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관련 항목 : [[동음이의어·다의어/ㅎ]] [목차] == [[수학]]의 해석학(解析學, Mathematical Analysis) == * [[수학 관련 정보]] === 개요 === ~~'''[[극한]]직업'''~~ ~~[[수학과]]의 간판 과목~~ [[수학]]의 한 분야로, 기본적인 정의는 [[함수]]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물론 모든 함수를 다 연구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실수]]와 [[복소수]] 위에서의 함수들과 연속성 등을 탐구하게 된다. 연속성을 탐구하는 다른 학문인 [[위상수학]]과의 차이는, 연속성을 '수량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자들에게 해석학은 [[노가다|끝없는 계산]]으로 악명높다는 평을 받는다. 해석학의 시작은 [[미적분학]]의 엄밀한 수학적 기초를 세우면서 출발했다. 미적분학이 태동할 17~18세기의 수학은 직관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당연했고, 정의는 모두 빠져 있었다. 마치 고등학교 과정 미적분에서 극한의 정의, 중간값정리/최대최소 정리에 대한 고찰을 모두 생략한 것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물론 수학이 발전하면서 이 빈틈에서 자연스레 모순이 생겨났고, 극한에 대한 엄밀한 정의가 요구되었다. 애매한 무한소 개념을 대체하는 코시(Cauchy)의 ~~악명높은~~ 엡실론-델타 정의를 시작으로[* 대1 미적분학 거의 첫 시간에 배우는데, [[자연언어]]를 수학 기호로 표현하면 어디까지 난해해질 수 있는지를 제대로 체험하게 된다.~~[[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큰 엄밀함에는 큰 난해함이 따르는 법이다]]~~ 이걸 한 번에 이해하면 천상 수학과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이 노력이 근대까지 이어진 것이 초창기의 해석학이다. 현대의 해석학은 [[미적분학]]과는 연관성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게 발전하였다. 함수해석학, 조화해석학 등의 많은 세부분야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정수론]]이나 [[기하학]]을 포함한 수학의 전 분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확률론]]과 [[미분방정식]] 등 많은 분야의 기초가 되는 만큼,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수학을 조금이라도 사용하게 된다면 한번쯤 접하게 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 대학의 학과 과목으로서 해석학 === [[극한#s-3.2|'''엡실론(ε)'''과 '''델타(δ)'''의]] [[천국]][* 하지만 다른 의미로 천국인 것이, 이걸 버리고 전개하는 해석학은 '''더 끔찍한 지옥을 맛보게 된다.'''][* 논리 자체와는 큰 연관이 없는 부연이지만, 한국어 표기 과정에서 엡실론('''e'''psilon)을 입실론(υ, '''u'''psilon)과 혼동하는 이들이 꽤 많으니 역서를 읽거나 한국어로 주절거릴 경우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 주로 배우는 내용(김김계 기준) * 기초적인 [[집합]]론: 비단 해석학 뿐만 아니라 수학 전반에 걸쳐 집합론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어야 논리 전개가 가능하다. * [[실수]]의 성질(체 공리, 순서 공리, 완비성 공리), [[극한#s-3.2|극한의 엄밀한 정의]], 상극한과 하극한, 코시수열 * 좌표공간의 [[위상수학|위상적 성질]]: 열린 집합, 닫힌 집합, 극한점(집적점), 고립점, 볼차노-바이어슈트라스 정리, 닫힘(폐포), [[컴팩트성|옹골집합(컴팩트집합)]], 연결집합 * 함수의 연속: 연속성의 엄밀한 정의, 최대최소 정리와 사이값 정리(중간값 정리)의 증명, 고른연속(균등연속, 평등연속)의 정의와 응용 * 함수의 미분: 미분의 정의와 미분가능성, 코시의 평균값정리와 [[로피탈의 정리]], 테일러 전개 * 리만-스틸체스 적분: 리만적분의 정의와 적분가능함수, 미적분의 기본정리, 함수의 변동, 리만-스틸체스 적분의 정의와 성질 * 함수열: 함수열의 정의, 점별수렴과 고른수렴(균등수렴), 극한의 순서를 바꿀 조건, 무한급수가 고르게 수렴할 조건 * 함수공간: 연속함수공간과 동등연속의 정의, 아르젤라-아스콜리 정리, 바나흐공간의 정의, 수열공간, 특이적분과 특이적분가능함수공간 * 적분으로 정의된 함수: 다변수함수의 연속성과 미분, 감마함수, 적분변환([[라플라스 변환]], 푸리에 변환, 합성곱) * [[푸리에 해석]]: 푸리에 급수와 그 수렴성, 미분과 적분 * 기초 실해석: 측도론 맛보기, 르벡적분 및 수렴정리 해석학을 듣고 이 문서를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해석학 책 저자에 대한 욕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김김계 Rudin Marsden 개객기~~ 약간 과장하면, "고등학교때 미적분학을 열심히 했더라도 극한의 새로운 정의 앞에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이 그저 가소롭게 보이게 만드는 학문이다. 농담으로, 해석학 수업시간에는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잘 아는 학생은 질문할 것이 없을 정도로 잘 안다고 한다. 반대로 모르는 학생은 뭘 질문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알 수 없는 학문이라고 한다. 고딩 때 배워 아무 생각없이 사용했던 대부분의 미적분 관련 공식들을 '''증명'''하게 된다.[* 그러니까 반대로 고등학교에서 연속성에 관한 많은 성질들에 대한 증명들이 죄다 생략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예로 중간값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위에 소개된 옹골집합/연결집합을 비롯한 많은 개념과 성질이 필요하다. 대학생들도 쩔쩔매는 걸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이 무슨 수로 하겠는가...] 주로 함수의 연속성과 최대/최소의 존재성[* 여기까지는 위상수학에서 metric space를 다루는 부분과 공통이다.], 미분과 적분의 해석학적 정의, 다변수 함수의 성질에 대한 내용들이 소개되며, 나오는 정의 대부분이 처음 접하는 내용이거나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인데다가 증명 과정도 이해하기가 까다롭다. 그도 그럴 것이, 해석학에서는 미적분학에서 배운 것들을 증명하기 위한 개념을 도입하는데, 연속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컴팩트(compact)[* 컴팩트 디스크 할때 나오는 그 컴팩트이다. 작은데 용량은 꽉 찬 디스크를 컴팩트 디스크라 부르듯, 작고 꽉찬 집합. 간단한 예로, 유클리드 공간 <math>R^{n}</math> 의 부분집합이 유계이고 닫혀 있으면 컴팩트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무한 차원 벡터공간에서는 역만 성립한다. 대한수학회에서는 '옹골 집합'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일부 서적에서도 그런 용어를 쓰지만(Rudin 3판 번역본, 김김계 등), 일반 학생들은 [[그거 먹는 건가요]] 급으로 인지도가 낮은지라 그냥 컴팩트라고 한다.]라는 개념을 배우면 머리가 안드로메다로 가는게 부지기수. 만약 컴팩트를 한큐에 이해할 수 있다면 꼭 해석학/위상수학 계열의 수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컴팩트 집합을 비유하자면, 어떤 도형을 여러 개의 도장(열린 집합들)으로 찍어서 덮는데(꼭 해당 도형과 같을 필요는 없다.), 이러한 도장들 중에서 유한 개만을 뽑아내서 원래의 도형을 덮을 수 있을까? 덮지 못하는 도장들이 있다면, 해당 집합은 컴팩트하지 않다. 즉, 해당 도형을 덮을 수 있는 '''모든''' 도장들에 대해 그 안에서 유한 개만 뽑아서 원하는 도형을 덮을 수 있어야 컴팩트이다. 그리고 '유클리드 공간에서는 유계이고 닫힌 집합은 컴팩트하다'는 하이네-보렐의 정리가 있다. 사실 정리 자체가 어렵다기 보다 그 정리의 응용이 더 어렵다.[* compact라는 본래 [[위상수학]](topology)에서 쓰는 개념이다. 닫힌 집합을 일반화하기 위해서 여러 시도를 하다가 나온 결과물 중 하나가 compact이므로 이 개념은 '''굉장히 직관적이지 않고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 더 공부를 해보기 전에는 알 수도 없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위상수학 역시 학생들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과목 중 하나다(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쓰이는 별명이 '또모르지'다(...)). 그나마 해석학의 compact는 학기가 끝날즈음이면 모든 수강생이 그렇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위상수학에서 다뤄지는 일반화된 compactness의 개념과 여러종류의 서로 equivalent하지 않은 compactness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참고로, 3년제인 유럽의 대학은 미적분학이라는게 없다. 입학하면 바로 해석학으로 시작하며, 덕분에 수학과 첫학기 낙제율은 거의 항상 80% 가 넘어간다고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해석학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수학 세부분야는 아니다. 오히려 해석학은 짬이 조금 차면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되며, 초반에 어느 선까지만 '''강렬하게''' 머리를 불살라주면 그 이후부터는 꽤 편해지는 과목이다. 사실, 수학과 고학년들은 해석학보다 대수학을 더 어렵게 생각한다.[* 어려운 해석문제는 증명과정에서 계산이 매우 복잡하거나 술술 나가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은 반면, 대수는 그런게 없다. 제대로 된 길을 보지 못하면 아예 증명을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며, 이것때문에 알고보면 간단한 증명문제를 며칠 이상 심하면 몇달단위로 고민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즉, 어느순간 반짝 하고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 굇수고 뭐고 운나쁘면 허우적대는 경우가 많다.] 해석학은 ~~짬~~노력하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는 평이 많다. 물론 개인 편차마다 다르다. 맛배기로 해석학의 안드로메다스러움을 보여주자면, 실수를 유리수 코시수열 modulo(극한값이 같다)로 정의한다. 간단히 말하면, modulo는 사칙연산의 나머지를 추상화시킨것인데, 모든 유리수 코시수열을 수렴값이 같다라는 관계로 나누어 그 나머지를 이루는 잉여류(Coset)를 각각의 실수로 정의한것이라 보면 된다. 즉, 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0으로 수렴하는 모든 유리수 코시수열의 집합을 0, 1로 수렴하는 모든 유리수 코시수열의 집합을 1, 이런식으로 정의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참고로, 이것은 칸토어의 방법론이고, 이보다 먼저 데데킨트가 데데킨트 절단(Dedekind's cut)이라는 방법으로 유리수에서 실수를 구성했는데, 역사적인 이유로 데데킨트의 방법론을 가르치는 경우가 더 많다. 이후 배우게 되는 [[수치해석]]은 이름도 비슷하고 해석학과 연관도 있긴 하나 내용은 꽤 다르다. 해석학은 미적분학을 좀더 높은 단계에서 확장 시킨 것이다. 미적분학은 실수 함수 상에서 함수의 기울기를 구하거나 함수 형태 면적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확장은 함수의 정의구역이 되는 실수 자체를 극단적으로 추상화 시킨 집합 차원에서 정의된 함수에 대해서도 실수 미적분과 같은 개념을 확장한다. 두 번째에는 적분 값 그 자체를 실수같은 성질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럼 먼저 실수라고 할만한 것이 어떤 성질인지를 파악해야 일반적인 집합중에서 실수 같도록 제한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분야를 일반위상수학(General Topology)라 한다. 위상수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구멍이니 도넛이니 매듭이니 이런 것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고 집합의 원소들이 이루는 공간을 포함관계의 측면에서 일반적인 성질을 다룬다. 일반위상수학의 최종 목표는 실수와 같은 성질이 있는 공간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공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일반위상수학상의 논리 전개는 집합을 대상으로 하는 논리적 판단이 대부분 이므로 집합론에 관한 이해가 필수이다. 논리적 판단이란 고딩 수학 차원에서 엄밀하지 않게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무한이라는 개념을 객관적으로 논리 전개하는 것을 포함하므로 이 집합론은 고딩의 집합론이 아닌 '무한'을 포함한 집합론이다. 근데 이 집합론이라는 것이 숙달된 집합 연산 계산이거나 벤다이어그램으로는 절대 설명 안되는 것들을 다루므로 쉽지 않다. (고딩의 집합론 - 벤다이어그램이나 집합연산 같은 것은 사실 훼이크였고 이 무한의 집합론이 집합론을 만든 진짜 이유였다.) 실수가 아닌 굳이 집합상에서 정의되는 함수에 대해서 미적분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 쉽게 말해서 실수가 아닌 2차원, 3차원 n차원의 유클리드 공간에서 미적분을 논할 때 이미 면적소, 부피소가 그러한 집합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것 보다 좀더 일반적인 예는 확률론이다. 확률이라는 것이 확률이 부여되는 사건집합(Event Set)에 부여되는 실수 함수이고 기대값 같은 것은 그에 대한 적분이므로 기대값 이라는 자체가 사건집합상에 정의되는 실수 함수에 대한 적분이 된다. 따라서 확률론은 수학에서는 기본적으로 해석학 내에서 속한다. (다만 해석학으로 이해되기 전 부터 써온 용어들이 있기에 동일한 개념을 각 분에야서 다르게 부른다. 예컨대 기대값(Expectation)은 적분(Integration)). 적분이라는 것이 [[구간]]내 함수값*구간길이 를 다 더한 것이므로 집합에 대해서 적분을 하려면 구간 길이 라는 개념을 따져야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지만 집합에서 구간 길이를 따지는 것은 측도론이라고 한다. 예컨대 일반적인 구간의 측도는 양 끝 점의 차이로 구할 수 있다. 단일 실수의 길이는 0이다. 이것은 측도의 정의를 사용해서 증명할 수 있다. 점이 유한 개가 아닌 무한 개라도 길이가 0일 수 있는데, 유리수의 집합이 대표적인 예이다. 무리수 집합은 실수와 길이가 같다. 무리수는 셀 수 없는 무한 집합이고 유리수는 셀 수 있는(유한이라는 것이 아니라 자연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되는 집합이다.) 이렇게 보면 셀 수 없는 무한집합은 길이가 항상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칸토르집합같이 셀 수 없는(그 크기가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이 안되는 개념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한개념이 있는 집합론을 이해해야 한다) 무한 집합이지만 길이가 0 인 특별한 케이스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개념이 측도론이다. 