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부천시]] * 같이 보기 : [[인천광역시/역사]], [[부평]], [[부평구/역사]], [[계양구]], [[구로구]], [[시흥시/역사]][* 현재의 시흥시 북부에 해당되는 소래 지역은 1973년까지 부천군 관할이었다.] [목차] == 요약식 개요 == 지금의 부천시 지역은 원래는 부평도호부의 일부였으나 근대화 이후로 소사읍의 중심이었던 경인선 부천역 주변지역이 자연스럽게 도시화되면서 시로 승격하였다. 시 승격 동기인 [[안양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울특별시의 인위적인 도시계획(광명/과천/구성남의 경우)이 아닌 산업화와 수도권 팽창에 따라 서울과 인천이라는 두 대도시 사이의 요충지에 자생적으로 생긴 위성도시라 할 수 있다. == [[삼국시대]] ~ [[고려]] == 부천 고강동 출신인 시인 [[변영로]]의 호 ‘수주’는 과거 행정구역명에서 유래했다. 고려시대까지의 항목을 따로 서술하지 않은 이유는 [[부평구/역사]] 항목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고 부평의 정통성은 현 부평구에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게다가 부천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은 1914년이며 독자적인 명칭도 아니다. 그러므로 1914년 이전의 부평 지역의 역사는 부평구, 1914년에서 1940년까지는 부천시, 그 이후의 역사는 각각 기록하는 것이 옳다. 1914년 이전의 역사는 [[부평구/역사]]를 참고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 [[조선]] == 현재의 부천시 지역은 전통적으로 [[부평구|부평도호부]]의 일부로 취급되었다. 이 지역에 독자적인 이름이 붙고 발전을 시작한 것은 1899년에 [[경인선]] 개통에 따라 소사역(지금의 [[부천역]])이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이 때 이 지역의 이름은 상오정면, 하오정면, 주화곶면(이상 1914년부터 오정면), 석천면, 옥산면, 수탄면(이상 1914년부터 계남면)이었다. == [[일제강점기]] == 부천이라는 이름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14년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당시였다. 원래 [[인천광역시|인천]]도호부와 부평도호부는 역사적으로 별개의 행정구역[* 지도나 위성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인천도호부의 영역이었던 남구, 연수구, 남동구 일대와 부평도호부([[구한말]] 대개편 이후: 부평군)의 영역이었던 부평구, 계양구 일대는 산줄기로 분리되어 있다. 단, 서구 일대는 부평구, 계양구와 산줄기로 분리되어 있지만 부평도호부 관할이었다.]이었으나, 인천부의 영역을 제물포 개항장 일대(현재의 [[중구(인천)|중구]], [[동구(인천)|동구]])로 축소시키고, 인천부의 잔여지역인 주안[* 지금의 남동구 구월동, 간석동 및 부평구 십정동], 문학[* 인천도호부 청사가 있는 관교동, 문학동을 비롯하여 학익동, 연수구 일대], 다소[* 지금의 주안동, 용현동, 도화동, 숭의동 일대], 남동[* 지금의 남동구 일대(간석동, 구월동 제외)], 소래[* 지금의 시흥시 북부], [[영종도]], 용유도, 덕적도와 부평군 전역을 부천군으로 통합하면서[* 추가적으로, 남양군 관할이었던 영흥도, 대부도와 강화군 관할이었던 장봉도 또한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을 따 '''부천'''군(富川郡)이라 명명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대전광역시|대전]]과 회덕에서 한 글자씩 따온 [[대덕구|대덕]]군, [[개성특급시|개성]]과 풍덕에서 한 글자씩 따온 [[개풍군]] 등이 있다.] 당시 부천군청은 옛 인천부의 관아 소재지였던 문학면 관교리(현재의 남구 관교동)에 설치되었다. * 1914년 당시 부천군의 행정 구역 * 구 인천부 지역 문학면(군청소재지, 현 [[연수구]] 및 남구 일부), 남동면(현 [[남동구]]), 다주면(현 [[남구(인천)|남구]] 및 남동구 일부, 부평구 십정동), 소래면(현 [[시흥시]] 북부), 영종면(현 [[중구(인천)|중구]] 영종도 등), 용유면(현 중구 용유도, 무의도, [[실미도]] 등), 덕적면(현 [[옹진군(인천)|옹진군]] 덕적면 및 자월면 일부) * 구 부평군 지역 부내면(현 [[부평구]] 및 계양구 남부), 계양면(현 [[계양구]] 북부), 서곶면(현 [[서구(인천)|서구]] 중 검단을 제외한 지역), 계남면(현 [[소사구]], [[원미구]] 및 [[구로구]] 중 [[안양천]] 서부지역), 오정면(현 [[오정구]] 및 원미구 일부, [[강서구(서울)|강서구]] 일부) * 기타 지역 북도면(강화군에서 편입, 현 [[옹진군(인천)|옹진군]] 북도면), 영흥면(남양군에서 편입, 현 옹진군 영흥면 및 자월면 일부), 대부면(남양군에서 편입, 현 [[안산시]] 대부동 및 풍도동) 추후 서술하지만, 이후 거듭된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옛 인천부 영역이 일제강점기 및 해방 이후 모두 인천에 재편입되면서(지금의 시흥시 북부 지역 제외) 지금 영역만으로 보면 왜 (인)'''천''' 자가 붙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현재 부천시의 영역 중, 옛 인천부의 영역에 해당하는 곳은 소사구 계수동, 옥길동 뿐이다. 