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춘추전국시대/군주]] ||||||||||<tablealign=center><:> '''[[진(춘추오패)|역대 진나라 군주]]''' || ||<:> 10대 [[진상숙]](晉殤叔) 희가보(姬家父)[* 북조촌에서 진후의 무덤을 발굴했는데, 거기서 발굴된 청동기에 진후 가보가 적혀 있었고, 그 무덤의 규모가 작은 것을 근거로 진상숙의 이름이 가보로 본 것이다. 여담이지만 진문후의 이름은 이 문서를 자세히 살피면 알 것이다.] [br] ||<:> → ||<:> 11대 [br] '''진문후(晉文侯)''' 희구(姬仇) ||<:> → ||<:> 12대 [[진소후]](晉昭侯) 희백(姬伯) || || '''[[성씨|성]]''' |||| [[희]](姬) || || '''[[본관|씨]]''' |||| 진(晉) || || '''[[휘]]''' |||| 구(仇) || || '''아버지''' |||| [[진목후]] 희비왕(姬費王) || || '''생몰기간''' || 음력 ||기원전 805년 ~ 기원전 746년|| || '''재위기간''' || 음력 ||기원전 780년 ~ 기원전 746년 || [목차] == 개요 == 진나라의 11대 군주. 초기 [[진(춘추오패)|진(晉)]]의 마지막 [[통일]] [[군주]]. 진문후는 [[정나라]]의 [[정환공]][* [[주선왕]]의 아우로 주선왕이 그를 정나라 [[백작]]으로 봉했는데, [[주유왕]]을 지키기 위해 견융족과 싸우다가 전사했다.]과 함께 서주가 견융족에게 망한 뒤 동주로 부흥시키는 공로를 세운 진나라 군주다. 여담이지만 처음보는 사람은 [[진문공]]과 진문후가 헷갈릴 수 있는데, 진문후의 [[이름]]은 구고, 진문공의 이름은 중이이며, 진문공은 진문후의 방계 자손이니 전혀 다르다.[* [[곡옥환숙]]은 [[진문공]]의 고조할아버지다. 즉 기어이 따지자면 진문후가 진문공의 큰 고조할아버지다.] == 생애 == 진문후는 원래 [[진목후]]의 태자였다. 그런데, 진문후의 숙부인 진상숙인 희가보가 진목후가 죽자마자 정권을 탈취했다. 그러나 훗날 진문후가 될 희구는 쫓겨난 동안 힘을 길러 [[기원전]] 781년 상숙을 기습해 시해하고 진후 자리에 오르니 그가 바로 진문후다. 진문후 원년인 기원전 781년 [[주유왕]][* [[포사]] 때문에 나라를 말아먹은 그 주유왕 맞다.]이 죽고 [[주평왕]]이 즉위한다. 그런데, 다른 왕족인 희여신(姬余臣)이 왕을 자칭하니 그가 [[주휴왕]]이다.[* 주혜왕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주나라는 이분된다. [[청화간]][* 청나라 때 발견된 죽간이라는 뜻.]에 의하면 주휴왕은 진문후 21년인 [[기원전]] 761년 진문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혜왕의 시호를 주었다고 한다. 같은 사건을 [[죽서기년]]에서는 진문후가 휴왕을 죽였다고만 나온다. 그리고 주왕실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진문후는 주평왕을 옹립했다. 그리고 진문후가 이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주평왕은 진문후에게 거창[* 왕실의 제사에 쓰는 술]과 규찬[* 왕실의 제사에 쓰는 옥으로 만든 술잔류]을 내렸는데, 거기에 진후지명(晉侯之命)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참고로 이것들 [[구석]]을 이루는 것들 맞다.] 진문후는 분수 유역으로 세력을 떨쳐 진나라의 영토를 넓혔다. 물론 이것은 주평왕에게 승인을 받고서 한 일이다. 진문후는 즉위한지 35년째인 기원전 746년 죽었다. == 그 사후 == 진문후가 죽은 뒤 진나라는 2개로 갈라지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아들인 희백인 [[진소후]]가 그 숙부인 희성사[* 참고로 진목후가 진문후의 이름을 仇라 짓고, 곡옥환숙인 희성사의 이름에 成이 들어갔으니 진문후의 후손이 곡옥환숙의 후손에게 먹힐 것이라는 말이 있었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 진다.]를 [[곡옥]] 땅에 봉지를 주어 곡옥의 백작에 봉했다. 그리고 진나라는 내전을 벌이는 바람에 천하의 대세에 간여할 수 없었다. 진소후는 그 신하인 반보에게 살해되었고, 그리고 그 다음 군주인 진효후도 곡옥환숙의 아들인 [[곡옥장백]]에게 살해된다. 진악후는 곡옥으로 쳐들어가 그곳의 곡식을 불살라 없앴는데, 진악후 때 만큼은 곡옥에게 밀리지 않았으나, 6년만에 죽어버렸고, 곡옥장백은 그 틈을 타서 진나라의 수도 익을 쳤으나 서괵공의 공격을 받아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 이것은 사기의 기록이고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하면 곡옥장백은 주의 지원을 받아 진을 쳐서 악후를 몰아냈고, 곡옥장백이 주나라를 배반하자 주나라는 곡옥을 치면서 [[진애후]]를 즉위시켰고, 주나라의 승인으로 진나라 군주가 된 진애후의 존재 때문에 악 땅에 거주했고 거기서 죽어서 진악후가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일로 곡옥은 큰 타격을 입었는데, 곡옥장백이 죽고 [[진무공|곡옥무공]][* 그가 바로 진문공의 할아버지인 [[진무공]]이다.]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여, 그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진애후]]에게 화평을 요청했고, 진애후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진무공]]은 진애후를 사로잡았고, 익에서 [[소자후]]를 즉위시키자 진무공은 기원전 708년 소자후를 평화협정을 하자는 구실로 불러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진후 민]]이 즉위했다. 기원전 679년 진무공은 익을 쳐서 진후 민을 몰아냈다. 일설에는 진후 민은 진무공에게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곡옥에게 병탄되었고, 진무공은 주희왕에게 뇌물을 바쳐 진후로 승진하게 되어 [[진문공]]이 [[춘추오패]]가 될 기반을 만든다. 진문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