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가톨릭]] 성직자 == 朴正一 Michael Pak Jeong-il || http://cathms.kr/xe/files/attach/images/340/352/87c00604db0effdc75ac156532ece244.gif || http://cathms.kr/xe/files/attach/images/340/352/e42a505c1ecfa4402bfc102b20878abb.gif || ||||사목표어는 '''In Fide Et lenitate''' (충성과 온유). || ||||||||||||<table align=center> [[천주교 제주교구|역대 천주교 제주교구장]] || || 지목구장 [[하롤드 헨리]] 주교 ||←|| '''초대 박정일 미카엘 주교''' ||→|| 2대 [[김창렬(주교)|김창렬]] 바오로 주교 || ||||||||||||<table align=center> [[천주교 전주교구|역대 천주교 전주교구장]] || || 5대 [[김재덕(주교)|김재덕]] 아우구스티노 주교 ||←|| '''6대 박정일 미카엘 주교''' ||→|| 7대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 || ||||||||||||<table align=center> [[천주교 마산교구|역대 천주교 마산교구장]] || || 2대 [[장병화]] 요셉 주교 ||←|| '''3대 박정일 미카엘 주교''' ||→|| 4대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 || [[대한민국]] [[가톨릭]] 교회의 제6대 [[전주교구]]장 및 제3대 [[마산교구]]장, 제1대 [[제주교구]]장. [[세례명]]은 '[[미카엘]]'이다. 1977년 4월 15일 초대 제주교구장에 임명되어 1977년 5월 31일 주교 수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가졌으며, 1982년 6월 24일 전주교구장을 거쳐 1988년 12월 28일 마산교구 제3대 교구장을 역임한 후 2002년 11월 11일 은퇴하였다. == 야구선수 == |||| {{{ 박정일(朴正一)}}} || || 국적 || [[일본]] || || 포지션 || [[유격수]] || || 투타 || 우투우타 || || 소속팀 || 크라운맥주 야구단(1964~1965) [br] 한일은행 야구단(1966~1967) || 한국의 전 야구 선수로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재일 한국-조선인|재일동포]] 출신이다. 1963년 전국체전에 재일동포팀으로 참가하여 재일동포팀의 2년 연속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이어 동국대학교 야구부에 입단하게 된다. 이 때의 활약으로 인하여 아시아야구선수권에 한국 국가대표로 참가하게 된 것이 한국 국가 대표팀 경력의 시작이었다.[* 이 때 재일동포 출신으로 국가대표에 참가한 인물은 4명으로 [[신용균]], 서정리, 배수찬, 박정일이었다.] 이 대회에서 신용균과 함께 두각을 나타내어 다음 해에 은퇴하게 된 [[김진영(야구)|김진영]]을 잇는 국가대표 유격수의 계보를 잇게 된다. 실업야구에도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동국대를 1년만에 자퇴하고 1964년 크라운맥주 야구단의 창단멤버가 된다. 당시 크라운맥주 야구단은 적극적인 물량공세로 실업야구를 평정했다. 이 때의 주축투수가 국대 투톱이었던 [[신용균]]과 [[김영덕]]에 4번타자가 당시 국대 1루수가 [[김응룡]]이었던 흠좀무한 팀이었다. 박정일은 이 때 유격수로 활약하면서도 클린업 트리오에도 들어가기도 하는 등 [[5툴 플레이어]]급의 활약을 보인다. 적극적인 도루도 선보였으며, 사사구도 많은 편이었던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화려한 선수였다. 1964년 금융팀과 실업팀의 대결로 벌어진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올스타전에서도 실업팀의 주전 유격수로 실업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금융팀은 이후 6년 내리 실업팀에게 참패한다.] 다만, 유격수 수비에 있어서는 다음 국가대표 유격수가 되는 [[하일]]에 비교해서 떨어지는 편으로 하일이 안정감에 있어서는 더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정일이 국가대표 유격수로 활약한 것은 1~2년에 불과하였으며, 이후에는 하일이 고정적인 유격수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시즌 이후 1966년 크라운맥주는 한일은행 야구단에 인수되었고, 박정일도 한일은행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1967년 한일은행에서의 활약을 마지막으로 [[신용균]]과 함께 야구계에서 은퇴한 뒤,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상당히 짧은 기간의 한국 무대 활약이었으나, 신용균, 김영덕과 함께 일본 야구와의 격차를 절감하게 한 선수들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후 실업팀들이 재일교포 섭외에 열올리더라며 기자들이 분개할 정도였으니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각주] [include(틀:표절, version=11, source=가톨릭대사전)] [[분류:동명이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고지 상자 (원본 보기) 틀:표절 (원본 보기) 박정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