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프로젝트 문서,프로젝트=나무위키 지진 프로젝트)] [youtube(VVJrPLrwg90)]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6828_19338.html|당시 mbc의 보도내용]] ||<table align=right><bgcolor=#BC002D><:>{{{#ffffff 발생일시[br]^^(현지시각/GMT)^^}}} |||| 1988년 12월 7일 11시 41분경[br]1988년 12월 7일 7시 41분(GMT) || ||<bgcolor=#BC002D><:>{{{#ffffff 진앙}}}|||| [[소련]] [[아르메니아|아르메니아 공화국]] 스피타크 지역[br]북위 40.8°, 동경 44.3°[* 아르메니아 지질연구소] || ||<bgcolor=#BC002D><:>{{{#ffffff 진원의 깊이}}}|||| '''5km(!)''' || ||<bgcolor=#BC002D><:>{{{#ffffff 최대 진도}}}|||| MMI 기준 '''X (Extreme)'''[br]MSK 기준 '''X (Devastating)''' || ||<bgcolor=#BC002D><:>{{{#ffffff 규모}}}|||| '''M7.0''' / '''Ms6.8'''(표면파규모) || ||<bgcolor=#BC002D><:>{{{#ffffff 전진의 규모}}}|||| '''M 3.0'''(12. 6. 15:27 GMT) || ||<bgcolor=#BC002D><:>{{{#ffffff 여진의 규모}}}|||| '''M 5.8'''(12. 7. 07:45 GMT) || ||<bgcolor=#BC002D><:><-2>{{{#ffffff 사상자}}}|||||| ||<:><-2> 사망자, 부상자 총합 45,000여명 || ||<bgcolor=#BC002D><:>{{{#ffffff 사망자}}}|||| 25,000여명 || ||<bgcolor=#BC002D><:>{{{#ffffff 부상자}}}|||| 19,000여명 || ||<bgcolor=#BC002D><:>{{{#ffffff 이재민}}}|||| 500,000여명 || [목차] == 개요 == '''1988년, 소련을 강타한 역대 최악의 지진''' [[캄차카 지진|이전까지 소련에서 6.0이상 강진은 자주 일어났고]] [[세베로쿠릴스크 지진|9.0이상의 지진도 난적이 있었으나]] 대부분 극동지역이나 시베리아 지역과 같이 사람이 거의 살지않는 지역에 국한되었으나 아르메니아 지진의 경우 7.0의 강진이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직격한 지진으로 그 피해가 엄청났다. == 재앙의 시작 == 1988년 12월 7일, 점심을 조금 앞둔 시각인 11시경 [[아르메니아]] 중부에서 지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원래 아르메니아 지역은 아라비아 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에 위치했던지라 다른 카프카스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지진은 꽤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곧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30여분이 지난 시점, 또다시 지진이 아르메니아를 덮쳤다... 그리고 그 '''규모는 무려 7.0에 달하였다!''' 엄청난 강진이 발생하자 대부분 내진설계가 되어있지 않던 석조주택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진 스피타크 시내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이 엄청난 지진에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무너진 건물에 갇힐 수밖에 없었고, 이는 피해를 키우는데 큰 원인이 되었다. == 구조작업 == 지진이 발생하자 소련정부는 그 즉시 현장에 구조대를 파견하였으나 도시의 대부분이 무너져내렸으며 도로 역시 다를바 없었기에 구조대가 일찍도착하지 못하였고 결국 주변을 수습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구조에 나설수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가 너무컸기 때문에 소련이 이례적으로 서방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였고, 이에 서방 여러국가들이 소련에 구조대들을 파견하였다. 이후 구조에 속도가 붙어 구조하기 시작했지만, 사고 3일경 사망자수는 이미 2만명을 넘겼다. == 피해 == [[파일:mugc-117.jpg]] [[파일:mugc-118.jpg]] > '''차마 눈뜨고 지켜볼수가 없다.''' > '''차라리 죽을수 있다면.. 죽는것이 더 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당시 구조된 생존자의 인터뷰- '''그야말로 모든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사망자 추정 25000~50000명, 부상자 추정 31000~130000명. 진앙지인 스피타크시 에서만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 인구 2만 명 중 '''70∼80%'''인 7400여명이 사망했으며 이웃한 레니나칸시(인구 약 29만)또한 다를거는 없어서 200동의 건물들이 붕괴되었다. 인구 17만의 칸의 피해는 비교적 경미하였으나 역시 10동 이상의 건물이 붕괴되었고 수백여명의 사망자를 내었다. === 피해가 컸던 이유 === 이 지진은 비슷한 규모의 [[샌프란시스코 지진]][* 2번 항 목]보다도 피해가 넘사벽으로 컸고 이보다 더 강했던 '''[[고베 대지진]]'''보다도 '''사망자가 4배나 더 많았다.''' 게다가 거론된 두 지진 모두 '''100만이상의 대도시'''였으나 비교적 소도시에서 일어난 이 지진이 피해가 배 이상 났던 이유는 본래 이 지방은 원래 아라비아 판과 유라시아 판이 만나는 으로서 강도 5.0∼7.0의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지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근세기 동안 그렇다할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고 '''지진다발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대비가 전혀 되지 않았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붕괴된 건물에 깔려 압사하였음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실제로 대부분 조립용 콘크리트 부품으로 만든 주택이나석조주택의 대부분은 실제의 지진동을 밑도는 강도로 설계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지진의 진동이 아르메니아 전역을 휩쓸었던 것 또한 한몫했는데, 지진의 진동이 이웃한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지역에서도 느껴졌고 카프카스 산맥넘어 체첸지역에서도 진동을 느꼈다고 한다. === 복구작업 === 지진직후 소련정부는 즉시 아르메니아를 복구하기 시작했고 아르메니아는 제모습을 찾아가기 시작 했...지 못했다(...) 당장 소련정부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2년전의 지구를 홀라당 날릴뻔한 대형사고]]'''만으로도 힘들었고 오늘 내일하던 시점이라 복구작업은 더디게 진행되었고 그 결과 복구가 다 되기도 전에 독립해 버렸고, 이후 아르메니아 역시 내ᆞ외부적으로 영 좋지 못했던지라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는 못했다. 그나마 최근 아르메니아의 경제상황이 나아지면서 거의 대부분 복구가 되었다. [[파일:DP1M2485.jpg]] 사진은 복구 작업중인 성 구세주 교회. == 일화 ==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일화가 내려오며 감동을 주는데 일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nclude(틀:충격요소)] >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스물여섯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네살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습니다. > 모녀를 기다 리는 것은 오직 죽음의 공포 뿐,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습니다. > 그때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찔러 딸 에게 자신의 피를 먹였습니다.''' > > 어머니는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차례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습니다.'''' > 이들 모녀는 매몰된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저 모녀는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다. == 같이보기 == [include(틀:지진/20세기)] [[분류:지진]][[분류:소련]]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사건사고 (원본 보기) 틀:지진/20세기 (원본 보기) 틀:충격요소 (원본 보기) 틀:프로젝트 문서 (원본 보기) 아르메니아 대지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