해 분노했었고, 이에 대한 불만을 격문을 통해 비판했었다.] 이러한 점에서 실록은 정치사를 중심으로 서술될 수밖에 없었던 면이 있다. 그리고 박시백 화백은 17세기의 각종 지방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내용도 서술한 바 있다. === 성리학과 정치 철학에 대한 이해 부족 === 조선조의 국시였던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처지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고려 말 사원, 권문세족들과 관련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성리학으로 설정된 이유가 분명치 않아 조선의 국시가 성리학이 된 사실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 정치사와 사상사의 구분이 명확지 않아 성리학이 실현하려고 했던 노력은 가려지고 정치사는 권력투쟁으로 전락해 버렸다. '권력은 원래 부모 자식 간에도 공유하지 못하는 것', '권력의 생리가 본래 이렇다'는 식의 상투적인 결론이 종종 보인다. 또한 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각종 개혁 조치([[대동법]], [[균역법]], 서얼허통 등)들이 어떤 정치 철학에 의해 시행되었는지가 명확히 나와 있지 않은데 이 역시 철학적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대부를 권리 무한 책임 제로의 희대의 안하무인 뻔뻔 집단으로 폄하하는데[* 이러한 평가는 18권 '사대부의 조선 500년' 파트에서도 마찬가지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역덕 커뮤니티에선 말이 많다. 군사회 지도층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당시 상황으로서 나랏일을 배우고 이끄는 학생이나 관리의 신분으로 군역을 면제받는 것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군대만 안갔다 뿐이지 양반층에게도 엄연히 과세 책임이 있었고, 적어도 세습 신분으로 변질되기 전의 양반들은 전세와 제일 무거운 세금인 공납 역시 정상적으로 납부했는데 돈 한푼 안내고 마음대로 행패부리는 농땡이 집단처럼 묘사하였으며, 성종 정도를 제외하면 조선 왕조 500년 내내 백성이 살기 어려웠던 것마냥 서술했다. 심지어 세종 시대마저도![* 수령고소금지법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는 양반들 한정이었다는 구절을 넣었다.] 사대외교 부분도 사대와 자주를 대립관계로 보는 기존의 통념을 그대로 가져왔다. === 사상사, 경제사 방면의 비중 소홀 === 위 비판의 연장선으로, 조선왕조실록이 단순히 정치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의 자료를 다량으로 담고 있음에도 불구, 작가가 주로 정치사에 천착한 나머지 나머지 부분을 다루는 데는 소홀했다는 일부 사학자의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조선 중심 이데올로기인 [[성리학]] 쪽 분야와 관련해서 내용의 부실함에 아쉬움을 면키 어렵다며 관점 또한 기존 역사학계 주장 답습에 불과하다고 날선 비판을 가한 [[오항녕]] [[전주대]] 교수가 대표적. 경제사에 관한 학식이 부족했는지 --어, 근데 작가는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인데?-- 대원군의 당백전 발행의 폐단을 다루긴 했지만 그게 조선 경제를 송두리째 박살낸 초특급 병크라는 것은 인식을 못하고 나중에 대원군을 평가할 때도 화폐정책에 대한 이해도 부족으로 일어난 무리수 정도로 평가하고 넘어갔다. 당백전의 폐단을 막기 위한 청전 도입과 이후 고종 시절의 청전 혁파의 대혼란에 관련된 내용들은 다 빠졌다. 애초에 19,20권은 훑어 보기만 하겠다고 말했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 기타 === 엄밀히 말해 비판이나 오류까지는 아니지만, 1권에서 [[티베트 불교]]를 잘못된 명칭인 '라마교'라고 부른다. 그냥 명칭이 잘못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림에서 승려와 신도들이 옷을 벗고 있거나[* 바싹 마른 승려가 이상한 표정과 자세를 하고 옆에 신도들이 옷을 벗고 있는 등 그림만 대충 보면 완전히 사이비 종교다. 아무래도 [[방중술]]에 대한 비판을 하려고 한 듯 보이는데...] [[원나라]] [[황제]]가 '라마교'에 빠졌다는등 괴상망측한 사이비 종교로 표현된다. 현대엔 라마교란 명칭도 잘 안쓰이고 서양인들이 티벳 불교에 빠질 정도로 티베트 불교의 이미지가 좋은편이라 라마교가 티베트 불교를 말하는 것인줄 몰랐다는 독자도 있을 정도. 1권 자체가 고려 사회나 불교를 비판하는 내용이긴 했다. 고려 대승불교는 그간 [[요나라]]와 교류하다가 [[원나라]] 이후 티베트 불교와의 교류가 많았으며, 달라이 라마 덕에 미화된 현재와 달리 그 당시 티베트 불교는 엄연히 "부패한 종교" 가 맞았다. 사실 [[토번]]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종교계의 부패였다. == 작가 선정 BEST / WORST 캐릭터 == 완간 기념 출판사 후기 인터뷰에서 작가에 건네진 질문 중, 독자들의 주된 질문이기도 했던 다음 질문이 전해졌다. "가장 애착 가는 인물과 짜증났던 인물을 꼽자면?"