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1990년대]] [[분류:유럽사]] * 상위 문서 : [[올림픽]] ||||||||||<tablealign=center><#FFFFFF><table bordercolor=#E6E6E6><tablewidth=100%><:>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9/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203px-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png?width=35 '''역대 동계올림픽''' https://pixabay.com/static/uploads/photo/2014/04/02/10/47/snowflake-304589_960_720.png?width=23 ,,'''(Citius, Altius, Fortius)''',,|| ||<width=30%><:> 16회 ||<:> {{{+1 → }}} ||<:><width=30%> 17회[* [[1986년]] [[IOC]]총회에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의 개최 주기를 변경하기로 하였고, 이 해부터 하계와 동계올림픽이 2년 단위로 번갈아 개최된다.] ||<:> {{{+1 → }}} ||<:><width=30%> 18회||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 {{{+1 → }}} ||<:><#DCDCDC>'''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1 → }}}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 ||||||<tablealign=right><:> '''Vinter-OL 1994'''[br]'''XVII Olympic Winter Games In Norway''' || ||||||<bgcolor=#fff><:>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en/thumb/9/96/1994_Winter_Olympics_logo.svg/780px-1994_Winter_Olympics_logo.svg.png?width=150 || ||||||<:> https://colorlib.com/wp/wp-content/uploads/sites/2/2014/02/1994-Lillegammer-Olympics_Posters.jpg?width=230 || ||<:> 대회기간 |||| [[1994년]] [[2월 12일]] ~ [[2월 27일]] || ||<:> 개최국가/도시 |||| [[노르웨이]]/릴레함메르 || ||<:> 대회 이념 |||| '''Se ilden lyse'''[br]'''Fire in your heart '''[br](당신의 마음에 불을) || ||<:> 공식 주제가 |||| Fire in your heart || ||<:> 마스코트 |||| 호콘&크리스틴 || ||<:> 참가국 |||| 67개국 || ||<:>참가선수 |||| 1,737명[br](남자: 1,215명, 여자: 522명) || ||<:> 경기종목 |||| 12개 종목, 61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자 |||| 하랄 5세 || ||<:> 선수 선서 |||| 베가르 울방 || ||<:> 심판 선서 |||| 카리 코링 || ||<:> 성화 점화 |||| 호콘 왕세자 || ||<:> 주경기장 |||| 리스고스바켄 스키 점프 아레나 || [목차] == 개요 ==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펼쳐진 동계[[올림픽]].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 직후 2년 만이었다. [[1986년]] [[IOC]] 총회에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의 개최 주기를 변경하기로 하였고, 이 올림픽부터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2년 단위로 번갈아 개최하기로 하였다. == 유치과정 == [[1988년]] [[1988 서울 올림픽|하계올림픽]]이 열리게 될 [[대한민국]] 서울 IOC 총회에서 열리게 되었다. 유치 경쟁도시로는 노르웨이의 릴레함메르,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 [[불가리아]]의 [[소피아]], [[미국]]의 [[앵커리지]]였다. |||||||||||| 1994년 유치 투표 과정 || || 국가 || 도시 || 1차투표 || 2차투표 || 3차투표 || 결과 || || '''노르웨이''' || '''릴레함메르''' || '''25''' || 30 || '''45''' || '''유치 선정''' || || 스웨덴 || 외스테르순드 || 19 || '''33''' || 39 || 유치 탈락 || || 불가리아 || 소피아 || 23 || 22 || || 유치 탈락 || || 미국 || 앵커리지 || 17 || || || 유치 탈락 || 참고로 스웨덴은 이 대회 유치에서도 떨어지면서 '''연속 4번 탈락'''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옛날 식민지이자 지난번 투표에서 공동 3위였다가 패자부활전에서 차점자 탈락을 한 노르웨이에게 패배했으니 안 그래도 매 유치전마다 신통찮았던 스웨덴으로서는 말 그대로 통한의 패배. 그리고 1998년 유치과정과 2002년 유치과정에서도 또 떨어지면서 '''연속 6번 탈락'''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스웨덴 [[지못미]]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떨어질 나라는 떨어진다]]-- --[[대한민국]] [[평창군]]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3번만에 소원성취]]했다능-- == 결과 == |||||||||||| 1994년 올림픽 메달 순위 || || 순위 || 국가 || 금 || 은 || 동 || 합계 || || 1 || [[러시아]] || 11 || 8 || 4 || 23 || || 2 || [[노르웨이]] || 10 || 11 || 5 || 26 || || 3 || [[독일]] || 9 || 7 || 8 || 24 || || 4 || [[이탈리아]] || 7 || 5 || 8 || 20 || || 5 || [[미국]] || 6 || 5 || 2 || 13 || || 6 || [[대한민국]] || 4 || 1 || 1 || 6 || || 7 || [[캐나다]] || 3 || 6 || 4 || 13 || || 8 || [[스위스]] || 3 || 4 || 2 || 9 || || 9 || [[오스트리아]] || 2 || 3 || 4 || 9 || || 10 || [[스웨덴]] || 2 || 1 || 0 || 3 || == 화제거리 == * 동계 올림픽을 포함해 올림픽 역사상 최고[[위도]] 지방에서 열린 올림픽(하계 포함, 61° 06' 53”)이었다. 오슬로(59 ° 55') 동계올림픽의 자체 기록을 깼다. 한편 뒤이은 [[나가노]] 동계 올림픽 역시 [[삿포로]]의 기록을 깨면서 가장 낮은 위도(36 ° 34')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이 되었다. * [[피겨 스케이팅]] 미국 예선 개최 직전, 낸시 케리건[* [[사라 케리건]]의 이름은 이 선수 이름에서 따왔다. [[사라 케리건]] 항목 참조]이 라이벌의 관계자에 피습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토냐 하딩 사건]]을 볼 것. *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는 16세의 [[옥산나 바이율]]이었으며, 그녀는 조국인 [[우크라이나]]에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스케이터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고아'''소녀가 올림픽 챔피언까지 오른 성공스토리가, 당시 북미언론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바이율의 갈라 프로그램인 [[백조]]는 아직까지도 명프로그램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갈라프로그램으로 꼽고 있다. * 당시 [[옥산나 바이율]]은 쇼트에서 낸시 캐리건에 이은 2위였다. 