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http://d.haberciniz.biz/other/diego-ribas-3-yillik-sozlesmeye-imza-atti-DHA-44df3d3a88c77b218cc1ec2e60f7132a-5-t.jpg?width=400 --[[아드리아누]]의 뒤를 잇는 [[브라질]]산 [[멘탈갑]]-- ||||<#00338d> '''{{{#ffd700 페네르바흐체 SK No.10 }}}''' || ||||<#ffd700> '''{{{#00338d 지에구 히바스 다 쿠냐 }}}''' [br] '''{{{#00338d (Diego Ribas da Cunha) }}}''' || || 생년월일 || [[1985년]] [[2월 28일]] || || 국적 || [[브라질]] || || 출생지 || 리베이랑 프레투 || || 포지션 || 공격형 미드필더 || || 키 || 173cm || || 프로 입단 || 2002년 [[산투스 FC]] 입단 || || 소속팀 || [[산투스 FC]](2002~2004) [br] [[FC 포르투]](2004~2006) [br] [[베르더 브레멘]](2006~2009) [br] [[유벤투스]](2009~2010) [br] [[VfL 볼프스부르크]](2010~2014) [b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임대)(2011~2012) [b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임대)(2014) [br] [[페네르바흐체 SK]](2014~ ) || || 국가대표 || 33경기 4골 || === 개요 === [[브라질]] 출신의 [[축구]] 선수. 현재는 [[페네르바흐체 SK]]에서 뛰고 있다. 각종 테크닉이 뛰어나며, 고감도의 득점 능력까지 겸비한 전형적인 [[플레이메이커]]형 선수이다. === 선수 경력 === 12세부터 산토스 FC 유스에 소속된 이래로 2002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17세의 나이로 리그 우승을 경험하면서 [[호비뉴]], [[알렉스(축구선수)|알렉스]] 등과 함께 팀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 이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도 맹활약하며 유럽 빅클럽들의 구애대상에 올랐으며, 2004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데쿠(축구선수)|데쿠]]의 대체자로 [[FC 포르투]]에 입단해 [[유럽]] 무대로 진출하였다. 첫 시즌에는 30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으나, 산토스에서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이는 팀의 전술이 디에구에게 맞춰져있던 특성상 팀의 부진으로 이어졌고, 팀은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며 [[벤피카]]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시즌이 끝난 이후 주제 쿠세이루 감독이 팀을 떠난 뒤 [[코 아드리안세]] 감독이 새로 부임했으며, 부진한 활약을 보인 디에구를 전력외 선수로 분류해 서로 갈등을 빚었다. 결국 디에구는 새로운 팀을 물색하게 되었고, 2006년 600만 [[유로]]에 [[요앙 미쿠]]의 공백을 매우려던 [[베르더 브레멘]]과 2010년까지 장기 계약을 맺었다. 입단 이후 [[리가포칼]] 결승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공식 데뷔전을 치렀으며, 경기에서 승리해 이적하자마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입단 이후 가진 [[하노버 96]]과의 [[분데스리가]] 첫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렸으며, 다음 경기인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는 두 골을 터뜨려 팀의 2:1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10월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12월에 다시 한 번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이후 팀이 [[UEFA 컵]] 4강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2007년 [[알레마니아 아헨]]과의 경기에서 터뜨린 62.5m 장거리 골은 '올해의 골'에 선정되었다. 시즌이 종료될 때까지 [[토르스텐 프링스]]와 함께 팀의 중원을 책임지며 자신의 부활을 알렸으며, 51%의 지지를 얻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키커]]지에서 선정한 '2006/07 시즌 분데스리가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7/08 시즌에도 개막전에서 [[패널티킥]]으로 득점에 성공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디나모 자그레브]]를 상대로 2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를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오죽했으면 조별 라운드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붙었을 당시 디에구가 결장하자 레알 마드리드의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디에구가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을 정도. 전 시즌의 활약을 계속 이어가며 9월에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아르마니아 빌레펠트]]와의 경기에서는 1골 3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에 8:1 대승을 안겼다. 시즌 종료 이후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 [[인터 밀란]], [[피오렌티나]] 등의 관심을 받았지만, 본인은 계약 기간을 2011년까지 연장하며 팀에 충성심을 나타냈다. 2007/08 시즌에는 [[AC 밀란]]과의 UEFA 컵 32강전 1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해 1:1 무승부에 기여한 데 이어 2차전에서는 [[클라우디오 피사로]]의 골을 [[어시스트]]해 2:2 무승부를 만들어 원정 다득점으로 팀이 16강에 진출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우디네세 칼초]]와의 8강전에서는 1차전에 2골을 넣어 팀의 3:1 승리를 이끈 데 이어 2차전에서도 2골을 넣어 3:3 무승부를 만들어 팀의 준결승행이 확정되었다. [[함부르크 SV]]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해 3:2 승리에 기여하였고, 팀은 1, 2차전 합계 3:3에서 원정 다득점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다에구는 [[옐로카드]]를 받아 결승전에 나올 수 없게 되었고, 팀은 결승전에서 [[샤흐타르 도네츠크]]에게 패해 우승이 좌절되었다. 이후 [[바이어 레버쿠젠]]과의 [[DFB 포칼]] 결승에서는 [[메수트 외질]]의 골을 어시스트해 팀의 1:0 승리에 기여하였고, 베르더 이적 이후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9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250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며, 연봉 350만 [[유로]]로 5년 계약에 합의했다. 