[* 질문 어휘를 위키에 수록하면서 가다듬은게 아니라, 진짜로 질문 내용이 이거다.] 이에 대해 박시백은 애착 가는 인물은 '''[[정도전]]''', 짜증났던 인물로는 '''[[선조]] & [[인조]]'''~~역시나~~를 꼽으며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부연하였다. * [[정도전]]을 애착이 가는 인물로 꼽은 이유에 대해 > "저는 위대한 정치가는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그 시대의 현실에 기초해서 그 시대를 좀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자기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현실과 결합해서 이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 이성에 치우쳐 이루지 못하고 끝을 내거나, 또는 대부분 현실 자체에 매몰되면서 자신의 안위만 도모하다 끝내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런데 정도전의 경우 40세라는 늦은 나이였는데도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이상을 놓지 않은 채 현실에 접목시켜 실행해 나갔다는 점이 굉장히 멋있죠." * [[선조]], [[인조]]를 가장 짜증나는 인물로 꼽은 이유에 대해 > "그 사람들 입장에선 시대를 잘못 만난 것일 수도 있지만, 왜란과 호란이라는 국가적 대 위기를 겪었고, 그 이후까지도 왕 노릇을 이어갔지요. 일단 눈에 뻔히 보이는 외환에 대처하지 못한 것만으로도 속상한데 그 이후에 일을 수습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데도 도무지 치밀함이 보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한편 박시백 화백이 '최고로 꼽는 조선 군주들'에 대해서도 언급된 바 있다. [[2013년]] [[8월 26일]] 방영되었던 [[MBC]] 프로그램 《문화사색 364회 -만화, 역사를 기록하다!-》코너에서 조조록 완간 기념 박시백 화백과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는데, 여기서 취재진이 "조선 국왕들 중 최고를 꼽아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선뜻 '''자신이 생각하는 조선 최고의 국왕으로 1위는 [[세종대왕]], 2위는 [[정조]], 3위는 [[광해군]]'''이라고 답했다.~~의외로 [[문종(조선)|문종]]은 베스트에 들어가지 못했다. 재위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또한 같은 인터뷰에서 [[정순왕후 김씨(조선)|정순왕후 김씨]] 역시 꽤 고평가하면서 세간에 퍼진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고 토로한다.([[http://www.imbc.com/broad/tv/culture/4color/vod/?kind=swf&progCode=1000855100366100000&pagesize=1&pagenum=1&cornerFlag=0&ContentTypeID=1|이 링크]]를 통해 해당 인터뷰를 볼 수 있다.) 한가지 의문이라면 정작 박시백 화백은 광해군 일기에서 광해군을 '개혁군주라는 평은 받아도 실제론 거리가 있던 인물'이라며 제법 평가절하했고 서인 측의 폐모살제 주장도 여과없이 수용하고 있다.[*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인 일에 대해 광해군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서인 측이 반정 후에 얻은 거짓진술이라는 의혹이 조금 있다.] 그리고 즉위 초기 모습만 유지했어도 '실패는 안 했을 것'이라면서 아예 실패한 왕이라고 단정을 짓는 등 광해군의 치적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아마 박시백 화백이 고평가한 부분은 중립외교와 북방의 방어 정책 및 노련한 정치, 실전 경험을 비롯한 자질을 말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정조만 해도 '조선을 개혁해보려다가 벽파의 음모로 죽은 비운의 국왕'이라는 음모론과 거품이 너무 끼어있다고 세간의 평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는데 해괴한 일이다. 역시 정조도 그의 뛰어난 자질을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세종대왕은 뛰어난 자질 답게 나라를 잘 다스린 군주로 손꼽고 있고, 반면 정조와 광해군은 뛰어난 자질에 비해 당시 시대적, 정치적, 그리고 그 자신의 한계로 인해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최고의 자질이 아니라 그냥 최고의 임금을 뽑아달랬잖아~~ == 책 전권의 목록과 부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물사전도 있으나 한정판에 한함.] == 표지 인물에서 흥미로운 건 각 표지인물의 모습이나 행동이 그 당시 시대의 내용이나 캐릭터의 성향 혹은 본문의 핵심 내용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각 표지인물들의 특징은 인물 부분에 적어놨으니 참고. * 제목 - 부제/표지 인물/색깔 순. * 1권 개국 -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태조(이성계)/초판 보라. 2판 빨강. 