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212.jpg?width=150 鄭文欽 1892년 9월 1일 ~ 1976년 3월 1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2년 [[경상도]] [[봉화군|봉화현]]에서 태어났다. [[3.1운동]] 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이후 [[함경북도]] [[경흥군]] [[금융]]조합장을 지냈으며, 1923년 [[만주]] [[지린 성]] 룽징 둥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 후보로 [[경상북도]] 봉화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배중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12월 4일 [[이기붕]] [[국회의장]] 대신 임시 국회의장직을 수행하였다. 1955년 자유당 경상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농민회 최고위원이 되었다. 1959년 자유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를 이유로 구속, 수감되었다. 그리고 1961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을 상실하였다. [[5.16 군사정변]] 후인 1961년 말, 형 면제 조치로 석방되었다. 1966년 [[이재학(1904)|이재학]] 등과 자유당을 재건하여 중앙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정문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