그 계수동, 옥길동 마저도 1983년에 시흥군 소래읍에서 일부를 편입해 온 것이다. 원래 계수동, 옥길동 모두 구한말까지 인천부 관할이었다가 1914년 부천군 소래면에 편제되었고, 1973년 부천군 폐지로 시흥군에 이관되었으며, 1983년 계수리의 일부가 부천시에 재편입되고 나머지는 시흥군 소래읍에 잔류하였으며, 옥길리는 부천시와 광명시에 각각 분할 편입되었다.] 그렇다고 이름을 부평으로 할 수도 없는 것이, 옛 부평의 중심지([[부평구]]와 [[계양구]] 일대)까지도 인천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금은 인천, 부평, 부천이 모두 따로 존재하는 [[거시기]]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1930~40년대 문학면, 남동면, 다주면, 부내면, 서곶면 등이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면적이 축소되었다. [[고양시|고양]]군과 비슷한 케이스.[* 고양군 역시 경성부의 [[성저십리]] 지역 6개면을 편입해 왔다가,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도로 경성부([[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고양시/역사]] 항목 참조.] 1931년 계남면이 소사면으로 개칭되고, 1941년 소사면이 소사읍으로 승격되었다. == [[대한민국]] == [[6.25 전쟁]] 당시에는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만 건진 [[옹진군(인천)|옹진군]]의 임시 군청을 부천군청 내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1962년 인천시 내(현 인천광역시 [[중구(인천)|중구]] 율목동)에 있던 부천군청을 소사읍 심곡리(현 [[부천역]] 남부 대신증권 자리, 심곡본동 671)로 이전해 왔다. 기존 소사읍사무소가 부천군청이 되고[* 시승격 이후 계속 부천시청으로 사용하다가, 1979년 현 원미어울마당(옛 원미구청)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였다.], 소사읍사무소는 인근에 새로 이전하였다.[* 현 심곡본1동 주민센터 맞은편 코모도빌딩(심곡본동 666-4)이 소사읍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군청이 인천항 근처가 아닌 내륙 소사로 옮겨갔으니 도서지역 주민들은 더 불편해졌을 듯~~ [[파일:attachment/부천시/역사/bucheon-county-1970.jpg]] 1963년~1973년 당시의 부천군 관내도. 1963년 오정면의 오곡리, 오쇠리[* 현재 김포공항 부지의 일부와 그 일대 농경지에 해당되는 곳이다.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에서 나온 '오쇠동'이 바로 그곳.] 및 소사읍의 동쪽 지역(개봉리, 오류리, 고척리, 온수리 등 현재의 [[구로구]] [[안양천]] 이서 지역)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으며, 영종면 작약도가 인천시에 편입되었다. [[파일:attachment/부천시/역사/bucheon-county-slogan.jpg]] 부천군 시절의 '군민의 다짐'. 여기에 등장하는 곳들(계양산, 소래산, [[옹진군(인천)|여섯 섬]][* 영종면, 용유면, 북도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이 모두 현재는 부천시 관할이 아니다.(...) 다만 '경인간 요충'이라는 문구는 지금도 유효하다. 1973년 부천군을 폐지하고 소사읍을 부천시로 승격하였다.[* 당초 예정된 시의 명칭은 '''소사시'''였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읍이 시로 승격되면, 읍의 명칭을 그대로 시의 명칭으로 계승했다. 같은 해 [[시흥군]] 안양읍에서 승격된 [[안양시]]처럼, 만약 부천군을 폐지하지 않고 잔류시켰다면 '소사시'라는 이름으로 승격되었을 것이다(그리고 현재의 [[소사구]]는 다른 이름으로 설치되었을 것이다). 