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항목 : [[KBO 리그]], [[KBO 한국시리즈]], [[한국프로야구/1991년]] [[분류:야구]] [[분류:스포츠]] ||<-5><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 bordercolor=#151B54><#ffffff><:>https://41.media.tumblr.com/cedb0715d7a03253d0a413d538cdc042/tumblr_o4a4woaUar1sqk8veo6_r1_400.png?width=200[br] '''{{{#151B54 역대}}} [[KBO 한국시리즈|{{{#151B54 KBO 한국시리즈}}}]]''' || ||<:><width=30%> [[1990년 한국시리즈|1990년]] [br] [[LG 트윈스]] ||<:> {{{+1 ←}}} ||<:><width=30%> '''1991년''' [br] '''[[해태 타이거즈]]''' ||<:> {{{+1 →}}} ||<:><width=30%> [[1992년 한국시리즈|1992년]] [br] [[롯데 자이언츠]] || ||<:><tablealign=center> [[파일:attachment/91VVV.jpg]] || ||<:>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2년이면 충분했다.''' || ||<:><#ffffff><tablealign=center>[[파일:wuokE4a.png|width=150]] || ||<:> 1991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br] '''[[해태 타이거즈]]''' || [목차] == 개요 == 1991년 10월 9일에 시작하여 [[스윕|4승 무패]]로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한 시리즈. 전년도에 우승을 하지 못한 것을 바로 되갚으면서 최강자로서 다시 해태가 군림하는 계기가 된 시리즈이자, 1990년대 4차례 통합 우승의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콩그레의 전설은 계속 되었고.~~ 시리즈 MVP는 팀의 주전 포수로서 15타수 7안타 8타점을 친 [[장채근]]. == 엔트리 == === [[해태 타이거즈]] === ||<-3><tablewidth=80%><#f01e23>'''{{{#ffffff 해태 타이거즈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000000><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김응용]]|| ||<#000000><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8명 ||<width=80%>백기성, [[유남호]], [[김봉연]], [[서정환]], [[차영화]], [[이상윤(야구선수)|이상윤]], 김경훈, 조충열 || ||<#000000><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12명 ||<width=80%>[[선동열]], [[김정수(1962)|김정수]], [[신동수]], [[문희수]], [[조계현]], [[이강철]], [[송유석]], [[강태원]] || ||<#000000><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2명 ||<width=80%>[[장채근]], [[정회열]] || ||<#000000><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김성한]], [[한대화]], [[박철우(야구)|박철우]], [[윤재호]], [[홍현우]], 김태완, [[백인호]] || ||<#000000> '''{{{#ffffff 외야수}}}''' ||<width=10%> 6명 ||<width=80%>[[김종모]], [[이순철]], [[이건열]], [[김성규]], --[[이호성]]-- || === [[빙그레 이글스]] === ||<-3><tablewidth=80%><#fe5d0a>'''{{{#ffffff 빙그레 이글스 199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000000><width=10%> '''{{{#ffffff 감독}}}''' ||<width=10%> 1명 ||<width=80%>[[김영덕]]|| ||<#000000><width=10%> '''{{{#ffffff 코치}}}''' ||<width=10%> 5명 ||<width=80%>[[김명성(1946)|김명성]], [[이희수]], [[함학수]], 송일섭, [[황병일]] || ||<#000000><width=10%> '''{{{#ffffff 투수}}}''' ||<width=10%> 9명 ||<width=80%>[[한용덕]], [[한희민]], [[송진우(야구선수)|송진우]], [[이동석(야구선수)|이동석]], [[진정필]], [[김대중(야구)|김대중]], [[장정순]], [[김인권(야구선수)|김인권]], [[김홍명]] || ||<#000000><width=10%> '''{{{#ffffff 