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渟中倉太珠敷尊 538~585 [[분류:덴노]]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FFDD11><:> '''[[일본/왕사|{{{#000000 일본의 역대 덴노}}}]]''' || ||<-5><:>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7/Imperial_Seal_of_Japan.svg/800px-Imperial_Seal_of_Japan.svg.png?width=200|| ||<width=30%><:> 29대 ||<:><|2> {{{+1 → }}} ||<width=30%><:> 30대 ||<:><|2> {{{+1 → }}} ||<width=30%><:> 31대 || ||<:> [[긴메이 덴노]] ||<:> '''비다츠 덴노''' ||<:> [[요메이 덴노]] || [목차] == 소개 == 일본의 30대 덴노. 비다쓰 덴노의 재위기간에는 '''소가 가문의 세력이 점점 부상하여 모노노베 가문과의 대립이 첨예화되는 시기였다.'''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불교]] 숭배가 문제되고 있었고, 특히 소가노 우마코와 모모노베노 모리야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비다쓰 덴노 자신도 불법을 믿지 않고 [[문학]]과 [[사학]]을 애호했다는 평가가 실려 있다. 대외관계에서는 비다쓰 덴노 시대에 [[고구려]]가 [[사신]]을 보내 본격적인 [[교류]]관계의 개시를 알리고 있고, 577년 [[백제]]로부터 경론, 율사, 선사, [[비구니]], [[주금사]], 조불공, 조사공이 파견되었다. 584년에는 미륵석상과 [[불상]]이 [[백제]]로부터 전해졌다. 579년 [[신라]]가 [[불상]]을 보내기도 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는, 583년 [[임나]][* 금관가야의 이칭 또는 가야연맹체의 총칭] 부흥을 위해 백제의 달솔[* 16관등 중 두 번째] 일라를 불러들였지만 그 [[정책]]이 [[백제]]에게 불리한 내용이었기에 [[암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달솔 일라가 소환된 것을 [[백제]]에 의한 쓰쿠시의 [[신국]] [[건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여 소가 가문과 모노노베 가문의 권력투쟁으로 일라가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585년, 비다쓰 덴노가 병으로 죽고[* [[고사기]]에는 584년.] [[요메이 덴노]]가 즉위했지만, 왕위 계승 문제가 얽히면서 결국 소가 가문과 모노노베 가문 사이에 내전이 발발했다. 비다츠 덴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