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관련 항목: [[역사 관련 정보]] [[분류:연도]] ||||||||||<tablealign=center><:><#A9A9A9> {{{#000000 '''연도구분'''}}} || ||<:>[[1893년]] || {{{+1 ← }}} ||<#A9A9A9><:>{{{#000000 '''1894년'''}}} || {{{+1 → }}} ||<:>[[1895년]] || ||||||||||<#808080><:>{{{#09081c '''연대구분'''}}} || ||<:>[[1880년대]] || {{{+1 ← }}} ||<#808080><:>[[1890년대|{{{#09081c '''1890년대'''}}}]] || {{{+1 → }}} ||<:>[[1900년대]] || ||||||||||<#778899><:>{{{#C4B73B '''세기구분'''}}} || ||<:>[[18세기]] || {{{+1 ← }}} ||<#778899><:>[[19세기|{{{#C4B73B '''19세기'''}}}]] || {{{+1 → }}} ||<:>[[20세기]] || ||<-5><#2F4F4F><:>{{{#FFD700 '''밀레니엄구분'''}}} || ||<:>[[제1천년기]] || {{{+1 ← }}} ||<#2F4F4F><:>[[제2천년기|{{{#FFD700 '''제2천년기'''}}}]] || {{{+1 → }}} ||<:>[[제3천년기]] || ||<tablealign=right><-2><:><#CBB8EE>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서력기원|서기]] || 1894년 || || [[단군기원|단기]] || 4227년 || || [[불기]] || 2438년 || || [[황기]] || 2554년 || || [[이슬람력]] || 1312년 ~ 1313년 || || [[갑자|간지]] || [[계사]]년 ~ [[갑오]]년 || || [[조선]] || [[고종(대한제국)|고종]] 31년 || || [[청]] || [[광서]] 20년 || || [[일본]] || [[메이지]] 27년 || || [[히브리력]] || 5654년 ~ 5655년 || || [[베트남]] || [[타인타이]] 6년 || [목차] == 개요 == '''19세기 한국 역사에서 가장 길었던 한 해''' 새해 벽두에 전라도 일개 고을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가 한국사는 물론 동아시아사, 나아가 세계사를 뒤흔들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악정에 항거하여 일어난 농민 봉기는 [[갑오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에 [[청나라]]와 [[일본]]이 개입하면서 [[청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그나마 명목상으로 가지고 있던 동아시아 중심 국가의 지위를 상실하고 [[국가 막장 테크]]를 타게 되었으며, 일본은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여 주변국에 대한 공격적인 침략 정책에 열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조선의 운명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이 해를 기점으로 동아시아의 정세는 결정적으로 뒤바뀌게 되었고, 다음 갑오년([[1954년]])이 오기까지 전무후무한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한편 조선은 이 해에 [[갑오개혁]]을 시행하여 1392년 개국 이래 커더런 변경 없이 유지되어 온 국가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근대 국가로 나아갈 첫 발을 내딛게 된다(물른 필요에 의한 자발적인 개혁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에 의한 타율적인 개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 사건 == === 실제 === * [[1월 4일]] : [[프랑스]]와 [[러시아 제국|러시아]]가 [[독일 제국|독일]]에 대항하는 군사 동맹을 체결했다. * [[2월 14일]](1월 9일) : 당초 익산 군수로 전출될 예정이었던 [[조병갑]]이 고부 군수로 다시 부임하였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조병갑의 가혹한 착취에 시달렸던 고부 농민들에게 날벼락과 같은 일이었고, [[전봉준]]은 지난해 11월에 계획했다가 보류시켰던 봉기를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 [[2월 15일]](1월 10일) : 고부 민란이 일어났다. 봉기한 농민들이 고부 관아를 점거하였으나, 조병갑은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 [[3월 12일]](2월 15일) : 조정에서 고부 민란 수습책으로 조병갑을 경질하고 용안 현감 박원명을 신임 고부 군수로 임명하고 장흥 부사 [[이용태]]를 안핵사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안핵사 이용태는 동학도와 봉기 가담자들을 탄압하였고, 이러한 탄압은 결국 2차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 [[3월 25일]](2월 19일) : 제2차 고부 민란이 일어났다. * [[3월 28일]](2월 22일) : [[갑신정변]]의 주역 가운데 하나인 [[김옥균]]이 [[중국]] [[상하이]]에서 [[암살]]되었다. * [[3월 31일]](2월 25일) : 전라도 