부천군이 폐지되면서 '부천'이라는 명칭을 남기기 위해 '소사' 대신 '부천'을 시명으로 채택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이는 훗날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이 '소래시'가 아닌 '시흥시'로 승격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도서지역(영종면, 용유면, 북도면, 덕적면, 영흥면, 대부면)은 전부 [[옹진군(인천)|옹진군]]으로 편입시키고[* 1973년 이전까지 ([[6.25 전쟁]] 휴전 이후 남한령으로 남은) 옹진군은 백령면(대청면은 1974년 신설)과 송림면(현 연평면)의 딱 2개 면만 관할하고 있었다.(...)], 계양면(현재의 [[계양구]])과 오정면(현재의 옛 [[오정구]] 지역 및 도당동·약대동·춘의동 일부)을 [[김포시|김포]]군에, 소래면(현재의 [[시흥시]] 북부)을 시흥군에 편입시켰다. 이 중 김포군에 편입되었던 오정면은 2년 후인 1975년에 부천시로 재편입되었다. 오정면이 부천에 재편입된 이유는 김포군에 이관됨에 따라 주민들의 행정서비스가 불편해졌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3062300329206009&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73-06-23&officeId=00032&pageNo=6&printNo=8534&publishType=00020|#]] http://photos1.blogger.com/blogger/4479/883/1600/Jung-dong%2C%20Bucheon%2C%201975.10.26%20a.jpg?width=500 1975년 10월 26일 허허벌판의 중동, 부천시 김기찬의 책 "Lost Landscapes" 1981년 인천직할시 승격 당시, 인천 편입 요구가 있었으나 대구를 제3의 도시로 남기고 싶어하는 전두환 대통령의 의중때문에 인천 편입이 무산되었다는 풍문이 있다고 한다. [[확인바람]] 1983년 시흥군 소래읍 계수리와 옥길리의 각 일부를 편입했으며, 1988년 1월 [[구(행정구역)|구제]]를 실시하여 중구[* 심곡동 북부(심곡동), 원미동, 춘의동, 도당동, 약대동, 삼정동, 내동, 오정동, 대장동, 여월동, 작동, 원종동, 고강동. 2010년 부천오정경찰서 신설 전 옛 부천중부경찰서의 관할구역이기도 하다.]와 남구[* 심곡동 남부(심곡본동), 소사동, 역곡동, 괴안동, 범박동, 옥길동, 계수동, 송내동. 2010년 부천오정경찰서 신설 전 옛 부천남부경찰서의 관할구역이기도 하다.]의 2개 일반구가 설치되었다. 여담으로 현재 특별시ㆍ광역시인 도시들을 제외[* 참고로 가장 최근에 광역시가 된 [[울산광역시]]는 1985년에 구가 설치되었다.]하고 일반시들 중 '''최초로 구제가 실시된 도시'''이기도 하다([[수원시]]가 1988년 7월 분구된 것에 비해 반 년 앞섰다).[* 2016년 7월 4일 일반구를 폐지하면서, 수원시 [[장안구]], [[권선구]]가 가장 오래된 일반구가 되었다.] 1989년 노태우 정부의 '200만호 주택건설' 정책에 의해 [[1기 신도시]]의 하나로 [[중동신도시]]가 개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중동신도시의 2차 사업~~[[확장팩]]~~인 상동지구까지 개발되어 부천은 수도권의 대표적인 주거 도시로 변모하였다. 이로 인해 부천의 '공업도시' 이미지는 옛날에 비해 많이 사라졌고 '주거도시([[베드타운]])'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졌다. 1993년에 남구를 [[소사구]]로 개칭하고, 중구는 [[원미구]]와 [[오정구]]로 분할되었으며, 남구(소사구)의 경인선 북부지역인 중동, 상동, 소사동 북부[* 소사동 남부는 소사구에 남아 소사본동으로 개칭되었다.], 역곡동을 원미구에 편입하였다. 1995년에는 행정구역 경계 미세조정 차원에서 인천 계양구 서운동의 극히 일부가 부천시에 편입되었다. 2016년 7월 4일 [[일반구]]를 폐지하고 [[책임읍면동제]]를 실시하면서, 3구가 모두 폐지되었다. === 기타 이야기거리 === 오늘날에는 원래 중심지였던 [[부평구|부평]]보다 부천이 상권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부천역]]이 부천시 남부와 시흥 북부의 여객수요를 아우르고, 송내역이 [[중동신도시]]와 인천 동남부 지역까지의 여객수요를 커버하면서 상권이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노태우]] 정부가 [[중동신도시]]를 개발하면서 부평 지역의 일부 유동인구까지 흡수해 골든 트라이앵글을 완성, 현재는 수도권 서부에서 가장 번화한 상권을 갖게 되었다.[* 옆 동네인 [[인천광역시|인천]] [[계양구]], [[부평구]]에서도 중동, 상동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서울 지하철 7호선]]까지 연장 개통되면서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백화점]] 이용이 대다수이며, 그외 상권 이용은 적은 편이다.] 그야말로 [[경인선]] 하나로 인생역전한 케이스. 다만, 그로 인해 고밀도의 상업지구 배치는 높은 인구밀도를 야기했다는 양면성이 있다. 