그냥 구간 길이 정도로 파악하면 되는 측도론을 굳이 배우는 중요한 이유는 어찌 보면 실수의 모든 부분 집합이 측도 값을 가지겠네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즉 측도의 가장 실생활에 밀접한 형태인 '길이'라는 개념을 볼 때 실수의 모든 부분집합 중에는 '길이'를 부여할 수 없는 부분집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수의 부분 집합 중에서 측도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집합 체계를 엄밀하게 정의해야 하고 적분이라는 것을 정의하려면 그 측정가능한 집합(measurable set)상에서 정의된 함수에 국한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당연히 측정가능한 집합이란 무엇이며 측도라는 것이 무엇이며 여러가지 예시에 대한 논리적 판단의 경험을 통해 이를 구별해야 한다. 이를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측도론을 공부를 했으면 '적분이란 구간내 함수값*구간길이 를 모두 더한 것' 이란 개념에서 구간의 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게 된다. 이제 구간내 함수값 을 따져보자. 고딩수학에서는 구간내 함수값을 왼쪽 끝, 오른쪽 끝, 중앙 중에서 선택하는데, 해석학에서는 이 조건을 좀더 느슨하게 풀 수 있다. 즉, 구간의 어느 함수값을 잡아도 구간길이가 무한소로 가면 특정한 극한 값으로 수렴하므로 이런 느슨한 일반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한 적분의 정의를 리만적분이라고 한다.[* 다만 일반적인 해석학 책에서는 리만적분->측도론/르벡적분 순으로 단원을 나열한다.] 이 리만적분에는 문제가 있는데, [[연속함수]]에서는 이런 예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함수가 유리수일 때에는 0, 무리수 일때에는 1을 가지는 특이한 경우에는 구간을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서 다른 값으로 수렴하므로 리만적분값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 함수는 수학자 디리끌레(Peter Gustav Lejeune Dirichlet)의 이름을 따 디리끌레 함수라고 부른다. ~~또한 몇몇 학생들을 역사의 천재로 보는 엄청 어려운 교재들은 Lebesgue Measure의 설명하나도 없이 적분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학점을 위해서라면 교수님이 설명해 주지 않는 이상 건너뛰자. 괜히 이거 가지고 머리굴리다 시험공부 하나도 안하지 말고... 여담이지만 르벡 적분을 하면 실수 체에서 유리수 체는 Lesbegue measure가 0이므로 0이 나온다.~~] 또한 적분값의 수열이 수렴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실수는 코시 수열의 수렴값들로 정의되므로, 만약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길이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수학적 정의가 수열의 극한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인데, 만약 수열이 수렴하지 않으면 수학적 존재의 정의를 수열로 할 수 없게 된다. 어떤 확률의 기대값은 적분값이지만 적분값이 수렴을 보장할 수 없다면 확률론에서 기대값의 수열의 극한으로 뭔가를 정의할 수 없게 되므로 이론적 모형으로서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물리의 양자역학은 모든 측정값은 확률의 기대값으로 계산되므로 리만적분의 약점은 양자역학의 이론적 도구로서의 결함을 의미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르베그 적분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 방법을 취한다. 즉 원래의 리만 적분이 '구간내 함수값*구간 길이 를 모두 더한 것' 이라는 접근 방법에서 '함수값과 그 함수값을 갖는 집합의 측도 들의 합' 으로 접근한다. 예컨대 f(x)를 적분할 때 f(x)를 계단으로 근사 한다음 각 계단 높이 예컨대 f(x)=0.3 이 되는 x의 집합(이 집합은 f(x)가 sin(x)같은 들쭉날쭉한 함수라면 리만적분같은 소구간이 아니라 실수상에 퍼져있는 집합이 된다.) 측도가 2 라면 0.3*2 를 취한다. 이 과정을 f(x)의 모든 계단 높이에 대해서 구한 값을 다 더하면 적분이 되는 것이다. [[매끄러움|매끄러운]] 함수는 이런 근사 계단을 통해 극한으로 정의를 하고, 디리끌레 함수처럼 --미친년 널뛰기 하는-- 어디서도 불연속인 함수도 앞서 정의한 함수들의 극한으로 정의가 되니 애초에 문제가 되었던 디리끌레 함수처럼 리만적분이 불가능한 적분이라던지 적분값의 극한 문제들이 해결된다. 또한 어떤 함수 f가 어떤 구간에서 리만적분가능할 필요충분조건은 f가 그 구간의 거의 모든 점에서(almost everywhere) 연속[* 즉, 불연속점의 르벡 측도가 0이라는 뜻.]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런 엄밀한 과정을 통해서 르베그 적분이 가능한 객관적 기준이 분명 존재한다. (무턱대고 모든 함수가 다 르베그 적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르베그 적분이 되면 적분 상에서 극한 표현 같은 것이 보장된다. 이는 물리학이나 공학에서 요구하는 타당한 이론적 도구임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물리학이나 공학 책에 L2공간 이라고 흔히 보는 것이 거기서 함수를 논하려면 제곱한 것이 르베그 적분이 되는가 를 보장한다는 징표임을 뜻한다. (제곱을 따지는 이유는 물리학에서 불확실성을 나타내려고 분산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고 공학에서는 power가 대부분 제곱차원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기존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개념의 르베그 적분을 도입하였지만 실용적으로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르베그 적분이나 리만적분이나 방법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해석학 책의 다음 부분은 리만적분과 대부분은 같다는 이론적인 전개이다.(이 때문에 물리학과에서는 그냥 르베그 적분을 몰라도 공부하는데에는 지장은 없다. 어짜피 디리끌레 같은 특이한 함수는 물리학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다중적분의 적분 순서가 바뀌는 문제는 문제가 되는데, 르베그 적분에서 적분 순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다. 하지만 그 조건이라는 것도 아주 아주 특이한 조건이므로 (일반위상적으로 아주 특이한 공간이다. 공학이나 물리학에서는 거의 볼 기회가 없을 것이다.) 물리학과는 그냥 생각없이 적분 순서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수학전공자와 물리전공자가 여기서 차이가 나는데 수학전공에서는 적분 순서를 바꿀 수 있는가는 한번 따지고 가야 한다.[* 적분은 본질적으로 극한이고, 극한이란 건 특별한 조건이 붙어있지 않는 한 순서를 바꾸었을 때의 결과가 원래의 결과와 같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물리학과에서 다루는 평이한 공간이라면 수학 전공자들도 그렇게까지는 따지지 않겠지만, 아무런 단서가 없다면 수학 전공자는 적분순서 변경이 가능한지 논리적으로 따지고 간다. 그런 다음 해석학에서는 함수공간을 다룬다. 르베그 적분 가능한 집합들을 마치 실수공간처럼 접근한다. 그 이유는 증명할 때에 테크닉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분방정식의 해가 존재하는가 하는 증명을 할 때에 미분방정식의 해는 실수가 아니라 함수인데 마치 실수의 근을 수치적으로 찾을 때 해에 가까워지는 알고리즘을 설정해 그 근으로 해를 찾듯이 미분방정식의 해가 되는 함수를 마치 알고리즘에 따른 수열로 설정하고 그 수열의 극한을 미분방정식의 해로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수의 경우는 알고리즘으로 찾아가는 수열은 반드시 수렴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실수가 이미 코시 수열은 수렴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함수공간도 이런 성질을 갖는 것이 확인 되면 그 함수공간 내의 함수 열이 코시수열이다는 것(함수간의 거리를 따지고 그 거리에 의해서 코시수열을 정의)만 밝혀도 극한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즉 미분방정식의 해는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증명에 테크닉으로 이용될 수 있으므로 함수공간의 이해는 해석학에서 다루는 주제가 된다. 함수의 정의를 측정가능한 집합상에서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미분 개념을 정의할 수 있다. 단 함수에서 정의된 집합이면 기울기 개념 같은 것은 없어지고 Radon-Nikodym 도함수라는 개념이 생긴다. 이것은 미분과는 일견 전혀 닯은점은 없어 보이지만 집합이 실수 집합일 경우에는 이것은 도함수의 개념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좀더 넓은 개념으로 사용되는데, 예컨대 확률론에선는 조건부 기대값, 통계에서는 확률밀도함수 개념이 바로 이 Radon-Nikodym 도함수 개념이다. 함수의 정의가 집합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훨씬 다양한 환경에서 적분 이론을 사용할 수 있다. 2차원, 3차원은 말할 것도 없고 복소수 공간 뿐 아니라 꼬이고 꼬인 집합 등등, 기본 조건만 충족되면 많은 다양한 공간에서 적분 이론을 전개할 수 있게 하므로 특수한 공학적 문제에 이론적인 도구를 제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좀 느슨한 조건의 함수 (디랙 델타 함수) 같은 것에대해서도 엄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방법을 배우거나 푸리에 해석 같은 것을 앞서 배운 이론적 틀로 재구성해서 배운다. ==== 수학과 학생의 경우 ==== 주로 학부 2학년 때 [[선형대수학]]과 함께 수강하며, 처음으로 배우는 '''진짜 수학'''이라고들 한다. 물론 [[선형대수학]]도 있지만, 선형대수는 상대적으로 친숙(?)한 벡터와 행렬이 나오므로 쉽게들 느낀다. 물론, 이건 가르치는 사람에 따라 다른데, 선형대수학을 들으러 오는 다른 전공 학생들을 의식해(혹은 교수 본인이 응용수학 전공이라거나) 3차원 이하의 유클리드 공간으로 한정하여 벡터와 함수등을 이용해 직관적으로 매우 쉽게 가르치는 교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수학과라면 선형대수학을 순수하게 수학적으로 접근하여 행렬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수적으로 접근하여 선형함수를 이용하여 가르치고 그와중에 카테고리, Functor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까지 이용하여 넘사벽의 난이도로 가르쳐 선형대수를 훨씬 난해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이러면 정의-명제-증명-...의 연속이다.) 반면, 해석학은 그런 경우가 없이 난이도가 비교적 표준적이다. 나중에 해석학을 많이 공부하다 보면, 선형대수의 철학과 해석학의 철학이 만나는 접점이 나타난다. 자세한것은 무한차원 선형대수학이라 불리는 함수 해석학을 찾아보도록. 어렵지만 [[대수학]]과 해석학은 수학과의 핵심 과목이라서 이 둘을 잘해놓아야지만 앞으로의 갈 길이 편하다. 실해석학, 복소해석학, 편미분방정식, [[확률론]] 등의 과목이 기본적으로 해석학의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수학을 전공하기 위한 '''기초과목'''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수학과 진입하면 선형대수학과 함께 바로 배우도록 한다는 말. ~~하지만 수업에는 재수강생이 넘쳐나고~~] 단순히 과목 내용뿐만 아니라, 수학의 각 부분에서 사용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증명 스킬 역시 여기에서 배운다. 사실 학부때 배우는 모든 내용이 그렇지만, 해석학과 선형대수, 그리고 대수학은 사실 가장 중요하면서도 쓸모없는 과목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학부때 배우는 해석학이나 대수학은 본격적인 수학이라기보다 수학에서 알파벳과 같이 쓰이는 개념들의 습득이 목적이기때문에 반드시 알아야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기때문이다. 본격적인 수학은 그 개념들을 이용하여 빨라봤자 석사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해석학을 단학기로 끝내지 않고 1년 내내 배울 경우, 기초적인 푸리에 해석과 실해석학[* 여기서는 '측도(measure)'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리만적분과 다른 방식으로 미분과 적분을 정의한다. 아이디어는 르벡이라는 수학자가 냈다. 이걸 제대로 배우는건 학부 고학년이나 대학원 가서 한다.]에 대한 맛보기를 할 수도 있다. 김김계가 대표적인 예.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측도를 다루지 않고 다변수 해석과 다양체(manifold)에 관한 부분을 다룰 수도 있다. [* 해석학 과목의 처음부분, 즉 기초위상, 수열, 미분과 적분, 급수 등은 학교나 강의하는 사람에 관계없이 다 똑같지만 나머지 부분은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서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편이다.] 물론 배우는 입장에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죽어나간다...만 그건 가르치는 강의하는 교수님에 따라 달렸다. 대학원에 진학하면 함수해석, 조화해석 등등의 여러 계통으로 나뉘어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수학과목에 입문하고 최신연구주제나 분야들도 접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해석학과 완전히 상관없는 과목을 전공하게 된다면 전공시험을 통과한 이후 '''복잡하고 까다로웠던 과목''' 취급받으면서 서서히 잊혀져간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세부적인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지만 않을 뿐, 해석학에서 사용하던 기본적인 개념들은 분야가 달라도 종종 튀어나오므로 완전히 잊는것은 불가능하다.[* 완전히 상관이 없다면 애초에 학부 1학년부터 대수와 해석학 전공생을 나누어 가르쳤을것이다.] 함수해석학의 경우 [[선형대수학]]의 선형사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진정한 해석학 굇수가 되고 싶다면, 선형대수도 열심히 공부할 것을 추천한다. 물론 함수해석학도 깊게 들어가면 더 이상 Linear가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이 등장하지만, 기본이 이 선형사상이기 때문이다. === 교과서 === * Jerrold E. Marsden, Elementary Classical Analysis 많이 쓰이는 교과서이다. 측도(measure)에 관한 내용이 없다. * Robert G. Bartle, Donald R. Serbert, Introduction to Real Analysis 실해석학 입문서적. 난해함을 줄이기 위해 해석학 서적에서 그 흔하디 흔한 [[위상수학]] 기초 설명도 최대한 배제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1변수 함수만을 대상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르벡 적분 및 측도론 내용은 없다. 실제로 해석학 교재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쉬운 책으로, 그 접근성 때문에 수학과 뿐만 아니라 경제학과 등 상경계열 전공에서도 쓰는 모양. 