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관련문서 : [[올림픽]] ||||||||||<tablealign=center><#FFFFFF><table bordercolor=#E6E6E6><tablewidth=100%><:>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9/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203px-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png?width=35 '''역대 하계올림픽''' https://pixabay.com/static/uploads/photo/2012/04/12/19/21/olive-30264_960_720.png?width=25 ,,'''(Citius, Altius, Fortius)''',,|| ||<width=30%><:> 22회||<:> {{{+1 → }}} ||<:><width=30%>23회 ||<:> {{{+1 → }}} ||<:><width=30%>24회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 {{{+1 → }}} ||<:><#DCDCDC>'''1984 LA 올림픽''' ||<:> {{{+1 → }}} ||<:>[[1988 서울 올림픽]]|| ||<-5><tablealign=center><:><#B22222> ''' [[1984년|{{{#white 1984년}}}]] [[타임(주간지)|{{{#white 타임지}}}]] {{{#white 선정}}} [[올해의 인물|{{{#white 올해의 인물}}}]] ''' || ||<#B22222><-5><:>http://img.timeinc.net/time/magazine/archive/covers/1985/1101850107_400.jpg?width=300 || ||<:> [[로널드 레이건]], [br] [[유리 안드로포프]][br][[올해의 인물/1980년대|1983]]|| → ||<:> '''피터 위버로스''' [br],,(LA 올림픽 조직위원장),,[br][[올해의 인물/1980년대|1984]]|| → ||<:>[[덩샤오핑]][br][[올해의 인물/1980년대|1985]]|| [목차] == 개요 == ||||||<tablealign=right><:> '''Games of the XXIII Olympiad In Los Angeles''' ||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0/0c/1984_Summer_Olympics_logo.svg/210px-1984_Summer_Olympics_logo.svg.png?width=200 || ||||||<:> https://cdn.colorlib.com/wp/wp-content/uploads/sites/2/2014/02/1984-Los-Angelos-Summer-Olympic-Games.jpg?width=300 || ||<:> 대회기간 |||| 1984년 7월 28일 - 8월 12일 || ||<:> 개최국가/도시 |||| [[미국]]/[[로스앤젤레스]] || ||<:> 공식 주제가 |||| Olympic Fanfare and Theme || ||<:> 마스코트 |||| 샘(Sam) || ||<:> 참가국 |||| 140개국 || ||<:> 참가선수 |||| 6,829명[br](남자: 5,263명, 여자: 1,566명) || ||<:> 경기종목 |||| 21개 종목 - 221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로널드 레이건]] || ||<:> 선수 선서 |||| 에드윈 모지스 || ||<:> 심판 선서 |||| 샤론 헤버 || ||<:> 성화 점화 |||| 라퍼 존슨 || ||<:> 주경기장 ||||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 [youtube(MCqUESCoB1w,width=50%)] 한번쯤은 들어본 일이 있을 공식주제가. [youtube(lZD4ezDbbu4,width=50%)] 같은 기간 히트하여 LA 올림픽의 상징곡처럼 여겨지는 Bruce Springsteen의 Born in the USA. == 특징 == '''반쪽 대회 시즌 2''' 1984 LA 올림픽은 딱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모스크바 올림픽 파행에 대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의 보복.[*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고 참가했다. [[루마니아]]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독재자--의 탈 소련 정책에 의해, [[유고슬라비아]]는 비동맹세력의 맹주라는 점에서 소련의 입김을 덜 받는 나라였던지라 LA 올림픽 참가가 가능했다. 그 덕에 이 대회의 금메달 순위에서 [[루마니아]]는 '''2위''', 유고슬라비아는 '''9위'''. 참고로 [[대한민국]]도 이러한 상황에 큰 이익을 봤고, 이 대회를 기점으로 금메달 수가 많아졌다. 루마니아의 경우 아무리 타국의 불참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도 이런 순위는 전무후무. 사실 불참 이유는 다들 보복이라는 거 뻔히 알지만 이들 불참 국가의 공식적 명분은 '선수단 안전보장이 불가능'하다는 것. 일부 아시아 국가들도 소련에 동조, 불참하였는데 이들의 보이코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2년 뒤의 이 나라의 동맹국이 개최한 아시안 게임까지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돈잔치. 참가국 수는 당시까지는 역대 올림픽 최다. 불참국도 적었다. 문제는 불참국들이 주로 소련과 [[동독]]같은 스포츠 강국이라 올림픽 자체를 심심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 문제는 다음 올림픽인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대부분 정도 해소되고, 궁극적으로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완전 해소된다.[* 서울 올림픽에는 [[북한]]과 북한에 동조했던 [[쿠바]], [[에티오피아]](당시 국명은 에티오피아 인민 민주 공화국) 등이 불참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개회식 장소이자 주경기장은 [[1932 LA 올림픽]] 주경기장인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52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흑자를 본 올림픽이다. 8년 전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이 최악의 적자를 보면서 막을 내린 것과 달리, LA 올림픽은 중계권료의 폭등과 다양한 마케팅으로 흑자(250만 불)를 내는데 성공했다. 다만, 이는 올림픽의 지나친 상업화의 시초라는 점에서 오늘날 비판받기도 한다.[* 특히 LA 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던 피터 위버로스는 지나친 상업화를 추구했다는 이유로 관계자, 언론, 팬들로부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리고 그는 올림픽이 끝난 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 커미셔너로 추대된다. 그런데 MLB 커미셔너로서도 역시 똑같은 짓을 했으니... 