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龐羲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문관으로 하남 출신이다. 딸은 유장의 아들 [[유순(삼국지)#s-1|유순]]의 부인이다. [[유언]], [[유장]]의 옛 친구로 가문 단위로 서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194년 유언이 [[마등]]과 [[한수]] 편을 들어 첫째, 둘째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방희가 유장의 아들들을 데리고 촉으로 들어가 그들을 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일로 유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 해에 죽어 [[유장]]이 뒤를 잇게 되고 자신의 자식들을 구해준 방희를 유장은 후덕하게 대해주었다. 하지만 또 얼마있지 않아 한중의 [[장로]]가 유장의 모친과 동생을 죽여 방희를 시켜 공격하게 하지만 매번 패하자 방희를 파서태수로 임명해 장로의 공격에 방비하라고 시키게 된다. 그러나 권력이 강해지자 점점 오만하게 굴어 유장과의 사이는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된다. 200년에는 전란에 대비해 사병을 모으자 유장은 이것을 방희가 모반을 꾀한다고 생각하여 격노하게 되고 방희는 방희대로 화가나서 반역을 할까 생각했지만 [[정기]]에게 종족 출신의 병사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해 그와 싸우던 도중에 깨닫는 바가 있어 유장에게 사죄한다. 파서태수로 있을 때 집에 식객으로 [[등지]]를 둔 일도 있었다. 214년에 유장이 [[유비(삼국지)|유비]]에게 항복하자 자신도 항복하여 내정적인 면에서 촉한의 기초를 닦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영사마의 직위로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한나라 황제에게 표를 올린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판본에 따라 방의(龐羲)로 잘못 기록되며, 파서태수가 되어 장로의 남하할 것에 대비해 211년에 장로가 남하할 준비를 하자 [[유장]]에게 급보를 전했고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한 후에는 유비를 섬긴다. == 미디어 믹스 == || http://kongming.net/11/i/p/port_lg/675-Pang-Xi.jpg || || 삼국지 11 || || http://san.nobuwiki.org/pic/sancg/13/0779.jpg?width=400 || ||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의 능력치는 전형적인 능력치 나쁜 문관으로 가장 높은 정치도 70대에 머문다. 아직 방희가 활약하는 시기엔 능력치 좋은 장수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효용도도 낮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64/42/66/72의 C급 문관. 혼란이 있지만 모략계 병법 숙련도가 0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59/38/69/74/65에 특기는 6개. 명사 특기가 있고 상업 특기도 있는지라 그래도 써먹을 곳이 있으니 잉여는 절대 아니다. [[삼국지 12]]에서도 통솔 60 무력 38 지력 69 정치 74의 영 써먹기 힘든 능력치를 가지고 나왔다. 일러스트는 아마 정기에게 병사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는 편지를 받은 일을 나타낸듯. [[삼국전투기]]에는 [[습숙]]의 발언으로 딱 1마디 언급만 된다. 그것도 본명은 짤리고 '방장군'이라는 호칭으로만 등장. [[분류:촉한의 인물]] 방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