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야구 관련 인물(MLB)]] http://www.thinkbluela.com/wp-content/uploads/2013/03/Green-4-HR-Game-Tannen-Maury.jpg || 풀네임 || 숀 데이비드 그린 (Shawn David Green) || || 생년월일 || 1972년 11월 10일 || || 국적 || [[미국]] || || 출생지 || [[일리노이]] 주 데스 플레인스 || || 포지션 || [[외야수]], [[1루수]][* 외야수로서는 주로 [[우익수]]를 맡았다. 선수 말년에는 1루수로도 종종 나왔다.] || || 투타 || 좌투좌타 || || 프로입단 ||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 || || 선수 경력 || [[토론토 블루제이스]](1993~1999) [br]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00~2004) [br]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5~2006) [br] [[뉴욕 메츠]](2006~2007) || [목차] == 개요 ==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한 전직 야구 선수. 커리어 통산 세 차례의 40홈런과 네 차례의 100타점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이 비록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HOF]] 급은 아니더라도 한 시대를 풍미한 슬러거였다. 통산 커리어는 타율 .282, 328홈런 1071타점. [[박찬호]]와 2년동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기 때문에 한국팬들에게도 꽤나 친숙한 선수이다. == 커리어 ==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미에 명성이 자자한 초특급 유망주였다. 원래는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야구 장학생으로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1991년 MLB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이 유망주를 냉큼 픽해버렸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밀당]]을 진행한 끝에 그린은 '''72만 5천불의 사이닝 보너스''' + '''오프시즌 동안에 스탠포드에서 학업을 진행할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블루제이스에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2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마이너리거 생활에서 그린은 단숨에 올스타에 뽑히며 마이너리그를 평정해버린다. 다음해인 1993년 9월 로스터가 25인에서 40인으로 확장됨에 따라 토론토는 이 어린 유망주를 메이저리그로 콜업했고, 9월 28일에 그린은 자신의 데뷔경기를 치른다. 여기에 [[1993년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는 덤.[* 출전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기여도(?)를 인정받아서 우승반지를 수여받았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 때의 우승은 숀 그린의 커리어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 경력.] ~~[[무임승차]] 개쩌네요~~ 하지만 이 시기 메이저리그 최강의 팀이었던 토론토에서 아직 숀 그린의 자리는 없었고 1993 시즌과 1994 시즌 도합 17차례의 메이저리그 출장에서 그친다. 그렇지만 토론토 유망주 전체 1위로 거론될 만큼 잠재력이 만땅이었던만큼,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첫 풀타임 커리어였던 1995 시즌에 숀 그린은 타율 .288, 15홈런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특히나 [[장타율]]이 5할에 육박했다는 점이 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다만 유일한 문제점이었다면 바로 '''[[좌상바]]'''였다는 점. 이로 인하여 그린은 한동안 [[플래툰(야구)|플래툰]]으로 기용되었다. 좌상바의 면모를 극복하는데 성공한 1998 시즌 숀 그린은 타율 .278, 35홈런, 35도루 100타점을 기록하면서 대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해에는 타율 .309, 42홈런, 134타점을 기록하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올스타]]와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꼽히는 영예도 누리게 된다. 이 시기 [[카를로스 델가도]]와 그린이 주축이 된 토론토의 타선은 말 그대로 살인타선. 하지만 그다지 넉넉하지 않았던 토론토 입장에서 [[FA]]가 다가오는 초특급 거포 둘을 함께 보유하는 것은 무리수인 상황이었고 결국 그린은 2000 시즌을 앞두고 고향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된다. 당시 트레이드 상대는 [[라울 몬데시]].[* 여담이지만 그린 본인은 다저스의 지역 라이벌 [[애너하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 되기를 내심 바랐다고 한다. 본인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경기가 1986 ALCS라고 할 정도이니.][* 그래도 돌고 도는게 인연인지라 나중에 델가도와는 뉴욕 메츠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다저스에 트레이드됨과 동시에 그린은 6년간 840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초초대형 계약에 서명한다. 