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 align=center><#dcdcdc><:>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6/67/Flagge_Preu%C3%9Fen_-_Provinz_Posen.svg/125px-Flagge_Preu%C3%9Fen_-_Provinz_Posen.svg.png?height=130||<#dcdcdc><:>https://s-media-cache-ak0.pinimg.com/236x/25/63/7c/25637c51c8e898e6afb52daa1e6f1151.jpg?wid=200&height=200 || || 주기(州旗) || 주장(州章)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0/German_Empire_-_Prussia_-_Posen_(1871).svg/250px-German_Empire_-_Prussia_-_Posen_(1871).svg.png || |||| 포젠의 위치 || || 국가 || [[독일]] -> [[폴란드]] || || 주도(州都) || 포젠 || [목차] == 개요 == Posen.[* 독일어에서는 지역 이름과 주도(州都) 이름을 모두 Posen이라 했지만, 폴란드어로는 도시는 포즈난(Poznań), 지역은 비엘코폴스카(Wielkopolska, 大폴란드)라고 구분해 부른다.] 1918년까지 독일의 동부 지방에 자리잡은 지역. [[폴란드 분할]] 이전 중세 시기에는 [[폴란드]]의 영토였기 때문에 독일과 폴란드 두 국가의 역사가 겹치는 지역이며, 이에 따른 양국간의 분쟁도 거세서 [[2차대전]] 발발 원인의 하나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폴란드에 영구 귀속된 상태. == 역사 == 9~10세기 무렵 오늘날 폴란드인의 조상뻘인 슬라브족들이 이 곳에 터전을 잡으면서 포젠의 역사가 시작된다. 12세기 이후로 [[동방식민운동]]에 의해 많은 독일인들이 이 지역으로 건너오기도 했지만, 주민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여전히 폴란드인이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초창기였던 16세기가 이 지역의 전성기로, 이 일대에 자리잡은 도시들이 [[한자동맹]]에 가입했으며 리투아니아와 서유럽을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했다는 점을 이용한 중개무역[* 특히나 모직 무역이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을 통해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로 잇다른 전쟁, 특히나 [[30년전쟁]]과 [[대북방전쟁]]으로 인하여 이 지역의 운명은 폴란드와 궤를 같이 하여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1772년과 1793년의 [[폴란드 분할]]을 통하여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들어갔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는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제대로 깨지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바르샤바 공국]]의 영토로 편입되기도 했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빈 체제]]가 수립되면서 원상태로 회귀. 초창기 프로이센은 이 일대에 [[포젠 대공국]]을 세워 상당한 자치를 허용했지만 1830년 폴란드인들이 대대적으로 일으킨 독립 투쟁에 놀라 대공국을 폐하고 탄압 모드로 돌변한다. 하지만 고집 하나로는 유럽 최강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폴란드인들은 탄압에 굴하지 않고 [[1848년]] [[1848년 혁명|3월 혁명]]으로 프로이센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다시 독립투쟁을 감행하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마저 약속한 만큼 이번에는 정말 독립이 이루어지나 했는데 [[아시발꿈]]. [[프랑크푸르트]]에서 소집된 독일 의회는 폴란드의 자치 요구를 상큼하게 무시하고는 포젠을 [[독일 연방]]에 편입시켜 버렸다.[* 사실 프랑크푸르트 의회 안에서 '포젠을 둘로 갈라서 독일인이 많이 사는 곳은 독일 연방에 포함시키고 폴란드인이 많이 사는 곳은 자치권을 준 다음 독일 연방에서 빼버리자'라는 의견이 꽤 나왔지만 격렬한 논쟁 끝에 결국 무산되었다.] 그리고 1871년 [[독일 제국]]이 수립된 이후로 프로이센 당국은 더더욱 폴란드인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에 대해서는 폴란드와 독일 중에 누가 [[선빵]]을 날린건지에 대해 좀 말이 많은데 왜냐하면 몇몇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보불전쟁]]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프랑스를 응원했기 때문.][* [[오토 폰 비스마르크|비스마르크]]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능한대로 폴란드인들을 줘패라. 물론 불쌍은 하지만 쟤네를 안조지면 우리가 당한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흔히 [[문화투쟁]](Kulturkampf)이라고 잘 알려진 비스마르크의 [[가톨릭]] 탄압 역시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민족적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던 가톨릭을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으며, 그 외에도 독일인 이주 장려, 산업성장 방해 등을 통해 폴란드인들을 독일인에게 영구적으로 예속시키고자 시도했다. 1차대전 중 포젠은 동프러시아랑 함꼐 러시아가 차지하려는 목표지가 되었다. 그러나 1918년 [[1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민족자결주의]]에 의거하여 이 지역은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로 넘어갔다. 모든 지역이 다 넘어간 건 아니고 포젠 서부의 독일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했던 몇몇 국소적인 구역은 [[바이마르 공화국]]에 존속했다. === 후신(?) :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 ===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해 바이마르 공화국에 잔류했던 포젠 주 일부 지역들(슈나이더뮐 시, 네체크라이스, 봄스트, 프라우슈타트, 슈베린, 메세리츠)은 마찬가지로 독일에 잔류한 [[서프로이센]] 지역 일부를 합쳐, 1922년 7월 1일에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Grenzmark Posen-Westpreußen)'가 출범한다. 주청 소재지는 슈나이더뮐(Schneidemüh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3/Grenzmark_PW.png/352px-Grenzmark_PW.png 포젠-서프로이센 변경주의 영역. 남쪽 덩어리 전부, 그리고 북쪽 덩어리 가운데 남쪽 끝 네체크라이스와 주도 슈나이더뮐이 구 포젠 주였던 지역이다. 그러나 나치가 집권하면서 1938년, 이 변경주를 포메른과 [[브란덴부르크]], 슐레지엔에 분할 합병시켜버린다. ===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 2차대전 시기 잠깐 독일의 영토로 편입되기도 하지만 독일의 패전 이후 [[오데르-나이세 선]]에 근거하여 이 일대는 다시 폴란드에게 돌아오고, 거기다 분쟁의 불씨를 없애기 위해 소련과 폴란드가 포젠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모두 서부의 독일 본토로 추방시킨데다가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헬무트 콜 독일 총리가 이 일대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영구히 포기할 것을 약속하면서 오늘날에는 완전히 폴란드의 영토로 귀속된 상황. [[분류:독일의 역사]][[분류:폴란드의 역사]][[분류:프로이센]] 포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