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裴徽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문계(文季). 하동에서 명성이 높으면서 식견이 있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으면서 현묘함을 잘 논했다. 기주자사가 되면서 조공요라는 사람이 [[관로]]를 추천하자 그를 문학종사로 삼으면서 불러서 만나보고 관로를 매우 칭찬했다. 후에 이부랑이 되었을 때 [[왕필#s-2|왕필]]과 담론을 나누면서 왕필을 높이 평가했으며, 태화 연간[* 227 ~ 233년이다.] 초에 [[순찬]]과 [[부하(삼국지)|부하]]가 서로 논해 그 취지는 같았지만 어떤 때는 논쟁으로 번져 서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배휘는 두 사람간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면 잠시 후에는 순찬과 부하가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세설신어]]에도 부하가 현허함을 첫째로 꼽는 명리를 논하는 것에 뛰어나고, 순찬은 현원한 철리를 논하길 좋아해 논쟁이 붙었을 때 두 사람의 논지를 해석해 서로의 생각을 소통시켜 두 사람의 감정을 흡족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배휘의 6대손이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배송지]]이다. [[분류:위나라의 인물]] 배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