또한 본문내용 중간중간 각종 수학자들의 일화나 해석학의 역사적 흐름을 설명해주는 건 덤이다. * Walter Rudin, Principles of Mathematical Analysis [[1951년]]에 초판이 나온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책이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국내외에서 약자로 PMA라고도 종종 불린다. 1976년에 나온 3판이 최신. 인터내셔널 에디션에 오타 있는게 수십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다. 아마 앞으로 개정될 일이 없을 듯. 흔한 함수 그래프조차 그려져 있지 않다. 해석학을 처음 보는 용도로는 적절치 않으며 약간의 진입장벽이 있다. 대학원 가기전에 해석학을 다시 복습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처음에야 어렵지만 나중에 다시 보면 잘 쓴 책인걸 느낀다. 특히 초반 8장까지는 정말 많은 내용들을 최대한 간결하게 다 서술해놨다. 다만 9장부터는 다변수해석학 관련 내용을 다루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너무 컴팩트하게 쓰려고 한 부작용으로(...) 특별한 배경지식이나 다른 서적 없이는 상당히 난해한 서술이라는 게 중론. 저자는 2010년에 파킨슨병으로 사망했다. ~~카이스트에서 몇몇 교수님들이 활용하시며 그 학기 해석학의 평균점수는(...)~~ * Walter Rudin, Real and Complex Analysis 위 PMA 저자가 쓴 ~~악명높은 루딘 삼종세트 중~~ 실/복소해석학 서적. 기본적인 해석학 내용을 학습하지 않으면 사실상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있어서 주로 석사과정 전후로 보는 책. * 김성기/김도한/계승혁, 해석개론 약칭 김김계. ~~호칭에서부터 [[개노답 삼형제]]가 떠오른다~~.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2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해석개론 강의 교재로, [[수학 갤러리]]에서 알아주는 책이다. 다만 서울대 자체 교재인 만큼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며, 수학갤에서도 초보자가 하겠다 하면 뜯어 말리는 수준이다. 수학갤에서는 2장 좌표공간의 위상적 성질만 ~~힘들게~~ 넘기면 매우 좋은 책이라고 한다. * 이슬비, 맛있는 해석학 현직 교사가 출간한 책으로, 이쪽 바닥 책 중에서는 드물게 굉장히 깔끔하게 편집되어있다. 학부 과정 해석학 수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짚고 넘어가니, 해석학 서적 특유의 딱딱함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은 ~~뭏론 해석학이란 과목 자체가 굉장히 딱딱하고 엄밀하지만~~ 참고해도 좋을듯. [[http://iseulbee.com/16|또한 온라인으로 전문을 공개해놓고 있다.]] === 관련 인물 === 해석학 관련 인물들로는 코시, 푸리에, [[테일러]], [[리만]],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 르벡(Lebesgue) 등이 있다. * [[테렌스 타오]]의 박사 전공이 조화 해석학이다. == [[철학]]의 해석학(解釋學, hermeneutics) == * [[철학 관련 정보]] > "해석학은 오랫동안 논리학에 첨가되어 왔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해석학설을 발전시키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말하는 기술과 이해하는 기술은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말하는 것은 단지 사고의 외적 측면이다. 해석학은 사고기술의 일부이며 고로 철학적이다." >-프리드리히 슐라이머마허, <Hermeneutics>, The Handwritten Manuscripts, pp.6~7 中- hermeneutik(獨), herméneutique (佛) hermeneutica (라틴) === 개요 === 해석학의 어원을 살펴보면, 해석하다(to interpret)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동사 hermeneūein과 해석(interpretation)으로 번역되는 명사 hermēneia 이 두 단어가 Hermes 神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어 hermeios는 델피신탁의 사제를 의미한다. 즉 헤르메네웨인, 헤르메네이아 라는 단어는 날개 달린 메신저 신(神) Hermes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철학 자체를 ‘해석’이라고 보는 마틴 하이데거는 해석학으로서의 철학(Philosophy as Hermeneutics)을 명시적으로 헤르메스와 연관 지었다. ‘해석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17세기부터 사용되어 온 것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 원문 주석의 기능과 해석의 제반 이론들은 고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따라서 계몽주의시대에 이르기까지 해석학은 개별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문헌학과 신학의 분과로서 기능해왔다. [[철학]]의 해석학은 주로 텍스트의 해석을 다룬다. 여기서 명시하는 텍스트의 의미는 19세기까지는 말그대로의 의미였다면 20세기부터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자크 데리다의 영향으로 단순히 책이나 논문의 해석을 떠나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모두 다 텍스트로 보고 다루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자면 개인도 텍스트로 볼 수 있으며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이전의 해석학의 질문이 "어떻게 텍스트를 이해할 것인가?"였다면 이후의 해석학의 질문은 '''"이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적 해석학의 형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기여를 한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 [[빌헬름 딜타이]], [[마르틴 하이데거]],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네 명을 꼽는다. 이 중에서도 가다머는 현대 해석학의 거두로 평가된다. 계몽주의 이후에 출현했던 모든 해석학적 운동들과 제안들을 다 다룰수 없기에 여기서는 해석학적 사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유럽의 대륙철학 저농에 서있는 몇몇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 ===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 ~ 1834)는 흔히 "근대 해석학의 아버지"라 알려져 있다. 그는 해석학적 문제의 보편적인 범위를 파악했고 그 결과로 얻은 "이해"에 대한 "철학적"이론을 체계화했기 때문에 충분히 칭호를 받기에 충분하다. 그는 해석학의 성격과 범위를 재정의하면서 신학적 해석학을 교회적 이데올로기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이 감옥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정통주의 해석학적 접근이었다. 해석학에 대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사상과 강의노트가 뒤늦게 발견,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의 공헌, 평가들이 다시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 전에 후술한 대로 여태껏 해석학은 수사학, 논리학, 신학과 문학에 의존해왔기에 여타 학문들에 비해 철학적 기초가 부족한 상태였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이 철학적 기초를 발전시키는 작업을 시도했다. 첫째로 그는 "이해"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지적했다. 우리는 입으로 말해진 것이나 글로 쓰여진 것을 종종 잘못 이해한다. 이해의 과정에 있어 개인적 또는 주체적 차원은 이해되어야 하는 대상, 객체적 차원의 언어학적 성격에 대한 올바른 고려를 수반해야 한다. 둘째로 그는 인간의 의사전달이 갖고 있는 언어학적 성격을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다. 모든 이해는 언어를 전제로 하며 언어 안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언어를 통해 의사를 전달한다. 그러므로 언어가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해석학과 수사학은 구분은 되지만 분리될 수 없다. 슐라이어마허는 언어의 문법적이고 객관적인 관습과 기술적, 주관적인 개인적 실행을 구분하여 전자를 해석의 문법적 차원, 후자를 해석의 기술적/심리학적 차원으로 구분하였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해석의 문법적 차원의 작업을 "언어 안에서 언어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의 올바른 의미를 찾아내는 예술"이라 묘사했고, "심리학적/기술적 해석"은 작품의 전체성과 통일성 그리고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주요 특징을 파악하려는 작업으로 보았다. 셋째로 그는 이해의 두 차원이 모든 텍스트 해석활동에 있어서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텍스트가 만들어낸 모든 산물은 관습적인 언어학적 규칙의 개별적 개인적 적용의 결과이기 때문에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모든 행위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관습적인 방식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기초한다. 넷째로 본문의 성격에 주목했다. 그는 텍스트를 하나의 우주로 생각했다. 관습이나 규칙들이 우주적 망을 이루어 여기서 새롭고 의미있는 전체를 창조하기 위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텍스트의 의미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려기보다는 근사치를 목표로 삼는다. 그럼에도 텍스트의 의미를 향한 이 해석상의 근사치는 해석과정의 비평적이고 책임있는 특성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규칙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다섯째로 그는 그 어떤 규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해석의 예술을 위한 규칙들은 하나의 실증적 형식(a positive formula)으로부터 발전되어야 하고, 이것은 주어진 진술의 역사적인 동시에 예감적이며,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인 재구성이다. 이 규칙은 객관적으로 해석자로 하여금 텍스트와 그 텍스트가 생겨나게 된 언어체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언어체계에 대한 텍스트 자체의 특별한 영향이 어떤 것인가를 인식하도록 돕는다. 이 규칙은 "먼저 텍스트를 이해하고 텍스트의 저자가 이해한 것과 같이 이해하고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다." 이 해석작업의 목표는 해석자가 저자의 언어에 완벽하게 익숙하며 저자의 내적 외적 삶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다. 그러나 슐라이에르마허는 곧바로 저자의 언어와 삶에 대한 지식은 저자의 저술들을 해석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부언한다. 여섯째로 해석학적 순환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새롭게 고찰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우리가 어떻게 부분들로부터 전체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는가? 어떻게 텍스트 안에서 언어학적 도구들의 비교를 통해 부분들에 관해 알게 되는가? 어떻게 우리가 유사한 텍스트들 아래에서 특정 테스트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가?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적 사고는 하나의 혁명을 가져왔다. 이전에는 부수과목에 불과했던 해석학이 이제는 타인이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들을 이해하기 원하는 그 자체의 고유성과 학문으로서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지닌 철학의 한 분야로 등장했다. === [[빌헬름 딜타이]]의 해석학 === 슐라이에르마허의 해석학적 강령의 회복은 철학자 빌헬름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 ~ 1911)의 업적에서 시작되었다. 철학적 해석학을 발전시키려 했던 신학자 슐라이에르마허의 노력은 신학적 해석학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인문과학의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였던 딜타이에 의해 철학적 해석학은 활기를 띄었다. 딜타이는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과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인문과학은 인간생활과 인간들의 복잡한 표현양식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이 실제적으로 동일한 현상을 다룰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과 다른 방법으로 이일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해라는 용어는 인문과학의 과업을 특징짓는 핵심용어이다. >설명은 순전히 지적인 사고 과정들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이해는 모든 정신적인 능력들이 결합된 활동을 수단 삼아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해에 있어서 우리는 자체를 우리에게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로서 제시하고 있는 전체의 연결성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 맥락 속에서 우리는 개별적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연결성을 각성하고 살아간다는 바로 그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특별한 문장, 특별한 몸짓, 특별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Wilhelm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vol.5. 4th edn, 172. 딜타이는 "인문과학의 심리학적 기초 과업"이라는 표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자연과학은 가정들 상호간의 관련성의 도움을 받아 일련의 결론들을 얻어 자연 현상들 사이의 연결을 먼저 구축해야 하는 반면 인문과학은 항상 원래부터 주어진 정신적 생활, 즉 인간 삶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삶은 인문과학의 자료들이며 그것은 이해를 요청한다. 그러나 명확이 이해되어야 할 것은 이해의 과정이다. 이것이 해석학의 과업이다. 즉 삶의 모든 표현은 우리 자신의 과거의 경험들을 갖고 유추함으로써 이해된다는 말이다. 