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 '''[[진(춘추오패)|역대 진나라 군주]]''' || ||<:> 11대 [[진문후]](晉文侯) 희구(姬仇) [br] ||<:> → ||<:> 12대 [br] '''진소후(晉昭侯)''' 희백(姬伯) ||<:> → ||<:> 13대 [[진효후]](晉孝侯) 희평(姬平) || || '''[[성씨|성]]''' |||| [[희]](姬) || || '''[[본관|씨]]''' |||| 진(晉) || || '''[[휘]]''' |||| 백(伯) || || '''아버지''' |||| [[진문후]] 희구(姬仇) || || '''생몰기간''' ||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739년|| || '''재위기간''' || 음력 ||기원전 745년 ~ 기원전 739년 || [목차] == 개요 == [[진문후]]의 [[아들]]. [[진효후]]의 [[아버지]]. [[곡옥환숙]]의 [[조카]]. 진문후가 죽은 뒤. 그 뒤를 이어 진후가 되어 숙부인 희성사를 두려워해 [[곡옥]]의 [[백작]]에 봉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춘추오패)|진(晉)]]을 이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뒤에 나오겠지만 희성사의 세력이 강력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치세 == 진소후 원년([[기원전]] 745년) 자신의 숙부인 희성사의 세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 세력이 두려워 희성사를 곡옥의 백작에 봉하였다. 희성사는 후세 사람들로부터 [[곡옥환숙]]이라 불리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진과 곡옥을 이분하는 복선이 되었는데, 그 까닭은 곡옥환숙은 자신이 조카의 진나라를 먹어 진후가 될 야심을 품었기 때문이다.~~[[고이왕]], [[헌덕왕]], [[숙종(고려)|숙종]] ,[[수양대군]]이 생각나는 것은 절대로 [[기분탓]]이 아니다.~~[* 다만 이들과는 달리 나라의 주인이 되지는 못한다.] 진소후 6년인 기원전 739년 진의 대신 반보가 곡옥환숙과 내통하여, 진소후를 시해하고 진나라의 수도인 익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춘추오패)|진나라]]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일으켜 곡옥환숙을 익에서 내쫓았다. 진나라 사람들은 진소후의 아들인 희평을 진후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효후]]이다. 진효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반보를 주살했다. [[분류:춘추전국시대/군주]] 진소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