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역대 아르헨티나 대통령]]'''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f/ff/Coat_of_arms_of_Argentina.svg/793px-Coat_of_arms_of_Argentina.svg.png?width=250|| ||<width=30%><:> 47대 ||<:> {{{+1 → }}} ||<width=30%><:> 48대 ||<:>{{{+1 → }}} ||<width=30%><:> 49대 || ||<:>[[후안 페론]] ||<:>{{{+1 → }}} ||<:>'''이사벨 데 페론''' ||<:>{{{+1 → }}} ||<:>[[호르헤 비델라]]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2/Isabelita_%C3%ADcono.jpg/200px-Isabelita_%C3%ADcono.jpg 마리아 에스텔라 마르티네스 카르타스 데 페론(María Estela Martínez Cartas de Perón) [[1931년]] [[2월 4일]] 생. '''[[최규하]]의 아르헨티나 버전.'''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영부인 출신 대통령''' == 소개 == 본명은 마리아 에스텔라 마르티네스 카르타스 데 페론(María Estela Martínez Cartas de Perón)으로 이사벨은 그녀가 가톨릭에 귀의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얻은 세례명이었다. 그녀는 공식석상에서 자기 세례명을 본명처런 사용할 정도로 세례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후안 페론]]의 2번째 아내로 3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최규하라 불릴 정도로 많이 안습한 대통령인데 뭘 시도해보기도 전에 군사반란을 당해 퇴출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생애 ==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며 [[에바 페론]]이 사망하자 그 이후 [[후안 페론]]의 후처로 결혼했다. 대통령과 결혼해서 영부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 때 후안 페론이 고령이라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고 반쯤 대통령의 임무를 수행했다. 남편인 후안 페론이 1974년 6월에 2번째로 당선된 지 1년을 못채우고 세상을 떠나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이 때 군부가 에바 페론의 너무 높은 인기를 견제하기 위해 몰래 훔쳐서 이탈리아로 빼돌렸던 에바 페론의 영구를 되찾아왔다. 그리고 에바 페론을 남편인 후안 페론과 같이 합장했다. 그 이후 뭔가 정책을 내놓으려 했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었던데다가 정치면에서도 실정을 거듭한지라 겨룩에는 1976년 3월, [[호르헤 비델라]]에 의해 대통령에서 쫓겨났다. 대통령에서 쫓겨난 이후 [[스페인]]으로 망명했고 현재도 스페인에서 계속 눌러 살고 있다. 2007년 아르헨티나에서 반체제 인사의 의문사 사건과 관련하여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이사벨 페론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스페인 정부에서 거절했다. [[분류:아르헨티나의 인물]] [[분류:대통령]] 이사벨 데 페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