인간 이해가 갖는 이 유추적 성격은 모든 해석자가 주어진 대상을 어느정도 상이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모든 해석행위에 있어 필연적인 이 상이한 이해는 해석 다원주의라는 현상을 야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고의 이 연결성을 고정된 방식으로 "객관적 정신"이라고 정의하자마자 우리는 이해에 있어서 귀납적 추론의 가능성과 생산적이며 비평적인 다원주의의 영역에서 떠나버린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의사소통의 모든 노력들을 연결시키는 인간 이해의 통로를 언어 속에서 찾는 반면 딜타이는 보다 물질적인 내용을 의사소통의 기본원리로 삼는다. 이것은 딜타이가 특히 "생"의 개념을 갖고 모든 사고의 토대를 놓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그의 실수는 해석학이 중립적이며 ,과학적 기초이론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딜타이의 생각은 그 자체가 관념론적이다. 그러나 그의 제안으로 철학자들은 해석학적 사고를 철학적 논의에 재도입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후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딜타이의 해석학 사상은 하이데거, 가다머, 리꾀르와 같은 인물들에게 중요한 제안들을 마련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했다. === [[마르틴 하이데거]]의 해석학 === 슐라이에르마허가 신학적 해석학에 보다 고유한 해석학적 기초이론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면 딜타이는 해석학을 모든 인문과학의 기초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비록 딜타이의 제안은 일반적인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해석학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재발견은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해석학적 철학에 주된 영향을 미쳤다. [[현상학]]으로 알려진 철학운동은 철학적 해석학의 발전과는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었지만 현상학이 해석학의 발전에 미친 충격은 컸다. 현상학은 하이데거와 가다머, 리꾀르 아래에서 해석학의 변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한다. ====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과 해석에 대한 입장 ==== 에드문트 후설은 철학적 사고를 모든 종류의 철학적 체계들의 사변적 논의와 교리주의로부터 해방시킬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철학이 물자체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우리는 가치, 목표, 수단들을 단순히 직접적으로 파악해내는 것이 아니라 성찰을 통해 그것에 상응하는 주관적 경험을 파악하고 그 경험 속에서 우리는 사물을 자각하게 되고 사물들은 드러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것들은 "현상"이라 불린다. 현상의 가장 일반적, 본질적 특성은 개별, 사물, 사상, 계획, 결정, 희망, 기타 등등에 대한 "자각" 또는 "나타남"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드문트 후설, "Phenomenology"(1927)- 후설의 강령은 현상에 대한 파악이 사물 자체의 본질을 나타나도록 허용하는 공동자각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함으로써 주체-객체 분리 문제를 극복한다. 그러므로 딜타이와 마찬가지로 인문과학 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분야에 하나의 기초이론을 제공하려는 철학적 노력을 후설이 설파한 셈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현상학자가 하나의 철학체계의 이상을 포기할 것과 그렇게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어 사는 겸손한 일꾼으로서 영원한 철학(philosopia perennis)을 위해 살 것을 요구한다. >-에드문트 후설, "Phenomenology"(1927)- 후설은 순수 현상들에 대한 확실한 의미파악을 할 수 있는 절차를 발전시켰다. 하나는 에포케(epoch: 뒤로 물러서다)이고 둘째는 직관적 환원(eidetic reduction)이다. 이 과정 속에서 현상학자는 모든 경험의 본질을 해방시킨다. 오늘날의 해석학적 관점에서 후설의 강령은 세속적인 상황 밖에서 본질을 파악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후설이 모든 종류의 속임과 왜곡으로부터 현상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해방시켰다 할지라도 그는 현상의 역사적 상황, 공간적, 시간적 사회적 상황들을 이해의 행위에서 배제시킴으로써 인간 이해를 왜곡시켰다. ====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나타난 해석학 접근 ==== 후설의 가장 가까운 동료였던 하이데거의 접근은 후설의 현상학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하이데거 역시 죽음, 세상, 존재, 덧없음과 같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 현상에 대해 면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후설과는 달리 이 현상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순전히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본질적 성격을 그것의 상황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본질들을 해석학적 활동 속에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현상과 이 현상의 분석자 모두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만이 오직 "해석"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해석학적 철학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해석학적 성찰을 제공했다. 그는 <존재와 시간> 첫 장에서 현존재에 대한 존재론적인 조건들을 분석하는 일에 착수했다. "세상에 존재함"이라는 현존재의 구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는" 현존재의 실존적 상황을 다루고 나서 하이데거는 이해의 차원을 현존재의 실존적인 구조들 중의 하나로 논의한다. 이해는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첫째는 현존재의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구조이고, 다음은 앎의 많은 가능한 양식들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현존재가 바로 자체의 존재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까지 이를 수 있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라는 두가지의 가능성을 구분하려 했다. 하이데거는 "이해가 자체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는 확고한 양식"을 해석이라 부른다. 어떤 것을 어떤 것이라 해석하는 이 행위는 항상 이해관계 혹은 의도, 예견, 선이해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전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하이데거는 텍스트 해석이 무엇인가를 지적함으로써 이 견해를 설명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것'에 호소하기를 원할 때 ... 그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 일차적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논의되지 않은 가정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 고찰들은 하이데거로 하여금 "의미"의 뜻을 정의하게 한다. "의미란 어떤 것에 대한 가해성(可解性)이 그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이 가해성은 언제나 이해하는 사람의 선(先)판단에 의해 미리 구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의미는 인간의 상황 바깥에서 발견될 수 없다. 오히려 실존적 구조로서의 의미는 다만 그 자체만이 의미로울수도 무의미할 수도 있는 현존재에만 속한다. 모든 이해란 비록 어느 누구도 선 판단의 법칙 밖에서, 즉 해석학적 순환을 떠나서 사물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사물 자체에 대한 최선의 파악의 배경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하이데거의 언어에로의 전환 ==== 후기 하이데거는 1950년 발행된 강의록과 논문에서 "언어"를 내적인 움직임들 혹은 그것들을 지도하는 세계관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인간수단으로 보는 이해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는 "언어는 본질상 표현이나 인간행위가 아니다. 언어는 말을 한다(Die Sprache spricht)." 라고 주장했다. 언어가 말을 하는 순수한 모습을 그는 [[시]](詩)에서 발견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에 있어서 언어 그자체가 말을 하며, 언어가 그것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언어는 존재의 외침을 전달하기 위해 말하기를 필요로 한다. 하이데거는 시를 인간언어의 참된 본래의 표현으로 여겼으며, 일상언어는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빈약한 것으로 보았다. "언어는 말을 한다.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 언어에 대응할 때이다. 대응은 듣기다." 하이데거는 참된 존재와의 접촉을 회복하기 위한 열쇠가 언어에 대한 사려깊은 듣기라고 보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듣기가 참된 듣기이고 왜곡되거나 편향된 듣기가 아니라 확신하도록 돕는 전략이 무엇인가 이다.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해석학 ===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02.11~2002.03.14)의 주요 저서인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이 1960년대에 등장한 이후로 가다머는 해석학적 주제들에 대한 주요 대변인이 되었다. 그의 사상을 일일히 기록하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더 수월하기에 몇가지의 해석학적 성찰과 비평적 관찰들을 다루도록 한다. ==== 인간 태도로서의 이해 ==== 가다머는 현상학의 전통을 따르면서 자신의 해석학을 인간의 이해활동에 수반되는 요소에 대한 성찰이라 보았다. 그는 해석학의 통찰과 해석 방법은 해석학을 순전히 기교적인 개념으로 이끌고 가기에 현대의 다른 기술의 수준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는 대신에 해석학의 "철학적" 특징을 강조한다. 즉 해석학은 인간이해와 인간의 자기이해를 증진시키는데 관심을 두는 "실천철학"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다머는 인간이해를 분석하면서 텍스트 해석의 예를 든다. 텍스트 이해의 과정이 독자들의 선이해와 텍스트의 의미에 참여하는 독자 자신의 관심에 의해 항상 연료를 공급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독자에게 있어서 텍스트 이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텍스트와의 실질적인 일치다. 이해의 목표는 두 지평, 즉 텍스트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의 융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해는 주관성의 행위라 할 수 없고, 전통의 과정 속에 자신을 올려놓는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융합된다. 이것은 과정, 즉 방법의 개념에 의해 지나치게 지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해석학 이론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진리와 방법>. 258쪽. 가다머는 이 이해의 과정을 게임의 경험에 비유한다. 독자는 마치 게임의 규칙에 자신을 복종시켜 궁극적으로 그 게임에 의해 지시받거나 움직이는 경기자와 같다. 이처럼 가다머는 그의 해석학적 성찰을 이해를 추구하는 자가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는 게임의 조건들에 대한 성찰로 이해한다. 우리는 항상 한 텍스트를 일련의 질문들을 갖고 접근한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하기 전에 우리에게 의미를 드러내려는 텍스트의 잠재성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이미 어느정도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는 기대의 지평을 통해서 이해의 과정에 들어간다. 우리는 텍스트 이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전달의 역사적 실체에 의해 항상 조건지워진다. >이해의 과정에서 두 지평들의 실제적인 융합이 발생한다. 이것은 역사적 지평이 투사되자마자 그와 동시에 그 지평들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융합의 의식적인 행위를 "효과적 역사의식"의 과업이라 묘사할 수 있다. <진리와 방법>. 274쪽 가다머에 따르면 이 "효과적 역사의식"의 구조는 언어이다. 언어는 두 사람 사이의 대상에 관한 이해와 일치가 발생하는 중간지대이다. 대화는 두 사람 사이를 중개하는 특별한 형식이다. 독해의 과정을 인간의 대화에 비유해보면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상호운동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운동의 주도권은 독자에게 있다. 텍스트는 대상을 언어로 표현하지만 사실상 이것을 성취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해석자의 작업이다. 텍스트와 해석자는 이 작업 속에서 공유점을 가진다. 그러나 언어는 순전히 도구의 관점에서만 고려될 수 없다.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가다머에게 있어서 언어는 의사전달의 매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다머에 따르면 언어의 참된 본질은 의사 전달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 "오직 언어만이 존재의 총체성과 관련을 가지며 유한자, 역사적인 제한을 받는 인간을 인간 자신과 세계에 매개시킨다." 그래서 그는 이해될 수 있는 존재는 언어다 라고 결론내렸다. 해석학적 경험은 단지 많은 인간의 경험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인간들이 진리에 접근하는 하나뿐인 방법이다. 해석학적 경험의 이 성격때문에 가다머는 이 경험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으로서의 해석학은 모든 철학의 보편적인 측면을 대표하며, 단지 인문과학을 위한 방법론적인 기초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가다머는 해석학을 인문과학의 기초이론으로 평가하는 딜타이의 견해를 거부하고 대신 하이데거의 현존재에 관한 실존적인 해석을 따른다. 