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소련군/원수)] http://image2.findagrave.com/photos/2005/208/11439281_112260771093.jpg?width=400 http://www.karelkurs.narod.ru/files/welcome.en.files/mereckov.gif?width=400 http://www.warheroes.ru/content/images/photodocs/1084/preview/7fde6a8fd96dbe5f3a78da83a5ecd245.jpg?width=400 --멍한 표정은 어느 사진이든지 한결같다-- [목차] == 개요 == ||||<tablealign=right>https://www.pnp.ru/upload/uploaded_image/2015-04-23/Marshal_2fc492.jpg?width=400 |||| ||<:>이름 ||<:> [[러시아어]]:Кирилл Афанасьевич Мерецков [br] [[영어]]: Kirill Afanasievich Meretskov [br] [[한국어]]: 키릴 아파나시예비치 메레츠코프 || ||<:>출생 ||<:> [[1897년]] [[6월 7일]], [[러시아 제국]] 라잔 || ||<:>사망 ||<:> [[1968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 || ||<:>복무 ||<:>[[러시아 제국]]군(1916-1918) [br] [[소련군]](1918-1964) || ||<:>최종 계급 ||<:>[[육군]] [[원수(계급)|원수]] || ||<:>주요 보직 ||<:>소련 [[국방장관]] || ||<:>주요 참전 ||<:>[[겨울전쟁]] [br] [[레닌그라드 공방전]] [br] [[만주 작전]] || ||<:>주요 서훈 ||<:>[[소비에트연방영웅]] 1회 [br] [[레닌훈장]] 7회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활약한 [[소련군]]의 육군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원수(계급)|원수]]. 소련이 [[일본 제국]]에 [[선전포고]]를 한 후에는 극동군을 이끌고 참전하여 [[만주 작전]]에서 일본 [[관동군]]을 격파하고 [[한반도]] 북부에도 진주했던 적이 있다. == 생애 == === 성장 === 메레츠코프는 [[모스크바]] 남동쪽 라잔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16년 6월에 [[러시아 제국]]군에 자원입대하여 정비병으로 복무했으나, 1917년 8월에 [[볼셰비키]] 당원이 되었다. 이듬해인 1918년에 [[붉은 군대]]에 입대했고, 붉은 군대의 전신인 적위대에서 [[참모장]]이 되었다. 내전 중에 군사학교에 입학했으나 여러 차례 전투에 투입되어 졸업하는 데 시간이 걸려 1921년에 졸업했다. 1924년부터 1931년까지 모스크바 군관구에서 근무했으며,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1년여 간 군사 고문관으로 공화파를 지원했다. 1937년에 귀국한 메레츠코프는 1939년에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군관구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소련군은 [[대숙청]]의 홍역을 치렀지만, 메레츠코프는 별 탈 없이 넘겼다. === [[겨울전쟁]] === 소련은 그 해 12월에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를 사령관으로 하여 핀란드와 [[겨울전쟁]]을 시작했다. 핀란드의 접경 지대인 [[레닌그라드]] 군관구를 맡고 있던 메레츠코프도 이 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전쟁은 12월 중순에 이르러 모티 전술과 같은 효율적인 전투 방식을 개발한 [[핀란드군]]에게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손실에 대한 비난에서 야전군 지휘관인 메레츠코프도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 책임은 메레츠코프의 탓으로만 할 수도 없는 문제였다. 이 무렵 소련군은 전략적 지침도 존재했고, 당시 서방과 다른 군사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지만, 대숙청의 여파로 경험 부족의 장군 및 장교들이 지휘하는 사단급 및 그 이하 제대의 전술 수행 능력과 전투 능력 자체에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오시프 스탈린]]은 메레츠코프를 다시 7군 사령관에 임명하여 다시 한 번 전쟁을 지휘하도록 했다. [[세묜 티모셴코]]가 보로실로프를 대신하여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1940년 2월, 소련군은 재차 공세를 가했고, 이번에는 크게 승리했다. 메레츠코프도 [[소비에트연방영웅]] 칭호를 수여받으며 총참모장이 되었고, 국방위원회 위원직에도 올랐다. === [[독소전쟁]] ===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메레츠코프는 소련군 최고사령부인 [[스타프카]](STAVKA)의 구성원이 되었고 [[나치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노력을 계속 경주했다. 그러나 1941년 9월 [[NKVD]] 수장인 ~~딸랑이~~[[라브렌티 베리야]]가 그를 반역자로 체포했다. 