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325.jpg?width=150 李錫基 [[1907년]] 11월 26일 ~ [[1974년]] [[6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이석기|1962년생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과 헷갈리지 말자.뭐 이 작자도 친일파로 욕먹을 인물이지만...''' 제6대 [[전국구]] [[국회의원]] 방일홍의 장인어른이다. 1907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39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조선총독부 산하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아산시|아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에도 [[미군정]] 산하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대전부윤(현 대전광역시장)을 지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서울특별시청]] 행정장관, 행정참사관(오늘날의 서울특별시청 행정부시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남궁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고 [[대한민국 국회]] 내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시 자유당을 탈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7년 민주당에 입당하였고 신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한광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55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탄핵재판소 심판관, 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동대문구 갑|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민관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충청남도 출신 인물]][[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석기, version=303)]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이석기(1907)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