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이 항목은 영어 이름인 [[준 리]]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李俊九 (1932.1.7 - ) 자칭 [[미국]] 태권도의 아버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태권도]] 교사를 맡기도 했다. 정작 한국인인데도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높지 않지만, [[인맥]]도 그렇고 [[태권도]] 8단의 무술 실력도 그렇고 여러 모로 대단한 인물. 미국 내에서의 지명도는 한국보다 월등히 높았다~~과거형임에 주의~~. 특히 [[이소룡]]이나 [[무하마드 알리]]같은 인물과도 친해서 이소룡이 가난했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1976년]] 무하마드 알리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했는데, 사실 국내에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게된 계기도 이 [[이벤트]]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했기때문에 알려지지 못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케이블에 가끔 나오던 선삼정 광고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973년]]에는 [[골든 하베스트]]에서 제작한 무술영화 흑권(跆拳震九州)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아무래도 [[이소룡]]의 태권도 사부라는 네임 밸류가 있는지라 국내에서만 10만 동원을 하며 흥행몰이를 했다[* 물론 이준구의 네임밸류에만 의존한 게 아니다. 이 작품엔 [[모영]]이나 [[황가달]],[[임정영]],[[홍금보]],[[황인식]] 등 당시 골든 하베스트의 간판급들이 줄줄이 출연하고 있다]. [[1980년]]에는 돌아온 용쟁호투라는 [[용쟁호투]]의 짝퉁(...) 무술영화에 출연했다 시원하게 말아먹은(...) [[흑역사]]도 지니고 있다.~~홍콩과 한국의 차이~~ 최근에는 태권도의 해외 진출에만 몰두, 덕분에 미국에서 매년뽑는 '금세기 최고의 무술인'에 선정되기도했다.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에 이민가서 태권도 도장을 열 당시 듣보잡이던 태권도를 비웃으며 이미 자리를 잡은 근처 가라테 도장 사범인 일본인이 도전해오기에 발차기 몇 방에 넉다운시켰다고 한다. 그 사범은 패배를 인정하곤 도장 문을 닫고 이사갔다고. 다만 본인의 무용담이니깐 100% 믿지는 말자. 그 당시에는 확실히 가라데가 저 날나갔고 오히려 태권도와 가라데가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서 홍보를 했지 적대적으로 대하지도않았다. 또한 당시 가라데 도장들은 그 이전부터 일본에서 가라데문화를 전세계에 보급하기위해 공격적으로 세계에 홍보하고 있는 시대여서 그냥 뜨내기 가라데 사범을 보낼리 만무했다.(특히나 유도는 19세기때부터 미주에서 홍보하고다녔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이준구,version=132)] [[분류:태권도 관련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이준구(무술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