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설명 == [[불교]]에서 불교 탄압을 이르는 말. 즉 훼불(毁法)·폐불(廢佛)·멸불(滅佛)사건 등이 가장 큰 예이다. [[한국]]에서는 [[제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집권 신군부 세력이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승려들을 [[고문]], [[감금]]하고 누명을 씌웠던 사건인 [[10.27 법난]]([[1980년]])이 유명하다. == 역사 속 사례 == === 중국의 [[삼무일종법난]] === [[중국]] [[남북조시대]]와 [[당나라]], [[오대십국시대]] 때에 걸친 네 차례의 법난이 유명한데 이를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이라 한다. 항목 참조. * 삼무(三武) *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 [[당나라]](唐)의 [[무종]](武宗) * 일종(一宗) * [[후주]](後周)의 [[세종#s-6|세종]](世宗) === [[조선]]의 억불숭유(배불숭유) === 잘 알려졌다시피 [[성리학]]에 기초한 것. 물론 그 이면에는 고려시대 기성세력([[권문세족]])과 연계된 불교세력의 부정부패에 대한 [[신진사대부]] 세력의 반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디테일하게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 도첩제를 실시하고 사원재산을 환수하고 국사, 왕사를 폐지한 [[태종(조선)|태종]]과 여러 종파를 합병[* 정확히는 태종때 11개 종파를 7개 종파로, 다시 세종때 [[선종(불교)|선종]]/[[교종]]의 2개 종파로.]시킨 [[세종대왕]](초기)은 배불排佛[* 다만 세종대왕 개인은 크게 불사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유림의 비판을 받았다.] * [[연산군]]때는 그야말로 불교 자체를 부정하는 박살 수준의 --뭔들 안 부정했겠냐만은-- '''파불破佛''' * [[성종(조선)|성종]]의 경우는 [[도첩제]] 폐지 등 때문에 척불(斥佛)이라고 한다. 굳이 따지면 배불<폐불<척불<<파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폐불廢佛, 배불, 척불은 혼용되는 편이며, 중종의 '''폐불'''은 최후의 법난이란 점에서 의미를 두기도 한다.[* [[종]]을 녹여 [[총통]]을 만들고, [[사리]]를 태우는 등의 최종박해였다.] [[세조]]대에 일시적으로 승유억불 정책이 폐지되어 상당수 불경들이 한글로 번역되기도 했으며 성종대 이후로 승유억불 정책이 부활했지만 [[명종(조선)|명종]]대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청을 하면서 불교는 상당히 부활했으며, 문정왕후 사후에 다시 탄압을 받게 되었지만 [[임진왜란]]의 [[승병]]의 [[의병]]활동 이후로는 승려들에 대한 지위가 일부 격상되었고 비상시의 노동력으로도 썼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탄압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현종대에 승려의 도성출입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적은 있다. 이 이후로는 이런 조치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영조]]의 경우 도성 가까이 사찰이 지어지고 부녀자들이 출가를 한다며 불교를 배척하라는 승지 이정주의 말에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교와 상관없고 백성들이 곤궁한 처지에 있으니 오죽하면 출가를 하겠는가?'라고 답하기도 했다.[[http://db.itkc.or.kr/itkcdb/text/nodeViewIframe.jsp?bizName=MS&jwId=F01&moId=050&daId=030&gaLid=073&gaId=&yoId=&ilId=&leId=&NodeId=ms_k-F001|승정원일기 영조 1년 5월 3일 기사]]. 다만 이후에도 유림세력이 불교 사원에 행패를 부리는 등의 억압은 존재했고 승려들은 천민의 신분으로 노동력과 공물등을 착취당했으며 조선 말기까지 도성 안에 사찰을 짓지 못하게 하고 승려를 도성에 들이지 못하게는 하는 등 불교에 대해서 억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도 약간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있어서 실록을 보관/관리하거나, 왕실의 무덤을 관리하거나 위패를 모신 사찰에는 함부로 유생들이 행패를 부리지 못했고[* 하는 순간 왕실을 능멸하는 것으로 취급되어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참고로 실록 관리 사찰의 경우 주지가 유사시 지방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밀부도 갖고 있었다.] 유학자들 가운데서도 승려들의 교류를 가지며 친분들 다지는 예도 종종 있었다. [[초의선사]]와 친분이 두터웠던 [[정약용]]이나 [[김정희]]가 대표적인 예. === [[일본]]의 폐불훼석 === [[메이지 유신]] 직후 [[국가신토]]를 창시하고, 국가신토에 의거해 천황의 권위를 높이고 일본이 [[신국]]이라는 사상 하에 이와는 배치되는 불교와 [[슈겐도]]를 탄압하였다. 불교는 그나마 두터운 신도층 덕분에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슈겐도는 그러지 못하고 불교에 사실상 완전 예속되었다. 이 때가 일본불교에서 대처승과 육식이 현대의 일본불교 모습으로 완전히 정착되어 일반화된 시기다. 그 전에는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다보니(?) 사상/교리적으로 면피할 해석/주장을 만들어놓았고 결혼하지 않는 승려도 많았지만, 이때 이후로는 그런 거 없고 일본 애니에 나오는 것처럼 "일본 스님=--절대군주--[[대처승|마누라와 자식]] 두고 고기도 자유롭게 먹는다"는게 완전히 대중화/고착화되었다. 다만 지금도 선종 계열 사찰에서는 교파에 따라 육식이나 결혼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고, 대처와 육식이 완전히 퍼진 종파도 정진 기간에는 고기가 없는 정진요리만을 먹으며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기를 대신하기 위해 간장, 기름 등을 많이 써서 채소가 주 재료임에도 칼로리가 높다.] 법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