용포를 입고 있는 왕의 모습이 아닌 부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처럼 젊고 패기 있는 젊은 장수 시절의 모습으로 나온다. 첫판으로는 [[2003년]] [[7월 15일]] 출간. 여기는 등짐을 진 정도전도 함께 나온다. * 2권 [[이성계|태조]], [[정종]]실록 - [[정도전]]의 개혁과 [[왕자의 난]]/정도전/초판 빨강. 2판 청색. 거침없는 개혁 성향을 대변하듯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으로 등장. 첫판 2003년 [[10월 31일]] 출간. 첫판에서는 칼을 뽑고 있는 이방원을 중심으로 정도전과 태조를 함께 그렸다. 3개월 반 소요. * 3권 [[태종(조선)|태종]]실록 - 왕권을 세우다 / 태종(이방원)[* 태종은 왕 중에서 유일하게 네 권에 걸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하였다. 4권 세종문종실록에서의 인물소개에서는 "1권 조연 2권 공동 주연 3권 단독 주연 4권 조연...어때, 화려하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성계, 대원군, 고종도 세권 정도 나왔을 정도니...]/초판 연보라, 2판 풀색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부제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다. 첫판 [[2004년]] [[2월 28일]] 출간. 큰 덩치의 태종과 익선관을 벗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쓸쓸한 태조가 함께 나온다. 4개월 소요. 후판에 [[효령대군]]의 머리가 깎인 상태가 사라졌다. 이는 출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 * 4권 [[세종대왕|세종]], [[문종]]실록 - 황금시대를 열다/세종/초판 옥색, 2판 보라색 --먼치킨-- 학자 군주답게 책을 들고 정좌자세로 앉아있다. 첫판 2004년 [[8월 2일]] 출간. 한글을 반포하는 세조와 청룡포를 입은 문종, 신료들이 나온다. 이 첫판 4권은 모두 각 장 사이사이마다 작은 만화와 조선시대 사회에 대한 "길라잡이"가 있었는데, 개정되면서 모두 사라졌다. 목차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5개월 소요. * 5권 [[단종(조선)|단종]], [[세조(조선)|세조]]실록 - 반역은 또 다른 반역을 낳고/세조/하늘색 자신의 집권 과정을 상징하듯이 '''장검'''을 들고 서 있다. [[2005년]] [[4월 1일]] 출간. 1~4권과 함께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8개월 소요. 이전보다 준비 시기가 길어진 것은 책 개정작업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6권 [[예종]], [[성종]]실록 - 대신권력에서 대간권력으로/성종/분홍색 성종도 책을 들고 있는데 이 책은 경국대전이다. 성종 때 조선의 제도가 완전히 정비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것. 또한 역시 세종이나 정조 못지 않게 책을 가까이 했던 왕이었다. --책읽는 것 못지 않게 노는 것도 좋아해서 그렇지-- 2005년 [[8월 1일]] 출간. 비슷한 시기 [[헌법재판소]]의 [[경국대전]]과 [[행정수도 이전]]([[세종시]])에 대한 떡밥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 4개월 소요. * 7권 [[연산군]]일기 - 절대권력을 향한 위험한 질주/연산군/연두색 부제목을 대변하듯 입이 벌어진 연산의 표정에서 광기--똘기--가 드러나 있다. 2005년 [[12월 12일]] 출간. 4개월 열하루 소요. * 8권 [[중종(조선)|중종]]실록 - [[조광조]] 죽고...개혁도 죽다/조광조/주황색 이상적인 성리학적 개혁을 꿈꿨던 인물답게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이의있소]]~~ [[2006년]] [[5월 29일]] 출간. 분량상 세조실록을 제외하고는 역대 가장 오래 소요되었다. 5개월 반 소요. 띠지가 있었다. * 9권 [[인종(조선)|인종]], [[명종(조선)|명종]]실록 - [[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문정왕후/고동색 2006년 [[10월 30일]] 출간. 역시 띠지가 있었다. * 10권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이순신]]/빨강 후기에서 율곡 [[이이(조선)|이이]]도 표지 인물로 손색이 없었으나, 이순신에게 밀릴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2007년]] [[7월 9일]] 출간. 8개월 열흘 소요. 역시 분량 때문에 역대 가장 오래 걸렸다.(나중에 고종실록이 갱신.) 그리고 이 해의 유일한 출간본...10권 세트가 출간되기도 했다. 분량도 순수하게 만화의 양으로만 따지자면 276쪽으로 가장 많다. 엄밀히 말하자면 20권 망국이 순수 만화의 양은 289쪽으로 가장 많으나 망국은 따로 다루는 왕이 없기에 선조실록이 사실상 내용이 가장 많다. * 11권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 광해군 / 남색. 