이 대회부터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는 쇼트 1위가 올림픽 우승을 하지 못하는 징크스가 생겼다. 이 징크스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우승하며 깨진다. * [[피겨 스케이팅]] 페어에서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고르디바]]/[[세르게이 그린코프]](a.k.a '''G&G''')조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조는 이미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소련 대표로 출전, 당시에도 금메달을 땄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프리 프로그램인 월광소나타로 역사상 길이 남을 연기를 선보였고,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린코프가 사망하면서 '''G&G는 진짜 전설이 되었다'''. 피겨스케이팅에서 페어 레전드를 꼽으라면,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주저없이 G&G를 꼽는다. * [[대한민국]]은 [[피겨 스케이팅]] 남자 싱글에 정성일 선수가 출전하여 17위라는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는 [[김연아]] 등장 이전까지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이 올림픽에서 기록한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 [[노르웨이]] [[스키점프]] 선수가 성화를 들고 스키점프대에서 입장하고 노르웨이 왕자가 바톤터치하여 성화를 점화하였다. * 소련에서 독립해 이번 대회에 첫 출전한 국가 중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이 첫 출전만에 메달을 획득했다. 유고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와 남반구의 [[호주]]가 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한 것도 이 대회. 이 중 우즈베키스탄은 리나 체르야조바가 프리스타일 여자 에어리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 현재까지 유일한 동계올림픽 메달이다. 카자흐스탄 역시 크로스컨트리의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가 금 1개 은 2개를 혼자 따내며 분투했는데, 이것이 이번 대회 카자흐스탄이 땄던 모든 메달이고 아직까지도 유일한 카자흐스탄의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다. * [[대한민국]]의 김윤미 선수는 '''만 13세 3개월'''의 나이로 [[쇼트트랙]]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서 동/하계 올림픽 합산 '''역대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이 기록은 [[2012년]] 현재 깨지지 않고 있다. ISU에서는 1996년부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자에 나이 제한[* 전년도 7월 1일 기준으로 만 15세 이상]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스케이팅 부문에서 깨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 * 이 대회는 흑자대회로 여러번 소개되었다. 이 대회가 흑자를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대회건물을 모두 가건물로 건설했다가, 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철거해 버려서 '''시설 건설비용을 감축하고 유지비용 및 관리비용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이쪽보다는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쪽을 모델로 취하고 있다. --성공할 지는 모르겠다-- * 노르웨이의 국민가수 Sissel이 플라시도 도밍고와 듀엣으로 부른 주제가 Fire In Your Heart가 히트하여 이후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테마송으로 각인되었다. 노르웨이어 버전은 Se Ilden Lyse. * 이 대회를 전후하여 누군가가 썰렁한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릴레함메르~"를 외치는 드립도 있었다. 정확히는 당시 [[문화방송|MBC]] 개그 프로그램('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등장인물이 썰렁한 이야기를 하면 쇼트트랙 선수 차림을 한 사람들이 '''"릴레~함메르~ 릴레~함메르~"'''라고 외치면서 스케이트 타듯 지나가던 것. '썰렁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코미디인데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를 접했을 때의 반응'으로 확장됐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 이 대회는 올림픽 비운의 영웅 --[[콩라인|콩(?)]]-- [[이규혁]]이 첫 출전한 대회이기도 하다. 항간에 최연소 대표라고 알려졌지만, 바로 윗줄에 [[김윤미]]가 있고, 스피드 스케이팅팀에 백은비가 있었다. * 한국은 지난 알베르빌 대회와 마찬가지로 쇼트트랙 편중을 벗어나려 했으나 실패했다. 사실 스키와 피겨스케이팅 같은 종목을 빼면 스피드 스케이팅 말고는 [[답이 없다|답이 없었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의 경우 [[제갈성렬]]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김윤만]]은 의외의 불행이 있었다[* 경기 중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서 재경기를 해야 했다.] 여자 팀의 [[유선희]]는 부담감[* 당시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메달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던 선수는 유선희뿐이었다. 김윤만은 (상대적으로) 기복이 심했고, [[제갈성렬]]은 부상 중이었다.]과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 나이 29. 지금도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는 정말 많은 나이였다. 당시 한국 국가대표들은 청소년시절 무리한 훈련으로 인한 혹사와 체력 방전으로 심해 20대 후반만 되어도 체력 노화가 심각했다. 탁구의 여왕 [[현정화]]도 24에 은퇴했다.]이후 한국이 쇼트트랙 이외 종목에서 메달이라는 것을 건져온 것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가서야 가능했다. [*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나온 [[이강석]]의 동메달.] [[분류:동계올림픽]]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