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686.jpg?width=150 崔夏永(일본식 이름: 香山夏永) 1908년 7월 18일 ~ 1978년 7월 29일 [[대한민국]]의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공무원]], [[정치인]]이다. 1908년 [[경기도]] [[이천시|이천군]]에서 태어났다. [[효고]] 현립 히메지 중학교와 마쓰에 고등학교 문과를,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했다.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총독부]]에서 내무국 사무관, 후생국 사무관, 사정국 사무관, 서기관 겸 총무국 조사국장, [[총독]]관방 조사과장, 조선중앙정보위원회 위원, 국민총력운동연락위원회 위원, 농상국 농상과장 등으로 있으면서 [[태평양 전쟁]] 관련 친일 반민족 행위를 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미군정청 농상국장 고문, 천일제약주식회사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6월 [[대한민국 헌법]] 기초위원회 위원에 선임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기도 이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이종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1년 심계원(현 [[감사원]]) 사무총국장, 1952년 심계원 차장을 차례로 역임했으며 1956년 10월부터 1960년 6월까지 제4대 심계원장을 역임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1963년)|민주공화당]] 후보로 [[경기도]] [[광주시|광주군]]-[[이천시|이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신하균(1918)|신하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동광운수주식회사 대표이사, 한국정밀기공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경기도 출신 인물]][[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최하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