포수}}}''' ||<width=10%> 3명 ||<width=80%>[[김상국]], [[양용모]], [[유승안]] || ||<#000000><width=10%> '''{{{#ffffff 내야수}}}''' ||<width=10%> 8명 ||<width=80%>[[강정길]], [[전대영]], [[장종훈]], [[강석천]], [[황대연]], [[조양근]], [[지화동]], [[김용선]] || ||<#000000> '''{{{#ffffff 외야수}}}''' ||<width=10%> 5명 ||<width=80%>[[이정훈(1963년생)|이정훈]], [[이강돈]], [[이중화]], [[임주택]], [[진상봉]] || == 시리즈 전 상황 == 전년인 1990년 간발의 차로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하고, PO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3연패를 당한 후, [[김응용]] 감독은 바로 지리산에 칩거하며 팀의 문제점을 분석했고, 그 결과를 통해 1991년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고 나오며 시즌을 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강해진 전력에 독기를 품은 해태는 1991년에 시즌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했다. 시즌 초반 [[김성한]]의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5월부터 치고 나간 해태는 압도적인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618득점/409실점으로 피타고리안 승률을 이용해 기대승률을 따지면 역대 2위(.695)[* 피타고리안 승률은 팀특점의 제곱 ÷ (팀득점의 제곱 + 팀실점의 제곱)으로 단순히 득점/실점을 따져 기대승률을 구하는 공식. 점수를 많이 이기고 적게 주는 팀이 높은 승률을 올리는 건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기에 그팀이 전력에 비해 얼마나 좋은 승률을 올렸는지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하다.]로 91승을 거둔 00년의 현대보다 더 높았다.[* 1위는 82년 [[삼성 라이온즈]]이며 당시는 한팀이 80게임만을 치뤘다.]~~저 공식이라면 해태는 91년에 88승을 거뒀어야 했다.(무승부를 0.5승으로 치고) 한마디로 더 많은 승수를 거둘 수 있었는데 크게 이기고 작게 지는 비경제적인 야구를 했다는 말~~ 빙그레 역시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최고의 전력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타선은 이 해 35홈런을 친 [[장종훈]]을 위시하여 여전히 강했지만, 마운드의 원투펀치인 [[이상군]]과 [[한희민]]이 그동안 무리한 대가를 치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자리를 [[송진우(야구)|송진우]]와 [[한용덕]]이 등장해 메우고 있었지만, 마운드의 높이에서는 해태에 비해 분명 약했고, 여기세 PO에서 준PO에서 4경기나 치루면서 전력을 소모한 삼성 상대로 생각보다 시원하게 이기지 못하면서 앞선 1989년과는 달리 이 번 시리즈는 해태가 절대 우세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대로 경기가 흘렀다. == 경기 결과 == === 1차전 : 무등산 폭격기 === ||<-999><#f01e23><:> {{{#ffff00 '''1차전 10.09(수) 18:00, 무등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dcdcdc> '''E''' || ||<#f5822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희민]] ||<:> 0 ||<:> 1 ||<:> 1 ||<:> 0 ||<:> 0 ||<:> 0 ||<:> 0 ||<:> 2 ||<:> 0 ||<#dcdcdc><:> '''4''' ||<:> 8 ||<:> 2 || ||<#000000><:> '''[[해태 타이거즈|{{{#ff0000 해태}}}]]''' ||<:> [[선동열]] ||<:> 0 ||<:> 3 ||<:> 1 ||<:> 0 ||<:> 0 ||<:> 2 ||<:> 0 ||<:> 3 ||<:> X ||<#dcdcdc><:> '''9''' ||<:> 6 ||<:> 0 || 중계방송사는 KBS1 TV. 해태는 선발로 [[선동열]]을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희민]]를 내세웠다. 한용덕을 가급적 선동열과 붙이지 않으려는 전략이었는데, 일단 2회초에 강정길의 홈런으로 먼저 앞서기는 했다. 