가다머에 따르면 해석학은 인간의 이해 현상 그리고 인간존재에 대한 적합한 이해에 관한 것들을 성찰하는 학문으로서 하나의 실천철학이다. 해석학의 본질에 대한 가다머의 성찰은 철학적 해석학의 발전을 상당히 진전시켰다. 특히 "효과적 역사의식"에 관한 그의 분석은 해석학적 순환에 관한 하이데거의 통찰을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해답을 얻지 못한채로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비평의 문제가 제기된다. 독자는 어떻게 잘못된 이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독해의 과정에서 전통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왜 텍스트는 권위를 가지며 따라서 그것이 제시하는 전통에 대한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가? 두 지평의 융합은 행복한 융합인가 아니면 독자와 텍스트 사이의 갈등인가? 텍스트 해석에 있어서 진리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가다머의 해석학을 간추려 설명하자면, 기원적이라고 가정된 텍스트의 의미보다 그 이후의 일련의 독법들 속에, 즉 그 이후의 텍스트의 실효성에 더 많은 진리가 있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요약] 쉽게 말하자면, 저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그 텍스트를 활용하고 이해하는 방법에 따라 텍스트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소리이다. 일례로, 시인이 수능 언어 영역에 나온 본인의 시에 대한 문제를 풀지 못하는 현상은 수능 문제의 불합리함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니다. 수능 언어영역이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이며 객관적인 문학 작품의 해석 능력이며, 작가의 주관을 알아 맞추는 ~~관심법~~감정 이입 스킬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가 생겼을 때에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시인의 잘못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출제자가 시인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국 수능언어는 작가의 주관을 알아맞추는 것이 아닌, 출제자의 주관을 알아맞추는 것이다.~~ ==== 해석과 이데올로기의 문제: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한 [[하버마스]]의 비평 ==== 가다머에 따르면 이해는 이해를 하려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을 텍스트에 복종시키려고 하고 텍스트가 제시하는 전통에 들어오려고 하는한 항상 성곡적일 수 있다. 이런 류의 해석학이 철학의 보편적인 특성이 되어야 한다는 가다머의 주장은 날카로운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년 6월 18일 ~)는 이러한 보편적인 주장을 거절하면서 이해가 갖고 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하버마스는 일상적인 의사소통이 조직적으로 왜곡될 경우에는 가다머의 이해에 관한 모델이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해석학적 의식은 그것이 해석학적 이해의 한계에 대한 자체의 성찰을 고려하지 않는한 불완전하다. ... "정상적"인 말, 즉 병리학적인 이상이 엿보이지 않는 말에도 조직적으로 왜곡된 의사 소통의 유형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질 때에만 해석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두절이 해당 당사자들에 의해 감지되지 않는 사이비 의사소통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그 대화에 새로 참여하는 사람만이 그들이 서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 위르겐 하버마스, <On Hermeneutics Claim to Universality> 하버마스는 보다 깊이있는 해석학과 보다 적절한 의사소통 이론을 요구했다. 하버마스는 가다머의 성찰이 지닌 가치있는 것들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가다머가 하이데거를 좇아 설명했던 해석학의 존재론적 개념자체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가다머는 하버마스의 비평을 거부했고 자신은 단지 어떻게 지식이 해석학적 과정에서 얻어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려고 의도했을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 그드신 텍스트와 그 텍스트 전통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해석자의 자유에 근거를 둔 행위로 보았다. 그러나 가다머는 인간의 의사소통에 등장하는 온갖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억압에 대한 비평과 해석작업에 수반되는 이데올로기적 행위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분석을 요구하는 하버마스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하버마스의 비평은 폴 리꾀르가 지적했던 것처럼 가다머의 보편적인 요구를 무효화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비평적 혹은 보다 깊이 있는 해석학 조차도 하나의 해석학으로 남기 때문이다. ==== 회복과 의심 : 폴 리꾀르의 철학적 해석학 ==== == [[법학]]의 법해석학 == [[법학]]에서 재판에 의한 법의 구체적 실현을 위하여 실정법의 의미와 내용을 통일적ㆍ조직적으로 해석하는 학문. 철학이 근대에 와서 텍스트의 의미와 구성, 논리성을 다루기 훨씬 이전 원래 이 역할을 맡았던 분야는 신학(기독교뿐 아니라 경전과 교리를 소유한 왠만한 종교들은 해석을 연구한다)과 법학이었다. == [[신학/그리스도교|기독교 신학]]의 성서해석학(聖經解釋學, Biblical Hermeneutics) == * [[종교 관련 정보]] [include(틀:종교)] > "우리는 성령이 말씀하신 그 목적에서 우리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 >-장 칼뱅- > "교부들은 기독교 신앙을 철학적 진리의 예증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앙을 지혜의 참된 형태라고 해석함으로써 신앙을 철학의 자리에 정치시켰다. 철학은 그 개념의 단어적 의미를 이 지혜에서 찾았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원조|해석학은 원래 전통적으로 성서 주석을 하는 데 준수해야 할 법칙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해석학에 관여하는 범위가 아주 넓혀진 셈이다. 해석학은 본래 역사 혹은 역사적 문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지켜야만 할 조건들을 근본적으로 따지고 묻는 것이다. >-Carl Braaten- === 개요 === 성서해석학. Theological Hermeneutics라고도 한다. [[고대 로마|그 옛날]] [[헬레니즘|그 옛 문화]][[아람어|권 내에서]] [[히브리어|그 사람들이]] [[그리스어|쓰던 말]][[라틴어|과 사건이]] 어떻게 오늘날 오늘의 문화권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해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의 정황에 맞는 실존적 의미를 부여해줄 수 있는가를 연구 검토하는 학문. 신과 인간 사이의 괴리, 옛사람과 오늘날의 나의 괴리를 연결하고 융합하는 학문. 학자들이 추정하기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교훈들을 해석하려는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정확하게는 대부분의 종교경전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문서는 그리스도교학의 관점에서 쓰여졌기에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어지간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 곧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경전인 [[토라]](Tora, 모세오경), 케투빔(Ketubim, כְּתוּבִים, 성문서), 느비임(Nevi'im, 예언서) 모두 과거에 구전되던 전승들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해석이 가미되고, 또 후대에 편집과 추가, 삭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해석을 시도했기에, 그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세한 사항은 [[성경]] 항목 참조. [[그리스도교]]는 멀리갈 필요도 없이 [[예수]]부터 구약을 재해석하였다. 그 재해석과 가르침을 전수받은 사도들과 사도교부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면 곧 예수께서 재림할 것으로 믿었기에 재해석을 따로 하지 않고 묵묵히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았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안디옥 교회가 그러하다.] 그러나 재림이 늦어지게 되면서 [[영지주의]]자들, 그리고 로마제국의 민간종교지도자들, 유대인들로부터 지속적인 고발, 심문, 고문, 사형을 당하자 속사도들과 변증가들은 변호, 고백, 순교를 하면서 [[예수#s-12|예수의 어록]]들을 다시금 해석하고 편지로 목회하였다.[* 사도 [[바오로]]와 [[복음서]] 네 기자들, 서신서 기자들이 대표적이다.] 이후에 기원후 120년 이후 교회가 전면적으로 로마제국에게 탄압받자 편지들 중 변증이 유독 뛰어나고 온전히 구약성서의 전통대로 저술된 편지들과 증서들, 토막글들이 교회 안에서 존경의 의미로 보관돼었다가 신약성서로서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구약성서와 더불어 경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레네오 주교]], [[아타나시오 주교]]는 카르타고공의회 이전부터 신약성서를 경전으로 부르며 그 중요성을 주장하였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바실리카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부시대에 이르러 위대한 교회의 변증가들이 [[성경]]에 근거해서 끊임없는 변증과 신학논쟁들을 하게 되었다. [[신론]],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성령론]], [[인간론]] 등의 신학이 교리로 정립되어 교회에 전수되면서 자연스레 강론이나 기도에도 성경을 토대로 한 해석이 각주처럼 달리기 시작하였고, 이게 설교집으로 묶여져서 책으로 나온게 '''성서 주석'''이다. === 성서해석학의 역사 === 사실 성서의 해석은 유대교의 성립부터(기원전 5~4세기 [[바빌론 유수]]이후) 접근하는 것이 옳으나, 내용상 방대해질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교적 관점보다 유대교적 관점이 주를 이룰 수 있기에 이 문서에서는 생략한다. 이 문서는 원시교회가 탄생하던 시기의 문화 생태계를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당시 문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대교회의 시대는 그리스, 로마 철학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작용했던 시절이었다. 사도행전만 살펴봐도 이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예루살렘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한 디아스포라 유대 그리스도인, 헬라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서보다도 헬라문화에 익숙해있었고, 구약성서에서 외치던 메시야를 유대전통에 의한 다윗과 같은 정치적 메시야보다도 현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 /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묵시적 메시아를 염원하였다. 예수는 후자에 아주 적합한 메시야 상이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이 전해질 수 있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개가 인물을 중점으로 이루어지며, 대표적인 디아스포라계 유대인은 순교당한 [[스테파노]],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필립보]]이다.[*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이름이 사도행전부터 유대식에서 그리스식으로 비율이 늘어난다. 점차 유대인들만의 종교에서 디아스포라계 유대인, 그리고 이방인들의 종교로 확장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디아스포라계 유대인들은 이후 팔레스타인계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바울로|사울]]이 이 사건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안티오키아]]로 피난을 가 최초의 교회를 세운다. 이때 교회는 지부가 둘로 나뉜다. 베드로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예루살렘 교회, 디아스포라계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 안티오크 교회다. 그런데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회개를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면서부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이후 유대전쟁으로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붕괴되면서 팔레스타인계 유대인들도 정처없이 떠돌게 되고, 유대교는 얌니아 회의를 거쳐 회당과 랍비를 세워 자신들의 종교를 수호하려 하였다. 이때부터 회당을 놓고 교회와 갈등을 벌인다. 유대교가 보기에 기독교는 이미 유대교와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팔레스타인지역에 있었던 교회들은 유대인들과 별반 차이없는 종교생활을 해왔기에[* 사도행전을 잘 살펴보면 사도들은 여전히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유대절기를 철저히 지키고 회당에서 예수를 전했다. 사이클이 유대인들과 차이가 없었다.], 기독교를 “예수를 좇는 유대교의 종파”쯤으로 여기고 회당을 빌려주고 같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더 이상 로마제정정부의 눈에 나서는 안되었기에 그들은 기독교를 내쫓았다. 기독교는 이렇게 회당에서 쫓겨나면서 예배를 가정에서 드리기 시작했고, 지부의 개념에서 가족 공동체로 축소되었다. 직접 예수를 보고 전했던 [[사도]]들과 [[바울로]]가 순교하면서, 교회는 사도들의 제자였던 속사도들을 지도자로 세웠으며 속사도들의 제자,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교회의 전통을 계승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약성서는 이들에 의해 쓰여졌으며, 이들의 목회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다. 