유벤투스 입단 이후 가진 첫 경기는 공교롭게도 [[피스컵]]에 참가했던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였는데, 그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덕분에 [[한국]] [[축빠]]들에게 본의 아니게 인상을 남겼다.-- 이후 [[AC 밀란]]과의 '2010 트로페오 TIM'에서도 득점에 성공했으며,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한 뒤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키에보 베로나]]와의 [[세리에 A]] 데뷔전에서는 [[빈첸조 이아퀸타]]의 골을 어시스트해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으며, 다음 경기인 [[AS 로마]]와의 경기에서는 2골을 몰아치며 팀의 3:1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후에도 [[제노아 CFC]]와의 경기에서 백힐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부상을 당한 이후 완전한 컨디션을 되찾지 못해 승승장구하던 팀 또한 주춤하기 시작했다. 이후 [[SSC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부활하는가 했지만, 팀이 워낙 멘붕상태에 빠져있어서 디에구가 패스를 뿌려줄려해도 줄 곳이 없고, 보좌해줘야 할 중앙 미드필더들도 좋지 못했다. 이런 막장상황에도 7골 12도움이란 스탯을 쌓으며 그나마 팀을 먹여살렸다. 그러나 시즌 종료 이후 새로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루이지 델 네리]] 감독이 선호하는 4-4-2 전술에 부적합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인해 주전 자리를 잃었다. ~~그리고 델네리는 7을 기록하였다.~~ 결국 유벤투스에 입단한지 1시즌만에 방출 대상에 올랐으며, 친정팀인 베르더 브레멘과도 연결되었지만 결국 1550만 [[유로]]의 이적료에 4년 계약으로 [[VfL 볼프스부르크]] 이적을 확정지었다.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면서 디에구는 주세페 마로타 단장이 친이탈리아 정책을 써서 자신이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1.FSV 마인츠05]]와의 데뷔전에서 디에구는 데뷔골을 득점하는 데 성공하며 팀의 [[에이스]]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이후 서서히 --[[아드리아누]] 못지않은-- [[멘탈]]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팀이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팀 훈련 도중 동료인 [[사샤 리터]]가 자신에게 강하게 태클을 하자 바로 [[귀싸대기]]를 날렸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때는 구단에서 징계를 주지 않고 넘어갔다. 이후 [[하노버 96]]과의 경기에서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래 [[파트릭 헬메스]]가 차기로 되어 있던 [[패널티킥]]을 차겠다고 우긴 뒤 억지로 패널티킥을 찼다가 실축했으며, 결국 경기가 0:1로 종료되자 구단에서는 디에구에게 1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덕분에 [[구자철]]에게는 호재.--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경기에서는 주심 몰래 [[파트릭 옥스]]의 발뒷꿈치를 고의적으로 밟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나, 주심이 제대로 보지 못해 징계를 면했다. 팀의 강등 여부가 결정될 상황이었던 [[TSG 1899 호펜하임]]과의 리그 최종전 당시에는 자신이 선발 명단에서 제외된 사실을 알고 [[펠릭스 마가트]] 감독 몰래 팀을 무단 이탈해 팀은 벤치 멤버를 6명밖에 둘 수 없었으며,[* 기본적으로는 벤치에 7명의 선수까지 둘 수 있다.] 천만다행으로 팀은 3:1로 승리해 강등을 면하게 되었지만 구단은 디에구를 방출시키기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디에구가 받는 연봉이 워낙 [[ㅎㄷㄷ]]해 다른 구단들과의 협상에 난항을 겪었는데, 천신만고끝에 이적시장 마지막 날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1년 임대를 보내는 것이 결정되었다.[* 당시 마가트 감독은 디에구의 방출이 실패했다면 2군으로 보낼 것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디에구는 [[발렌시아 C.F.]]와의 경기에서 리그에 공식적으로 데뷔했으며, [[셀틱 FC]]와의 [[UEFA 유로파 리그]]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데뷔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해 팀의 2:0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어째 [[한국]]과는 계속 안좋은 쪽으로 엮이고 있다.-- [[레반테 UD]]와의 경기에서 리그 데뷔골을 넣었는데, 일단 현재까지는 별다른 사고 없이 팀에 적응하고 있는 모양. 2003년 [[멕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브라질]]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후 2003년 [[골드컵]]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대회 준우승을 맛보았다.이후 2004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결승전에서 숙적 [[아르헨티나]]와 맞붙었는데, 연장전까지 2:2로 무승부를 이룬 뒤 승부차기에서 키커로 나서 자신의 차례를 성공시켜 결국 4:2로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영광을 맛보았다. 하지만 포르투로 이적한 이후 부진을 거듭해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 자연스럽게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FIFA 월드컵]] 국가대표팀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이후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해 자신의 기량을 되찾은 뒤 월드컵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둥가]]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으며, 2007년 [[코파 아메리카]]에도 참가해 다시 한 번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된 상황에서 차출 문제를 둘러싸고 소속팀인 베르더 브레멘과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팀을 무단 이탈해 올림픽에 출전해 팀이 [[동메달]]을 따는 데 일조했다.[* [[하피냐]] 또한 소속팀인 [[FC 샬케 04]]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단으로 팀을 빠져나와 브라질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디에구,version=55)]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지에구(1985)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