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imortaisdofutebol.files.wordpress.com/2013/07/valentino_mazzola_display_image.jpg '''그란데 토리노의 캡틴''' || 이름 || 발렌티노 마촐라 [br] (Valentino Mazzola) || || 생년월일 || [[1919년]] [[1월 26일]] || || 사망년월일 || [[1949년]] [[5월 4일]] || || 국적 || [[이탈리아]] || || 출신지 || 카사노 다다 || || 포지션 || 인사이드 포워드 || || 신체조건 || 176cm / 72kg || || 등번호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소속팀 || 알파 로메오(1938~1939) [br] 베네치아(1939~1942) [br] [[토리노 FC]](1942~1949) || || 국가대표 || 12경기 / 4골(1942~1949) || [목차] == 초기 선수 생활 == 마촐라는 운동으로 성공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운동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수영]]과 [[사이클]]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마촐라는 축구의 길을 선택했고 지역 팀 중 하나인 GS 트레솔디에서 뛰었다. 하지만 11살 때 마촐라의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마촐라는 졸지에 [[소년가장]]이 되어 밀란의 알파 로메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알파 로메오 팀에서도 뛰면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선택하였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여 마촐라는 [[베네치아]]로 가서 [[이탈리아 해군|해군]]으로 복무하였다. 해군으로 복무하면서 베네치아 팀의 선수로도 활약했는데 여기서 그는 ~~신발 따위는 필요 없ㅋ엉ㅋ~~ 그의 신발이 없어 맨발로 플레이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전화위복. 더욱 유명해졌다. 그리고 베네치아에서 그의 활약이 최고조로 달했던 대회가 바로 1940-41 시즌의 [[코파 이탈리아]]였다. 베네치아를 이끌고 코파 이탈리아의 결승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의 상대는 [[AS 로마]]였다. 결승전에서 베네치아는 아마데이에게 전반 4분부터 5분만에 해트트릭을 얻어맞고 끌려가고 있었지만 마촐라의 37분 득점에 뒤이어 후반에는 결국 동점을 만들어 재경기로 이끌었다. 재경기에서 결국 베네치아는 1:0으로 승리. 팀의 현재까지 유일한 메이저 트로피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고 그에게 입단 제의를 한 곳이 바로 [[토리노]]의 두 구단. [[유벤투스]]와 [[토리노 FC]]였다. == [[토리노 FC]] == 원래 마촐라는 [[유벤투스]]에 입단하기로 구두 계약을 맺었던 상태였지만 토리노는 마촐라를 데려오기 위하여 무지하게 애를 썼다. 결국 20만 리라와 선수 두 명을 유벤투스에 내주면서 마촐라를 토리노에 데려오는데 성공하였다. 당시 토리노는 [[세리에 A]] 최강의 팀이었다. 1946년부터 팀 컬러를 제대로 갖춘 토리노는 나머지 팀들을 승점 10점 차 이상[* 당시에는 현재처럼 승리시 승점이 3점이 아닌 2점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승점차이는 현재보다 더 큰 전력의 차이를 의미한다]으로 가뿐히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였고 그들을 막을 팀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마촐라는 주장으로서 단연 그란데 토리노의 핵심 선수였다. == [[수페르가의 비극]] == 이 사고가 일어날 당시 마촐라는 부상을 참고 포르투갈에 건너가 [[벤피카]]와의 친선경기를 치루었다. 하지만 돌아오면서 [[수페르가의 비극]]에 휘말려 그의 팀과 함께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 == 플레이 스타일 & 평가 == 기술도 훌륭했지만 그 위에 엄청난 체력과 스피드를 갖추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수비수들에게는 악몽이었다. 게다가 수비 능력과 [[주장]]으로서의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던 최초의 현대 축구적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팀의 절반이다. 남은 절반은 나머지 우리 10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 마리오 리가몬티 == 어록 == * 당신이 팀에서 변하는 만큼, 당신은 축구에서 승리할 수 있다. * 축구는 항상 11명으로 이루어진 게임이다. == 뒷 이야기 == * 마촐라는 10살 때 아다 강에 빠진 소년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그 소년은 [[AC 밀란]]의 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수비수 안드레아 보노미였다. * 마촐라는 원래 알레산드로와 페루치오[* 당시 토리노의 회장이었던 페루치오 노보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여주었다], 두 아들을 두었는데 1947년 이혼 이후 큰 아들 알레산드로의 양육권을 얻어왔다. 하지만 사고로 마촐라가 죽게 되었고 남은 아들들은 [[주세페 메아차]]의 눈에 띄어 [[인터 밀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특히 큰 아들 알레산드로가 아버지처럼 60년대의 그란데 인테르를 이끄는 핵심 선수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산드로 마촐라]]이다. * 마촐라는 경기를 뛰다 유니폼의 소매를 걷어올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은 팀 동료들의 움직임이 작전에 맞지 않거나 팀의 플레이가 잘되지 않을 때 팀 동료들과 팬들에게 보내는 노여움의 표시였다. * 브라질 출신 [[AC 밀란]]의 레전드인 [[주제 아우타피니]]는 그의 플레이가 발렌티노 마촐라와 비슷하여서 마촐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밀라노]]지역에서 드리블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를 칭해서 '베네치아니'라 하는데 이 역시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마촐라에게서 온 별명이다. * [[산드로 마촐라]]는 1964년 이젠 황혼으로 달려가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산드로 마촐라는 그 경기에서 2골을 넣었고, [[인터 밀란]]이 3-1로 승리하여 우승을 하였다. [[페렌츠 푸스카스]]는 그에게 다가와 유니폼 교환신청을 하며 "난 네 아버지와 경기를 했었지. 너도 그 못지 않구나."라고 칭찬했다. == 수상 == === 클럽 === [[세리에 A]] 우승 4회: 1942-43, 1945-46, 1946-47, 1947-48(이상 [[토리노 FC]])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1940-41(이상 베네치아), 1942-43(이상 [[토리노 FC]]) === 개인 === [[세리에 A]] 득점왕 1회: 1946-47 발렌티노 마촐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