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s://tv.pstatic.net/thm?size=80x100&quality=9&q=http://people.phinf.naver.net/20150611_225/1433953837678nY2uY_JPEG/yonhapnews_30299578.jpg?width=150 愼重穆 1902년 ~ 1982년 12월 31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소강(素岡)이다. 1902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말기 경상남도 거창[[군수]], [[창원시|창원]]군수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남조선 과도입법의회 의원직을 역임하였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거창군 지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거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같은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였던 표현태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국민회 표현태 후보에 설욕하였다. 1951년 [[거창 양민 학살사건]]의 진상을 밝히다가 육군 특무대(현 [[국군기무사령부]])의 협박을 받기도 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같은 해 8월부터 1953년 9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신도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하였으나 자유당 서한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7월 [[농협중앙회]] [[회장]]에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1963년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에 몸담았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 후보로 경상남도 거창군-[[함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민병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0년 신민당을 탈당하고 [[국민당(1971년)|국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구 을|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서범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81년 [[민주농민당]] 창당준비위원회 위원장과 충무회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경상남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신중목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