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같이 보기 : [[영불관계]], [[프랑스-독일 관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4/Germany_United_Kingdom_Locator.png?wid=400&height=350 '''Anglo-German relations''' '''Deutsch-britische Beziehungen''' [목차] == 개요 == [[영국]]과 [[독일]]의 관계. '''넒게 보면 [[게르만족]] 국가들의 관계이기도 한다.''' == 단순 비교 == || 항목 || 영국 || 독일 || || 면적 || 244,820km² || 357,021km² || || 인구 || 64,100,000 || 80,620,000 || || 정치제제 ||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입헌군주국]] || [[의원내각제]] [[연방제|연방]] [[공화국]] || || 1인당 GNI || $43,940 || $41,955 || || [[명목 GDP]] || $2조 8487억 || $3조 3557억 || == 역사 == === 고대 ~ 중세 === 개요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양국은 모두 [[게르만족]]이라는 공동의 기원을 갖고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앵글로 색슨]] 족의 색슨은 독일의 [[작센]]과 그 어원이 같으며, 두 국가의 언어인 [[영어]]와 [[독일어]]는 모두 [[서게르만어군]]에 속한다.[* 다만 현대 영어의 경우 중세 시기 [[프랑스어]]의 영향을 원체 강하게 받다보니 [[로망스어]]와 [[게르만어]] 사이의 어정쩡한 짬뽕이 되어버렸다. ~~현대 독일어도 서서히 그런 경향을 보인다는게 함정~~] 이러한 공동의 기원을 갖고 있음에도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중세]]를 거치면서 두 지역 사이의 교류는 한동한 단절됐으나 13세기 무렵 [[북해]]의 무역을 꽉 움켜진 [[한자동맹]]이 급부상하면서 다시금 무역을 비롯한 교류가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 근대 === 이후 1714년 영국의 앤 여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되자 당시 독일의 영방국가[* 이 시기 독일 지역은 엄청나게 많은 군소공국(영방국)들로 분열된 시기였다.] 중 하나인 [[하노버 왕국]]의 선제후 게오르크 1세가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추대되면서 하노버 왕국과 영국은 [[동군연합]]으로 묶이게 된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영국은 [[살리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던 반면, 독일 지역은 살리카 법이 적용됐던 지라 빅토리아 여왕은 하노버 왕국의 군주로는 즉위할 수 없었다.]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두 국가는 동군연합으로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대격변의 시기를 함께 한다.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로 동군연합은 해체되었지만, 여왕의 부군이었던 [[앨버트 공]]이 독일 출신인 것에서 보이듯이 왕실 사이의 인적인 교류를 꾸준히 이어졌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역시도 후일 [[독일 제국]]의 2대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3세]]에게 시집을 간다. 이런 왕실 사이의 교류가 완전히 끊어진 계기는 전 유럽이 진흙탕 싸움을 벌인 [[1차 세계대전]]. 그리고 영국 왕실은 대중에서 극도로 높았던 반독감정 때문에 작센이라는 성까지 [[윈저]]로 갈아버려야만 했다.] 이후 [[7주 전쟁]]과 [[보불전쟁]]을 거치면서 [[프로이센 왕국]] 주도의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는 동안, 영국은 중립을 지키는 형태로 프로이센을 지원해준다. 이러한 외교방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영국과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 [[러시아]]를 제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대국이 탄생하는 것을 영국이 내심 반겼기 때문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대외팽창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독일 제국이 출범한 이후로도 두 국가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였으나, [[빌헬름 2세]]가 비스마르크를 팽하고 직접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두 국가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세계정책(Weltpolitik)이라고 불리는 빌헬름 2세의 팽창적인 대외정책은 영국을 끊임없이 자극했고[* 사실 빌헬름 2세와 독일의 외교진들이 아무 생각없이 마냥 영국을 자극하려고 팽창을 추진한 건 아니다. 