즉위할 때의 [[면류관]]과 [[구장복]]차림이다. 실제로는 앞부분에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내용이 조금 들어있다. [[2008년]] [[1월 14일]] 출간. 6개월 소요. * 12권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 김상헌, [[최명길]] / 옥색 유일하게 표지인물이 2명이다.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를 대변하는 인물들. ~~10권도 이이와 이순신이 같이 서 있게 했으면 안됐나?~~ 2008년 [[7월 28일]] 출간. 6개월 보름 소요. 시기가 시기([[2008년 촛불집회|촛불집회]])였던 만큼 작가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이 드러나있다. --일부러 노린 것도 아닌데 절묘하다-- * 13권 [[효종]], [[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 [[송시열]] / 진한 초록색 아무래도 송시열이 이끄는 산당이 조정을 장악한 것을 표현하려고 한 듯 보인다. 실제로 이 시기의 산당은 임금이 내린 명령이나 하교를 거부하거나 미적대는 방식으로 --개기는 등-- 자신들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2009년]] [[1월 21일]] 출간. 6개월에서 1주일 덜 걸렸다. 사실 효종, 현종의 재위기간 자체는 그리 길진 않았으나 유일하게 내용 전체를 뒤집어 엎은 현종 개수실록이란 물건이 또 있어서(...) * 14권 [[숙종]]실록 - 공작 정치, 궁중 암투, 그리고 환국 / 숙종 / 갈색 엄지로 죽이라는 신호를 내리고 있다. 환국으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는 점을 반영한듯 보인다. 다만 초판에는 ~~나치식 경례가 아니라~~ 오른팔을 내민 체 앞을 쳐다보는 모습이었는데 수정되었다. 지금도 속표지에는 그 모습이 남아있다. 2009년 [[8월 10일]] 출간. 6개월 보름 걸렸다. 이후 경종, 영조 실록 출간 이전에 15권 한정판 세트도 출간. * 15권 [[경종]], [[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 영조 / 빨간색 혼자 서 있다.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치적 콤플렉스를 가져 고독함을 벗을 수 없었던 성향을 반영한 듯. [[2010년]] [[3월 28일]]. 7개월 18일 걸렸다. --의외로 얼마 안 걸렸네?-- --숙종도 충분히 길었거든-- * 16권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 정조 / 주황색(인터넷 정보로는하늘색) 책을 들고 서있는데, 정조도 세종에 버금가는 학자군주였다. --술담배도 너무 좋아해서 문제였지만-- 2010년 [[11월 14일]]. 7개월 보름이나 걸렸다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떡밥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조 말년(사도세자 사후 14년)의 내용도 실려있다. 4쇄 전후로 정조의 죽음에 대한 내용이 5쪽 더 추가되었다. --미리 산 사람들 어쩌라고!-- * 17권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 [[김조순]] / 보라색 겸양의 처세를 대변하듯 상체를 살짝 낮추는 자세를 하고 있다. [[2011년]] [[5월 30일]] 출간. 7개월 보름 소요. --갈수록 분량에 비해 더 준비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 18권 [[헌종]], [[철종]]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 순원왕후 / 파란색 순원왕후는 두 임금의 재위 초기에 모두 수렴청정을 했던 인물로 사실 인지도도 낮고 작중에서도 비중이 큰 건 아니지만, 딱히 저 시대에서 두드러지는 인물도 없었던지라 세도정치의 상징적 의미로 표지에 등장시킨 듯 하다. 당대의 어려운 실상을 대변하듯 늙어 주름지고 근심으로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다.[* 이 두 왕의 재위기간을 합치면 29년으로 정조시대보다 조금 더 긴 시대임에도, 세도정치로 실록이 부실해져 한 권 분량 채우기 힘들었다고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정조 실록은 54권, 순조 실록은 34권, 헌종, 철종은 16+15권.). 실제로 [[아편전쟁]] 등 청나라와 일본 등 주변국의 개항(실록에는 짤막하게만 기록되어 있다.)과 조선시대를 태조 때 부터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내용까지 들어가 있는데도 평균 분량으로 나온 다른 권과 두께가 비슷하니, 순수하게 헌종, 철종시대를 다룬 부분은 이전 권에 비해 적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 조선 역사 요약 부분이 분량채우기 고민에서 나온 건 아니라 이쯤에서 정리할 필요는 느꼈다고 밝히고 있다.] 2011년 [[11월 21일]] 출간. 6개월에서 조금 덜 걸렸다. * 19권 [[고종(조선)|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 흥선대원군 / 회색 흥선대원군하면 연상하는 관복을 입고 정면을 보는 사진과 똑같이 앉아 있다. --그러나 얼굴은 중년으로 사진보다 훨씬 젊다.