이들 중에서 유독 뛰어난 사람들을 이후에 교부(敎父)라고 불렀다. 이렇게 초대교회가 형성이 되어가면서, 이교철학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되는데, 이 복음은 유대교와는 또다른 것이어서 헬라철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와중에 몇몇 철학자들도 회심하여 교회에 들어오게 되고,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를 불법적인 단체로 여긴 로마정부는 교회를 추궁, 심문, 핍박하게 되었고 교회는 이에 대해 철학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야만 했다. 교부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목회하였던 그 장소에서 자신들의 신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교훈과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하였다.[* 그 교회들은 지역마다 인종과 언어가 달랐으며 그들의 문화에 맞추어 가르침을 전해야 했기에 자연히 해석이 필요하다.] 그들은 진심으로 기독교의 진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철학이라고 생각했고, 철학적 인식론과 사유의 도움으로 성서를 해석하였다. 특히 교부들에게서 그런 경험이 뚜렷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사상사는 철학과의 대화를 통해서 발전시켜 왔다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쪽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은 순교자 [[유스티노]],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스부터, 주교 [[이레네오]]와 [[아타나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 [[클레멘스]], [[예로니모]], 대교황 [[그레고리오 1세]]와 [[레오 1세]], [[오리게네스]], [[그레고리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그레고리오|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 성 [[바실리오]] 주교,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안셀모]],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 등등 동서방을 막론하고 다양한 교부들이 있다. [* 문서 맥락에서는 고대의 교부들만 포함시켜야 하나 이해를 돕기위해 중세까지 삽입하였다.] 서기 1~3세기의 로마시민은 수사학과 시학, 역사학 공부가 기본이며 철학, 법률학까지 빠삭하게 교육받았다. 로마의 직할시로 인정받은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로마인으로 인정받았고 따라서 그곳에서 태어난 교부들과 감독들도 자연스레 로마의 교육풍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이분들은 당대 철학자들과 [[키보드 배틀]]에서도 지지 않을만큼 필력과 어휘력, 지적 수준이 [[쩐다|개쩌는 수준]]에 도달한 분들이라(대부분 철학자나 교사, 다른 종교의 강사였다), 지금도 이분들의 주석을 보면 존경스러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당장 [[삼위일체론]]항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만 봐도 자기 과거 이야기 하면서 참회하는 와중에 '''시간이란 무엇인가''', '''죄란 무엇인가''' 샛길로 새면서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주의의 철학이 다 튀어나온다... 게다가 몇몇 교부들은 서로 편지 주고받으면서 "너도 알겠지만 말이야 시편 122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하면서 '''성경과 철학책이 이미 머리 속에 존재해서 필요할때마다 끄집어내는 수준이다.''' [[ㅎㄷㄷ]] ] 2세기에 "신학"은 플라톤의 전통에 따라서 "신화론"과 동일한 의미로 여겨졌다. 따라서 교부들은 기독교를 신학이 아닌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철학으로 변호하였으며 '''그리스 철학은 [[하느님]]의 섭리이고, [[하느님]]이 그리스인들에게 빌려준 선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했던 말이다.]로 까지 여겼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공의회를 거치며 신학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신화로서가 아니라 성서에 계시된 [[야훼]]를 변증하는 학문이 되게 했다. 고대시대의 교부들은 어릴 때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키케로]]의 국가론, 의무론, 법률론 등등 여러 철학서적들과 지혜서적을 자연스레 읽어왔기에 --동네교회의 주교님 수준이 대학교 교수 저리가라할정도-- 어떠한 문서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알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성서를 위의 책들과 같은 방식으로 접했고 대했으며, 성서가 위의 책들보다도 더 큰 지혜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 교회조직과 성경의 정경화가 미처 이뤄지지 않았던 시대(기원후 70~200년 사이)에서 이러한 교부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이들의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성서해석은 콘스탄티노플 니케아 신경과 같은 교리와도 거리가 먼 것들이 종종 있었다. 2세기부터 교회를 공격한 [[마르시온]]의 도전으로 교회 지도자들은 신도들에게 그들의 [[독자연구|자의적인 해석]]을 경고하고 교회의 올바른 전통에 따른 해석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사제]]의 권위가 상승한다. 순교자 성 [[유스티노]] 사제 순교자(Iustinus)은 최초로 성경을 질서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썼다. 특히 [[리용]]교회의 주교인 [[이레네오]]는 자신의 성경 해석에 따라 영지주의자들을 비판하였다. [[삼위일체론]]에 위대한 기여를 한 아타나시우스 주교는 해석을 위하여 순결한 영혼과 그리스도를 따른 덕이 있어야 하고, 문맥에 의해 해석하며, 전체 성경의 유추(믿음의 유추와 동일함)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오늘날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에서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학문적),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으로 자라온(신앙적) 사람을 따로 모아서 훈련하고 육성하는 이유는 교부들의 뛰어난 식견과 경고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다. --개독이 나온 것도 대학교라고 할 수 없는 작은 신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을 단기간에 목사로 찍어냈기 때문이지 신학공부는 5년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스철학이 왕성했던 [[알렉산드리아]]의 교회는 성서를 신비적, 은유적으로 해석했다. 이 모임이 학파를 이루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통은 알레고리 해석, 즉 성경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신학이 강하였다. 반면 스토아, 라틴철학이 왕성했던 [[안티오키아]]의 교회는 문법적, 지성적으로 성경을 해석했고, 학파로 발전하였다. 대표적으로 안티오키아 학파의 타르수스의 디오도로스(Diodore of Tarsus)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레고리 해석을 비판하고 언어학적이며 문법적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hodore of Mopsuestia) 역시 알레고리 해석을 주관적인 성경 해석이 될 수 있으므로 성경을 잘못 해석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신학자는 건전한 신학적 판단에 의거하면서, 문자적 의미를 확고하기 위해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는 성경의 문자적인 의미와 실제적인 적용에 관심을 가졌다. 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Theodoret of Cyrus)는 비유적이고 모형론적인 해석을 수용하면서 언어학적 분석을 하였다. 그러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서 하나의 신학적 [[도그마]]가 형성되고, 성서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들이 도그마를 따라서 점차 구심적, 배타적으로 변하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삼위일체론]]항목 참조. 따라서 도그마를 내세운 교회는 성서를 온건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초점을 두게 되고, 동서방 교회가 분열하게 되면서 동방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전통을, 서방교회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전통을 따라 성서를 해석하게 된다. 이후 서로마의 멸망으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면서 더더욱 보수적으로 변하게 된 가톨릭은 비잔틴 제국에서 사용하고 있던 오리게네스의 3중적 의미 해석을 조금 더 보강하여 서로마 교회들에게 '''4중적 의미의 해석'''을 강론할 것을 명령한다. 이렇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교부들의 출신, 배경, 철학의 다양함으로 각기 독특한 사상, 성서 해석이 교부들에게 존재했으나 성경의 정경화, 교황제도가 정립되면서 성경해석에서 보편적 방법론을 제시해야 할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강론(설교)를 듣는 신자들의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고트족을 대표로 여러 야만족들이 로마영토를 분할 통치하면서 기독교에서 유일하게 보존되던 로마문물, 즉 로마의 문화를 배우고 싶어하게 된다. 교황들은 이들과 협상하여 보호를 받는 대신 기독교를 위시한 로마의 문화를 제공하게 되었고, 부족장이나 왕들이 세례를 받으면서 온 백성들이 그리스도교에 --군주가 믿는다니 최소한 어거지로라도-- 입문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언어문제가 생기고, 교회는 전통수호를 위해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백성들은 그냥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전례를 거행하게 되었다. 학계에서의 성경 연구는 발전하더라도 교회현장에선 별 효율이 없었다. 4중적 의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1. 역사적 의미 혹은 문자적 의미 (Sensus historicus aut literalis)란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것 2. 교훈적인 의미(Senus tropologicus)란 교훈과 도덕적 시정(Correctio moralis)을 찾는것 3. 풍유적인 의미(Sensus allegoricus)란 문자적 의미 이상의 다른 의미를 설명하는것 4. 영적 의미(Sesus anagoricus)란 신비적으로 혹은 공적으로(mystically or openly) 사용되는데, 듣는 자의 마음이 하늘의 것들(heavenly things)을 묵상함으로써 감동받고 훈계를 받는것. 쉽게 설명하자면, 4중적 의미의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해석해 본다면 문자적(literal)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문자적 도시'''이며, 풍유적(allegorical) 의미로는 '''교회'''를 의미하며, 도덕적(tropological) 의미로는 인간의 '''영혼'''을 언급하며, 영적(anagogical)인 의미로는 '''하늘의 도성'''을 말한다. 하지만 ''' 이와 같은 해석은 소위 [[독자연구|자의적 해석]]을 할 여지가 [[이단|너무나 컸으므로]]''' 성경 원저자의 의도를 밝히는데는 실패한 방법이었다. 성경 그 자체가 말하는 것을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해석이었다. 실제로 수도원에서 성경에 대해 강론을 펼치던 많은 설교자들(선생님들)이 이단심판에 회유되기도 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그나마 성경연구를 매일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수도사들이 이단심문을 당하는 판에 교회 현장은 더이상 말이 [[必要韓紙?]] 9세기 [[카를 대제]]의 문예부흥기에 본격적으로 [[스콜라 철학]]이 시작되던 시기에는 이전의 교부들이 시도해왔던 해석들, 특히 미학에서도 강조했듯이 신 플라톤주의에 기반한 성서해석들이 교리화되던 것에 반발하여 이슬람 문화에서 보존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연구하여 [[논리학]], [[자연철학]], [[심리철학]], [[형이상학]],[[윤리학]], [[천문학]], [[연금술]], [[법학]], [[생태학]]이 학문으로 개설되고 [[신학]]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재검토되며 신비주의가 태동하게 된다. 13세기 극렬한 변화의 시대에 놓여있던 교회는 기존의 신플라톤주의, 플로티누스의 해석들을 고수하는 편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중심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편으로 나뉘게 되었다. 이때의 유명한 사람들은 성서해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람은 [[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안셀모]],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이다. 이때의 해석학적 논의들도 스콜라주의, 실재론을 토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성으로 최대한 성서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형이상학, 초자연의 영역으로 넘겼다. 15세기 [[오컴의 면도날|윌리엄 오컴]]을 시작으로 유명론이 나타나면서 "하느님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여 행동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하느님을 우리가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오컴에 의하면 [[야훼|신]]은 제한적(ordered)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점에서만 우리는 신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이 자연 질서에 따라 운행하며 합리적으로 행하는 것들은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인간이 신에 대해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신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오컴은 신학체계를 성경을 통한 계시에 기초하지 않고 자연을 통한 이성에 기초하여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로 주장하였다. 