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부흥운동]] 渤海復興運動 927~1115 [include(틀:한국의 역사)] [include(틀:발해부흥운동)] [[파일:발해부흥운동.png|width=80%]] [목차] == 개요 == [[926년]] [[거란]]의 [[요나라]]가 [[발해]]의 부여부와 [[상경용천부]]를 타격하며 발해를 붕괴시킨 이후 [[만주]] 전역에서 발해계통의 반요세력들이 등장한 것을 일컫는 용어. 이 시기를 한국사로 본다면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자칭 황제국들이 등장한 시기다.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만주]] 지역이 [[한국사]]와 최종 결별하는 결말로 이어졌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이 시기에 대해 별 관심도 없는 편이고 사료도 부족하면서도 복잡하게 꼬여 있어서 연구가 제대로 안 된 시대다. 일단 산발적인 반란이 아닌 나름의 국가 체제를 이룬듯했던 후발해, 오사국, 정안국부터가 중구난방. 이 문서의 서술 내용도 구체적인 존속기간 등의 정보를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이 좋다. == 약사 == 한국 [[국사]] 교육에서는 [[여요전쟁]] 직전 부분에서 정안국을 살짝 언급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교육되지 않는데 이는 사실상 [[고려]]의 [[후삼국시대]] 통일과 일부 발해 유민들의 투항을 계기로 고려를 실질적인 한국사의 통합으로 보기 때문이다. "곁가지" 격이었던 발해 유민들은 대다수 [[거란]], [[여진]], [[몽골]], [[중국]]의 역사로 편입되기에 특별히 더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래서 발해부흥운동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물어보면 "엉? 발해도 부흥운동이 있었어?" 라는 반응이 많다.오히려 고구려부흥운동,[* 검모잠, 고연무, 고안승이 주도한 고구려 부흥운동이 존재.] 백제부흥운동,[* 부여풍, 흑치상지, 복신, 지수신 등이 주도...] [[신라부흥운동]][* 고려시대 초, 중기에 옛 신라 지역인 경상도 일대에서 신라부흥을 내건 몆번의 반란, 봉기들이 존재. 하지만 일각에서는 신라부흥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일으킨 민란들일뿐이라는 반론도 있다.]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지경... == 기록이 적어 대접도 못받는 안습의 국가, [[후발해]] == ||||||<tablealign=right><:><#2531a2>'''{{{#white 후발해}}}''' [br] '''{{{#white 後渤海}}}'''|| ||<:>존속기간||926년? ~ 938년?(12년?)|| [[정안국]]보다 먼저 세워졌다. 사료가 워낙 적어서 별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라의 멸망시기도 정확하지도 않고 건국시기도 정확하지 않다. 왕의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고 포로가 된 발해왕 [[대인선]](大諲譔)의 동생이 발해유민들을 모아 건국했다고 추정될 뿐이다. 또는 대인선의 아들인 [[대정현]]이 세웠다는 주장도 있으나 두 주장 모두 정확하지 않다. == 길지만 조용한 프롤로그, [[정안국]] == ||||||<tablealign=right><:><#2531a2>'''{{{#white 정안국}}}''' [br] '''{{{#white 定安國}}}'''|| ||<:>존속기간||938년-986년(48년)|| 2대 48년으로 '''그나마 가장 오래 간 나라''' --[[장안국]]하고 헷갈린다-- [[928년]] [[국내성]](國內城) 지역에서 [[정안국]](定安國)이 건국되었다. 정안국은 후발해(後渤海)라 불리기도 했으며 나름대로 세력을 갖췄으나 결국은 요에 조공을 바치는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986년 요가 고려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여요전쟁]])을 계획하면서 중간에 끼여 있던 정안국은 장애물 없애는 겸해서 없어지고 만다. 항목 참조. == 거란과 전면으로 맞선 [[흥료국]] == ||||||<tablealign=right><:><#2531a2>'''{{{#white 흥료국}}}''' [br] '''{{{#white 興遼國}}}'''|| ||<:>존속기간||1029년-1030년(1년)|| 세월이 지나 발해 왕족이었던 [[대연림]](大延琳)은 1029년 8월 3일, 요나라의 제2도시인 요동의 [[동경]](東京) 용양부[* 당연히 [[일본]] [[도쿄]]가 아니다.]에 [[흥료국]](興遼國)을 세워 발해부흥운동을 벌였다. 자세한 것들은 항목 참조. == 대발해국의 실패와 금나라의 건국 == ||||||<tablealign=right><:><#2531a2>'''{{{#white 대발해}}}''' [br] '''{{{#white 大渤海}}}'''|| ||<:>존속기간||1116년-1116년(5개월)|| 이후 1116년 [[대원국]](大元國)이 세워지는 등 발해 부흥 운동이 몇 차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이 거란 반대 운동 정도의 수준에 그쳤다. 그나마 좀 성공한 운동으로는 "대발해국"이 있는데, 1116년 1월에 고영창이 8천명으로 동경 용양부를 점령하고 스스로 대발해국 황제에 즉위했으며, 건국 10여일만에 요동의 50여주를 지배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금나라]]와의 협상에서 [[황제]]를 고집하다가 건국 5개월 만에 멸망해버린다(...) 