이적 첫해였던 2000년 시즌에는 천문학적인 연봉에 대한 부담 탓인지 기대보다는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먹튀]]~~다저스팬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최고의 투수를 영입했습니다|최고의 거포를 영입했습니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장타 뻥뻥 터지는 [[로저스 센터|스카이돔]]에서 홈런이 더럽게 안 나오는 [[다저 스타디움]]으로 옮겼으니 홈런 수야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비율스탯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두번째 시즌이었던 2001 시즌 타율 .297, 49홈런, 125타점을 기록하면서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근데 문제는 이 시즌 같은 지구, 그것도 라이벌 팀의 [[배리 본즈|약빤 악마]]가 73개의 홈런을 까버리면서 49 홈런은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였다는 점(...)~~ 그래도 그린이 이 시즌에 세운 시즌 49홈런은 다저스 구단 단일시즌 최다 홈런이기도 하다.[* 특히 다저스에서 30홈런을 쳤다면 타구단에서 40개 홈런을 친 것으로 볼 정도였고, 시즌 40홈런은 난공불락의 선이라고 봤을 때 그린의 49홈런은 대단한 성적이었다.] 2002 시즌에도 성적은 여전히 훌륭해서 타율 .285, 42홈런 114 타점을 기록하면서 맹활약한다. ~~물론 이 해에도 약마 덕분에 그냥 묻혀버렸다~~ 2003 시즌에는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19홈런에 그쳤지만 시즌 종료 후 수술을 받은 뒤 재기에 성공하여 2004년 28홈런에 86타점을 기록하면서 다저스가 9년만에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를 제패하는데 1등 공신이 된다.[* 다만 다저스는 NLDS에서 카디널스에게 1승 3패로 광탈했다. 그나마 그린은 디비전 시리즈 내내 혼자서 3홈런을 몰아치면서 맹활약했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한결같이 삽을 푸는지라...] ~~물론 이 해에도 약마 덕분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따위는 받지 못했다.~~ 2004 시즌 종료 후 숀 그린은 삼각 트레이드를 통하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트레이드됐고, 트레이드 직후 3년간 총액 3200만불의 계약에 서명하면서 다시 한 번 [[잭팟]]을 터뜨린다. 그렇지만 40홈런을 우습게 치던 전성기에 비교하면 타격 능력은 확연히 저하됐고, 2005 시즌 22홈런 87타점에 그치면서 부진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한다. 특히나 리그 최상급까지는 아니더라도 A급 언저리는 됐던 [[선구안]]이 완전히 개발살나버려서 애리조나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다. 2006 시즌에도 노쇠화는 여전했고, 시즌 중반 그린이 .425라는 커리어 로우의 [[장타율]]을 기록하자 다이아몬드백스는 미련없이 그린을 트레이드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다. 그리고 코너 외야수[* 엔디 차베스의 경우 수비나 주루는 탑급이었지만 타격이 영 아니올씨다 였고, 플로이드는 [[공갈포]]였다.]를 급구하고 있던 [[뉴욕 메츠]]가 650만불을 지불하는 현금 트레이드를 통하여 그린을 데려간다. 뉴욕 메츠로 이적하여 그냥저냥 평범한 성적은 찍어주었지만 연봉이 1,000만불이 넘는 그린이었던만큼 평범한 성적은 구단 프런트들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모든 타격 지표가 그린이 노쇠화를 겪고 있다는 징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메츠 구단측은 1년 연장 옵션을 실행하는 것[* 애리조나로 이적하면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3200만불의 금액이 보장된 상황이었고, 여기에 구단측이 동의할 경우 1000만불의 연봉을 받고 계약을 1년 더(즉 2008년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을 거부한다. 그렇게 시작한 2007 시즌 그린은 5월 말까지 타율 .314, 5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면서 [[회춘]]하는 모습을 보여주나 했는데,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자기가 친 파울타구에 엄지 발가락이 골절되면서 [[망했어요]]. 복귀해서는 그냥저냥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다가 결국 2007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 여담 == * 타격은 매서웠지만 수비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특히나 어깨가 소녀 어깨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어서 팬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송구실력을 보여준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그래서 드문드문 [[1루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 [[9.11 테러]] 당시 생존자들에게 자신의 하루 치 봉급[* 하루 치 봉급이라고 표현하면 소액같아 보이지만 워낙 연봉 액수가 크고 아름답다 보니 8만불에 달했다.]을 기부해서 팬들에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받기도 했다. * 유대인이다. 단순히 혈통적으로 유대인일 뿐 아니라 열렬한 [[유대교]] 신자여서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당일에는 늘 경기에 결장했다. 심지어 2007 시즌 [[뉴욕 메츠]]가 그 역사적인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TD]]를 시전중인 상황[* 8월말까지 지구 2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14게임의 승차가 났는데 이걸 뒤집혀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다(...)]에서도 꿋꿋이 욤 키푸르 당일에 경기에 결장해버리면서 극성맞기로 소문난 뉴욕 언론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이스라엘 대표로 출전했지만 결과는 당연히 [[광탈]]. * [[톰 글래빈]], [[앤디 페팃]]과 함께 잘 웃지않기로 유명했던 선수다. 이른바 메이저리그 3대 포커페이스. * 홈 경기에서 홈런을 쳤을 때 꼬마팬에게 자신의 배팅장갑을 주는 버릇이 있었다. * 나름 잘생긴 외모 덕분에 몇몇 영화에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분류:야구선수]] 숀 그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