그러나 위버로스의 올림픽 상업화 노선은 냉전 시대의 올림픽 위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도 많다. LA 올림픽을 개최할 때만 하더라도 이전 대회였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올림픽이 4대륙 올림픽으로 전락 + 제2의 뮌헨 참사를 막기 위한 보안 경비 투자의 증가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내며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없는 살림 쥐어짜면서까지 올림픽을 유치시킬 필요가 있냐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이었다. 서울올림픽 유치전 때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 유치를 망설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의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고, 국가의 위력을 과시하는 쪽으로 변화해가면서 나타난 올림픽의 상업화는 이미 예견된 수순이었다.] [[중화민국|대만]]이 [[1972 뮌헨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복귀했다. 단,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는 쓸 수 없었고, [[중화 타이베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리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처음 하계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LA 올림픽이다.[* 동계는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대회가 처음. 역시 미국이 개최국였다. 대만은 이 때 선수단이 미국까지 갔으나 이런 호칭 문제에 불복하고 불참했다.] 참고로 대만은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다시 자격이 주어졌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보이콧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중국]]도 역시 보이콧에 끼었다. --[[미국]]보다 [[소련]]이 더 미워-- [[대한민국]]은 다음 대회 개최지로서 스포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 전 대회까지 금메달 단 한 개를 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이 번 대회를 통해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전체 10위, 메달수 [[스웨덴]]과 공동 10위)를 차지하면서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또 이후의 선전을 예고하였다. 주로 [[양궁]], [[복싱]], [[레슬링]], [[유도]]에서 거둔 수확이었고,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이 나온 대회이기도 했다. (여자 [[농구]]와 여자 [[핸드볼]])[*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의 여자배구 동메달.] [[미국]]이 금메달 '''83개'''를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는데, 사실 홈그라운드의 이점 + 소련 및 동유럽 불참으로 인한 [[미국]] 쪽 심판의 장난질이 겹친 결과였다. 한국도 복싱에서 많은 피해를 본 편이었다. 플라이급의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김광선이 편파판정으로 1회전 탈락한 사례도 있었으니까. 이 때 이를 간 소련과 동유럽 심판들은 나중에 [[1988 서울 올림픽]] 복싱 박시헌 vs 로이 존스 주니어 판정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즉, 홈그라운드의 이점으로 한국의 박시헌에게 금메달을 준 것이 아니라, 속된 말로 "미국 놈들 엿먹어라" 였던 것이다. 그 발단이 된 것이 바로 이 대회였다. 이 것때문에 제일 피해를 본건 사실상 박시헌... http://www.theimport.co.uk/upload-images/olympic-mascots-sam.jpg?width=500px http://images.visitbeijing.com.cn/20120730/Img214727908.jpg 대회 마스코트인 [[샘]](Sam). [[흰머리수리]]와 [[엉클 샘]]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전 대회 소련과 함께 국가 상징 돋네-- --[[호돌이]]도-- 다음 개최지가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폐막식 때 [[https://youtu.be/ILq5iRNZBY4?t=1h9m48s|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연주되었으며]][* [[그리스]], [[미국]] 국가 다음으로 마지막에 연주되었다. 그리스는 올림픽의 창시국가이자 초기 개최국 자격으로, 미국은 당시 개최국 자격으로, 대한민국은 차기 개최국 자격으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https://youtu.be/ILq5iRNZBY4?t=1h13m24s|올림픽 깃발을 LA 시장으로부터 받아 염보현 서울시장에게 넘겨주었다.]] 직후 시작된 폐막식 초반에 서울 올림픽 로고 및 호돌이가 등장하기도. [* 그런데 잘보면 호돌이의 등장이 참 모양 빠진다. 나오자마자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이때문인지는 몰라도 머리에 있던 상모는 떨어져나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여담으로 여자 육상에서는 마라톤이 처음으로 채택된 대회이며, 한국 마라톤의 영웅 [[1936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옹이 [[성화봉송]] 주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다음에 성화를 넘겨 받은 이가 미국 아시아계 최초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옹이다. 야구 종목도 시범적으로 치러졌다.[* 이 때 참가했던 대표적인 야구선수들은 [[선동열]], [[류중일]], [[강기웅]], [[박노준]], [[이순철]] 등이 있다.] 폐회식때는 독특한 광경이 나오기도 했는데, 바로 폐회식 중 경기장 중앙에 '''UFO가 착륙해 거기서 외계인이 걸어나왔다!''' 물론, UFO와 외계인은 가짜였다. 이는 다 관계자가 설계한 연출로 그 외계인은 관계자가 생각한 외계인의 모습과 얼추 맞아떨어져 외계인 역으로 캐스팅 된 학생[* 그렇다고 그 학생의 얼굴이 외계인이라고 생각될 만큼 특이하게 생겼다는건 아니고, 그 학생의 '''키가 2.44m'''였기 때문이다.]이었다. 어쨌거나 이 외계인이 할 일은 단 하나였는데, 그건 바로 UFO에서 걸어나와 "올림픽이 좋아서 먼 길을 날아왔어요!" 한 마디를 외치는 것이었다(...) [[분류:하계올림픽]] [[분류:1980년대]] [[분류:미국(20세기)]] 1984 LA 올림픽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