이렇게 팽창을 추진하면 결국에는 영국이 자신들에게 동맹을 제의해 올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 문제는 영국이 자신들이 아니라 숙적 프랑스, 러시아와 [[삼국협상|동맹을 체결]]해버렸다는 것(...)], [[건함 경쟁]]이 타오르기 시작한 불에 제대로 기름을 끼얹는다. === 현대 === 쌓이고 쌓인 양국 사이의 적대 감정은 [[1차 대전]]으로 제대로 터져버렸으며[* 다만 기꺼이 전쟁을 시작한 프랑스의 경우와 달리, 영국의 경우에는 독일이 어떻게든 개전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슐리펜 계획]]으로 독일이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모든게 다 무산.] 4년간의 지리한 [[참호전]] 끝에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한다. 독일에 대한 복수에 눈이 멀었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대독 정책을 주장했고 그 덕에 [[전간기]] 동안 [[영국]]와 신생 [[바이마르 공화국]] 사이의 관계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심지어는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 이후로도 [[영독 해군조약|군사조약]]을 체결할 정도. 문제는 이게 [[페이크다 병신들아|페이크]]였다는 것(...)[* 사실 히틀러 본인은 영국에 대해 꽤나 우호적이었다. 집권 직후 영국 외교관에게 '세계에는 영국, 미국, 독일 이 3개의 강대국만 존재하면 된다. 나는 영국이 팽창하는 거 신경 안쓰니까 영국도 우리 팽창하는 거 신경 안써줬으면 좋겠음 ㅇㅇ'이라는 식으로 말한적도 있다. 물론 그의 저서인 "나의 투쟁"에 있는 독일의 팽창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걸림돌이라는 서술을 봐서는 진짜로 신경 안 쓴 건 아니었다.] 결국 [[2차대전|또 한 차례의 전쟁]]을 거친 끝에 영국은 미국, 소련, 프랑스와 함께 독일을 점령한다. 이후 새롭게 탄생한 [[독일연방공화국]]이 과거사 청산, 친서방정책 등을 펼치면서 양국 정부 사이의 정치적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인 반향으로 진전된 상황.[* 물론 그렇다고 늘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영국이 [[오데르-나이세 선]]을 승인하면서 서독이 이에 반발했던 적도 있었고, [[독일 통일]] 당시 [[마가렛 대처]]가 독일의 통일을 반대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브렉시트]]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 중이며, 양국 국민들, 특히 기성세대들 사이에는 세계대전으로 인한 불편한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중 2016년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독일을 위시로 한 [[EU]]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 안건이 가결됨에 따라 양국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당연히 독일은 영국을 좋게 볼리가 없고, 벌써부터 EU 탈퇴 절차를 위한 협상이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임에도 양국 사이에서는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은 국경 개방과 EU 출신에 대한 이주 자유 보장 없이는 단일 시장 접근권을 허용할 수 없다는 쪽이고, 영국은 온전한 이민과 국경 통제권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브렉시트 전후로 영국 보수파들과 기성세대들 사이에서 EU를 '독일의 제 4제국(4th Reich)'라고 부르며 조롱 섞인 경계감을 드러내거나, '독일은 세계 대전 때 영국을 위협했으나, 호주 등 영연방 국가들은 영국을 위해 싸워줬다.'라고 언급하는 등 독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여담 == * 현대에 들어와서는 국민감정이 많이 희석된 상황이지만[* 물론 서로 비방도 이따금씩 주고 받기는 하지만 [[1차대전]]과 [[2차대전]] 얘기만 나오면 독일은 [[데꿀멍]]하는 탓에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양국 네티즌 간 키배는 거의 대부분 영국의 압승으로 끝난다. ~~일단 제3국 네티즌들도 절대 독일편을 안들어준다~~], 그래도 이따금씩 국민감정이 한껏 고무될 때가 있으니 바로 양국간의 축구 대결. ~~근데 독일 국대는 자국 근현대사가 쌓아놓은 원죄 탓에 주변의 모든 나라가 다 라이벌이다.~~ 양국간의 굵직굵직한 경기들은 지금도 회상되곤 하는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전[* 연장까지 간 혈투끝에 잉글랜드가 간신히 4-2로 승리했다. 그런데 결승골이 사실 주심의 오심(공이 골라인을 넘어가지 않았는데 주심이 골라인을 넘어갔다고 판정했다.)이었다는게 함정. 그래서 독일은 두고두고 이 경기를 패배로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독일의 물리학자는 그 골이 왜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한지를 설명하는 논문까지 만들기도 했다(...)]이 특히 유명하다. * 2006년에는 [[더 선]]지에서 [[앙겔라 메르켈]]의 얼굴을 성인잡지에 등장한 여성 모델에 합성하는 바람에 [[빌트]] 지에서 '이런 건방진 영국놈들이'라고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분류:외교]] 영독관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