-- [[2012년]] [[10월 15일]] 출간. 10개월 반이 걸렸으니 가장 오래 걸린 셈이다. 원래는 대원군편으로 예정되었던 편. 내용은 [[갑신정변]]까지를 다루고 있다.[* 19권에서 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다룬 부분에서 통상수교는 하지 않지만, 서양 선박에게 필요한 물품은 지원하여 밖으로 내보낸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휴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말풍선에는 이 책의 출판사인 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로고가 들어있고, 그 사람의 얼굴은 같은 출판사의 대표 김학원 씨의 얼굴을 따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 20권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 고종 표지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서양식 복식과 단발을 하고 나왔다. 단발령 이후에 찍었던 사진에서 가져온 듯. 참고로 초기 기획에서는 다른 컨셉도 고려했던 듯, 마지막 권은 몇 개의 다른 표지 시안이 존재한다. 책 제목 역시 이전 시안에서는 '''20권 고종, [[순종#s-4.2|순종]]실록'''이었고 부제가 '''망국'''이었으나, 1권의 책 제목이 '개국'이었음을 의식한 듯 ~~운율을 맞추려고~~ 책 제목 자체를 '망국'으로 바꾸고 부제를 새로이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로 설정하였다. ~~덕분에 '순종'은 책 제목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왕이 되어 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순종은 '''조선의 왕이 아닌 대한제국 황제로서만 재위'''했으니 그럴지도-- [[2013년]] [[7월 22일]] 출간. 연표 이후에 망국 이후 조선왕실 사람들의 삶을 다룬 부분을 수록하면서 내용을 마무리하였다. 출간까지는 7개월 소요. == 조선 임금 브로마이드 == [[파일:attachment/IE001602466_STD.jpg]] 완간 기념으로 그린 [[조선/왕사|조선의 27명의 왕들]]. 왼쪽의 태조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의 순종까지 순서대로 서 있다. 마지막 권에도 실려 있는 그림인데, 책에 실려 있는 그림에서는 광해군이 정중앙 위치라(27명 중 15번째 임금이라 실제로도 계보상 중간 정도이다.) 책장의 틈 사이에 그려져 있어서 책을 쫙 펴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선조 다음에 인조가 바로 서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만화에서조차 폐위당하다니-- 본래는 근정전 앞에서 다양한 포즈로 도열하는 것을 그리려고 했는데 ~~그리기 귀찮아서~~ 구도가 안 나와서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진이]]의 강백호 포즈로 앉아 있는 세조[* 특유의 삐딱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와 나이 많아서 혼자 지팡이 짚고 앉아 있는 영조가 포인트-- 왕들의 곤룡포 색은 다 붉은 색이면 눈이 아플 거 같아 다양하게 했다는데, 그냥 무작위로 한 건 아니고 색깔별로 의미가 있다. 장수하거나 [[상왕]]으로 선위한 임금은 흑색 곤룡포[* [[단종(조선)|단종]], [[중종(조선)|중종]]은 예외.]를, 재위가 상대적으로 짧은 임금은 파란 곤룡포[* 명으로부터 책봉 받기 전에 입는 곤룡포로, 어째서인지 [[문종(조선)|문종]], [[단종(조선)|단종]]은 예외이다. [[이성계]]야 파란 옷으로 하도 유명하고, 태상왕 시절의 곤룡포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만화에서는 [[세자]]들이 유니폼 처럼 청색 곤룡포를 일관되게 입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를 입었다. 연산군은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중국 황제의 권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을 누린 왕이었으므로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을 썼으며, 숙종 역시 꽤 막강한 왕권을 행사했으므로 주황색의 ~~애매한~~ 곤룡포를 썼다. 고종과 순종은 개화기 때의 왕이라서 그런지 서양식 복장을 하고 있다.--마침 이 복장을 입었었고.-- == 팟캐스트 방송 == 동명의 팟캐스트가 있다. [[http://www.podbbang.com/ch/6554|방송 들으러 가기]]. 박시백(만화가), 김학원(휴머니스트 대표), 故 남경태(인문학 저술가),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네 사람이 책의 순서대로 썰을 풀어가는 내용이다. [각주] [[분류:한국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