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9/96/ZhuRong.jpg/200px-ZhuRong.jpg 祝融 [목차] == 개요 ==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맹획]]의 아내, [[대래동주]]의 누나, [[삼황오제]] [[축융(삼황오제)|축융]]의 후예. == 연의 == 축융은 비도의 명수로 비도를 잘 던져 백 번 던지면 백 번 다 겨눈 바를 맞혔다고 한다. 축융은 한창 촉군에게 발리던 남만군의 남자들에게 "사내가 되어 어찌 그렇게 슬기가 없냐"고 꾸짖으면서 한낱 여인이지만 당신을 위해 나가 싸우겠다면서 종족 맹장 수 백 명과 힘을 조금도 빼지 않은 동의 군사 5만을 이끌고 은갱동을 나와 촉군과 맞섰다. 촉군의 [[장억]]과 싸우다가 달아나는 척 하면서 비도로 왼팔을 맞춰 떨어뜨려서 사로잡거나 장억에 이어서 말이 밧줄에 걸려 넘어진 마충을 사로잡는 등의 촉군을 [[개발살]]내는 활약을 보여준다. 이 때 붙잡은 장억과 마충의 목을 곧바로 베라고 했지만, 맹획이 "제갈량은 날 다섯 번이나 놓아줬는데, 그랬다간 쫌생이 소리 듣겠어"라고 해서 살려둔다. 후에 [[조운]]과 [[위연]]의 격장지계에 걸려 [[마대]]가 밧줄을 쳐놓고 매복했다가 축융부인이 오면서 줄을 당겨 걸어 넘기자 말에 굴러 떨어져서 붙잡혔으며, 포로가 된 뒤에 풀려난다. ~~이 때문에 이후의 창작물에서는 묘하게 '조운 > (넘사벽) > 위연 > 축융 > 장억 = 마충'같은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솔직히 맹획보다 강해 보인다(…). 맹획과 함께 여기저기 떠돌면서 촉군과 대항했지만, 그 뒤로는 남편 따라 다닐 뿐 특별히 출전은 하지 않고 활약상이 없다. 병력이 없어서 그런지. 맹획과 함께 번번이 실패하고 일곱 번 용서받은 뒤로는 심복한다. 이 때 맹획은 항복의 뜻을 표하기 위해 '''모든 종족 무리와 함께 윗옷을 벗어 맨살을 드러냈다'''고 한다.[* 참고로 이는 고대 중국에서 사죄하는 예법으로, 다른 방법으로는 '등에 회초리/채찍을 가득 메고 가기' 등이 있다.] 물론 축융부인도 함께 항복했고, 이를 본 제갈공명은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껄껄 그렇게 할 것까진 아닌데 허허 껄껄껄~~ == 정사 == 정사에서 모티브로 추정되는 여성은 찌에우 부인이다.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에 [[사섭]] 사망 이후 베트남은 오나라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찌에우 부인([[조구#s-2|조구]])은 오빠를 따라 오나라에 대항하는 봉기에 합세하다가 비록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용맹하여 항쟁의 지도자로 추대되었다. 찌에우 부인(조구)은 직접 [[코끼리]]를 타고 전장을 누볐고 전술에 능해서 6개월이나 오나라의 군대를 격파했다. 오나라의 [[육윤]]은 조구가 젊은 처녀임을 이용하여 병사들에게 조구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조구가 이를 보고 부끄러워서 당황하자 육윤은 이 틈을 타서 전투에서 승리했고 패배하여 막다른 길까지 몰린 조구는 23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 미디어 믹스 == * [[축융/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축융,version=52)] [[분류:삼국지/가공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축융(삼국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