오컴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기존의 신학자들이 이성으로 신학체계를 세우려고 시도하는 것을 비판하였고, 교리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야훼의 계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6세기 르네상스 시기에는 스콜라 신학에 대한 반발과 문헌학과 역사학의 발전으로 고전, 고대의 모습들을 복원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다시금 교부들의 신플라톤주의 신학을 재정립해서 문예부흥을 유도하기도 했다. 17세기 종교개혁 시기가 되면서 [[루터]]는 교회의 권위보다는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였으며, 중세의 4중적 의미의 해석을 버리고 역사적-문법적 해석을 중시했다. 루터는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코이네 헬라어 신약성경, 즉 성서 원본을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이미 과거의 죽은 언어를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많은 문법적 손실이 일어나게 된다는 점을 인지했다. 그 언어 고유의 지리적 해석과 문학적 기법들이 깡그리 무시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루터는 번역을 할 때 최대한 성경시대의 의미대로 번역하고자 노력했다. 나머지 해석은 주석이나 각주를 달면서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그가 '''성경의 권위'''를 중시한 나머지 중세교회가 절대화했던 [[축자영감설]]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예수를 담은 구유"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 있듯이 루터는 그리스도론 중심의 해석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 뒤에 더더욱 [[장 칼뱅|성서 해석학계의 먼치킨]]이 등장하는데, 장 칼뱅의 기독교 강요와 성서주석들은 칼뱅의 해석학이 여지없이 뛰어남을 증명해주며 현재까지 목사님들의 베스트 셀러로 통용되고 있다. --근데 [[근본주의|왜 다들 설교가 그런건데]]-- 칼뱅은 성서의 영감을 [[유기적 영감설]]로 이해하였지만 결국 시대적 한계로 인해 성서에서 추구하는 지상의 국가를 신본주의에 입각한 유토피아적 국가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루터의 한계와 동일한 맥을 잇기 때문이다. 자세한 항목은 [[장 칼뱅]] 항목 참조. 이때부터 성서 해석학은 개신교마저 교리를 답습하던 현실의 차원에서 한 차원 도약하여 종교개혁자들의 각각 고유한 기독론과 종말론 등등의 사상들이 해석에 활용되었다. 다시금 교부시대의 다양한 성경해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역사적 문법적 해석을 처음으로 사용한 신학자가 바로 [[장 칼뱅]].[* 그의 시대에 이게 가능해진 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인문학 원서 연구 유행과 북방 르네상스(알프스 이북을 중심으로 성경이나 주석을 그 시대의 언어로 롤백시켜서 이해하고자 했던 문예운동)의 역사문맥적 이해가 시대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서 해석을 할 때 일관되게 강조한 명제는 "성령이 확실한 해석자이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였다. --[[대리|내가 주석쓴게 아니라 성령님이 하신거다]]-- 종교개혁 시기이기에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문헌해석학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었기에 성서를 해석할 때 [[쓸데없이 고퀄리티|쓸데없이 장황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가능한 짧고 간략한 방식을 유지하려 시도하고 해석시 애매한 점을 제거시켜 단순성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게 하도록 도왔다. 어떻게 보면 이단으로 빠지지 않게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방식의 해석은 [[오컴의 면도날]]의 여파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이 근대로 넘어오게 되면서 대학의 철학과에서 해석학이 도입되고 고전 비평, 문학 비평 등의 분야가 개척이 된다. 이후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철학적 해석학을 최초로 신학에 적용시키면서 소위 [[성서비평학]]이 탄생하고 역사비평이 설교강단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역사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진흙탕싸움임을 알 것이다-- === 근대의 [[성서비평학]]과 보편적 해석학의 등장 === 이 항목은 [[성경/논란]]항목과 [[성서비평학]]을 참조하는 것이 더 낫지만 두 항목을 간소화시켜 설명해주길 원하는--다 읽기 귀찮은-- 위키러들에게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적는다. 역사 비평적 방법(historical-critical method)은 간략하게 역사적 방법, 또는 역사적 비평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비평적”이라는 말은 성서 연구에 있어서 일체의 교회의 전통이나 교리에 구애받지 않고 거기에서부터 전적으로 자유한 입장을 나타낸다. “역사적”이라는 말은 첫째, 세속적인 역사학에서 적용되는 척도를 성서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역사적”이라는 말은 연구의 대상 또는 목표를 가리킨다. 세속적 역사학의 일차적 관심이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느냐?”(What happened really?)에 집중되는 것처럼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시대의 역사 비평적 성서연구에서는 주로 성서에 보도된 사건들이 보도된 그대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확증하려는 역사 실증주의적 관심이 지배했다. 그래서 이당시의 성서비평학은 역사비평에만 머물렀고 그 다음에는 윤리적 해석, 낭만주의적 해석, 식민주의적 해석과 같이 근대적 시대사조를 따라갔다. 여기서 학문에게 다 뺏긴 신앙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소위 [[경건주의]]자들과 [[낭만주의]]자들이었다. 대표적인 사람은 장로교의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감리교의 [[존 웨슬리]], 루터교의 [[필립 슈페너]]. [[프리드리히 슐라이에르마허]]가 18세기에 당면했던 시대는 더이상의 형이상학과 신론에 더이상 기대를 할 수 없었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의 생존을 위해 근대철학이 종교에 제시한 의문들을 반박하고, 동시에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법학, 철학에서 사용해왔던 해석의 도구들, 즉 문법적 해석과 비유적 해석의 전통에 의문을 가졌다. 그러한 방식의 해석은 그들의 논리를 보완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특수 해석학에 가까우므로 다른 이들이 볼때 '''글쎄올시다'''와 같은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보편적인 이성(당시의 칸트를 의식한듯 하다)의 관점에서는 옳지 못한 방식이다. 따라서 보편적인 해석학의 토대를 마련하고 모델을 제시한다면 계몽주의의 비판과 함께 종교의 교리화된 경전해석에 대한 [[안티테제]]가 될 수 있을거라 믿었다. 해석학의 역사에서 특히 슐라이에르마허의 보편적 해석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전의 신학적 해석학이나 문헌학적 해석학과 같은 해석학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지반에서 해석과 이해의 문제를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루터에 이르기까지 성서 해석학의 방법으로 널리 활용되었던 비유적인 해석 방식[* 이를 모형론적, 비유론적 해석이라고 한다]에 슐라이에르마허는 회의를 품게 되었다. 비유적 해석은 텍스트의 본래적 의미 이외에 비본래적 의미를 받아들이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만인을 위해 쓰인 성서를 더 이상 신앙과 은총이 아니라 문법적이고 심리적으로 해석할 필요성을 절감한 슐라이어마허는 이전의 전통과 동시대인들과의 활발한 지적 교류를 통하여 해석학과 비판의 체계를 수립하게 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B9%8C%ED%97%AC%EB%A6%84_%EB%94%9C%ED%83%80%EC%9D%B4]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하면 해석은 하나의 구성 과정이다. 구성은 규칙(Regeln)을 잘 적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해석자의 재능(Talent)에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해석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문법적 해석이다. 이것은 저자의 언어 영역권 안에서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과 단어의 의미는 전체적인 문맥(Kontext)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배후에 깔고 있다. 텍스트의 해석에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심리적 해석은 저자의 기본 생각과 본래 의도에 비추어 텍스트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요청이다. 저자에게서 우리는 자아, 품위, 자율, 자유, 자발성과 같은 심리적인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해석자의 예감(Divination)은 해석자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의 심리적 상태 파악은 물론 저자의 전체적 저술에 비추어 하나의 작품을 통찰함으로써 이해를 촉진시킬 수 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저자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한 것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근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시대의 성서비평학 연구는 성서를 교회의 전통과 권위, 그리고 교리로부터 해방시켜 하나의 세속적 문서를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탐구하는 것을 뜻했다. 이러한 연구방법의 맹아는 15·16세기의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에서 희랍·로마의 고전적 문헌을 연구하기 시작하는 데서 생겨났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성서 자체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정면으로 대립시킴으로써 다음 세기에 있어서 성서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촉진하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사회 변혁의 주체로 부상한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자로서 지식인들이 교회의 권위로부터 해방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당시 이 방법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1870년 제1차바티칸 종교회의를 통해서 역사 비평적 방법을 공적으로 금지시켰다. 위키러들은 여기서 “성서 연구”와 “성서 해석”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성서연구는 성서를 사료(史料)로 하여 그 안에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언급된 역사적 사항들을 연구하거나 성서 문서의 성립과 관련된 인물들 및 시대적 사정들을 규명하는 작업이라 한다면, 성서해석은 성서의 본문을 어떤 의미 내용이 담겨 있는 그릇으로취급하여 그 속에서부터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를 끌어내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위의 "성서 연구"와 "성서 해석"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해가능한 범위에서 해석을 시도했다. 위의 출애굽, 여호수아 사건을 그저 후대의 신화적 삽입, 고대 근동 신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문학적 색깔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강조했던 이성은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을 촉발시키면서[* 이게 어떻게 세계대전과 연관이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사람들은 관련책들을 살펴보라. 다 성서를 인간적으로 해석하여(특히 창세기의 "땅을 정복하라", "노아가 저주한 함 민족이 지금의 아프리카 흑인들이다"의 해석에 따라 자연스레 생긴 제국주의가 그러하다) 생긴 결과이다.] 신학적 해석이 없는 성서비평학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 신학적 해석학 === 신학적 해석학은 성서비평학의 공허한 비평을 비판하고 등장한 안티테제이다. 자세한 내막은 [[신정통주의]] 항목 참조. 흔히 말하는 신학적 해석학은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__이후에__ 만들어진 [[해석학|보편 해석학]], 일반적으로 __철학적 해석학__이라고 불리는 것에 기존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의 안티테제로 나타난 '''신학의 관점'''에서 해석학을 다루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학은 [[신정통주의]], 여성신학, [[해방신학]], 신스콜라주의 등등 포스트모더니즘의 태동과 함께 등장한 신학들과 드물지만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는 (구)정통주의와 [[복음주의]]계열들도 포함한 것이다. 임의적으로 붙인 것이므로 [[수정바람]].] 위의 성서비평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신학적으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용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서 신학적이라 하면 철학, 기독교의 전통, 기독교적 체험, 그리고 성경의 원리까지 포함하여 해석학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신학적 해석학은 성경 해석학을 보필하고 세워주며, 필요에 따라서는 성서 해석학을 검증하는 역할도 한다. [[모더니즘]]은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종말]]을 고하고 자유주의 신학 전통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19세기에 출현했던 자유주의적 성경주석과 신학의 역사비평적 접근은 급진적인 정치적, 과학적 도전들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상에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자주 사용되는 비유로 "어항의 물고기"가 있다. 