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 초한쟁패기/인물]] ||||||||||||<:><tablealign=center><#000000> '''[[초나라#s-1.3|{{{#ffffff 초의 역대 황제}}}]]''' || ||<width=30%> 초 건국 || {{{+1 ←}}} ||<width=30%> '''1대 의제 미심''' || {{{+1 →}}} ||<width=30%> 서초패왕 [[항우]] || [목차] '''楚義帝''' (?~기원전 206) == 개요 == || 반진전쟁의 상징적인 맹주 || 진나라 말-[[초한쟁패기]] 시기의 인물. 성은 미(芈). 씨는 웅(熊). 이름은 심(心)이다. 가계에 대해선 초 회왕의 후손이라는 설과 초나라 마지막 왕 부추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 생애 == 초나라 멸망 후, 진나라의 눈을 피해 양치기로 숨어 살다가 [[향량]], [[송의]]에 의해 초나라 회왕(懷王)으로 추대되었다. 즉위 후 강대한 세력인 향랑과 [[항우]]를 견제하기 위해 송의와 [[유방(한고조)|유방]]를 중용했으나 항우에 의해 각각 송의는 피살되었고 [[항우의 18제후왕 분봉]]때 항우에게 명목상 천자인 의제로 높여졌지만 유방은 한왕(漢王)으로 임명되어 벽지에 처밖힘에 따라 왕권을 강화시키기 어려웠다. 결국 항우에 의해 수도였던 팽성에서 쫓겨나 침성으로 쫓겨나는데 항우는 구강왕 [[영포]], 형산왕 [[오예]], 임강왕 [[공오]]를 시켜 강을 건너던 의제 일행을 습격했고 의제는 피살되기 전에 스스로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다행히 강 건너의 주민들이 이를 보고 밤중 몰래 시신들을 건져서 장사지냈다. == 기타 == 초의제 암살사건은 한고조 유방의 항우 토벌 명분이 되었다. [[조선시대]]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이 사람을 기리기 위해 썼다. 물론 이는 [[계유정난]]을 항우의 의제 암살에 비유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의병장인 [[정문부]]도 초의제를 기리기 위한 시를 썼다가 역모에 몰려 사망하기도 했다. 초의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