순천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 [[4월 3일]](2월28일) : 전라도 영광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 [[4월 6일]](3월 1일) : 전봉준이 이끄는 수백의 농민군이 줄포(현 부안군 줄포면) 전운소를 습격하여 세고(稅庫)를 파괴하였다. * [[4월 8일]](3월 3일) : 신임 고부 군수 박원명이 부임하여 수습책을 발표하자, 농민군이 해산했다. * [[4월 11일]] : [[영국]]이 [[우간다]]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 [[4월 16일]](3월 11일) : 충청도 황간, 영동, 옥천, 보은 등지의 동학도들이 봉기하였다. * [[4월 17일]](3월 12일) : 전라도 금산[* 1963년 이전까지는 전라도였다.]에서 동학도들이 봉기하였다. * [[4월 21일]](3월 16일) : 농민군, 전라도 무장현 동음치면(현 고창군 공음면)에 속속 집결하기 시작했다. * [[4월 25일]](3월 20일) : 무장에 집결한 농민군이 ‘무장 포고문’을 발표하고 봉기하였다(무장기포). * [[4월 28일]](3월 23일) : 농민군이 고창, 흥덕을 거쳐 고부 관아를 점거하였다. * [[4월 30일]](3월 25일) : 농민군, 고부군 백산(현 부안군 백산면)에 집결하여 백산창의대소를 발표, 전봉준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지도부를 구성하여 조직적인 봉기에 나섰다. * [[5월 3일]](3월 28일) : 농민군이 태인 관아를 점거했다. * [[5월 6일]](4월 2일) : 조정, 신임 전라 병사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고, 장위영, 통위영, 서영의 병력으로 구성된 토벌군을 파견키로 했다. * [[5월 7일]](4월 3일) : 진산(현 금산군 진산면)에서 봉기한 농민군이 유림 및 보부상으로 구성된 민보군의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었다. * [[5월 8일]](4월 4일) * 농민군이 부안 관아를 점거했다. *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이 제물포를 출발했다. * [[5월 10일]](4월 6일) * 농민군, 황토현(현 정읍시 덕천면)에서 전라 감영군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황토현 전투). *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 선발대가 군산에 도착했다. * [[5월 11일]](4월 7일) * 농민군이 정읍 관아를 점거했다. *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 선발대가 전주에 도착했다. * 전라도 동복(현 화순군 동복면)에서 동학도들이 관아를 습격했다. * [[5월 12일]](4월 8일) * 농민군이 고창 관아를 점거했다. * 경군 본대가 군산에 도착했다. * [[5월 13일]](4월 9일) * 농민군이 무장 관아를 점거했다. 이후 16일까지 농민군은 무장에 머물렀다. * 경군과 전라 감영군, 보부상대로 구성된 토벌대가 홍계훈의 인솔 하에 전주를 출발, 농민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 전라도 옥과(현 곡성군 옥과면)에서 봉기한 농민군이 본진과 합류하기 위해 정읍으로 향했다. * [[5월 14일]](4월 10일) : 충청도 회덕(현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봉기한 농민군이 충청 감영군에 진압되었다. * [[5월 16일]](4월 12일) * 농민군이 영광 관아를 점거했다. 이후 19일까지 농민군은 영광에 머물렀다. * 홍계훈, 병력 증원을 위해 전주로 돌아갔다. * 농민군 지도부, 대적시 약속 4항과 12조 계군호령을 제정, 반포하였다. * [[5월 18일]](4월 14일) : 농민군, 법성 구수포에 정박 중인 한양호를 나포, 일본인 선장과 전운국 위원인 김용덕 등을 체포하고 돈을 빼앗은 다음 일본인 선장을 석방시켰다. * [[5월 19일]](4월 15일) : 조정에서 제2차 고부 민란의 원인을 제공한 안핵사 이용태를 파직시켰다. * [[5월 20일]](4월 16일) * 농민군이 병력을 나누어 본대는 영광에 남고 별대는 함평으로 진군했다. 함평에서 수성군의 저항을 물리치고 함평 관아를 점거했다. * 전봉준, 창의소 명의의 통문을 홍계훈 앞으로 보내 자신들이 봉기한 목적을 밝혔다. * [[5월 22일]](4월 18일) * 함평 주둔 농민군이 나주부의 공형(公兄)에게 봉기의 목적을 알리는 통문을 보냈다. * 조정에서 전라 감사 [[김문현]]을 경질하고 외무협판 [[김학진]]을 후임 전라 감사로 임명하였다. * 조선 주재 일본 대리공사 [[스기무라 후카시]][* 휴가차 본국에 일시 귀국한 오도리 가이스케를 대신하고 있었다.]가 조선이 청에 원병을 청할 가능성이 있음을 본국에 보고했다. * [[5월 23일]](4월 19일) : 함평 주둔 농민군이 8개 조항의 폐정 개혁안을 홍계훈에게 전달했다. 이에 나주 목사 민종렬이 홍계훈을 대신하여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답변을 전달했다. * [[5월 25일]](4월 21일) : 함평 주둔 농민군이 장성으로 이동하여 월평리(현 장성군 황룡면)에 진을 쳤다. * [[5월 26일]](4월 22일) :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본진이 장성으로 이동했다. * [[5월 27일]](4월 23일) : 농민군, 장성 황룡촌에서 경군과 교전을 벌여 승리하였다(황룡촌 전투). 