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관련문서 : [[올림픽]] ||||||||||<tablealign=center><#FFFFFF><table bordercolor=#E6E6E6><tablewidth=100%><:>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9/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203px-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png?width=35 '''역대 하계올림픽''' https://pixabay.com/static/uploads/photo/2012/04/12/19/21/olive-30264_960_720.png?width=25 ,,'''(Citius, Altius, Fortius)''',,|| ||<width=30%><:> 16회||<:> {{{+1 → }}} ||<:><width=30%> 17회 ||<:> {{{+1 → }}} ||<:><width=30%>18회 || ||<:> [[1956 멜버른 올림픽]] ||<:> {{{+1 → }}} ||<:><#DCDCDC>'''1960 로마 올림픽''' ||<:> {{{+1 → }}} ||<:>[[1964 도쿄 올림픽]]|| [목차] == 개요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1/11/1960_Summer_Olympics_logo.png 개최날짜 : [[1960년]] 8월 25일 ~ 9월 11일 개최장소 : [[이탈리아]] [[로마]] 본디 [[1908년]] 올림픽은 로마에서 개최하기로 되어있었으나, [[1906년]]에 [[베수비오 화산]]이 활동해버리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개최권을 [[런던]]에게 넘겨서 [[1908 런던 올림픽]]이 개최.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올림픽 개최권을 다시 얻어서 개최한 올림픽 게임이다. 경쟁도시로는 [[스위스]]의 [[로잔]]과 [[미국]]의 [[디트로이트]] 등이 있었다. || 국가 || 도시 || 1차 || 2차 || 3차 || || '''[[이탈리아]]''' || '''[[로마]]''' || '''15''' || '''26''' || '''35''' || || [[스위스]] || [[로잔]] || 14 || 21 || 24 || || [[미국]] || [[디트로이트]] || 6 || 11 || - || || [[헝가리]] || [[부다페스트]] || 8 || 1 || - || || [[벨기에]] || [[브뤼셀]] || 6 || - || - || || [[멕시코]] || [[멕시코시티]] || 6 || - || - || || [[일본]] || [[도쿄]] || 1 || - || - || == 특징 == [[소련]]에서 여자 [[체조]]선수들이 18개의 메달중에서 총 15개를 쓸어가는 기염을 토해냈다[* 어마어마한 수치다. 단체전은 1개국 1팀이니까 메달 2개는 못 따는 거고, 그거 빼고 나면 딱 한 개를 다른 나라에 내줬다는 거. 그런데 그 한 개가 바로 금메달. 결국 소련이 금메달 싹쓸이는 못했다.]. --메달밭…?-- 남자부까지 합친다면 소련이 체조에서 메달을 총 26개(금 10, 은 8, 동 8)를 쓸어가버려서[* 이 수치는 당시 소련 총 메달 수(103개)의 1/5이 넘어가는 수치이다. 남자부 금메달은 일본과 소련이 하나 빼고 정확히 나눠가졌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핀란드가. 단, 공동 1위가 있어서 실제 금메달 수는 세부종목 수보다 많았다.] [* 승승장구에서 손연재양이 말하기를 러시아 부모들이 소녀들에게 체조를 시키는건 한국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태권도를 시키는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였다.] 체조에서 소련이 강하다는것을 입증시켜주었다. 또 하나의 진기한 기록이 있었는데,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완주'''하여 '''금메달'''을 차지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 [[흑인]] 최초로 메달을 딴 선수이기 때문에 에티오피아에서 나중에 [[영웅]]으로 추앙받았었다. 아베베는 이 다음 대회인 [[1964 도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고, 그 다음 올림픽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도 출전했는데 이 때는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했다. 멕시코 올림픽 당시 다른 마라토너들은 당연히 올림픽 마라톤 2연패의 아베베를 의식하지 않고 달릴 순 없었는데, 실은 이때 아베베의 컨디션이 좋지 못해 에티오피아는 [[마모 웰데]]를 우승주자로 밀고 있었고, 아베베는 다른 선수들을 '''낚기 위해''' 출전했던 것. 결국 에티오피아는 올림픽 마라톤을 3연패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는 국가가 된다. --[[계획대로]]-- 이 대회의 [[복싱]]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딴 캐시어스 마셸러스 클레이 2세는 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을 하여서 활동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뒤에 바로 [[프로]]로 데뷔를 하였다고. 차기 대회 개최국이던 일본은 금메달 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7개를 따내며 다음 대회에서의 선전을 예고하였다. [[한국]] 대표팀도 9개 종목에 36명의 선수단을 내보내며 참가를 하였지만 이 대회에서는 '''어떠한 메달도 따지 못했다'''. 그나마 기대할 만한 종목이었던 마라톤과 복싱에서의 부진이 매우 컸다. 아마도 앞으로도 한국 역사상 하계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따지 못한 대회로 기록이 될 듯. 당시 단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던 [[손기정]] 옹이 사죄의 의미로 머리를 [[삭발]]하고 귀국하였다. 메달을 못딴 원인으로는 선수선발과 관리감독을 두고 대한체육회 vs 학교체육회 vs 대한올림픽위원회 3자간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제대로된 준비를 하지 못했던 것이 꼽힌다. 결국 이 대회 이후 대한체육회가 학교체육회를 흡수하고 대한올림픽위원장이 체육회장을 겸임하면서 사실상 조직을 통합하게된다. 또한 [[4.19 혁명]]으로 인한 국내 정치의 혼란도 선수들이 대회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북한]]은 이 올림픽까지 출전하지 못했다. [[분류:하계올림픽]] 1960 로마 올림픽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