지역신문이나 일부 부천시민들은 옛 부천군의 영역이 인천 [[계양구]], [[부평구]]를 비롯하여 [[인천광역시|인천]] 대부분을 아우르는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부천군과 지금의 부천시는 명칭과 아주 약간의 행정구역(소사읍, 오정면)만을 계승했을 뿐 사실상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신설 당시 부천군청은 인천 관교동 인근에 있었으며, 부천군이라는 행정구역이 [[조선총독부]]가 [[부군면 통폐합|마개조]]해 만들어진 억지에 가까운 행정구역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오늘날의 부천시는 전통적인 [[인천광역시|인천]], [[부평구|부평]] 중 하나를 계승한 도시로 볼 수 없으며, [[1914년]] 이후로 전통적인 부평(의 중심지였던 [[계양구]], [[부평구]] 일대)에서 분리되어 소사읍을 중심으로 했던 별개의 지역이 되었다. [[복숭아]] 재배로 유명해 복사골이라는 이명이 있었으나, 현재는 중동신도시 및 상동지구 개발 등으로 인해 복숭아밭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14년 이후 계남면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고, 소사면, 소사읍을 거쳐 부천시로 승격되었다. 계남면은 현재의 [[원미구]]+[[소사구]]+[[구로구]](안양천 서쪽)에 해당된다. 그래서 계남이라는 지명은 이들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천시에는 '''계남로, 계남고가, 계남초·중·고등학교, 계남공원''' 등이 있으며, [[서울특별시|서울]] [[구로구]]에도 계남초[* 엄밀히 따지면 [[양천구]] 신정동에 있다. 하지만 행정구역 경계조정 때문에 [[구로구]] 고척동에서 [[양천구]] 신정동으로 편입된 것으로 추정.], 계남공원 등이 있다. [[2013년]] 부천 탄생 100주년과 시 승격 40주년을 맞아 김만수 부천시장이 '''부평도호부청사'''를 방문하여 부천의 발전을 기원했다는데...[[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7472|#]] 부천이 [[부군면 통폐합|어떻게 생겨났는지]] 안다면 글쎄... --부천시장이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부평도호부청사를 찾은 걸 보니 부천의 뿌리를 알긴 아는 듯-- 2016년에는 부천에서만 '''막장부모의 최악의 패륜 사건만이 [[부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두]] [[부천 여중생 살인 사건|번]]'''이나 발생했다.[* 정확히는 둘 다 몇 년 전에서 몇 개월 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2016년에 들어서야 이 사건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 구 부천군의 흔적들 === 구 부천군의 흔적은 전화 지역번호, 천주교 교구, 법원/검찰청 관할구역 등에 남아있다. * '''인천 전화번호 032''' : 구 부천군 흔적의 대표격. [[인천광역시]], [[부천시]]는 032를 쓰고, 2000년 [[지역번호]] 개편 이전에는 구 부천군 소래면이었던 시흥시 북부(구 소래읍)도 032를 썼고[* 다만 구 소래읍 지역 중 과림동 일부는 서울 02를 쓴다.], 구 옹진군(옹진군 편입 이전 부천군) 대부면이었던 안산시 대부동은 지금도 032를 쓰고 있다.[* 사실 대부도 주민들은 아직까지 인천광역시 옹진군 편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사실 농어촌혜택 얻으려는게 목적이지만~~] 구 부천군 도서부를 포함한 옹진군도 1995년 인천 편입 이전부터 032를 써왔다. * '''[[천주교 인천교구]]''' : 시흥시 북부와 안산시 대부도도 수원교구가 아닌 인천교구 관할이다. * 법원/검찰청 : 지금의 부천시는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관할구역이다. 단 시흥시 북부와 안산시 대부동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관할구역이다. * 계남공원, 서울계남초등학교 (서울 양천구-구로구 경계지역) : 서울특별시에 남은 유일한 구 부천군의 흔적. 구 부천군 계남면(후에 부천군 소사읍이 되었다가 1963년 서울 편입)에서 유래되었다. 그런데 양천구-구로구 경계지역에 있다보니 묘하게 구로구 고척동이 아닌 양천구 신정동으로 들어가있다. 부천시 [[중동신도시]]에도 계남공원, 계남초·중·고등학교가 있다. * ~~[[제17보병사단]] 관할위수지역~~ : 17사단의 현재 위수구역을 구 부천군의 잔재로만 보기에는 수도군단, 수방사 개편 이전까지는 서울특별시 한강이남지역도 17사단(구 33사단) 관할구역이었다. 시흥시 구 소래읍 지역은 51사단 지역이다. [[분류:향토사]] 부천시/역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