경군을 물리친 농민군은 방향을 돌려 전주성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 [[5월 29일]](4월 25일) : 농민군이 정읍, 태인을 거쳐, 금구 원평(현 김제시 금산면)에 이르렀다. 원평에서 농민군은 고종의 윤음을 가지고 온 이효응, 배은환을 살해했다. * [[5월 31일]](4월 27일) * 농민군이 전주성에 입성했다. * 일본 [[중의원]]에서 [[이토 히로부미]]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통과되었다. * [[6월 1일]](4월 28일) *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이 완산에 진을 치고 전주성을 포위, 압박을 개시했다. * 농민군이 전주성 남문으로 나와 경군과 교전을 벌였다가 격퇴당하고 성 안으로 철수했다. * [[민영준]]이 조선 주제 청나라 공사인 [[원세개]]와 청군 출병 문제를 협의했다. * [[6월 2일]](4월 29일) * 농민군이 전주성 북문으로 나와 경군과 교전을 벌였다가 경군의 포격을 받고 성 안으로 철수했다. * 조정에서 시원임대신회의를 열고 청군 파병 요청을 논의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이미 사전에 청군 차병(借兵)을 요청하는 외교 공문을 원세개를 통해 청나라에 전달해 놓고 있었다. * 일본, 조선이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다는 스기무라의 보고를 접수한 즉시 임시 각료 회의를 열고 중의원 해산 및 조선에 혼성 여단 파병을 결정하였다. * [[6월 4일]](5월 1일) : 농민군이 전주성 남문으로 나와 경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고 성 안으로 철수하였다. * [[6월 5일]](5월 2일) : 일본, 대본영을 설치하고 [[히로시마]]에 주둔하고 있던 제5사단에 동원령을 내렸다. 일본군 선발대 500명이 [[오도리 가이스케]] 조선 주제 일본 공사와 함께 요코스카 항을 출항하였다. * [[6월 6일]](5월 3일) : 농민군이 전주성 북문으로 나와 경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이 전투에서 전봉준은 왼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 [[6월 7일]](5월 4일) * 농민군이 홍계훈에게 27개 조의 폐정 개혁안과 함께 귀순 의사를 밝히는 소지를 전달했다. * 조선 주재 일본 대리공사인 스기무라가 조선 측에 일본의 조선 출병을 통보했다. * [[6월 8일]](5월 5일) * 농민군 측의 제안에 홍계훈은 농민군이 자진하여 성문을 열고 신속히 해산하면 안전한 귀향을 보장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나, 폐정 개혁안에 대해서는 언질을 주지 않았다. * 일본, 청나라에 조선 출병을 통보했다. * 청나라 [[섭사성]]이 지휘하는 청군 선발대가 충청도 아산만에 당도했다. * [[6월 11일]](5월 8일) : 홍계훈, 농민군 측에 폐정 개혁안을 왕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철수하였고, 농민군이 철수한 후 전주성을 접수한 홍계훈은 각 읍에 영을 내려 농민군이 귀환하는 대로 잡아들일 것을 명령했다. * [[6월 12일]](5월 9일) * 신임 전라 감사 김학진과 [[순변사]] [[이원회]]가 전주에 도착했다. * 일본군 혼성 여단 선발대가 제물포에 도착했다. === 가상 === * 게임 [[Fallen London]]의 배경이 되는 해이다. == 탄생 == === 실존인물 === * [[1월 8일]]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 [[2월 1일]] - [[존 포드]] : [[미국]]의 [[영화 감독]] * [[3월 30일]] -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일류신]] : [[소련]]의 [[항공기]] 기술자 * [[4월 17일]] - [[니키타 흐루쇼프]] * [[4월 26일]] - [[루돌프 헤스]] : [[나치 독일]]의 [[정치인]], 부총통 * [[5월 21일]] - [[조병옥]]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경찰]], [[정치가]] * [[6월 9일]] - [[신익희]] :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 * [[6월 23일]] - [[에드워드 8세]] : [[영국]]의 [[국왕]] * [[6월 25일]] - [[가브릴로 프린치프]] :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 * [[7월 26일]] - [[올더스 헉슬리]] * [[9월 15일]] - [[장 르누아르]] * [[9월 19일]] - [[순정효황후 윤씨]] * [[10월 27일]] - [[프리츠 자우켈]] * [[11월 27일]] - [[마쓰시타 코노스케]] : [[일본]]의 [[기업인]] * [[12월 10일]] - [[장덕수]] : [[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 가상인물 === == 사망 == === 실존인물 === * [[1월 1일]] - [[하인리히 루돌프 헤르츠]] : [[독일]]의 [[과학자]] * [[3월 28일]] - [[김옥균]] : [[조선]]의 혁명가 * [[11월 1일]] - [[알렉산드르 3세]] : [[러시아 제국]]의 [[차르]] * [[12월 3일]]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영국]]의 [[소설가]] === 가상인물 === 1894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