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군산시 출신 인물]] https://tv.pstatic.net/thm?size=80x100&quality=9&q=http://people.phinf.naver.net/20140602_181/1401699717835rDqX8_JPEG/chosun_400015666.jpg?width=150 林春元 1938년 03월 01일 ~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해정(海汀)이다. 1938년 [[전라북도]] 군산부(현 [[군산시]])에서 태어났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1970년 통일문제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고 [[회장]]이 되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윤보선]], [[장준하]], [[박기출]] 등과 [[국민당(1971년)|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리고 국민당 정무위원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전국구]] [[국회의원]] 4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74년 윤보선, 장준하, [[김대중]] 등과 함께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회복국민회의에 참여하였다. 1975년 장준하 의문사 사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자 연행되어 체포, 고문조사를 받았다. 1980년대 초반 부산 [[동아대학교]] [[재단]]의 [[이사]]를 역임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결성되자 이에 참여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야당의 경제통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87년 1월 [[강삼재]]의 뒤를 이어 신한민주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신한민주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6월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였고 [[무소속]]으로 있다가 11월 [[평화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김대중 [[총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재무위원회(현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 5공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 제5공화국 부실기업비리 조사반장 등으로도 활동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1991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규식]], [[송천영]] 등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있었다. 1994년 6월 [[통일국민당]]에 입당하였고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여 [[신민당(1994년)|신민당]]이 되자 신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95년 신민당이 [[자유민주연합]]에 흡수 합당되려 하자 반대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았다가 취소되었다. 이후 정계 은퇴하였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임춘원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