허나 해태는 2회말에 바로 [[한대화]]의 홈런과 [[장채근]]의 적시타로 앞서 나갔고, 그 뒤로도 빙그레가 점수를 만회할 때마다 추가점을 내면서 상대를 압박했다. 사실 빙그레도 4회부터 나온 장정순의 호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그 장정순은 6회에 교체되었고, 그 때 여지없이 2점을 실점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그르쳤다. 빙그레의 타선은 나쁘지 않았다. 찬스도 잘 잡았고, 무엇보다 선동열 상대로 4점을 내면서 끈질기게 공략했다. 만일 정상적으로 [[한용덕]]이 나왔다면, 승부는 정말 알 수 없었던 일. 어쨌거나 해태는 마운드에서 선동열이 9이닝 4실점으로 완투하며 시리즈 첫 승을 따냈다. === 2차전 : 호랑이의 독수리 학살 === ||<-999><#f01e23><:> {{{#ffff00 '''2차전 10.10(목) 18:00, 무등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dcdcdc> '''E''' || ||<#f5822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1 ||<:> 1 ||<:> 0 ||<:> 0 ||<:> 0 ||<:> 0 ||<:> 0 ||<:> 0 ||<:> 0 ||<#dcdcdc><:> '''2''' ||<:> 7 ||<:> 3 || ||<#000000><:> '''[[해태 타이거즈|{{{#ff0000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0 ||<:> 1 ||<:> 1 ||<:> 0 ||<:> 6 ||<:> 1 ||<:> 2 ||<:> 0 ||<:> X ||<#dcdcdc><:> '''11''' ||<:> 13 ||<:> 1 || 중계방송사는 MBC TV. 해태는 선발로 [[김정수(1962)|김정수]]를 내세웠고, 빙그레는 선발로 [[한용덕]]을 내세웠다. 경기 초반 빙그레는 제구 난조를 보인 김정수를 공략하고, [[이건열]]의 실책을 묶어 먼저 2점을 냈다. 하지만 해태는 곧바로 2회말 한 점을 만회한 후, 실책의 당사자인 이건열이 3회말 홈런으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운드도 2회부터 [[이강철]]로 교체하여 더이상 실점을 하지 않았다. 여기에 3회와 4회, [[이순철]]의 잇딴 호수비로 실점 위기를 넘겼다. 승부는 5회말에 갈렸다. 2사 후에 이건열의 역전 홈런을 신호탄으로 제구가 흔들린 한용덕을 공략하면서 한용덕을 마운드에서 끌어 내린다. 후속 투수는 그 해 8승을 거둔 신인 김인권. 그러나 신인으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여기서 해태는 한대화와 장채근의 연속 적시타를 묶어 대거 6득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7회말과 8회말에도 점수를 추가하면서 빙그레를 대파하면서 기선을 확실하게 제압했다. === 3차전 : 완벽했던 송진우, 8회에 무너지다 === ||<-999><#f01e23><:> {{{#ffff00 '''3차전 10.12(토) 14: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dcdcdc> '''E''' || ||<#000000><:> '''[[해태 타이거즈|{{{#ff0000 해태}}}]]''' ||<:> [[문희수]] ||<:> 0 ||<:> 0 ||<:> 0 ||<:> 0 ||<:> 0 ||<:> 0 ||<:> 0 ||<:> 4 ||<:> 0 ||<#dcdcdc><:> '''4''' ||<:> 4 ||<:> 1 || ||<#f5822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송진우(야구)|송진우]] ||<:> 0 ||<:> 1 ||<:> 0 ||<:> 0 ||<:> 0 ||<:> 0 ||<:> 0 ||<:> 0 ||<:> 0 ||<#dcdcdc><:> '''1''' ||<:> 8 ||<:> 0 || 중계방송사는 KBS 1TV. 홈으로 돌아온 빙그레는 [[송진우(야구)|송진우]]를 기용했고, 해태는 [[문희수]]을 내세웠다. 빙그레는 2회말 1점을 얻어 앞서갔고 송진우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이어갔다. 해태는 송진우에게 완전히 말리면서 경기 자체가 꼬였다. 빙그레 입장에서는 2회 점수를 낸 후, 무사 1,3루 찬스와 3회 무사 1,2루의 찬스를 놓친 것이 뼈아파기는 했지만 송진우의 구위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경기 자체는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8회 2아웃 이후 대타 정회열 타석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었던 파울플라이를 놓친 것이 화근이 되었고, 2-2에서 회심의 공을 볼로 판정하면서 결국 정회열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퍼펙트가 깨진뒤 송진우는 홍현우에게 안타를 맞으며 노히트노런도 무산되었고 이어 장채근에게 역전 2타점 2루타, 윤재호에게 3루타를 허용하며 연속 3실점을 하고 강판된다. 