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목차] == 개요 == 釋譜詳節. [[조선]] [[세종대왕|세종]] 28년인 1446년에 [[수양대군]]이 [[김수온]] 등과 함께 편찬, 번역한 [[불경]] 언해서. 총 24권 24책이나 현재는 7권 7책만이 남아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동국대학교]] 도서관,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보물|대한민국 보물]] 제523호로 일괄 지장되어 있다. == 내용 == 1446년에 세종의 정실인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어머니의 죽음에 크게 충격을 받은 수양대군이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중국]] [[양나라]](梁)의 승우(僧祐)가 지은 석가보(釋迦譜)와 [[당나라]](唐)의 도선(道宣)이 지은 석가씨보(釋迦氏譜) 등에 나오는 [[석가모니|석가]]의 일대기와 설법들을 참조하여 모은 후 분류, 편철하여 처음 석보를 제작, 어머니의 제단에 올리게 된다. 이를 본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석보를 완성하라는 명을 내리자, [[신미]], [[김수온]] 등과 함께 기존 석보에 증수석가보(增修釋迦譜), [[아미타경]](阿彌陀經), [[무량수경]](無量壽經), [[지장경]](地藏經), [[법화경]](法華經) 등의 내용을 추가하고 원문들을 [[한글]]로 언해한 것이 지금 전해지는 석보상절이다. 이후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어본 후 이에 대한 찬가로 [[월인천강지곡]]을 짓게 되고,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후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쳐 [[월인석보]]를 편찬하게 된다. 인쇄에 사용된 한글 활자가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로 만들어진 점, 석보상절의 한국어 문장이 다른 언해 자료와 다르게 한문을 직역한 문체가 아닌 점, 최초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을 부기한 점, 이 책의 표기법이 그 이후의 한글 표기법의 전범이 된 점 등을 볼 때 우리나라 15세기 중엽의 한글과 한자음 번역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한글로 표기된 최초의 산문 작품이며, 문장 또한 세련되고 유려하여 후대의 한글 고전소설 편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왕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불경 언해서로 세조와 그 주변 인물들이 지니고 있던 숭불 의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활자본 책으로서의 가치 또한 매우 높이 평가받는다. == 바깥고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458165&cid=46674&categoryId=46674|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석보상절]] * [[https://ko.wikipedia.org/wiki/%EC%84%9D%EB%B3%B4%EC%83%81%EC%A0%88|한국어 위키백과 : 석보상절]]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2543&cid=41708&categoryId=41711|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석보상절]]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01039&cid=50292&categoryId=50292|시공 불교사전 : 석보상절]]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869088&cid=41708&categoryId=41727|외국인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 석보상절]] == 보물 제523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5230000,11|문화재청 홈페이지 : 석보상절 권6, 9, 13, 19 (釋譜詳節 卷六, 九, 十三, 十九)]]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권 4책 >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 >권6,9,13,19는 초간본으로 갑인자 활자로 찍은 것이다. 책 머리에『교정(校正)』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고, 이 책 속에 잘못 활자가 찍힌 것이나 또는 초고에서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을 교정하여 난외(활자판 바깥부분)에 정오(正誤)를 표시한 것이 보여 문자 그대로 교정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 보물 제523-2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5230200,11|문화재청 홈페이지 : 석보상절 권23, 24 (釋譜詳節 卷二十三, 二十四)]] >[[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2권 2책 >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 >석보상절 권23, 24(釋譜詳節 卷二十三, 二十四)는 초간본이며, 갑인자 활자로 찍은 것이다. == 보물 제523-3호 ==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5230300,11|문화재청 홈페이지 : 석보상절 권11 (釋譜詳節 卷十一)]]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권 1책 > >『석보상절』은 세종 28년(1446)에 소헌왕후가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종의 명으로 수양대군(후의 세조)이 김수온 등의 도움을 받아 석가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 >석보상절 권11(釋譜詳節 卷十一)은 전기활자본의 복각본(한 번 새긴 책판을 그대로 본떠 다시 목판에 새겨 발행한 본)이다. 복각한 사실에 대해서는 연산군 1년(1495)에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내탕금(內帑金:임금이 사사로이 쓰는 돈)으로 여러 가지 불교서적을 간행했는데, 그 중 『석보상절』 20부가 수록되어 있음이『선종영가집』과『반야심경언해』에 붙은 학조의 발문에 나타나므로 이 책이 혹 연산군 1년에 만들어진 판이 아닌가 짐작되기도 한다. > >그러나 이 책은 글자새김이 거칠고 또 난외(활자판 바깥부분)에 시주자들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는 점과, 종이의 질 등으로 미루어보아 연산조판으로 단정하기에는 너무 문제점이 많고, 이것은 후대에 어느 사찰에서 복각한 것인 듯 싶다. 1959년 대구어문학회에서 영인본으로 간행하였다. == 관련 문서 == * [[석가모니]] * [[세종]] * [[훈민정음]]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분류:조선의 도서]] 석보상절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