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항공 사건사고]], [[북한의 대남 도발사]] [include(틀:사건사고)] [[파일:attachment/Lockheed_EC-121M_with_F-4B.jpg]] EC-121M 'Warning Star'의 모습. [[영어]]: EC-121 shootdown incident [[중국어]]: EC-121击落事件 [[일본어]]: アメリカ海軍EC-121機撃墜事件 [목차] == 개요 == [[1969년]] 4월15일 오후 3시 55분, [[일본]] 아츠기 [[주일미군]]의 [[미 해군]][[해군 항공대|항공]][[기지]]에서 이륙한 [[해군]] 전자정찰기 EC-121가 [[북한 공군]] [[MiG-21]] [[전투기]]에 의해 [[동해]]상에서 격추되었다. 위치는 [[청진]] 남동쪽 150㎞ 해상이었다. 이로 인해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0/10/05/201010050500008/201010050500008_1.html|관련 기사]] [[http://www.navy.mil/submit/display.asp?story_id=73393|미국에서는 MIG-17에 의한 격추로 보고 있다.]] Warning Star라는 닉네임을 가진 EC-121은 사고 당일 오전 7시에 [[소련]]([[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군) 및 [[북한]] 정찰 임무를 띠고 아츠기 미 해군기지에서 이륙한지 7시간 뒤 사고 해역에서 사라진다. == 사건 전개 ==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푸에블로 함 피랍사건]] 이후 자신감을 가진 [[북한]]은 좀더 큰 도발을 행하기로 하고, 정기적으로 북한 영공에 접근해 정보를 수집해가는 미 해군 정찰기 EC-121을 격추하는 대담한 작전을 계획했다. EC-121은 프로펠러 비행기로 속도는 느리지만 당시로서는 최고 성능의 [[레이더]]와 [[전자]] 장비를 갖추어, 이를 활용 북한전투기가 뜨면 먼저 발견하고 멀리 달아나곤 했다. 일본 아츠기 해군기지에서 발진한 EC-121기는 동해를 통해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와 [[소련군|공군]]의 [[극동]] 공군이 포진한 [[블라디보스토크]]를 정찰하고 이어 북한 쪽을 훑으며 남쪽으로 내려오곤 했다. 이 비행기를 노린 것은 북한 공군의 [[김책]]공군대학장 김기옥 [[준장|소장]]이었다.[* 김기옥은 북한에서는 6·25 전쟁 2차대전 때 에이스로 명성을 떨쳤던 [[미 공군]] 에이스 토마스 젤레스의 F-86 세이버 전투기를 격추한 조종사로 이름이 높다. 당시 토마스 젤레스는 평남 개천비행장 상공에 매복해, 개천비행장에서 어떠한 항공기도 이륙하지 못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기옥은 MiG-15를 몰고 과감히 이륙해 토마스 젤레스의 F-86을 격추해버렸다는 것이다.] 어랑비행장은 김책공군대학이 관할하는 공항으로, 이곳에는 속도가 느린 [[MiG-15]]기밖에 없었다. 그래서 김기옥은 평남 북창비행장에 있는 [[MiG-21]]기 두 대를 어랑비행장으로 옮기게 했다. 하지만 MiG-21기가 자력으로 어랑비행장으로 날아오면 미 해군 정찰장비에 그 사실이 포착하고 경계하게 됨으로, MiG-21기를 분해해 야간 [[열차]]에 싣고 비밀리에 어랑비행장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랑비행장에 대형 [[텐트]]를 쳐 미군 정찰장비의 첩보을 차단한 후, MiG-21기를 재조립(!)했다. 그리고는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을 기약하며 1주일 남짓 EC-121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1969년 4월15일 북한 공군 레이더는 EC-121이 예상한 항로로 날아온 것을 포착했다. 김기옥은 즉시 두 대의 MiG-21기를 이륙시켜 [[바다]]에 바짝 붙어 날아가는 초저공 비행으로 EC-121의 예상 진행 항로 쪽으로 날아가게 했다.[* 이때 단거리 로켓추진장치로 이륙을 더 빠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EC-121의 레이더는 어랑비행장을 이륙한 두 대의 비행기를 발견했을 테지만,이 당시에는 아무리 우수한 레이더일지라도 이 항공기가 MiG-21인지 MiG-15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EC-121 승무원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음속 전투기인 MiG-15라 생각하고, 별 대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그 21의 경우에는 마하 2까지 가속된다.) 다만 이 안이한 대처는 소련 영공에서 벗어났다는 방심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전까지는 블라디보스톡 공군 기지 쪽에서 뭔가 날아올랐다 싶으면 뭐가 됐든 그 즉시 정찰을 포기하고 기수를 돌리는데 북한 쪽 발진에 대해서는 별다른 회피기동을 하지 않았다. MiG-21 2기는 초저공으로 바다에 붙어 EC-121 진행 항로로 접근하다가 갑자기 치솟아 EC-121로 돌진했다. 먼저 MiG-21 제1번기가 열추적 미사일 [[K-13]]을 발사했다. 열추적 미사일은 열이 많이 나오는 제트기를 쫓는데는 탁월하지만 EC-121 같이 열이 적게 나오는 프로펠러기는 놓칠 수도 있다. 허나 '''거리가 가깝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당시 북한의 조종사들은 안 되면 몸으로도 때우겠다는(?) 심정으로 미사일이 맞지 않으면 공중 충돌을 해서라도 EC-121을 격추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1번기가 최근 거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자, 이어 2번기 조종사인 현기수 [[대위]]가 K13을 발사하였고, EC-121는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동해]]로 추락했다. 이로 인해 EC-121 승무원 31명은 '''전원 사망'''했다. == 이후 == 미국은 강력하게 대응하여,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USS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하여 40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71기동함대를 동해에 진입, 원산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벌였고, [[판문점]]에서는 공산측의 요청으로 290차 군사정전위가 긴박하고,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열렸으나, 미국의 응징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닉슨]] 행정부는 '''전술 핵무기[* 당시만 해도 주일, 주한미군기지에는 전술핵이 있었다.]를 사용한 보복 공격을 검토'''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격추작전에 동원된 MiG-21 2대는 이 공로로 '415 전투기' 라는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 관련 문서 == * [[항공 사건사고]] * [[냉전]] * [[미국]] * [[일본]] * [[북한]] * [[북한의 대남 도발사]] : 엄밀히 말하면 '대남 도발'은 아니다. [[분류:항공 사건사고]][[분류:군사 사건사고]] EC-121 격추 사건 문서로 돌아갑니다.