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함북선]] ||<|2>'''관리 주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철도성[br]'''소속''' : 청진철도총국 || ||<width=88px> [[청진청년역|청진청년]] 방면[br][[형제역|형 제]] || {{{+1 ← }}} ||<width=60px> 부 령 || {{{+1 → }}} ||<width=88px> [[라진역|라 진]] 방면[br][[고무산역|고무산]] || {{{+1 富寧驛 / Puryŏng Station}}} [[함북선]]의 철도역.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읍 소재. 역사서에 있는 '''4군 6진'''중 6진에 해당하며, 6진중 가장 먼저 건설된 진이다. 1417년 부거에 경성 도호부의 치소를 두었고 1432년 부거에 영북진을 설치하면서 부령이 된 것. 이 때문에 6진이 모두 설치되기 전에는 사실상 [[조선]]의 최북단이었으며, 부령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1449년이다. 1914년 부령군이 설정되면서 8면 56동을 관리했는데, 이 대부분의 면적이 현재의 [[청진시]]로 넘어가게 된다. 원래는 대략 1,900㎢에 달하는 엄청난 넓이를 가지고 있었으나 다 떼어주고 현재는 절반도 안 남은 790㎢만 관할하고 있다. 하위 행정구역이 가장 극심하게 변한 군 중 하나인데,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청진시]]에 상당한 면적을 넘겨준 것도 한몫한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에는 군청을 [[수성역]] 인근에 두고 있었는데, 부령군이 1960년에 통째로 청진시 부령구역으로 넘어가면서 군청이 없어졌다. 1970년에 부령군이 부활되었다가 고작 2년 후에 다시 폐지(...) 그리고 마침내 1985년에 부령군을 다시 신설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많은 행정구역을 [[청진시]]에 넘겨주고 인구 이동이 심해진 덕택에 현재 부령군은 고작 1읍 3노동자구 5리를 관할하는 미니 군이 되어버렸다. 인구로 치면 [[함경북도]]에서 뒤에서 두번째이며, 청진시의 '''1/13'''에 불과. 그나마도 대부분이 산지라서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그저 [[철도]]나 [[도로]] 인근에 사는 것이 전부.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이 부령역 서쪽과 [[고무산역]] 인근에 몰려 있다. 부령역, 고무산역 그리고 부령군의 최남단인 [[석막역]] 인근의 민가를 싹 들어내면 부령군 인구의 90% 이상을 들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고무산역의 경우 [[무산군]]과 [[회령시]]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고, 석막역 바로 남쪽은 [[청진시]] 송평구역이라서 이쪽은 시가지에 가깝다. 그래서 인구가 많은 것. 뭐 그래봤자 석막역 인근의 경우는 고무산역 인근의 1/3 수준이지만. 역 서쪽으로 가로 2km, 세로 500m의 길이로 민가가 퍼져 있으며, 인근에 경작지라고는 없다. 그저 공장만이 몇몇 있을 뿐. 공장까지 인입선이 나 있으며 전철화된 것은 당연하다. 참고로 이 역이 [[한국전쟁]]당시 '''UN군이 도달한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역'''이다. 1950년 11월 30일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이 부령~부거 지역까지 진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수도기계화사단은 [[장진호 전투]]개시와 동시에 후퇴명령을 받고 후퇴길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거의 비슷한 위도에 있는 [[부거역]]도 대상에 해당되지만, 청진-나진간 선로가 1965년에 완공되었으므로 한국전쟁 당시는 부거역도, 선로도 없었다. [[청진청년역]] 기점 35.5km. [[분류:북한의 철도역]] [[분류:함북선]] 부령역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