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www.royalark.net/Malaysia/sarawak-james.jpg James Brooke (1803 ~ 1868) == 개요 == 오늘날의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의 전신인 [[사라왁 왕국]]의 국왕이자, [[영국]]의 군인이다. [[동남아시아]] 역사상 유일한 [[유럽]]계 왕조인 [[백인 왕조]]의 개창자이다. == 생애 == [[인도]]의 [[후글리]] 지방[* 당시는 영국령이었다.]의 영국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12살에 [[영국]]으로 가서 공부하고 자랐다. 1819년에 인도로 돌아와서 [[영국 동인도 회사]] 소속 군대의 장교가 되어, [[아삼]] 지방에서의 전투에서 무훈을 세웠다. 1838년에는 [[브루나이]]의 술탄의 의뢰를 받고 [[해적]]을 토벌했으며, 이 공로로 지금의 [[사라왁]] 지역을 영지로 하사받아 [[사라왁 왕국]]을 세우고 왕을 자칭했다[* 브룩에게 사라왁을 하사하면서 [[브루나이]]는 국토가 반토막났다. 원래 브루나이는 지금의 사라왁과 사바를 포함한 [[보르네오]] 섬 북부를 다스리던 큰 나라였다. 아예 보르네오라는 지명이 브루나이의 국명에서 유래했을 정도인데 이 때의 일로 브루나이는 영토가 조금씩 외세에 침탈당하기 시작한다. 안습.][* [[사라왁 왕국]]의 건국 이후에 [[영국]]은 사라왁 왕국의 왕실이 영국계인 점을 이용해 사바의 합병을 돕도록 강요했다. 사라왁이 브루나이 침공의 전진기지가 된 것이다. 거기다가 [[영국]]의 도래 이전에도 지금의 [[필리핀]]의 [[민다나오]] 지방에 있던 [[술루 왕국]]이 북보르네오의 북동쪽 끝부분에 대해 영유권 드립을 치면서 침략해와서 '''21세기'''인 오늘날까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이래저래 브루나이만 안습이다. 다만 이제 [[사바]]는 [[말레이시아]]의 영토인 만큼 이제 [[술루 왕국]] 군대~~라고 자칭하는 테러집단~~의 주적은 브루나이가 아닌 말레이시아가 되었다. 즉, 이젠 브루나이가 겪던 문제를 말레이시아가 이어받았다. [[안습]].]. 이후에 [[영국]] 정부로부터 [[라부안]] 섬의 행정관으로 임명되었고, 1847년에 거주지를 영국으로 옮기면서 당시의 영국 여왕이던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바스 훈장]] 2등급을 수여받고 [[기사(작위)|기사 작위]]에 서임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왁 지역에는 여전히 해적이 들끓어서 수시로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브룩은 영국에 오래 머무르지도 못하고, 사라왁으로 군대를 끌고 가서 해적 토벌에 전념해야 했다. ~~[[장태완|야 이 해적 놈들의 새끼야! 대영제국의 군대를 끌고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지금도 [[사라왁]] 지역에서 [[말레이 해협]]에 이르는 지역까지는 해적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지역이다. [[소말리아]]가 해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에는 원래 이곳이 해적으로 더 악명이 높았던 지역이다.] 결국 해적들과의 오랜 싸움에 지친 브룩은 때마침 건강이 악화되기도 하여 [[영국]]으로 돌아갔고, [[사라왁 왕국]]의 왕위도 조카인 [[찰스 브룩]]에게 양위하였다. 결국 1868년에 영국 [[데본]] 주에 있는 저택에서 사망하였다. == 여담 == 의외로 현대 [[진화론]] 연구에 적지않은 기여를 한 사람인데, [[찰스 다윈]]과 함께 진화론의 근간이 되는 [[자연선택]]의 개념을 확립시킨 ~~[[콩라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가 진화론의 증거가 되는 여러가지 생물 표본을 [[동남아시아]]에서 대거 수집하였는데, 그때 월리스가 브룩이 주도한 항해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성애자]]이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역사상 유일의 [[성소수자]] 군주가 탄생한 것이다. 사라왁 현지에서 평은 생각외로 괜찮은 편인데 왕위에 오른 이후에도 영국의 문화나 풍습, 종교를 현지인들에게 강요하지 않은데다가 온정주의를 내세워 외국자본가들이 사라왁에서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는 일을 금지시켜서[* 사실 이때 투자라는건 말이 투자이지 사실상 침탈이나 다름없었던게 대다수였기는 했다. 당장 서유럽 국가라고 해도 착취가 벌어지는 판이었고 식민지에서는 말도 할것도 없는 수준이었던게 태반이었다.] 사라왁 왕국에서 심각한 착취가 벌어지는 일이 적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브룩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