옛날 어느 한 어항에 물고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고기가 어떻게 살아움직이는지 신기해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물고기를 만져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옛날부터 사람들은 그 물고기를 함부로 손대었다간 저주를 받고 죽을 것이라고 말했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섣불리 만질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르침은 옛말이 되었고 용기를 낸 몇몇 학자들이 물고기를 어항에서 꺼내어 해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물고기가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알게되었다. 물고기에게는 부레가 있었고, 아가미가 있었고, 지느러미가 있었기 때문에 물에서 헤엄쳤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물고기를 분해해놓고 보니 이 물고기는 더이상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고심하던 한 학자가 나타나 말했다. "우리 이 물고기를 봉합합시다" 그래서 물고기를 봉합하고 다시 어항에 넣으니 물고기가 다시 살아 움직였다. 바로 이 물고기는 성경이고 학자들은 역사비평과 양식비평을 했던 성서학자들이다. 책의 "삶의 자리"를 찾기 위해 성서를 찢어놓았더니 성서를 죽였다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이들의 제자들은 어떻게 이 기록들이 살아남아 "책의 자리"에 놓여졌는지에 주목한 것이다. 마치 "축구 경기장의 응원석에서 온통 하얀 팻말을 든 사람들 중에 검은 팻말을 든 사람들을 보고 쟤들 왜 저기 있냐 했었는데 멀리서 바라보니 한마리의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흰 팻말은 호랑이의 눈이었고 검은 팻말은 호랑이의 눈동자였던 것이다."의 비유처럼 책은 편집이 완성된 하나의 책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신학자들은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 실존주의적 접근방법을 하나의 혹실한 새로운 성찰방법으로 여겨 이를 환영했다. 신학에 있어서 하이데거의 영향은 세 가지 측면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진정한 삶에 대한 찬성 또는 반대를 결정할 수 있는 개인의 실존적 가능성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설명은 루돌프 불트만과 다른 신학자들에게 이 실존적 상황에 상응하는 새로운 신학적 강령들을 발전시키도록 촉구했다. 둘째, 언어에 대한 그의 성찰은 신학에 있어서 하이데거를 재차 환영케 했다. "신해석학"이 그것이다. 셋째, 인간존재의 해석학적 조건에 대한 하이데거의 총체적 통찰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올바른 방법에 대한 계속적인 신학적 성찰에 영향을 주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텍스트와 종교적 문헌을 오로지 역사적으로만 다루는 방법을 초월한 인간학적 토대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성경 메세지와 이 세상의 재해석된 인간의 현존재 사이의 새로운 창조적인 종합이 가능할 것처럼 보였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의 실존적인 요구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모든 신학자들이 같은 열정으로 공유한 것은 아니다. 독일계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자신의 동료들이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신학적으로 수용하는 데 반하여 자신은 그것을 거부했다. 그는 신학과 철학 사이의 긴밀한 연합이 신학에 심각한 위험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정경비평을 출발점으로,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친 문서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정경으로서 성서를 바라보게 되었고, 소회 통시적 접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비평방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저자와 배경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긴 역사를 거친 책을 보는 독자의 관점이 중시되는데,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해석하는 것이 필수가 되면서 현대철학, 즉 [[실존주의]]와 [[현상학]], 철학적 [[해석학]], [[언어학]], [[행동주의]]연구방법을 모두 차용하는 비평방법들이 등장하게 된다. 따라서 성서해석학은 다시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과거의 공시적 접근, 역사적 해석(historical interpretation)이며, 다른 하나는 이른바 통시적 접근, '''신학적 해석(theological interpretation)'''이다. 역사적 해석은 그때 거기서 그의 독자들을 향하여 말하려고 했던 바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라면, 신학적 해석은 루돌프 불트만의 의견으로 '''그 본문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를 말해주는가, 즉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오의|구속력 있는 신적인 건넴말(Anrede)로 들려오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반대로 한스 프라이와 같이 '''우리가 어떻게 그 삶을 따르고 실천함으로 그 이야기에 속할 수 있는지'''를 고심해야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성서비평학]]에서의 성서해석 또는 주석은 역사적 해석에 국한된다. 이러한 해석과 주석은 어차피 평신도를 대상으로하는 설교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요소이다.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의미가 없다. 들려줘도 '어쩌라고'라는 냉소적인 말밖에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독자들은 '지금 당장 나에게' 말을 거는 계시만이 중요하다. === 그렇다면 바람직한 성서 해석학은 무엇인가? ===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예수천국 불신지옥,version=393)] [youtube(A1s0NnzRBxE)] 참고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해당 내용으로 다루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한신대학교 계열 신학교수를 인터뷰했다.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 강도사님들이 설교하기 전에 참고하는 성서 주석은 계몽주의 시대 부터 '''성서 고고학'''에게 입양되어 역사적, 문헌적, 편집적, 언어적 비평으로 각주와 미주 폭격(...)을 당한 작품이다. 이때 동반되어 나타난 영역이 [[역사적 예수]]이다. 그러나 [[신정통주의]]자들이 등장해 계시와 일반역사의 절대적 차이를 주장하게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예수연구가 흐지부지되자 성서 주석서의 형태는 근대의 문서비평 형태에서 [[신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아 역사비평은 살린채 계시를(크게 신화적 예수이해, 교회시대의 성경집필형식, 설교자들의 성경연구방법 등을 일컫는다.)돕는 참고서의 성격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는 위의 주석서들을 주로 연구하고 집필한 유럽의 개신교보다 압도적으로 미국의 개신교의 영향을 받았기에 주석서들의 용법에 대해서는 미국의 방식을 답습하게 되었다. 즉 '''성서무오설과 같은 근본주의 개신교의 교리를 답습함으로 위의 역사비평을 싸그리 무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예배예식에서도 드러나는데, 한국의 개신교에서 흔히 드리는 [[예배]]의 형식은 19세기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드려진 간소한 예배형식, 곧 [[변경예배]]에서 대부분 가져온 것이다. 설교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것도 변경예배의 영향이며, 유럽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의 보수적인 성서관, 변경예배로 인한 목사들의 설교 비중 상승 -> 목사들의 권위의식의 상승 -> 마틴 루터가 강조했던 만인사제설의 실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본 항목이 해석학이기에 여러 성례전에 대해서는 많이 생략한채 기술을 하였으므로 이러한 배경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많은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은 [[삽질|예배의 변화로 해석의 중요함이 증가한 것을 간과하고 주석만 연구하다가]] [[용두사미|끝맺음이]] 기존 변경예배의 흔한 모습인 '''[[기복신앙|기복주의]]'''나 '''[[신사도 운동|은사주의]]'''로 빠지게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옛날 옛적에|위의]]. [[중세|4중적 의미의 해석]]. [[십자군 전쟁|을]]. [[21세기|지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시대]]. [[포스트모더니즘|에]] . [[기복신앙|계속]]. [[예수쟁이/사건사고|써먹는]]. [[개독교|분들]]. [[10/40 창|이]]. [[방언|아직도]]. [[인터콥|전국에]]. [[영적전쟁|지천에]]. [[땅밟기|계신다.]]''' '''이제부터는 주석서만 보고 "이렇게 해야지"하면 큰일나고, 신학적 입장을 올바르게 정하고, 예배예식을 올바르게 정하고, 그에 맞게 설교비중을 줄이는 대신 성만찬을 강조하던가 예식을 다듬던가 해야되는 시대가 되었다.'''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그런데 높으신 분들은 그걸 몰라요.]]''' 신학적 해석학은 좀 더 철학적이며 기존의 신학사상과 신학자들의 관점들을 많이 고찰한다. 그리고 신학적 해석학 역시 성경 해석학에게 검증되고 교회 공동체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신학적 해석학은 성경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주석학적인 원리를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 타당성은 약화 된다. 즉 주석서를 한개만 보면 안되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고 생각도 해보고, 학자들의 생각도 보고, 성서의 원저자는 뭐라고 생각하고 썼는지도 연구해보고, 역사는 뭐라고 하는 찾아보고, 이게 진짜 하나님이 하신 말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전쟁의 정당성을 위한 삽입인지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기본적인 규칙들을 준수하고 풍유적 해석학, 낭만주의적 해석학, 실존주의적 해석학, 현상학적 해석학, 존재론적 해석학, 사회비평 해석학, 민중신학의 해석학 등 현재 존재하는 해석학 중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서관에 책 찾듯이 뒤져가면서 해야한다. --이렇게 보니 목사님이 존경스럽다-- --근데 아무도 이렇게 안하잖아-- 위의 말이 너무 어렵다는 위키러들을 위해 첨언하고자 한다. [[신정통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그의 유명한 논문 “전제 없는 주석은 가능한가?” 라는 논문에서 해석자가 아무런 전제 없이 백지 상태에서 성서를 객관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는 [[딜타이]](Wilhelm Dilthey),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G. Gadamer) 등 존재론적 해석학의 대가들이 주장하는 바이며 신학적 해석학에서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__성서를 해석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백지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입장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의식하여야 한다.__ 이는 임의적 해석이나, 알레고리적 해석이 정당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해석은 누구나 주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특성상 자신의 관심이나 이해된 자기 없이 백지 상태로 본문 앞에 설 수 없음을 의식하는 것은 오히려 해석자의 자리에 대한 의식이며, 독단으로 빠지는 해석을 방지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딘가에 아무런 전제도 없이 순수하고 객관적인 사실주의 입장에서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하는 나이브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 즉 '''성서에 대한 가치중립적 읽기란 가능하지 않음'''을 철저히 의식하는 것이다. 이는 [[C.S.루이스]]가 자신의 저작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이며, 칼 바르트가 강조하는 [[신정통주의]]의 모토이다. 자신의 해석학적 입장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적 논리, 부르주아적 역사사관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단히 반성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국 교회에서는, [[기복신앙|자본주의적 욕심을 추구하거나]] [[조용기|적극적 사고방식을 갖는 것]]이 성서의 핵심인 양 선전하는 설교가 많이 행해지고 있다. [[근본주의|미국을 선망하고 미국시민의 상태가 예수를 믿어 복 받은 이상적 모델인 양 제시하고]] [[뭐하는 지거리야|제3세계,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가난이나 재난을 겪는 나라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이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는 당장 멀리갈 필요도 없이 [[제1차세계대전]]과 [[제2차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되었다. 따라서 바람직한 해석학은 성서 본문 속으로 해석자의 주관적 욕구를 제멋대로 집어넣는 자의적(恣意的) 해석이 아니라 성서 본문 속에 담겨 있는 본래적 약속을 바르게 끌어내는 해석이다. --근데 이렇게 열심히 적고나서 보니 마지막 문장에서 왜 안구에서 습기가 차는 지 모르겠다-- === 관련 문서 === * [[역사적 예수]] * [[성서비평학]] * [[유신론적 진화론]] * [[성경/논란]] * [[신정통주의]] * [[성서무오설]] [[분류:학문]][[분류:해석학]][[분류:철학]][[분류:종교]]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틀:종교 (원본 보기) 해석학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