그 후 구원등판한 장정순이 이건열에게 안타를 맞고 추가 1실점을 하여 결국 1:4로 빙그레가 패배하면서 빙그레는 1,2,3차전을 모두 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시리즈 스윕패에 1패만을 앞둔 절체절명 위기를 맞게 되었다. === 4차전 : V6! 야구는 역시 8회부터! === ||<-999><#f01e23><:> {{{#ffff00 '''4차전 10.13(일) 14:00,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 || ||<:><#dcdcdc> '''팀''' ||<:><#dcdcdc> '''선발''' ||<:><#dcdcdc> '''1''' ||<:><#dcdcdc> '''2''' ||<:><#dcdcdc> '''3''' ||<:><#dcdcdc> '''4''' ||<:><#dcdcdc> '''5''' ||<:><#dcdcdc> '''6''' ||<:><#dcdcdc> '''7''' ||<:><#dcdcdc> '''8''' ||<:><#dcdcdc> '''9''' ||<:><#dcdcdc> '''R''' ||<:><#dcdcdc> '''H''' ||<:><#dcdcdc> '''E''' || ||<#000000><:> '''[[해태 타이거즈|{{{#ff0000 해태}}}]]''' ||<:> [[김정수(1962)|김정수]] ||<:> 0 ||<:> 0 ||<:> 0 ||<:> 0 ||<:> 0 ||<:> 0 ||<:> 0 ||<:> 3 ||<:> 2 ||<#dcdcdc><:> '''5''' ||<:> 7 ||<:> 0 || ||<#f58220><:> '''[[빙그레 이글스|{{{#ffffff 빙그레}}}]]''' ||<:> [[한용덕]] ||<:> 1 ||<:> 0 ||<:> 0 ||<:> 1 ||<:> 0 ||<:> 0 ||<:> 0 ||<:> 2 ||<:> 0 ||<#dcdcdc><:> '''4''' ||<:> 8 ||<:> 1 || 중계방송사는 MBC TV. 빙그레는 [[한용덕]]을 이틀 쉬고 내보내는 도박을 걸었고, 이 도박은 7회까지는 먹혔다. 빙그레가 1회 이정훈의 홈런과 4회 연속 2루타로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빙그레는 한 끗이 부족했다. 8회초에 무사 1,2루 찬스를 잡은 해태는 보내기 번트가 아니라 강공을 선택했고, 이 작전이 적중하여 대타 김태완의 동점 2루타로 동점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뒤는 보내기 번트와 땅볼로 역전. 빙그레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아 8회말 선동열 상대로 [[강석천]]이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승부를 다시 뒤집었다. 아웃카운트 3개만 잡으면 잠실로 가는 상황에서 구원으로 나온 한희민은 [[장채근]]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했고, 3루수 실책이 나오면서 1사 1,2루의 찬스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순철이 역전 적시타를 치면서 결국 9회초 다시 2실점하여 빙그레는 패배했다. 반대로 해태는 불리했던 경기를 기어이 뒤집으면서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복귀하며 통산 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빙그레는 잡을 수 있었던, 아니 잡아야만 했던 경기를 또다시 최악의 역전패로 장식하면서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맞대결 [[삼연벙|3전 3패]]를 당했고, 안방에서 스윕패라는 치욕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 트리비아 == * 앞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무승부로 4차전이 치러졌다.[* 두번째 오버시리즈는 [[2004년 한국시리즈]], 준PO4차전은 [[2005년]] 5전 3선승제로 바뀌면서 나왔다.] 플레이오프에서는 3승1패가 나왔다. 한국시리즈는 해태가 4차전만에 스윕하면서 포스트시즌 모든 시합이 4차전만에 끝났다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1990년 한국시리즈|전년 시리즈]]에 이어 '''2년 연속 스윕'''으로 끝난 유일한 시리즈(!) * 포스트시즌 전체를 기준으로 '''[[잠실 야구장]]에서 단 한경기도 열리지 않은 처음이자 유일한 시리즈'''이다.[* 서울 연고였던 OB, LG는 진작에 4강 탈락했고, 한국시리즈가 5차전까지 갔으면 잠실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었는데, 해태가 스윕으로 막은 것이다.