체포된 메레츠코프는 10월까지 구금되었고,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하지만, 유능한 장군이 부족했던 스탈린은 그를 석방시켰고, 12월에 북쪽의 볼호프(Volkhov) 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944년 2월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볼호프 전선군 사령관으로서 메레츠코프는 북쪽 방면의 독일군 북부집단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레닌그라드가 완전히 포위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레닌그라드는 라도가 호수를 통해 소량의 보급품을 어느 정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메레츠코프와 볼호프 전선군은 레오니트 고보로프가 지휘하는 레닌그라드 전선군과 협동으로 독일군의 포위망을 깨고자 노력했고, 마침내 1943년 2월, 두 전선군은 시냐비노(Siniavino)에서 서로 연결되었다. 이후 두 전선군은 독일군을 서쪽으로 몰아내고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깨기 위한 일련의 공세를 개시했다. 이 시도들은 1944년 2월에 마무리되었다. 1944년 2월, 메레츠코프는 볼호프 전선군을 떠나 더 북쪽의 카렐리야 전선군으로 부임했다. 여기서는 그는 핀란드를 공격하려는 고보로프의 레닌그라드 전선군을 지원했다. 10월, 메레츠코프는 핀란드 북부를 통해 노르웨이로 철수하는 독일군을 추격했다. 10월, 메레츠코프는 핀란드 북부의 [[페차모]]를 쓸어 버리라는 명령을 받아 그가 가진 극지전에 관한 지식을 활용하여 페차모-키르케네스 작전(Petsamo-Kirkenes Operation)을 실시했다. 이 작전으로 독일군은 완전히 밀려났으며, 이 공로로 메레츠코프는 소련 [[원수(계급)|원수]]로 최종 진급했다. 소련은 [[노르웨이]]까지 독일군을 추격할 심산이었으나, 전후 처리 문제에서 소련이 노르웨이를 장악하는 것을 영국이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탈린은 노르웨이-핀란드 국경에서 진격을 중지시켰다. 이후 종전 때까지 이 전선은 큰 전투 없이 지나갔다. 그러나 메레츠코프에게는 다른 임무가 주어졌다. 메레츠코프의 다음 부임지는 [[만주]]였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메레츠코프는 제1극동전선군을 이끌고 [[만주 작전]]에 참가해 손쉽게 [[관동군]]을 격파했다. 이 무렵의 소련군은 독일과 4년 간 격전을 치르면서 단련된 데다가 걸작 [[T-34-85]]로 대표되는 기갑 전력 또한 --[[97식 전차]] 따위나 굴리던-- [[일본군]]을 충분히 압도했다. 메레츠코프는 만주를 거쳐 [[한반도]] 북부에도 진주했다. [[평양]]에 입성한 [[이반 치스차코프]] 지휘의 25군도 메레츠코프의 휘하였다. 이후 메레츠코프는 소련군이 철수할 때까지 극동군관구 사령관으로 재임하며 치스차코프를 북조선 군정사령관에 임명해 한반도 북부의 공산화 작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 종전 후 및 사후 === 전쟁 후 메레츠코프는 극동군관구 사령관직을 수행한 후 여러 군관계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68년 12월 30일에 사망했다. 그의 시체는 화장되어 [[크렘린 벽 묘지]]에 묻혔다. == 평가 == 메레츠코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장 유능한 장군들 중 한 명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하며, 소련 국가 영웅 호칭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러시아군 전차학교는 현재 그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고, 모스크바, 노브고로드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존재한다. == 매체 ==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알란과 헤르베르트에게 차와 옷을 강탈당한다. 이후 어린 [[김정일]]을 속이고 [[김일성]]에게 간 알란과 헤르베르트를 쫓아 북한으로 가서 끝내 따라잡는다. 처음에 메레츠코프는 흥분해 날뛰었지만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마오쩌둥]]은 예전에 알란이 자신의 부인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듣고 반가워했고, 김일성은 알란이 자신을 헤칠 의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와 화해하고, 메레츠코프도 알란 역시 [[라브렌티 베리야]]에게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는 화해한다.[* 다만 거기 있던 김정일은 어린 나이에 받은 충격이 컸는지 울부짖으며 알란과 해르베르트를 죽이라 고래고래 소리치다가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다(...).] 그 후 마오쩌둥과 김일성, 그리고 메레츠코프는 알란과 헤르베르트를 살기 좋은 장소로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발리 섬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자 알란과 헤르베르트는 ~~ 은혜 갚은 '어릿광대 기생충'~~[* 이 소설에서 쑹메이링이 마오에게 붙인 별명(...).]마오쩌둥에게서 돈을 받아 그 곳으로 간다. [[분류:소련/인물]][[분류:군인]][[분류:제1차 세계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대전/군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소련군/원수 (원본 보기) 키릴 메레츠코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