내분도 겹쳤다. 발해부흥운동은 주로 요나라시기에 지속되다가 [[말갈]]이 바탕이 된 [[금나라]]의 건국과 함께 이들이 발해 유민들을 포용/이주하면서 사라졌다고 보는게 통설이다. 특히 마지막 부흥운동인 대원국이 요말금초에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초기의 금은 발해유민을 포용하였다. 이는 [[완안아골타]]가 "발해와는 본시 동일한 집안"이라고 말한데서 근거하나, 이런 포용은 [[금태조]] 때만 있었다. 더구나 대발해국 운동이 터져버려서(...) 결국 금은 건국시에는 발해 유민을 [[북송]] 공격군의 선봉으로 활용하다가[* 이는 여진이 거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부터 그랬다. 여진인과 발해인이 서로 원수였기 때문이다(거란국지 1116년 기사).] 이후 맹안모극 집단에서 배제하여 거란, 여진과 달리 한족과 동일 취급하고 산동으로 내몰면서(1141년, [[금희종]] 신유년) 발해유민은 차츰 정체성이 사라지게 된다.[* 물론 금 건국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듣보잡]]이긴 하지만 딱한번 일어나기는 했다. 발해의 옛 정리부에서 항쟁을 일으킨 적이 있다.] 특히 [[금세종]] 때는 한족과 함께 발해인의 [[형사취수]]를 금지하고 [[삼년상]]을 강요하며 [[양자]] 제도를 불허하는 등 철저하게 한족 취급했다. --그리고 몇백 년 뒤에는 [[만주족|자기네 후손]]이 [[중화민족|그짝이다]].-- == 평가 == 발해부흥운동을 마지막으로, [[부여]]-[[고구려]]-발해라는 굵직한 줄기로 이어지는 북방[[예맥]]계의 역사가 소멸한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압록강 이남의 남방예맥계는 고구려, 백제를 통해 고려로 역사가 이어지게 되므로 예맥계 자체의 역사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예맥과 한(韓)의 구분은 고고학적으로 볼 때 뚜렷하지 않으며 현재 사학계에서는 한인(韓人)은 한반도 남부에서 토착화된 예맥인이라고 보고 있다.][* 발해가 건국된 이후 흑수말갈을 제외한 다른 말갈족들을 거의 전부 정복하면서 통합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발해가 멸망할 시기쯤 되면 여진인과 발해인이 서로 원수지간 이라는 기록은 많이 있다. 더군다나 금나라를 세운 후 여진족들은 발해인을 한족취급하며 산동반도로 강제이주를 자행했고, 이후 한족보다 못한 취급을 하면서 엄연히 자신들과는 구분된 인식을 보여주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구분이 된 이유는 언어와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았는데, 여진인은 수렵을 주 생활수단으로 삼았으나 고구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예맥인의 주 생활수단은 농경이었다.] 다만 대원국의 경우에서 보듯 200년 뒤까지도 발해 귀족의 정체성이 남아있는 것은 의의. 희한하게도 후발해나 정안국처럼 비교적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오래 지속되었던 세력들에 대한 기록은 눈물나도록 희박하지만, 단발성으로 일어난 올야국이나 ~~대연림의 난~~[[흥료국]] ~~고영창의 난~~[[대발해]]는 그 전개과정이 꽤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실 이것은 흥료국이나 대원국이 짧은 존속기간에 비해 그 반란영역과 성과는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를 자처하고 외교에서 고립되어 그냥 亡... --길고 가늘게 혹은 짧고 굵게-- == 발해의 후계 세력들 == ||~~[[동란국]](926년~936년)~~[* 요의 [[괴뢰국]]이라는게 통설이다.]||1대 10년(혹은 6년)|| ||[[후발해]](926년?~938년?)||1대? 10년|| ||'''[[정안국]]'''(938년?~986년?)||2대 48년|| ||[[연파국]][* 연파라는 장수가 부여부에서 항거를 일으켰다. 그 후 그곳에서 세력을 키워서 반란을 하다가 995년 올야에 도망친 후 올야와 함께 거란에게 저항했다고 한다.](975년~995년?)||1대? 20년|| ||[[올야국]](995년~996년)[* 兀惹國. 꼴랑 '''1년 '''간 지속되었지만 그래도 2대는 갔다(...) 발해계 귀족 [[오소경]]이 발해의 고도가 위치한 상경 용천부 주변에서 일어났다. 오사성 발해국 혹은 오사국이라고도 불린다.]||2대 1년|| ||[[흥료국]](1029년~1030년)||1대 1년|| ||[[대발해]]([[대원국]])(1116년 1월~5월)||1대 4개월|| ||--[[고욕국]](1115년 2월~7월)--[* 다만 한국사로 보기에는 좀 애매하다. 발해부흥운동이고 고욕을 비롯한 발해 유민만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나 발해의 옛 땅이 아닌 거란의 한 주에 일어났던 반란이었기 때문이다.]||1대 4개월|| * 발해 부흥운동에 대한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요사]]遼史 *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金毓黻, 화문서국華文書局, 1934) [[분류:발해]]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발해부흥운동 (원본 보기) 틀:한국의 역사 (원본 보기) 발해부흥운동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