~~서울 해태팬, 빙그레팬들은 그저 눈물만(...)~~ 더불어 이 당시에는 플레이오프 5차전 마저 잠실 중립경기가 있었는데 빙그레가 3승 1패로 이겨서 5차전이 치뤄지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한정으로는 [[1987년 한국시리즈]] 이후 두 번째로 서울에서 단 한경기도 안열리고 끝난 시리즈이다. 이후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째로 서울에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고 끝났다.] * 3차전 8회 2아웃 정회열 타석의 2-2에서 바깥쪽 직구에 대한 볼 판정은 지금도 논란거리이다. 송진우 본인은 아직도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경기를 본 기자들은 그 공은 스트라이크를 줘도 할 말이 없는 공이었다고 인정한다. 반대로 당시 주심인 이규석 씨는 아직도 그 공은 볼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이후 [[http://news.donga.com/View?gid=52145188&date=20130108|당시 포수였던 유승안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유승안]]의 인터뷰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 3차전이 대역전패로 끝나자 그 공 하나로 경기가 바뀌었다고 생각한 대전의 일부 관중 + 잠실 경기 표를 미리 산 암표상이 합세해서 심판 숙소를 점거하고, 심판과 한 판 뜬 사건이 벌어졌다. 21세기인 지금이야 대전 ~~호구~~'''보살'''팬으로 성향이 완전히 바뀌었지만 이 당시만해도 [[마산아재]], [[대구아재]], 도원아재, 광주아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성깔있는 '''대전아재들'''이었다. ~~칰키워의 원조~~ 사실 1980~90년대 야구팬들은 거의 이랬다. 어쨌든 결과는 의외로[* 사실 심판이 백이면 백 전직 야구선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예정된 참사(...)였다.] 심판의 승리. 대신에 경찰에 가서 치료비는 다 물어줘야 했다고 한다. * 빙그레는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를 상대로 이 시리즈까지 세번 맞붙어서 0:3의 전적으로 처참히 발렸다. 빙그레-한화 이글스의 첫 우승이 늦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해태 때문이었다.(...)~~삼성도 마찬가지(...)~~[* 하지만 삼성은 이미 1985년에 통합우승으로 V1을 달성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한정 첫 우승은 통합 우승 이후 [[2002년 한국시리즈|17년이나 지난 후에서야 했다.]]] 사실 해태가 너무 강했다. 하필 빙그레의 전성기가 해태의 최전성기와 일치했던 것이 컸다. 거기다 세번 맞붙으면서 시리즈 전적도 2:4(1988년), 1:4(1989년), 0:4(1991년)으로 계속 맞붙을수록 승수가 줄어들면서 더 호구잡혔다. 빙그레-한화팬이 삼성팬 못지 않게 해태-기아를 못잡아먹어 안달이 났던 것도 다 이 탓인 듯. 공교롭게도 이 시리즈 이후 빙그레-한화와 해태-기아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은 2013년을 기준으로 한차례도 없다.[* 1994년, 2006년에 만난 적도 있긴 하나 둘 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준플레이오프였다. 그리고 1994년에는 2승 스윕으로 한화가 해태를 눌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에게 스윕패로 탈락했고, 2006년에는 2승 1패로 한화가 KIA를 누르고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이 시리즈도 또 준우승~~ 사실 해태-KIA는 한국시리즈에서는 극강이어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이상하게 단 한번도 승리를 못할 정도로 [[호구]]급이다(...)]~~2013년에 이 두 팀의 [[KIA 타이거즈/2013년|상]][[한화 이글스/2013년|황]]을 보면 참...~~ * 별 것 아니지만, 우승 엠블럼에 오타가 있다(...). 'SERIES'가 'SERI''''SE''''로 적혀져있고~~세리세~~,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당시 우승 횟수는 6회인데 별도 6개가 아니라 7개가 표시되어 있었다. [[분류:해태 타이거즈]] 1991년 한국시리즈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